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47화 (47/186)

제47화

해골 병사가 등장한 순간부터 일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도, 도망쳐!”

“창문까지 죄다 막혔는데?”

“이 빌어먹을 해골 새끼들 계속 살아나잖아!”

아무리 부숴도 되살아나는 해골들은 조직원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네크로맨서를 죽여!”

“누가 좀 돌파해봐!”

네크로맨서를 노려라.

이 간단한 네크로맨서 상대법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네크로맨서를 쓰러트리면 언데드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은 기사 수업을 듣는 10살 꼬마도 아는 사실.

물론 그 쉬운 방법을 실행에 옮기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달그락!

“젠장 해골들 되살아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못 뚫겠어!”

“던전에서 본 해골 병사보다 더 센 것 같은데?”

아쉽게도 조직원 중에는 많은 해골을 뚫고 카단에게까지 다가갈 수 있는 실력자는 없었다.

마나를 다룰 줄 안다고 하더라도 그 수준은 고작 2, 3성.

4성 네크로맨서인 카단이 일으킨 해골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체력을 다 쏟아부어야 했다.

“돼, 됐다! 내가 처리할게!”

벽을 타고 천장까지 올라간 한 조직원이 기회를 잡았다며 대뜸 카단을 향해 뛰어내렸다.

위에서 아래로 빠른 속도로 내리찍는 검.

한 방이면 네크로맨서쯤은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조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채애앵!

그러나 이어서 들려온 건 경쾌한 쇳소리였다.

“무, 무슨 반응 속도가 이렇게 빨라?”

“네크로맨서라며…?”

네크로맨서를 포함한 마법사들은 대부분 근접 공격에 취약했다.

분명 회심의 공격이었으며, 보통 네크로맨서라면 막을 수 없을 공격.

아니, 막더라도 균형을 잃고 쓰러져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카단은 단검을 이용해 깔끔하고 안정적으로 조직원의 공격을 막아냈다.

“으아아아악!”

회심의 공격이 실패한 이후, 조직원들은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 미쳤어. 이제 다 끝이야.’

조직원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가장 절망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도박장의 관리자 ‘클롭’이었다.

‘설마 네크로맨서였다니?’

네크로맨서가 왜 무엇 때문에 사업장의 장부가 필요한 것일까?

의문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 의문을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묻는다고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비, 빌어먹을….”

“네크로맨서라면 우리 애들 다 끌어모아도 상대할 수가 없잖아?”

“겨, 경비병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어느덧 카단에게 덤벼들던 조직원들은 모두 쓰러졌고, 이제 사업장을 가진 네 사람만이 남은 상태.

달그락, 달그락.

카단은 해골들이 열어주는 길을 걸어 네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네 사람을 향해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관광 한 번 해볼까 하는데.”

“예? 관광이요?”

조직원들을 다 쓰러트려 놓고 갑자기 관광이라니?

“한 사람씩 데리고 나갈 테니까, 다들 장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도시 렐테이라의 불법 사업장 관광을 말하는 거였나.

두목들은 모두 울상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봤고, 그들의 얼굴에는 끝났다는 좌절감이 묻어났다.

***

‘증거는 이 정도면 충분해.’

범죄조직 투어를 끝낸 카단의 아공간 안에는 렐페이라 가문을 비롯한 여러 귀족의 정보가 담긴 장부와 서류가 가득했다.

“너희들이 가진 사업장과 조직은 오늘부로 끝이야.”

뼈의 벽으로 출입문이 막혀 있는 주점 안.

카단은 옹기종기 모여 벌벌 떨고 있는 두목들을 향해 말했다.

“모든 걸 넘겼으니 저, 저희는 그럼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클롭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고, 카단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바라봤다.

“죄, 죄송합니다….”

전적이 있었으니, 다시 보내줄 리 없다. 클롭은 그렇게 자아 성찰하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주점이니까 먹을 건 충분하겠네. 당분간 여기서 지내고 있어.”

뼈로 벽을 세운 뒤 주점을 감옥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이젠 끝났어.’

‘장부랑 서류를 모두 넘겨버렸으니, 무사히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위험해.’

‘귀족들이 날 죽이려고 들 거야.’

두목들은 해탈한 듯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장부까지 모조리 빼앗겨버렸으니,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싸우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주점 문을 열고 나갔고.

달그락, 달그락!

