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44화 (44/186)

제44화

렐페이라 가문의 마차가 지나간 후, 카단은 알비스와 함께 성문을 넘어섰다.

“던전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응. 알비스, 너는 왜 여기에 있어?”

그 질문에 알비스가 실망스럽다는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렐페이라. 내가 사는 도시라고 말했었는데….”

잠깐 기억을 더듬어보던 카단이 이내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러네. 어쩐지 낯선 이 도시의 이름이 익숙하더라.”

카단은 미안하다며 알비스의 어깨를 두드렸고, 알비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나저나 갈 곳은 있어? 배는 고프지 않고?”

알비스의 질문에 카단은 고개를 저었다.

“무작정 왔어. 이제부터 좀 찾아보려고.”

대답과 함께 시선을 옮겨 도시 안을 살펴봤다.

확실히 여태껏 다녀본 도시와는 다르게 낙후된 환경. 뿐만 아니었다. 도시의 분위기 자체가 무척이나 어두웠다.

“그나저나 이 도시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왜 이렇게 칙칙하지?”

아직 해가 하늘에 떠 있었지만, 거리 곳곳에 술 취한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바닥에 누운 사람들의 돈을 훔치고 있었고, 골목 구석에는 관능적인 옷을 입은 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해댔다.

확실히 건강한 도시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무법 도시라도 되는 건가?’

게다가 도시 곳곳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네크로맨서만이 느낄 수 있는 망자들의 기운도 가득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어. 아무래도 치안이 좋지는 않아….”

알비스는 민망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술에 뻗은 사람들이나 대놓고 소매치기하는 애들만 봐도 도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네.’

심지어 경비병으로 보이는 이들도 한 손엔 술병을 들고 있었다.

“렐페이라 자작의 갑질이 좀 심한 것 같던데, 관리하지 않는 건가?”

가문의 이름을 걸고 만든 도시가 이처럼 오염되었는데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다니.

카단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응. 자작님은 도시 치안 따위는 조금도 관심 없는 것 같아. 예전부터 쭉.”

“아니, 왜?”

카단의 질문에 알비스가 주변을 살피더니 전보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답했다.

“치안이 나빠야 자작님이 배를 채울 수 있거든. 부끄럽지만 이 도시는 불법으로 유명해.”

불법적인 조직들이 자리를 잡은 도시. 렐페이라 자작은 그들에게 돈을 받는 대신 눈을 감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시민들은 떠나지 않는 거야? 너도 그렇고.”

“모두 빚이 있으니까….”

렐페이라 자작은 불법 조직들을 이용해 시민들을 빚지게 하여 도시에 묶어두었다.

도망갈 수 없도록 추적마법까지 걸어뒀다고 하니,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는 상태.

‘생각보다 더 썩어있는 도시였군.’

렐페이라 자작은 생각보다 더 악덕하고 부패한 자였다.

귀족의 권한을 최대한으로 누리려 했고, 권위로 사람들을 찍어누르는 것을 즐겼다.

“영웅 아카데미만 졸업하면 나도 가족들 데리고 이 도시를 떠나려고…. 그때쯤이면 빚은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알비스가 지닌 귀족 트라우마도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알비스를 바라봤다.

“아, 카단. 갈 곳 없으면 우리 집에 갈래?”

“초대해주면 감사히 가도록 할게.”

카단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알비스는 해맑게 웃으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

알비스의 집은 생각보다 더 낡은 곳이었다.

천장과 벽면에는 구멍이 뚫렸었던 흔적들이 가득했고, 지하에 들어온 것처럼 습한 기운도 느껴졌다.

“형!”

“오빠!”

알비스가 집으로 들어서자, 그의 동생들이 총총 달려와 그에게 안겼다.

“형! 잘 지냈어? 이제 형 가디언이야?”

“오빠! 보고 싶었어!”

도시를 걷는 내내 암담한 분위기만 마주하다 밝은 아이들을 보니 카단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아냐. 나 아직 1학년이야. 나도 보고 싶었어. 애들아.”

알비스는 환하게 웃으며 동생들을 끌어 안아주었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장사하러 가셨어!”

