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46화 (46/186)

제46화

“사,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클롭이 무릎을 꿇고 카단을 향해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조금 전까지 카단을 향해 달려들었던 10명의 조직원이 드러누워 있었다.

‘미친! 이게 말이 돼?’

클롭은 당혹스러웠다.

맨손으로 무기를 든 조직원 10명을 순식간에 때려눕히다니.

어느 정도 훈련도 받은 이들이 무기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쓰러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사단 소속 기사인가? 아니면 의뢰를 받고 찾아온 용병?’

무엇이 되었든, 지금 이 방안에서 카단을 쓰러트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제가 귀인을 몰라뵀습니다!”

몇 명이 와도 중급 용병 수준의 전투력을 지닌 사람이 아닌 이상 카단을 막을 수 없다.

클롭은 그렇게 판단하며 더욱 큰 소리로 목숨을 구걸했다.

“한 번만 살려주신다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됐고. 계약 서류랑 장부 있는 곳으로 안내하세요.”

카단은 클롭을 내려다보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그, 그건….”

“장부를 안 남겨도 죽고. 넘겨도 죽는다. 이런 건가?”

“네? 아, 네! 맞습니다! 제발 장부만큼은 참아주십시오!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장부와 계약 서류들을 넘긴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뒤를 봐주고 있는 렐페이라 자작이 클롭을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다.

“나한테 장부랑 계약 서류들 모두 넘기고 도망치는 게 더 오래 사는 길 아닙니까?”

스릉.

카단은 단검을 꺼내 클롭의 목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저한테 넘기지 않으면 지금 바로 죽을 텐데.”

날카로운 칼날이 목에 닿는 순간,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벌벌 떨던 클롭이 이내 눈을 확 감으며 말했다.

“차라리 죽이십시오!”

렐페이라의 보복이 두려웠기에 클롭은 그대로 죽음을 택하려 했다.

“알겠어요.”

“자, 잠깐! 잠깐만요!”

그러나 카단의 차가운 대답에 그의 생각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단순한 협박이 아닌 진짜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느껴졌기에 말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3층에 철로 만들어진 문이 있을 겁니다. 사업장 관련 서류와 장부는 모, 모두 거기 보관하고 있습니다.”

“열쇠는?”

“예?”

“그쪽이 관리인이라면서요?”

카단이 손바닥을 펼쳐 보이자, 클롭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숙였다.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세요.”

“장부와 서류는 무슨 일에….”

장부와 서류를 챙기는 부류는 보통 두 가지였다.

조직을 경비대에 넘겨 처벌받게 하려는 부류. 혹은 도박장 빚을 없애거나 보복을 하려는 부류.

“제가 그것까지 알려드려야 하나요?”

카단은 짧게 웃으며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고, 클롭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목에 걸고 있던 열쇠를 빼서 카단에게 건넸다.

“그, 그러면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이제 저는 살려주시는 겁니까?”

“네. 그만 가보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카단은 미련 없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고, 그 신호에 맞춰 클롭은 재빨리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

‘역시 배후에 있는 귀족은 렐페이라 자작이었구나.’

도박장을 빠져나온 카단은 조금 전 창고에서 챙겨온 장부와 서류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장부와 몇몇 서류에서 간신히 렐페이라 자작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불법 사업장에 가담한 귀족들이 한둘이 아니었지.’

불법 사업장에서 거래하거나 투자한 귀족들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이 세계도 다르지 않구나. 날짜부터 시작해 아주 세세하게 기록해놨어.’

거래 내용이 적힌 장부와 서류들은 불법 조직의 무기이자 보험이었다.

거래자, 투자자들의 갑질을 막기 위한 무기였으며, 그들로부터 조직을 보호할 수 있는 보험.

그렇기에 장부는 그 어느 서류보다 세세하고 세밀하게 작성되기 마련이다.

‘덕분에 일이 좀 더 쉽게 풀리겠네.’

혹여나 장부가 대충 적혀 있었다면 카단의 계획이 조금 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카단의 예상대로 장부는 증거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료가 남겨져 있었다.

