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48화 (48/186)

제48화

카단은 협상이 결렬됐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손을 털었다.

“범죄자들의 뒤를 봐주는 건 잘해도 제대로 된 거래는 할 줄 모르는군. 내세울 게 돈뿐이라니.”

그 말에 렐페이라 자작의 표정이 굳어졌고, 싸늘한 한숨과 함께 그의 입이 열렸다.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군. 나름 좋게 풀고 싶었는데 말이야.”

슥.

렐페이라 자작이 왼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뒤에서 대기하던 기사 하나가 벽에 기대놓았던 창을 집고 카단에게 다가왔다.

동시에 구석에서 대기하던 병사들도 무기를 뽑고 전투를 준비했다.

“죽이진 마. 장부를 다른 곳에 숨겨뒀을 수도 있으니까. 걷지 못할 정도로만 만들어놔라.”

렐페이라 자작은 시작도 하기 전에 승리를 직감하며 비릿하게 웃어댔다.

“직접 여기까지 온 걸 후회하게 해주마.”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재빠르게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영주의 기사단인가? 저 창을 든 놈이 기사단장인 것 같고.’

일반적인 병사들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확실히 더 숙련되고 정돈된 느낌. 무기를 쥐고 다가오는 것뿐이었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기사단장이 6성, 그리고 기사단원은 5성이라고 했지?’

지금 카단의 수준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플래시 골렘을 꺼낸다고 해도 상황이 바뀌진 않는다.’

잠깐 고민에 빠졌을 때.

화륵!

어디선가 주먹만 한 불덩이가 빠르게 날아왔다.

촤르륵!

카단은 불덩이가 날아오는 것을 보곤 재빨리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고.

퍼어엉!

그의 앞으로 뼈로 만들어진 방패 하나가 나타나 불덩이를 막아주었다.

‘마법사도 있었군.’

조금만 늦었어도 불덩이는 뼈 방패가 아닌 카단의 얼굴에 명중했을 것이다.

“네크로맨서다!”

불구덩이가 날아온 곳에서부터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고.

스릉!

그것이 신호였는지, 무기를 든 기사들이 카단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숨길 필요는 없었으니, 카단은 곧바로 자신의 앞으로 해골 병사들을 소환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죽는다.’

6성 기사단장이 이끄는 기사단과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마법사.

카단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생각하며 훈련된 해골 병사들을 앞세웠다.

“레이스.”

이어서 카단은 불덩이가 날아온 방향을 가리키며 레이스를 불렀다.

휙!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반투명한 영혼이 카단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레이스가 캐스팅을 방해하겠지만, 고작 시간 벌기가 전부겠지.’

마법사의 마법을 잠시 멈출 순 있었지만, 빠르게 다가오는 기사단까지 멈춰 세울 순 없었다.

달그락!

뼈로 만들어진 벽을 세워 기사단의 걸음을 늦추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

촤라라라라락!

무기에 마나를 둘러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뼈로 만들어진 벽은 손쉽게 무너져내렸다.

4성이 되며 강화된 해골 병사도 소용없었다.

촤라락! 촤락!

기사단은 마치 장난감을 부수듯 해골들을 뚫으며 카단에게 전진했고 이내.

슈우우우욱!

카단 앞에 도달한 기사 하나가 있는 힘껏 창을 내질렀다.

채앵!

아카데미에서 마티아스와 훈련했던 덕분에 간신히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크헉!”

충격의 여파였는지, 카단은 중심을 잃고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기사단장?’

카단은 방금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6성 수준은 다르다 이거군.’

영웅 아카데미 2학년 최강자인 마티아스는 고작 5성.

‘1성 차이인데 이렇게 다를 줄이야.’

창술의 정교함이나 숙련도는 마티아스가 더 뛰어난 것 같았지만, 파괴력은 감히 비교할 수가 없었다.

창을 튕겨낸 손이 저릿했다.

“제법이군.”

공격을 막아내자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자가 창을 거두며 놀랍다는 듯 카단에게 말했다.

“단순한 네크로맨서가 아닌 것 같은데?”

감탄은 거기까지.

