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56화 (56/186)

제56화

채애앵!

리빙 아머의 놀라운 검술 실력에 놀라긴 했지만, 클로제는 침착하게 검을 휘둘렀다.

클로제의 걸음을 막아낸 대가는 상당했다.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지만, 리빙 아머의 갑옷 곳곳이 찌그러지고 부서진 상태.

‘어차피 마나 없이 리빙 아머를 제대로 쓰러트릴 순 없어.’

물리 공격 내성이 뛰어난데다 시간을 주면 곧바로 회복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시간을 빼앗길 필요가 없지.’

클로제가 무언가 결심했는지, 리빙 아머의 옆구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아앙!

힘껏 휘둘러진 검이 정확히 리빙 아머의 옆구리를 후려쳤고, 리빙 아머의 갑옷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퍼억!

리빙 아머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던 찰나, 클로제는 있는 힘껏 리빙 아머를 걷어찼고.

리빙 아머가 붕 소리를 내며 옆으로 날아갔다.

‘골칫거리는 잠시 치워두고 네크로맨서부터 노린다.’

리빙 아머를 제압한 클로제가 다시 걸음을 이어가려던 찰나.

슉! 슈슉!

핏빛 바늘들이 빠른 속도로 쏘아져 클로제를 위협했다.

클로제는 반사적으로 거대한 검을 휘둘러 바늘들을 튕겨내려 했지만.

‘피?’

검에 닿은 바늘들은 공중에서 액체가 되어 흩어졌고, 이내 다시 날카로운 바늘 형태로 뭉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아!

핏빛 바늘은 그대로 클로제의 몸을 따갑게 적셨고, 따끔한 통증에 클로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행히 조금 따가울 뿐이네.’

마나를 사용해 단번에 태워버리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마나가 제한된 상황.

닿는 순간 액체로 변하는 피 마법을 완벽히 막아낼 방법은 없었다.

‘이 정도 공격은 그냥 몸으로 때우면 그만이다.’

클로제는 피식 웃으며 다시 카단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려고 했다.

철그럭!

언제 돌아왔는지, 리빙 아머가 클로제에게 달려와 검을 휘둘렀다.

“하. 이거 귀찮네.”

채앵!

클로제는 달려드는 리빙 아머의 공격을 막아내며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 심하게 찌그러지고 부서졌던 리빙 아머의 갑옷이 완벽하게 원상복구 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떤 영혼이 깃든 거야?’

마나를 쓸 수 없다지만, 타고난 기본적인 신체 능력 뛰어난 검술 능력을 지닌 클로제의 공격을 막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졸업반 생도 중에서도 이처럼 공격을 잘 막아내는 동기는 손에 꼽을 정도.

‘이 리빙 아머만 귀찮은 게 아니야.’

슉! 슈슈슉!

카단은 피로 만든 바늘과 뼈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단검을 날리며 클로제를 위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단은 클로제가 검을 휘두르려 할 때마다 쇠약의 저주와 갈증의 저주를 걸어대기까지 했다.

‘정말 상대를 질리게 하는 전술이다.’

채앵!

다양한 공격을 막아내던 클로제는 속으로 감탄했다.

‘무서운 녀석이다. 고작 4성뿐인데도 날 이렇게 몰아붙이다니.’

숙련된 네크로맨서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체력을 갉아먹는 듯 지속해서 적을 괴롭혔으니까.

‘이 자식 얼마나 연습한 거야?’

카단이 네크로맨서로서의 전투가 숙련되지 않았다면 클로제가 이처럼 까다롭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단은 클로제가 놀랄 정도로 숙련된 실력을 보여주었고, 쉬지 않고 클로제를 위협했다.

‘쯧. 시간도 거의 끝나가는데.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지.’

채애앵! 챙!

공격을 막아내던 클로제가 슬쩍 시선을 옮겨 허공에 떠 있는 커다란 모래시계를 확인했다.

리빙 아머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고, 이제 대련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자잘한 공격은 무시하고 단번에 끝낸다.’

이내 클로제는 리빙 아머를 향해 달려갔다.

리빙 아머는 가까이 다가온 클로제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슥!