“어이. 거기 가면 쓴 형씨.”

생각에 잠긴 채 걸음을 옮기던 도중, 앞쪽에서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험상궂게 생긴 남성들이 큰 덩치를 이용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도박장에서 챙겨온 물건들 얌전히 내놓고 꺼져.”

선두에 서 있던 민머리의 남성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카단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클롭이었던가? 도박장 관리자라던 그 녀석이 보냈지?”

“뭐?”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더 빨리 사람을 보낼 줄 알았더니.”

카단에 말에 민머리 남성이 잠시 당황한 듯싶었으나.

스릉!

이내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냈다.

“그것까진 알 필요 없고. 좋게 말할 때 챙긴 물건들이나 내놓고 꺼져. 죽여서 늑대 밥으로 던져주기 전에.”

그러자 민머리 남성 뒤에 서 있던 그의 부하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대충 세어봐도 20명은 넘어 보이는 수.

‘이 녀석들은 좀 다르다.’

카단은 의외라는 듯 민머리 남성과 그의 부하들을 살펴봤다.

도박장에서 상대했던 조직원들이 하급 용병 수준이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들은 적어도 중급 용병 수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웬만해선 맨손으로 상대할까도 싶었지만, 이들이 중급 용병 수준이라면 카단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

스릉.

카단은 허리춤에 꽂아뒀던 단검을 꺼내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뭐, 그래봤자 네크로맨시를 쓰는 일은 없을 것 같고.’

물론 방심하지 않겠다는 것뿐, 그들을 상대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얌전히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네. 그럼 하는 수 없지.”

카단이 단검을 뽑아 들자, 민머리 남성이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애들아. 저놈이 죽여달란다.”

그 말과 동시에 그의 부하들이 카단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끄허어억.”

민머리 남성과 그의 부하들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생각보다 별거 없네.’

그에 반해 카단은 멀쩡한 모습으로 민머리 남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급 용병 수준이라 생각하며 조금은 긴장했었지만, 애초에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단검만으로도 이들을 제압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웅 아카데미에서 왕국 최고의 재능을 지닌 이들과 늘 다퉈왔었다.

민머리 남성과 그의 부하들이 중급 용병 수준의 실력을 지녔다고는 하나, 카단을 위협할 순 없었다.

툭.

카단은 민머리 남성에게 다가가더니,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을 약하게 걷어찼다.

“죽을 정도로 패진 않았으니까, 그만 일어나지?”

“사, 살려주세요.”

카단의 말에 민머리 남성이 재빨리 몸을 일으키더니 다짜고짜 무릎을 꿇으며 싹싹 빌기 시작했다.

“구걸하는 법이 어째 다 똑같냐.”

카단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살려줄 테니까 클롭? 그 자식한테 안내해.”

***

도시 렐페이라의 한 주점 안.

“사실이라니까? 그 빌어먹을 놈이 도박장에 있던 장부랑 서류들을 죄다 챙겨갔다고!”

클롭이 잔뜩 분노한 얼굴로 앞에 앉은 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기사단이라도 나타났다는 거야?”

“근처 귀족들은 렐페이라 자작님께서 이미 손 써두셔서 기사단이 찾아올 리 없는데?”

“혹시 용병 아닐까? 가면을 쓴 거면 기사단일 것 같지는 않은데.”

클롭 앞에 앉은 이들은 도시 렐페이라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유명한 범죄조직의 두목들이었다

“난 이미 다 털렸어. 너희들도 시간문제야! 곧 녀석이 들이닥칠걸?”

클롭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서 뭐? 당장 짐 챙겨서 도망가라고?”

“아까 민머리 녀석 보냈다며? 장부든 뭐든 다 챙겨오겠지. 돈만 주면 시키는 건 다 하는 놈이니까.”

“정 그렇게 걱정되면 사업장 우리한테 다 넘기고 도망가던가.”

두목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클롭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힘을 합쳐야 한다고! 솔직히 민머리 녀석도 그 귀족 놈한테 질 것 같단 말이야!”