주점의 출입문 앞엔 또다시 뼈로 만들어진 벽이 만들어졌다.

“제기랄.”

“클롭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게 왜 나 때문이야? 내가 경고했잖아!”

“빌어먹을. 어디 산에 틀어박혀 사냥꾼처럼 살아야 하나?”

***

“카단. 이, 이게 다 뭐야?”

알비스는 당황한 눈으로 카단이 바닥에 내려놓은 서류들을 바라봤다.

“불법 조직들이 갖고 있던 장부와 갖가지 서류들.”

“이, 이건 어떻게?”

알비스에 질문에 카단은 부드럽게 웃어 보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답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단이 불법 조직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도시에 있는 모든 조직들을 건드린 건 아니야. 가장 크다고 했던 네 개의 조직만 처리했어.”

그 말에 알비스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카단을 바라봤다.

“설마 그 도박장에서부터….”

“응. 나머지는 렐페이라 자작만 잡으면 알아서 사라지겠지.”

불법 도시가 된 근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렐페이라 자작밖에 없었다.

“뭐?”

그 말에 알비스가 입을 틀어막으며 카단에게 되물었다.

“레, 렐페이라 자작을 잡겠다고? 아, 안 돼!”

“왜 안 돼?”

“렐페이라 영주성의 기사단과 마법사만 하더라도 너 혼자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어. 특히 기사단장은 6성 이상의 실력자라고.”

렐페이라 영주성에 들어가는 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는 짓.

“기사단은 평균적으로 5성이라고 들었어.”

렐페이라 성문을 지날 때 봤었던 렐페이라 공자의 기사들도 하나 같이 강해 보였다.

언데드로 수적 우위를 점령한다고 한들 6성 수준의 기사가 이끄는 기사단과 마법사를 홀로 상대하기엔 부족했다.

“역시 귀족이라 그런지 기사단도 탄탄하네.”

싸우겠다고 해봤자 알비스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다.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알비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 방법이 있어. 많이 위험한 건 아니니까 렐페이라 영주성으로 좀 안내해줄래? 방법은 가면서 설명해줄게.”

“바, 방법? 많이 위험하지 않다는 건 위험하긴 하단 거잖아?”

“다 설명해준다니까?”

카단은 걱정하지 말라며 알비스의 어깨를 두드렸고, 알비스는 울상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카단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분명 방법이 있는 거겠지.’

여태껏 카단을 봐왔을 때, 그는 생각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계획에 따라 움직였고, 확실한 결과를 가져왔다.

카단이 확신이 없을 땐 승부를 걸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비스는 잘 알고 있었다.

“따라와. 영주성은 좀 더 도시 안쪽으로 들어가야 해.”

성문 근처 빈민가를 지나 도시의 중앙으로 갈수록 건물들이 점차 크고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법 도시의 분위기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멀쩡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거리에는 술과 약에 취한 이들이 돌아다녔고, 보는 눈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다양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

“영주성 근처만 깨끗하군.”

웃기게도 영주성 부근에 도착하자, 거리가 깨끗했다.

술에 취한 사람도 약에 찌든 사람도 보이지 않았으며, 자잘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없었다.

이 거리만 본다면 도시 렐페이라의 치안이 굉장히 좋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영주성 근처니까….”

알비스는 괜히 죄지은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친구에게 자신이 사는 도시의 치부를 보여준 것 같아 민망한 듯했다.

“아무튼 안내해줘서 고마워.”

“바로 들어가려고?”

“응.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에게 부탁한 일이 가장 중요해. 알지?”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알비스에게 건네주었다.

알비스는 카단이 건네주는 것을 받으며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물건을 확인하던 알비스는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고, 카단은 고개를 돌려 거대한 영주성의 성문을 바라봤다.

슥.

카단은 곧바로 가면으로 얼굴을 덮은 뒤 성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멈춰라.”

스릉!

카단이 성큼성큼 걸어오자 성문을 지키던 문지기들이 창을 X자로 교차하며 앞을 막아섰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공격할 테니, 물러서라.”

아무래도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사람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문지기들은 긴장한 상태로 카단을 바라봤다.

“영주님을 뵙고 싶은데.”

스릉!

카단의 말이 끝나자, 경비병들의 창끝이 카단을 향했다.

“그런 수상한 행색으로 영주님을 뵙겠다고?”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군.”

