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49화 (49/186)

제49화

벨리드의 질문에 카단이 고개를 돌려 알비스를 바라봤다.

그 행동이 마치 ‘알비스가 있는데 얘기해도 괜찮겠냐?’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의도를 알아챈 벨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들 잡혀가는 것만 보고 따로 얘기하도록 하죠. 왕국에 보고 하고 왔으니, 금방 기사단이 올거에요.”

“네. 그나저나 이 도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영주가 붙잡혀 가는데.”

아무래도 알비스가 사는 도시여서 걱정이 되었는지, 카단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당분간 이 도시의 소유권은 왕국이 지니게 되겠죠. 아마 왕국에서 포상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포상이요?”

“네. 나름 큰일을 해낸 거니까요? 왕국에서도 이 도시가 무법 도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쉽게 건드리지 못했거든요.”

무법 도시 렐페이라와 관련된 귀족 중 꽤 높은 작위를 가진 귀족도 있는 듯싶었다.

“이곳을 조사하러 온 기사들에게 돈을 쥐여주고 입을 막거나, 때론 사고로 위장한 살인까지 저질렀겠죠.”

무법 도시 렐페이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작위의 귀족이 지닌 권력과 돈이었다.

“하긴, 자작의 작위로 무법 도시를 유지하는 건 한계가 있었겠네요.”

“네. 증거 하나 구할 수 없어서 왕국도 이 도시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그 일을 해결한 거죠.”

그러니 왕국에서도 카단에게 포상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벨리드는 그렇게 말하며 카단의 상처를 향해 손을 뻗은 뒤 마나를 활성화했다.

“회복 마법이에요. 전문이 아니라서 효과가 별로겠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

“아, 감사합니다.”

몇 시간 뒤.

왕국에서 보낸 기사단이 영주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카단이 챙겨온 장부와 서류를 받은 뒤 렐페이라 자작과 그의 기사단을 데리고 영주성을 빠져나갔다.

“나는 먼저 집에 가볼게!”

평생 렐페이라 자작이 다스리던 도시에서 고통받았던 알비스는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며 집으로 돌아갔고.

“드디어 둘이 남았네요?”

벨리드는 기다렸다는 듯 카단을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그럼, 여기서 보고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좋아요.”

카단은 잠시 기억을 더듬은 뒤, 곧바로 던전에서 얻은 목걸이에 관한 정보를 들려주었다.

“갈색 머리의 사납게 생긴 남성이 목걸이를 가져갔습니다.”

“갈색 머리?”

벨리드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카단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용병 차림이었고, 목에 문신이 있었어요. 문어 같았는데, 잘 모르겠군요. 그리고 기억의 주인을 향해 배신자라고 했습니다.”

순간 벨리드 교관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꾼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덕분에 도움이 되었어요. 카단.”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보상도 챙겨왔죠.”

벨리드는 싱긋 웃으며 아공간을 열었고, 그 안에서 녹슨 풀 플레이트 아머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의뢰받아주셔서 고마워요. 카단.”

벨리드는 어서 가져가라는 듯 손짓했고, 카단은 고개를 꾸벅인 뒤 풀 플레이트 아머를 확인해봤다.

‘최상급 리빙 아머 재료다.’

다시 봐도 욕심이 나는 갑옷이었다.

“잘 쓰겠습니다. 교관님.”

“그럼 저는 카단이 주점에 가둬놨다는 두목들을 데리고 수도로 돌아갈게요.”

벨리드는 아카데미에서 보자며 손을 흔들고는 영주성을 빠져나갔고, 카단도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걸음을 옮기려했다.

“헉!”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카단은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도시 렐테이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봤던 렐테이라 공자가 기둥 뒤에 숨어 카단을 보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고 거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착하게 살아라.’

굳이 생각을 내뱉지는 않았다.

어쩌면 렐페이라 공자는 카단을 원수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까.

선을 넘으면서까지 오지랖을 부리고 싶지 않던 카단은 획 몸을 돌려 그대로 영주성을 빠져나갔다.

***

렐페이라 자작이 잡혀가고 며칠이 지났다.

불법 조직들이 사라지고 활기를 되찾은 도시는 전과 다르게 화사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금방이라도 축제가 열릴 것만 같은 행복감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점차 정상적으로 변하겠지. 여느 도시들처럼.’

카단은 행복해하는 주민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카단. 고마워.”

그때 옆에 앉아서 함께 주민들을 바라보던 알비스가 대뜸 감사를 전했다.

“어?”

“덕분에 도시가 멀쩡하게 변하기 시작했어. 이대로면 굳이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수시로 범죄가 일어났던 도시의 치안이 좋아지고 정상적으로 바뀌기만 한다면 굳이 알비스와 그의 가족들이 떠날 필요가 없어진다.

이 모든 게 카단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는 알비스는 진심을 담아 감사를 전하고 있었다.

“저, 정말 고마워. 카단. 매번 이렇게 도움만 받는 것 같네…. 나는 해준 게 없는데.”

“감사보다 먼저 가족들부터 챙겨. 영주가 사라졌지만, 아직 치안이 좋아진 건 아니니까.”

범죄조직들을 해체했다지만, 하루아침에 도시의 치안이 좋아질 수는 없었다.

약물과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도 남아있을 것이며, 무법 도시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범죄조직의 잔당들이 또다시 이곳을 무법 도시로 만들려고 할 수도 있었다.

“익숙해진 삶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적응하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

어쩌면 도시 렐페이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상태일 수도 있었다.