“우리보고 집 잘 지키고 있으라고 하셨어! 그런데 옆에 오빠는 누구야?”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카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제야 알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단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인사해 내 동생들이야. 애들아 이 사람은 내 친구 카단이라고 해.”

여전히 어린아이들이 익숙하지 않은지 카단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카단이 낯설게 느껴졌는지, 알비스의 동생들은 알비스의 등 뒤에 숨어 빼꼼히 카단을 바라볼 뿐이었다.

“카단. 잠깐만 기다려. 음식 좀 차려올게. 애들 좀 잠시 봐줄 수 있을까?”

카단은 당황스럽다는 듯 알비스를 바라봤고, 알비스는 당황하는 카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 무서운 형이다! 도망가!”

“오빠! 나도 오빠 도울래!”

아이들 역시 카단과 어울리기 힘들었는지, 주방으로 향한 알비스를 따라 도망쳤다.

잠시 후.

간단하게 식사를 끝낸 카단과 알비스는 집 앞 골목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도시에서 지내는데도 아이들이 꽤 밝아 보이네?”

이런 환경에서 지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알비스의 집은 화목해 보였다.

“내가 생도가 되면서 겨우 화목해질 수 있었어. 그전까지는 굉장히 힘들었고….”

알비스가 영웅 아카데미에 합격하면서 알비스의 집안에 희망이 생겨난 것이었다.

“…음, 알비스. 이 도시에 관해서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들려줄 수 있어?”

“아까 말한 것 말고도 더?”

“불법 조직들이 도시를 장악했다고 했지?”

“응. 배후에 귀족이 있어서 그런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듣기로는 유명했던 용병들도 불법 조직에 속해있다고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알비스가 왜 그런 걸 물어보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 오지랖 정도라고 해두지.”

알비스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기까지 2년. 그때까지 그의 동생들이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자라날 수 있을까?

고작 한 번밖에 보지 않은 알비스의 동생들이지만, 어린아이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

‘뭐, 불법 조직들이라면 과거 내 전문분야이기도 했고.’

순간, 카단의 의도를 파악한 알비스가 허겁지겁 허공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카, 카단! 위험해. 이미 시민 몇몇이 주변 도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어.”

“평민의 목소리가 귀족에게 닿기는 힘들겠지.”

“다른 귀족들도 알면서도 쉬쉬하는 분위기야. 아무리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을 거야.”

영웅 아카데미 생도의 신분이 귀족도 쉽게 못 건드릴 신분이라지만, 그렇다고 귀족에게 역으로 갑질할 수는 없었다.

“뭐, 생도 신분으로 어쩌려고 하는 건 아니야. 아무튼 아는 정보가 있으면 좀 알려줘.”

***

알비스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알비스는 생각보다 불법 조직들에 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다.

어쩌면 영웅 아카데미에서 힘을 키워 불법 조직들에게 대항하려 한 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뭐, 덕분에 일이 쉬워지겠어.’

카단은 커다란 주점 앞에 서서 낡은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곰의 사냥터]

‘불법 조직이 도시를 장악했다면 뿌리부터 건드려줘야지.’

도시를 상대로 전쟁을 치를 수도 없는 법.

‘쉽게 볼 수 있는 놈들은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이다. 음지에 숨은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을 먼저 만나봐야지.’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품 안에서 잭 카터에게 받은 검은색 가면을 꺼내 얼굴을 덮었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퀘퀘한 냄새가 카단을 반겼다.

곳곳에 연기가 피어올랐고, 술에 찌든 듯한 냄새가 났다.

‘반갑진 않지만, 익숙한 분위기네.’

주변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테이블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받고 50실버 더!”

“콜!”

아니, 술잔이 올려져 있긴 했지만, 그들이 하는 건 다름 아닌 도박이었다.

‘또 도박판에 오게 될 줄이야.’

카단은 피식 웃으며 가면을 고쳐썼고, 천천히 주변을 거닐기 시작했다.

“이봐. 어떻게 왔지?”