카단은 싸울 의사가 없다며 손을 들더니, 안주머니에서 작은 공책 하나를 꺼내 문지기들 앞으로 던졌다.

“그거 좀 보여드리면 날 만나고 싶으실 거야.”

경비대 중 하나가 손을 뻗어 카단이 던진 공책을 주워 들었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 이게 뭔데?”

“영주님께 물어봐.”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뒤쪽으로 세 걸음 물러섰다.

“난 싸울 생각이 없으니, 여기서 기다리지.”

카단이 멀어지자, 두 문지기는 다시 자세를 바로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무언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내 한 문지기가 성문 안으로 들어갔고, 홀로 남은 문지기는 경계심 짙은 눈으로 카단을 지켜봤다.

잠시 후.

“들어가십시오.”

다시 돌아온 문지기는 무기를 거두며 성문을 열어주었다.

얼마나 급히 뛰어왔는지, 처음과 다르게 얼굴에 땀이 가득했다.

성문을 넘어서자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카단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집사 프레드라고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무기를 가져가실 수 없으므로 잠시 확인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마치 너그럽게 모든 걸 수용하겠다는 듯 카단은 양팔을 벌려 보였다.

“문제가 될 만한 건 없군요. 자, 저를 따라오시죠.”

무기 등의 소지품이야 모두 아공간 속에 있었으니, 검문을 통과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집사가 앞서 영주성 안으로 들어섰고, 카단은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주 화려하게 사시는군.’

어느 영주성 부럽지 않을 정도로 큰 성. 성 곳곳에 배치된 가구와 장식품들 역시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불법 자금으로 물욕을 잔뜩 채우고 있던 모양이군.’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집사가 금으로 장식이 된 커다란 문 앞을 가리키며 고개를 숙였다.

‘마음에 안 들어.’

카단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뒤 화려한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흑발을 쓸어올린 중년의 남자가 카단을 향해 자리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마치 카단이 올 것을 예상하던 것처럼 침착한 모습.

“내가 렐페이라 자작일세. 우선 자리에 앉지.”

카단은 고개만 끄덕일 뿐, 귀족을 향한 그 어떤 예도 갖추지 않은 채 남자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렐페이라 자작은 순간 미간을 찌푸리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날 만나러 오면서 가면까지 쓰고 온 놈에게 통성명은 물론 예의를 바라는 것도 웃기지.’

렐페이라 자작이 피식 웃으며 테이블 위로 작은 공책 하나를 올려놨다.

카단이 문지기에게 던졌던 그 공책이었다.

“이건 어떻게 얻었지?”

“아직 소문이 퍼지지 않은 모양이군. 직접 가져왔다.”

그 말에 렐페이라 자작의 미간이 다시 한번 찌푸려졌다.

모를 리가 있나. 하루아침에 도시를 대표하는 4개의 범죄조직이 무너져 버렸는데.

“그렇지. 덕분에 아주 정신이 없어졌어.”

카단이 무슨 수를 쓸지 모르기 때문에 렐페이라는 최대한 증거가 될 만한 물건들을 정리 중이었다.

“내가 가진 장부들이 당신의 자리가 위협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군.”

카단이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네자, 렐페이라 자작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손님이로군.”

이내 웃음을 멈춘 렐페이라 자작이 표정을 굳히며 테이블 위에 놓인 장부를 가리켰다.

“그래. 원하는 게 뭐지?”

까딱.

렐페이라 자작의 손짓에 근처에서 대기하던 병사 둘이 커다란 상자 하나를 들고 카단 옆에 내려놨다.

“원하는 만큼 더 줄 수도 있어. 말만 하라고.”

비릿한 외모와 어울리는 비릿한 웃음.

철컥.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일반인은 평생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금화가 가득 차 있었다.

“아니면 나랑 일해볼 생각 없어? 너 정도면 이 도시의 사업장을 모두 맡겨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이어진 영업 제안.

“땅을 줄 수도 있어. 돈만 있으면 못 살 건 없으니까.”

그러나 그 어떤 말도 카단은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재롱부리는 조카를 바라보듯 가만히 앉아서 렐페이라 자작을 바라볼 뿐이었다.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내가 뭘 줘야 장부들을 넘길 생각이지?”

이내 렐페이라 자작이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카단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모습에 카단은 긴 침묵을 끝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거 어떡하지? 난 너랑 거래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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