“응. 부모님도 그러시더라고. 지금이 렐페이라 역사상 가장 치안이 좋지 않을 때라고.”

알비스는 아카데미 휴식기가 끝나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며 치안이 안정되는 것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조금은 안심을 한 카단이 피식 웃으며 다시 도시 곳곳을 살펴봤다.

‘왕국이 어느 귀족에게 이 도시를 소유권을 넘길까?’

만약 무법 도시를 그리워하는 누군가에게 넘긴다면 이곳은 제대로 정화되기도 전에 다시 오염되고 말 것이다.

순간 카단의 머릿속으로 한 가문의 이름이 떠올랐다.

‘더글라스….’

더글라스 가문이 다스리는 도시들의 치안은 왕국에서 가장 좋기로 소문났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치안에 가장 큰 힘을 쓰고 있다고 알려진 가문.

‘더글라스 가문이라면 이 도시도 안전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무슨 수로 더글라스 가문에게 이 도시의 주인이 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에 가문에서 파티가 열리거든. 보름 뒤에 열리는데 괜찮으면 너도 같이 갈래?

순간 며칠 전 만났던 클로제가 했던 말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아무래도 파티에 참석해야겠네.”

“어?”

“아무것도 아니야. 혼잣말.”

***

이틀 뒤.

‘보름 뒤에 파티가 열린다고 했으니까, 앞으로 3일 뒤인가?’

목표를 정한 카단은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며 곧바로 도시 렐페이라를 떠나 더글라스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렐페이라 근처에 있다는 던전들도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언데드가 나오는 던전이 있다는 소식에 렐페이라까지 왔었지만, 정작 던전엔 가보지도 못하고 오지랖만 열심히 부리고 말았다.

아쉽긴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이내 마차가 도착했고, 카단은 찌뿌드드한 몸을 이끌고 마차에서 내렸다.

‘웅장하군.’

마차에서 내리자 베이지색의 거대한 성벽이 카단을 반겨 주었다.

도시 렐페이라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분위기.

성문을 오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고, 성문 밖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들판에 핀 꽃들과 나무도 베이지색의 성벽과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평화

이 도시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평화’가 떠오를 정도.

‘블랑쉬 녀석. 좋은 곳에 살고 있었네.’

잠시 멍하니 도시를 감상하던 카단이 이내 걸음을 옮겨 성문으로 향했다.

‘도시 안은 더 평화롭군.’

건물들 하나하나가 웅장하고 화려했다.

따사로운 햇살과 도시의 화사한 분위기가 어우러지니,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들게 했다.

‘과연 귀족 중의 귀족이라고 불릴 만 하다.’

더글라스 가문은 가문의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닌 영지에 속한 영지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계급을 따질 것 없이 살기 좋은 도시.

-더글라스 가문이 다스리는 도시는 참 포근합니다.

-심지어 노예들도 이왕 팔려 갈 거 더글라스 가문이 다스리는 영지로 팔려 가고 싶다고 한다니까요?

도시 더글라스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들었던 대화를 떠올리던 카단은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우선 도착은 했고.”

도시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젖어있던 카단이 멀리 보이는 더글라스 영주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파티에 어떻게 참석하지?’

클로제 더글라스의 제안을 받긴 했지만, 정식으로 초대받은 건 아니었다.

초대장도 없었으며 초대받지도 않은 손님.

‘운이 좋게 여기서 클로제나 블랑쉬를 만난다면 모를까.’

마냥 우연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파티까지는 고작 3일밖에 남지 않았다.

‘뭐, 아카데미 증표가 있으니까 클로제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들여보내 주려나?’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우선 영주성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축제 기간인가?’

그런데 이상했다.

도시 곳곳에 활기가 가득한 건 이해하지만, 어째서 축제에 온 듯한 기분이 드는 걸까?

“3일 뒤에 열린다는 파티에 나도 참석하고 싶군.”

“블랑쉬 님의 생일을 기념하는 파티잖아. 네가 무슨 수로 참석해?”

“다들 블랑쉬 님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어서 이렇게 축제를 여는 거 아니겠어?”

그때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던 카단은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생일을 기념하는 파티였군.’

하마터면 파티에 빈손으로 찾아갈 뻔했다는 생각에 카단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초대도 받지 않았는데 맨손으로 갈 순 없지.’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어떤 선물을 골라야 할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유명한 가문의 영애이니 웬만한 건 쉽게 얻을 수 있을 텐데.’

카단은 전생 ‘이석훈’은 다양한 선물을 준비했던 경험이 있었다.

조직 보스의 오른팔이었으니, 보스를 대신해서 주요 인물들에게 다양한 선물을 줬었기에 무언가 선물한다는 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선물을 남자들에게만 해봤다는 게 문제지만.’

아쉽게도 여자를 상대로 무언가 선물했던 적이 없었기에 도무지 블랑쉬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카단의 눈에 들어온 건 마법사 길드 건물이었다.

‘그래. 블랑쉬 녀석은 마법사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마법사 길드의 문을 여는 순간.

“아니, 글쎄 네크로맨서 녀석 때문에 블랑쉬 님이 2등으로 밀려났다니까?”

“그게 무슨 고블린 귀 뜯어먹는 소리야? 아니, 잠시 해외에 좀 다녀온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어?”

“어! 얼마나 뛰어난 네크로맨서인지 내 눈에 띄기만 해봐라! 어머? 어서 오세요.”

어쩐지 카단은 이 도시에서 선물을 고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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