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와아아아아!
카단과 클로제의 대련 소식에 파티장의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단순한 사교보다는 화끈한 대련을 보는 것이 더 즐겁지 않겠는가?
“클로제 님 꼭 이기십시오!”
“블랑쉬 님의 복수를!”
“더글라스 가문에 영광을!”
파티장 1층 전부 대련의 장소로 쓰이게 되었고, 사람들은 2층 난간에서 대련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들 모두가 클로제의 승리를 기원했다.
적진 한가운데서 기사단장과 일대일 대결을 펼치는 것과 다름없는 일.
이곳에서 클로제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카단! 10분만 버텨라!”
“후배! 힘내라! 이왕 대련하는 거 클로제 좀 때려줘!”
그래도 가끔 카단의 이름이 들려오기도 했다.
클로제의 친구이자 아카데미의 선배인 루카스와 아라드가 카단을 향해 응원의 목소리를 내어주었다.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마침내 카단과 클로제가 서로를 마주 본 채 1층 중앙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저 서로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차분하게 대련을 준비 중이었다.
“웬만하면 봐주고 싶은데, 아버지가 내건 포상이 너무 커서 어쩔 수가 없다. 미안하다. 카단.”
“한 수 배우겠습니다. 그런데 후배 상대로 너무 기합이 들어가 계신 거 아닙니까? 조금 무서운데요?”
클로제가 농담처럼 가볍게 말을 건넸고, 카단 역시 가볍게 그 농담을 받아주었다.
농담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두 사람이 완벽한 여유로움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었다.
둘 모두 긴장한 상태로 대련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 파티를 빛내줄 두 사람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때, 오웬 더글라스의 목소리가 파티장에 울려 퍼졌고.
짝짝짝짝짝짝!
그의 부탁에 따라 무수한 박수갈채가 카단과 클로제를 향해 쏟아졌다.
따악!
박수 소리가 잦아든 순간, 오웬이 손가락을 튕겼고 동시에 허공에 커다란 모래시계 하나가 나타났다.
“위기의 순간엔 내가 지켜줄 테니,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해 대련에 임해주길 바라네.”
오웬은 카단과 클로제를 바라보며 말했고.
“네.”
“네!”
두 사람은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의 만족스러운 10분이 되길 바라네. 그럼 대련을 시작하지.”
시작을 알리는 가주의 말이 끝나는 순간.
타앗!
카단이 먼저 땅을 박차며 뒤로 물러섰다.
스릉.
그와 반대로 클로제는 거대한 검을 뽑은 뒤, 여유로운 모습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봐주지 않을 거니까, 각오해.”
클로제는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더니, 이내 땅을 박차고 카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 무슨 속도가!”
“과연 영웅 아카데미 졸업반이라 이건가…?”
육중한 몸에서 나오는 속도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클로제가 순식간에 카단과 거리를 좁혔고, 곧바로 높게 치켜든 검을 카단을 향해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아니, 짓뭉개는 듯한 소리에 카단은 헛웃음을 삼켰다.
그러나 당황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카단은 옆으로 몸을 던졌고, 간신히 클로제의 공격을 피해냈다.
“어? 뼈다! 뼈 마법이다!”
“이렇게 빨리 캐스팅을 했다고? 도망치는 와중에?”
촤르르르륵!
몸을 던지는 순간 카단은 클로제와 자신 사이에 뼈의 벽을 세우며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보기보다 재빠른데?”
촤라라라라락!
그러나 굳건해 보였던 뼈의 벽은 거대한 검이 한 번 휘둘러지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카단은 그 광경을 구경만 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벽으로 시야를 가린 사이, 재빨리 거리를 벌린 카단은 곧바로 자신의 앞으로 불사의 군단을 소환했다.
달그락! 달그락!
반지에서부터 흘러나온 뼛가루는 해골 병사로 변했고, 해골 병사들은 순식간에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꺅! 해골이야!”
