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50화 (50/186)

제50화

“얼음 마법을 주로 쓰는 마법사에게 도움이 될만한 걸 사고 싶은데요.”

마법사 길드에 들어선 카단은 불편함을 느끼며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얼음 마법사요? 그렇다면 이건 어떠세요?”

조금 전까지 영웅 아카데미의 네크로맨서를 험담하던 여인이 해맑게 웃으며 팔찌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냉기 친화력을 올려주고 마나 순환을 도와주는 팔찌에요.”

“얼마죠?”

“마탑 소속이나 마법사 길드 회원이 아니시라면 정가인 30골드에 판매할 수밖에 없어요.”

30골드.

아티팩트이니 비싼 건 이해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블랑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혹시 다른 건 없을까요?”

이후로도 몇 개의 아티팩트를 추천받았지만, 카단의 눈에 들어오는 물건은 없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아티팩트를 사는 건 우선 보류하기로 하고 카단은 마법사 길드를 빠져나왔다.

‘이 도시도 위험한 곳이네.’

물론 카단에 한해서만 위험한 곳이었다.

도시 더글라스의 주민들 역시 블랑쉬를 밀어내고 영웅 아카데미 1등을 차지한 카단을 미워하고 있었다.

아니, 저주하고 있다는 게 가까우려나.

‘그래. 뭐 3일만 버티면 된다.’

정체를 감추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와 통성명만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소문의 주인공인 영웅 아카데미의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이 들통날 일은 없으니.

‘정 안 되면 다시 이곳에 오기로 하고. 일단 좀 돌아 다녀볼까?’

마땅히 선물할 만한 것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마법사 길드에서 파는 아티팩트를 구할 수밖에.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겨 도시를 관광하기 시작했다.

한참 걸음을 옮기던 도중.

“응?”

카단은 용병 길드의 마크가 새겨진 간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던전이라도 한 번 다녀올까?’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라 웬만한 던전은 모두 공략되어 있을 터.

그러나 혹시라도 언데드가 나오는 던전이 새로 생겼을 수도 있었으니, 카단은 확인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

[가시개미의 개미굴]

‘확인만 하려고 했는데….’

카단은 던전 입구 앞에 서 있었다.

언데드가 나오는 던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용병 길드에 들어섰던 카단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던전 앞까지 오고 말았다.

혹시라도 던전에서 마족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뭐, 아직 파티까지 3일이나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해.’

도시와 거리도 멀지 않았으니, 하루 정도만 시간을 쓴다면 던전 공략하고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던전 주변에 앉아 쉬고 있는 용병들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용병들은 각자 지친 기색을 드러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치안이 좋기로 소문난 도시 가까운 곳에 생겨난 던전이 왜 아직도 공략되지 않은 것일까?

“저기.”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카단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용병에게 다가갔다.

“네? 뭐요? 무슨 일이요?”

갑작스레 말을 걸어오자, 용병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용병은 카단의 행색을 한 번 살피더니 이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봐요. 신입 용병 같은데, 선배의 마음으로 대답해 드리리다!”

뭔가 열정이 과한 것 같다는 느낌에 거부감도 들었지만, 카단은 딱히 내색하지 않고 질문을 시작했다.

“도시랑 던전이랑 꽤 거리가 가까운데, 왜 여기는 아직까지 공략되지 않은 겁니까?”

더글라스 가문이 나선다면 중급던전으로 지정된 이곳을 공략하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을 텐데.

“더글라스 가문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 더글라스 가문은 가장 먼저 용병들에게 기회를 준다오.”

더글라스 가문은 소수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던전을 독점하지 않고 용병들에게 먼저 성장의 기회를 선사했다.

그리고 상생.

용병들도 먹고살아야 했기에, 용병들의 주 업무인 던전 탐사와 공략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용병들이 실패하고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던전들만 나서서 공략할 뿐이라고 한다.

“상생해야 한다면서 용병 길드에 참 많이 투자하셨지요. 그런데….”

설명을 이어가던 용병이 갑자기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던전 출입문을 바라봤다.

“어휴. 이 던전은 너무 골치가 아프오.”

“왜 그러시죠?”

“주변을 보시오. 다들 지겨워하는 표정이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따라 카단은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용병들을 살펴봤다.

“그냥 빨리 더글라스 가문에서 공략해줬으면 좋겠네.”

“몇 달째 개미만 봤더니, 이제 갑각류만 봐도 토할 거 같아.”

모두 지쳐 보이는 표정과 함께 질린다는 듯한 탄식을 내뱉고 있었다.

“던전이 왜 지겹다는 거죠?”

“개미 새끼들이 알을 미친 듯이 낳는 바람에 개미들을 아무리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소.”

확실히 개미들이 계속 태어난다면 던전 공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카단은 이해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용병에게 감사를 전했다.

“설마 혼자 들어갈 생각이오? 좀 위험할 텐데. 개미 녀석들은 단체로 몰려들어서 말이지.”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병의 경고에도 카단은 조금도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중급 던전.

게다가 수로 밀어붙이는 전투라면 네크로맨서인 카단 역시 자신 있는 분야다.

잠시 후.

달그락, 달그락!

던전 안에선 개미 군단과 해골 군단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수만 맞추면 어려울 필요가 없네.’

사람보다 큰 덩치를 가시개미였지만, 좀처럼 카단의 해골 병사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이 속도라면 오늘 하루 만에 공략하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보통 가시개미보다 덩치가 크고 무서운 턱을 지닌 병정개미가 나타나도 두려울 건 없었다.