가면을 쓴 카단의 차림새가 수상했기에 험상궂게 생긴 직원 하나가 빠르게 다가와 앞을 막아섰다.

“도박판에 왜 왔겠어? 돈 따러 왔지.”

“누구 소개로 왔는데?”

직원의 태도를 보아선 아무래도 쉽게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

“말하면 알아?”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공중에 튕겼다.

“보안은 철저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드네.”

“그, 금화?”

은화도 아닌 금화를 아무렇지 않게 던져주는 카단을 보며 직원은 쫙 폈던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굽신거렸다.

“아이고. 제가 몰라봤습니다. 편하게 즐기다 가십시오.”

아무리 보안이 철저하다고 하더라도 ‘돈’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이런 곳이라면 돈의 힘이 가장 쉽게 통할 수밖에 없지.’

앞을 막아섰던 직원을 가볍게 해결한 뒤, 카단은 다시 도박판을 향해 걸었다.

‘이건 모르는 게임이고.’

모르는 도박도 많았지만, 다행히 야바위나 카드 게임 등 익숙한 도박도 존재했다.

“제기랄! 난 여기까지 하지.”

그때 카드 게임이 벌어지던 테이블에서 사람 하나가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다 싶었는지, 카단은 여유롭게 걸음을 옮겨 테이블 앞에 멈춰섰다.

“한 명이 부족한 것 같은데, 앉아도 되겠습니까?”

테이블엔 관능적인 드레스를 입은 여성 하나와 괴짜처럼 생긴 젊은 남자, 그리고 돈이 많아 보이는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돈 주러 온 사람이라면 환영이죠?”

“아~ 뭐해요? 앉아, 앉아!”

“저도 좋습니다.”

세 사람의 환영을 받으며 카단은 자리에 앉았고, 그렇게 게임이 시작됐다.

“뭐야? 풀하우스? 또 졌네.”

“신인의 행운 그런 건가?”

“축하드립니다. 실력이 좋으시군요.”

총 다섯 판의 카드 게임이 진행되었고, 카단은 무려 세 번이나 승리를 거머쥐었다.

카단이 따로 수를 쓴 건 아니었다.

‘먼저 희망을 주고 그 희망 끝에 절망을 안겨준다…. 이곳의 도박판도 크게 다를 건 없군.’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 테이블에서 카단은 먹잇감.

즉, 카단을 제외한 셋이 작당하고 카단의 돈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봐요. 그 가면 좀 벗지? 보는 사람이 답답하네.”

“맞아요. 목소리도 좋고 몸도 좋은데, 그 잘생긴 얼굴 한 번 보여줘요.”

괴짜같은 남성과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가면을 가리키자, 카단은 뒤쪽을 가리키며 답했다.

“얼굴을 가린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신분을 감추고 싶은 건 카단 뿐이 아니었다.

도박판에서 얼굴이 팔리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으니, 이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자, 그럼 제가 이겼으니, 카드를 돌리도록 하죠.”

삭, 삭, 삭.

카단은 빠르게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익숙한 손놀림에 카드들이 화려하게 섞였다.

그렇게 게임이 진행되고, 모두의 카드가 오픈되었을 때.

“또… 이기셨네요?”

“뭐, 뭐야? 어떻게 거기서 카드가 그렇게 붙어?”

“……축하드립니다.”

이번에도 승리는 카단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번엔 사람들의 반응이 전과 달랐다. 여유롭게 카단의 승리를 축하하던 이들의 얼굴에 작게나마 당황함이 드러났다.

‘분명 이번 판은 내가 이기도록 했는데?’

괴짜는 애써 당황함을 숨기며 은화를 쓸어 모으는 카단을 바라봤다.

‘저 괴짜 녀석 실수라도 한 건가?’

‘이상하군.’

여성과 중년 남성 역시 애써 웃으며 당황함을 감추려 했다.

그곳에서 여유롭게 웃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카단 뿐이었다.

‘재미 삼아 타짜 출신인 녀석에게 배운 손기술을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은화를 모두 검은 자루에 담은 카단은 다시 카드를 들며 사람들을 향해 흔들었다.

“판돈 좀 올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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