“이렇게 해골 병사를 직접 보니 섬뜩하네.”
“해골 병사를 이렇게 빨리 소환한다고?”
“순식간에 60기 정도의 해골 병사가 나타났어.”
네크로맨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네크로맨서를 만날 일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네크로맨서의 전투를 지켜본 적도 없을 터.
사람들은 해골 병사의 등장에 술렁거렸고,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오웬 더글라스는 놀라움이 아닌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카단과 그의 해골 병사들을 바라봤다.
‘해골마다 병과가 나뉘고 진형을 갖췄어.’
진형을 갖춘 해골 병사를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이작 교수의 작품이군.’
영웅 아카데미의 교수이자 임시 가디언이 된 네크로맨서 아이작이 카단의 스승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의 제자들이 소환하는 해골 병사들은 늘 이렇게 진형을 갖췄었지.’
오웬은 피식 웃으며 해골 병사들을 일일이 살펴봤다.
‘4성 네크로맨서가 다룰 수 있는 언데드는 해골 병사뿐이 아닐 텐데.’
카단이 소환한 건 오로지 무장한 해골 병사뿐이었다.
해골 놀을 타고 있는 해골 병사가 특이해 보이긴 했지만, 그 역시도 특별하다 볼 순 없었다.
‘하긴. 아카데미에서 플래시 골렘을 다루긴 애매할 테니 배우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이 상황에 좀비나 레이스는 전혀 쓸모가 없어.’
막강한 검사를 상대로 해골 병사보다 느린 좀비는 허수아비만도 못한 존재.
레이스를 소환한다고 해봤자, 클로제를 조금 귀찮게 할 뿐 큰 피해를 줄 순 없었다.
‘그 재료는 구하지 못한 걸까?’
오웬은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이기 전에 마법사였다. 네크로맨서에 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지닌 상태.
그런데 오웬은 무언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차고 있었다.
‘하긴. 아카데미에서도 해골 병사 이외에 다른 언데드를 꺼냈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없어.’
아무리 4성이라지만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6성 검사인 클로제를 상대로 10분을 버틸 수 있을까?
‘힘들겠지. 마나를 제한했다지만 고작 해골 병사만으로는 클로제를 막을 순 없어.’
그때.
채애애앵!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쇳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확인한 오웬은 조금 전과 다르게 놀랍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가주의 시선 끝에 닿아있는 건 클로제도 아니었고, 카단도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클로제의 검을 막아내고 있는 녹슨 풀 플레이트 갑옷이었다.
‘음? 재료를 구했던 모양이군. 그것도 최고급 재료를.’
녹슨 풀 플레이트 갑옷은 검과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마치 안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움직임도 자연스러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본다면 느닷없이 누군가 대련에 난입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로.
철그럭!
‘여기서 리빙 아머를 다보게 되는군.’
오웬은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두 사람의 대련에 집중했다.
***
촤르르르르륵!
고작 검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도 수십의 해골 병사가 처참하게 부서졌다.
각자 다른 무기를 들고 진형을 갖췄다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4성 네크로맨서라지만, 이 정도로는 날 막을 수는 없지.”
클로제는 해골 병사를 부수며 전진했고, 카단은 재빨리 해골 병사를 되살리며 그의 전진을 막아내려 했다.
아무리 해골 병사가 달라붙어도 클로제의 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촤라라락! 촤락!
클로제는 무식할 정도로 강한 힘으로 해골 병사를 무너트렸고, 전보다 빠르게 카단을 향해 달려갔다.
이내.
‘잡았다.’
다시 카단 앞에 도달한 클로제는 곧바로 카단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단의 목숨이 위험하다면 근처에서 대기중인 마법사들이 실드 마법을 펼칠 것이었기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검을 휘둘렀다.
부우웅!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대련을 지켜보던 이들은 대련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누가 보더라도 카단에게는 가망이 없는 순간.