“뭐,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단번에 카단의 수준을 알아본 기사단장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고, 그가 비운 자리를 그의 부하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단장님은 쉬십시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기사들은 각자 무기에 마나를 두른 뒤 다시 카단을 향해 돌격했다.

채앵!

5성 기사들을 상대로 카단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가오는 기사에게 저주 마법을 걸어 잠깐의 시간을 벌고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는 게 전부.

‘영혼의 결정을 흡수하지 않았다면 이것도 힘들었을 거야.’

영혼의 결정을 흡수하며 왠지 모르게 전투 감각도 전보다 좋아졌다.

반응 속도도 빨라졌고, 체력도 좋아졌다.

그렇게 성장했음에도 카단이 5성 기사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촤륵!

이내 카단의 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카단의 팔을 그었고, 뾰족한 창날이 카단의 다리를 찔렀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상처 입은 카단은 점차 느려졌고, 기사들은 마치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카단을 조롱하며 그의 몸에 상처를 냈다.

주변에 있던 해골들이 카단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촤라락….

주변에 있던 기사들의 공격으로 인해 금방 형태를 잃고 부서지고 말았다.

그렇게 짧은 전투가 끝이 났다.

카단은 무릎을 꿇은 채 기사들에게 제압당한 상태였고, 살아남은 언데드도 보이질 않았다.

“말씀하신 대로 죽이진 않았습니다.”

기사단장은 제압당한 카단을 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렐페이라 자작에게 말을 건넸다.

“고생했어.”

렐페이라 자작은 기사단장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뒤 걸음을 옮겨 카단에게 다가왔다.

“멍청한 놈.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여기에 온 거였어? 네크로맨서라기에 똑똑한 줄 알았는데, 멍청한 놈이었네.”

5성 기사도 쓰러트릴 수 없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여기까지 온 걸까?

“그러게~ 돈 받고 장부만 내놨으면 이렇게 서로 고생할 필요는 없었잖아?”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을 건넸지만, 카단은 힘 빠진 눈으로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새끼, 가면 벗겨.”

렐페이라 자작의 명에 그를 제압하고 있던 기사가 카단의 가면을 벗겼다.

순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잠시 놀라고 말았다.

“어려 보이는데?”

“뭐야? 방금까지 우리 이 녀석이랑 싸웠던 거야?”

조금 전까지 조롱하며 싸웠던 상대가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 청년이었다니.

기사들은 떨떠름한 듯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쫘악!

렐페이라 자작은 분노한 듯 손을 높게 들어 카단의 뺨을 후려쳤다.

“이 어린 새끼가! 야! 네가 오늘 한 일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알아?”

무려 4개의 조직이 무너지며 그들이 운영했던 수십 개의 사업장이 멈추고 말았다.

아직 앳된 얼굴을 한 카단 한 명 때문에.

쫘악!

“귀족인 내가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네가 훔친 장부를 사겠다는데, 내 호의를 거절해?”

퍼억!

그것만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렐페이라 자작이 카단을 발로 찼고.

“죽고 싶지 않으면 훔쳐 간 장부 전부 내놔.”

그대로 넘어진 카단의 위로 올라타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어리다고 봐주는 거 없으니까, 잔머리 굴리지 말고 장부부터 내놔!”

그러나 카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힘 빠진 눈으로 렐페이라 자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뿐.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커헉!”

그때였다.

목을 조르던 렐페이라 자작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기사단장을 바라봤다.

“이, 이 새끼 뭐야! 어떻게 좀 해봐! 손이 안 떨어져!”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기사단장은 재빨리 렐페이라 자작을 카단에게서 떼어냈다.

“뭐, 뭐야! 야! 마법사! 이 새끼 방금 나한테 무슨 짓 한 거냐고!”

렐페이라 자작 얼굴에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마치 잠시나마 죽음을 체험한 듯한 모습.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법사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어댔다.

카단을 확인해보니 기절한 것 같았고, 기절한 네크로맨서가 마법을 쓸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 더러운 네크로맨서 새끼가!”