비록 두껍고 거대한 턱 이빨로 해골 병사들을 부숴버렸지만.

“나와라.”

놀 형태의 플래시 골렘을 꺼내자, 병정개미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확실히 이제 중급 던전은 어렵지 않다.’

4성 네크로맨서. 게다가 영혼의 결정까지 흡수했으니 전보다 크게 성장한 상태.

해골 병사와 플래시 골렘을 앞세운 카단은 무서운 속도로 던전을 공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벌써 마지막이야?”

카단은 던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커다란 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마 개미 던전의 보스는 여왕개미겠지?’

실제 여왕개미는 전투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은 던전.

몬스터로 분류된 여왕 가시개미는 분명 보통 개미들과 다를 것이다.

“고귀한 피의 계약에 따라라.”

카단은 짧게 주문을 외며 앞쪼그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의 앞으로 초등학생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작은 꼬마 숙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마족이라도 나타났어?”

꼬마 숙녀. 아니, 루나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다짜고짜 마족부터 찾기 시작했다.

“아니. 여기 던전이야. 마족은 없고.”

카단은 피식 웃으면서 주변을 가리켰다.

사방에는 개미시체가 널려 있었고, 이내 상황을 파악한 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바라봤다.

“던전의 주인은 혼자 처리하기 벅찬 모양이지?”

“뭐, 안전한 게 제일이니까.”

카단은 피식 웃으면서 루나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루나가 깜짝 놀란 눈으로 카단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뭐, 뭐야? 너 상태가 왜 이래?”

“내 상태가 왜?”

“아니, 나를 소환했는데 왜 멀쩡하냐고?”

“그때는 두 번이나 소환했었고, 지금은 아니니까.”

계약 당시에는 두 번 연속으로 뱀파이어를 소환하느라 마나를 많이 썼었다.

당연히 그때처럼 힘겨워하거나 마나 부족 현상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내가 그 정도도 모르는 바보일까? 아니, 나를 소환했는데도 네 몸에 생각 이상으로 많은 마나가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당시 두꺼비를 닮은 마족이 남긴 영혼의 결정을 흡수했기 때문일까?

“어떻게 벌써 이렇게?”

마나 하트를 단련할 수 있었냐. 루나는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카단을 살폈다.

“뭐, 그렇게 됐어. 일단 들어갈까?”

카단이 피식 웃으며 여왕개미 굴을 가리키자, 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바라봤다.

“언니랑 훈련하다가 소환되어서 나도 빨리 돌아가 봐야 해.”

루나 역시 서두르고 싶다며 의사를 밝혔고, 카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서 여왕개미 굴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곳보다 훨씬 넓은 곳이군.’

여왕개미의 방에 들어서자 뭔가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곳곳에 울퉁불퉁한 개미알들이 놓여 있었고, 그 가운데 사납게 생긴 여왕개미가 카단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수많은 병정개미와 일개미들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수에는 수로 맞선다.

해골 병사들이 있었기에 많은 수의 개미를 보고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다.

크르르릉.

앞서서 병장 개미를 괴롭혀줄 놀 형태의 플래시 골렘도 있었으니 사냥에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넌 여기서 쉬어. 저 녀석만 쓰러트리면 되는 거지?”

루나가 있는 한 카단이 이 던전에서 죽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마족도 때려눕혔는 걸.’

비록 마족을 상대할 땐 카단의 피를 통해 힘을 증폭시키긴 했지만.

“피 좀 줄까?”

“필요 없어. 저런 잔챙이를 상대하는 데 무슨.”

루나는 곧바로 땅을 박차며 여왕개미를 향해 달려갔다.

‘뱀파이어는 어떤 식으로 마법을 사용할까?’

카단은 내심 기대감 어린 눈으로 루나를 지켜봤다.

퍼어어어억!

기대했던 마법은 없었다.

‘뭐, 뭐야?’

루나는 마법을 쓰긴커녕 간단한 버프 마법도 없이 곧바로 여왕개미의 턱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아니, 왜 마법을 쓰지 않고….”

카단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혼잣말을 내뱉었고, 귀가 좋았던 루나는 그 말에 곧바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지금 상태로 마법을 쓰는 건 효율적이지 않아.”

마나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이런 식으로 마법보다는 육탄전으로 해결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퍼어어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나의 작고 고운 주먹이 다시 한번 여왕개미의 턱을 후려쳤다.

여왕개미는 기절할 것처럼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카단은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내가 나설 필요가 없겠는데?’

일반 가시개미들은 해골 병사들이, 병정개미는 플래시 골렘이. 그리고 던전의 주인인 여왕개미는 루나에게 쥐여 터지고 있었다.

끄어어어억.

이내 여왕개미는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루나는 양손을 탁탁 털면서 카단을 향해 다가왔다.

“끝. 나 그만 돌아가도 되지?”

“물론. 덕분에 쉽게 던전을 공략했어.”

루나는 카단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곧바로 자신이 사는 곳으로 사라졌다.

‘아쉽게도 영혼의 결정은 보이지 않네.’

혹시라도 놀 던전을 공략했을 때처럼 던전의 주인을 잡고 영혼의 결정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사냥이 끝나는 동시에 아쉬움으로 돌아왔다.

“아쉬운 대로 갑각이라도 다 챙겨가야지”

인생이 언제 원하는 대로 흘러갔던가? 카단은 미련을 버린 뒤 곧바로 여왕개미의 갑각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

“어? 이건 뭐야?”

여왕개미의 머리 부분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붉은색 마나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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