이 공격 한 번으로 카단은 패배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클로제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채애애앵!
그러나 클로제의 검은 카단에게 닿지 않았다.
무언가에 부딪혀 요란한 쇳소리만이 들려왔고, 클로제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앞의 존재를 확인했다.
‘리빙 아머?’
녹슨 풀 플레이트 갑옷이 사람처럼 서서 클로제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정확하게 공격을 막아냈는지, 힘껏 내지른 공격에도 방패를 든 채 멀쩡하게 서 있는 모습.
슉!
리빙 아머의 등장에 클로제가 당황하는 사이, 카단이 뼈로 만든 단검을 내던지며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클로제 역시 뒤로 물러났고, 헛웃음을 지으며 카단에게 말했다.
“대단한 걸 숨기고 있었네?”
그러나 카단은 대답조차 못 한 채 클로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련이 아니었다면 리빙 아머와 함께 내 목이 날아갔겠군.’
조금 전 상황은 분명 위험한 상황이었다.
‘만약 마나까지 사용한 공격이었다면 리빙 아머만으로 막을 순 없었을 거야.’
클로제가 마나를 사용해 검을 휘둘렀다면 리빙 아머를 베어낸 검이 곧바로 카단의 목까지 베어냈을 것이다.
‘쯧. 마나를 제한했는데도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이야. 버티는 것도 힘들다.’
10분이 마치 1시간처럼 느껴졌다. 6성의 존재가 이토록 강했던 것일까?
‘하긴. 렐페이라 기사단의 기사단장도 6성이었지.’
이미 6성 기사와 전투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압도적인 힘에 카단은 무릎을 꿇었었다.
‘클로제는 그 기사단장보다 더 강하다.’
그러나 클로제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카단을 압도하고 있었다.
‘무슨 사신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군.’
클로제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섬뜩함이 느껴졌다.
육중한 몸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도 껄끄러운데 힘도 어마어마했다.
뼈의 벽이 무참히 무너지고 해골 병사가 무더기로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혀가 둘러질 정도.
‘버틸 수 있을까?’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클로제는 마나 없이도 충분히 강하다는 걸 모두의 앞에서 증명하고 있었다.
실제로 대련을 관람하는 이들 대부분이 클로제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미쳤다! 멋있다!”
“부숴버려요! 전부 부숴!”
클로제를 향한 환호와 박수만이 들려왔고, 카단을 응원하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았다.
물론 카단은 누군가의 응원을 바란 적도 없었고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지만.
“그럼 시간도 없으니 바로 간다?”
클로제는 대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봤고.
“네.”
카단의 대답하는 순간 다시 땅을 박차며 거리를 좁혔다.
철그럭!
그러자 검과 방패를 든 리빙 아머가 재빨리 카단으로 향하는 길을 막아냈다.
해골 병사만 있을 때와 다르게, 이번엔 클로제의 걸음이 한 번 멈춰졌다.
채애앵!
클로제가 휘두른 검을 리빙 아머가 이번에도 막아냈다.
‘무슨 리빙 아머가 내 공격을 두 번이나 막아내?’
처음엔 리빙 아머가 막아낼 줄 몰라서 공격이 막혔다지만, 이번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리빙 아머를 쓰러트릴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는데, 리빙 아머는 클로제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하며 공격을 막아냈다.
‘보통 리빙 아머가 아니었네.’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휘두른 검이라지만, 언데드에게 공격이 막힐 줄이야.
클로제는 당황한 듯싶었으나, 이내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챙! 채앵!
클로제의 검술에 대응할 수 있는 리빙 아머라니.
‘단순히 검술만 봤을 땐 5성 검사 수준.’
리빙 아머가 이토록 강하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황하는 건 클로제 뿐이 아니었다.
카단 역시 멍한 표정으로 클로제의 공격을 막고 있는 리빙 아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리빙 아머가 이렇게 강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