그러나 공포가 분노로 뒤바뀐 렐페이라 자작은 분에 이기지 못했는지, 곧바로 주먹을 쥐고 기절한 카단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큰 폭발음과 함께 벽이 부서졌고, 그 충격의 여파로 렐페이라 자작과 기사들이 뒤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웬 놈이냐!”

“전투 준비!”

갑작스러운 폭발에 기사단장과 마법사는 빠르게 전투를 준비하며 먼지가 피어오르는 곳을 바라봤다.

“아니, 던전에 보내놨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먼지 너머로부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지가 가득한 방 안엔 긴장감이 맴돌았고, 이내 먼지를 뚫고 목소리의 주인이 정체를 드러냈다.

“카단. 괜찮아요?”

폭발음에 정신을 차린 카단이 익숙한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좀 늦으셨습니다…. 교관님.”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영웅 아카데미의 교관 벨리드였다.

“교, 교관?”

렐페이라 자작이 인상을 잔뜩 쓴 채 벨리드 교관을 바라봤고, 이내 멈칫하고 있는 기사단장을 향해 외쳤다.

“뭐 하고 있어! 죽여버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러나 그의 외침에도 기사단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강하다…. 최소 6성 이상이야.’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벨리드의 강함이 느껴졌다.

“알비스. 카단 챙겨요.”

벨리드는 여유롭게 걸음을 옮겨 카단 앞에 섰고, 뒤이어 알비스가 달려와 카단의 상태를 살폈다.

“카, 카단 괜찮아? 내가 최,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는데….”

“괜찮아. 어쨌든 왔으니까 된 거지.”

카단은 알비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들 무기 내려놓고 순순히 투항…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화를 주체할 수가 없네.”

화륵!

카단과 알비스가 뒤로 물러나자, 벨리드 교관의 주변으로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야! 뭐하냐니까! 죽여! 죽이라고!”

렐페이라 자작이 기사단장의 등을 떠밀었고, 기사단장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빠르게 마나를 활성화했다.

“다들 공격해!”

“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화륵!

벨리드는 기사단이 조금이라도 다가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바닥에서 불꽃이 솟아오르고, 화염에 삼켜진 기사들은 몸에 붙은 불을 끄는데 여력을 다해야 했다.

“으아악! 부, 불이야!”

“누가 불 좀 꺼줘!”

“뜨, 뜨거워!”

기사단장이 불길을 뚫고 벨리드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콰아아아앙!

벨리드가 몇 번이고 불꽃을 폭발시키며 기사단장이 움직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막강한 화력 앞에 6성 기사단이 이끄는 기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아끼는 제자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놨으니, 다들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

벨리드 교관의 등장으로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렐페이라 자작과 그의 기사단과 마법사는 포박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방안을 모두 태워버릴 것 같던 불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타버린 비싼 가구와 장식품만이 초라하게 존재할 뿐.

“알비스에게 얘기는 들었어요. 생각보다 오지랖이 넓으시네요?”

포박된 렐페이라 자작을 바라보던 벨리드 교관이 상처투성이가 된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됐네요.”

카단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고, 그 모습에 벨리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법 머리를 쓴 것 같은데 무모했어요. 아시죠?”

“네.”

카단이 알비스에게 건넨 건 텔레포트 마법이 담긴 마법 스크롤이었다.

카단이 영주성에 들어간 동시에 알비스는 곧바로 텔레포트를 이용해 아카데미로 가서 벨리드에게 보고했다.

벨리드가 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카단은 루나를 소환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기 위해 노력했다.

“무리한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이런 오지랖도 영웅의 자질 중 하나죠.”

벨리드는 엉망이 된 카단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했어요? 처음부터 나한테 얘길 하지. 아니, 혼자 영주성에 들어갈 필요가 있나?”

“제가 장부를 챙겼다는 소식에 저 녀석이 도망치거나 미리 손을 써둘 수도 있잖아요?”

카단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벨리드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거기까지 생각했어요?”

“뭐, 저런 녀석들이 하는 생각이 거기서 거기죠. 돈으로 입막음을 하거나 해결하려 하는 얕은 수법.”

벨리드는 그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표정을 바꿔 카단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우리 할 얘기가 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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