언성을 높여 봐도 변하는 건 없었다. 무법 도시에서 영향력을 펼치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클롭. 너는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아.”

“그래. 상황이 어찌 되든 렐페이라 자작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그러게~ 사업장 키울 거면 우리처럼 불법 용병들 좀 고용하라니까? 얼마나 안전하냐?”

그도 그럴 것이, 클롭이 고용한 조직원들은 덩치만 크고 인상만 험상궂을 뿐 전투력이 뛰어난 자들이 아니었다.

“우리가 동맹 상태가 아니었다면, 난 네 사업장부터 노렸을 거야.”

“불법 조직의 핵심은 아무래도 힘이거든.”

“뭐, 네 말이 사실이면 이제 네 사업장들도 죄다 문 닫아야겠네.”

두목들은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해 클롭의 사업장들을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때.

쾅!

주점 문이 세게 열리며, 거대한 무언가가 주점 한가운데로 던져졌다.

“까, 깜짝이야!”

“뭐야? 이건?”

“민머리?”

두목들은 주점 한가운데 던져진 사람을 보며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엇보다 놀란 사람은 클롭이었다.

‘서, 설마….’

바닥에 쓰러진 민머리는 다름 아닌 클롭의 의뢰를 받아 카단을 처리하러 갔던 불법 용병이었기 때문이다.

“살려주면 은혜 잊지 않겠다고 하셨잖습니까? 관리자님.”

활짝 열린 출입문 너머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리고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생각대로 움직여줘서 고마워요.”

이내 카단이 주점 안으로 들어왔고 동시에 클롭과 두목들을 살펴봤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전부 이 도시에서 사업장 하나씩은 관리하고 계신 분들인가?”

처음부터 카단이 클롭을 풀어줬던 이유가 이거였다.

도시의 불법 조직들이 동맹 상태였으니, 클롭은 그들에게 분명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클롭은 카단이 생각하는 그대로 움직여주었다.

“클롭. 네가 말했던 놈이 저놈이야?”

“배짱 한번 두둑하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요란하게 등장해?”

“민머리를 쓰러트린 건 좀 놀랐어. 그래도 이 도시에서는 알아주는 용병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클롭을 제외한 세 두목은 여유로워 보였다.

민머리 용병을 쓰러트리고 클롭의 사업장을 박살을 내놨다지만,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설마 우리가 혼자 다닐까?”

“클롭. 뒤에서 쉬고 있어. 네 장부랑 서류들 모두 챙겨줄게.”

“대신 돈으로 갚아라.”

세 두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점 곳곳에 숨어있던 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2층 계단에서부터 무장한 사람들이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클롭 너랑 다르게 모두 용병 출신이잖아?”

“게다가 우리 조직원들도 용병 출신이 대부분이라고.”

“인원으로 몰아붙이면 힘도 못 쓸걸?”

우웅!

세 두목이 동시에 무기를 뽑더니, 각자 무기에 마나를 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카단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돌려 세 두목을 바라봤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녀석들도 있었어?’

그러나 마나를 다루는 건 재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일반 사람은 달성하기 힘든 경지.

‘저 셋뿐만 아니라, 몇몇 놈들도 마나를 활성화했다.’

영웅 아카데미에서야 모두가 마나를 다룰 줄 알았지만, 아카데미 밖에서 마나를 다루는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번엔 진짜 제대로 해야겠네?”

이상하게도 카단의 목소리에는 두려움 따위의 감정이 아닌 설렘과 기대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따악!

달그락! 달그락!

카단이 손가락을 튕기자, 뼈로 만들어진 벽이 주점의 출입구와 창문을 모조리 막아버렸다.

“마, 마법?”

“뼈 마법이면 설마 네크로맨서?”

뼈로 만들어진 벽이 문을 막아버리자 주점 안에 있던 모두가 놀란 얼굴로 카단을 바라봤다.

“수로 몰아붙이면 힘도 못 쓴다고 했나?”

카단은 이런 시선이 익숙하다는 듯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동시에.

달그락! 달그락!

그의 앞으로 수십의 해골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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