클로제는 그대로 몸을 숙여 공격을 피해냈다.

척!

단순히 공격을 피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몸을 숙인 클로제가 리빙 아머의 부츠. 아니, 다리를 붙잡았고.

콰앙!

리빙 아머를 무기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촤라라락! 촤라락!

근처에 있던 해골들은 박살 났고, 클로제는 그대로 리빙 아머를 무기 삼아 전진하기 시작했다.

‘와. 저건 좀 무서운데?’

그 모습에 카단은 혀를 두르며 재빨리 해골 병사를 되살리고, 뼈를 이용해 벽과 장애물을 만들었다.

촤라라라락!

이내 리빙 아머를 집어던진 클로제가 빠른 속도로 카단을 향해 돌진했다.

‘이거 미치겠네.’

뼈의 벽도 무용지물. 뼈로 만들어진 단검을 아무리 날려봐도 소용없어다.

저주를 걸어도 뼈로 만들어진 손을 소환해 클로제의 발목을 붙잡는 것도 그의 전진을 막아낼 수 없었다.

속도를 조금 늦출 뿐, 클로제는 오로지 힘만으로 모든 방해를 뚫고 돌격해왔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카단은 주변을 둘러보며 도주 경로를 살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뼈의 벽을 세우고 쓰러진 해골 병사를 다시 일으켰다.

“이번엔 진짜 잡았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클로제가 카단의 앞에 도착하고 말았다.

클로제는 씩 웃으며 거대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거대한 검이 카단의 목을 향해 휘둘러지려던 찰나.

“거기까지.”

대련의 끝을 알리는 오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와 함께 클로제는 검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모래시계를 확인했다.

모래는 모두 아래로 떨어진 상태.

“아~ 한발 늦었네.”

이내 클로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검을 내려놓았다.

“고생했다. 카단. 덕분에 오랜만에 즐거웠어. 네가 이겼어.”

카단에게 다가간 클로제는 곧바로 악수를 청했다. 간발의 차로 패배했음에도 클로제는 아쉬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며 패배를 인정하고 있었다.

“아. 고생하셨습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카단이 멍한 얼굴로 클로제의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순간, 오웬 옆에 있던 마법사 하나가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건넸다.

“간발의 차로군요. 아쉽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그러자 오웬은 말을 건 부하를 바라봤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어도 오웬의 검은 카단에게 닿지 않았을 거다.”

“예? 그게 무슨?”

클로제의 검이 카단의 목을 겨누기만 했다면 대련이 종료되었을 것이다.

정말 딱 1초만 더 있었더라면 분명 클로제의 승리로 버티기 대련은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오웬은 왜 그런 대답을 한 것일까?

마법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오웬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 손에 반지 보이지?”

“아공간 마법을 사용하는 반지 말입니까?”

“아니. 그 반대 손에 끼워진 반지 말이야.”

“네. 보입니다.”

마법사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오웬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저 반지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

“네? 글쎄요? 저 반지…. 어? 저 반지는? 마, 마탑에서 만든 반지 아닙니까? 분명 블링크 마법이 담겨 있는….”

마법사가 당황하며 물어보자, 오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말을 걸었던 마법사는 무언가 깨달은 듯 입을 쩍 벌렸다.

“클로제의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카단은 블링크 마법으로 다시 거리를 벌렸겠지.”

“아, 그렇군요. 하지만 대련 중 마도구를 써도 상관없는 겁니까?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지 않습니까?”

“뭐, 사용하진 않았잖아? 무엇보다 딱히 규칙을 정한 적도 없으니.”

오웬은 피식 웃으며 마법사의 어깨를 두드렸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마법사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고, 오웬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2층 난간으로 이동한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우선 저희 눈을 즐겁게 해준 두 사람을 위해 박수를 보내줍시다.”

와아아아아아!

오웬의 제안에 사람들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내질렀고, 오웬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카단과 클로제를 바라봤다.

***

네크로맨서와 검사의 전투.

영웅 아카데미 생도들의 대련은 보는 이들을 흥분케 했다.

무엇보다 클로제는 더글라스 가문의 장남이었고, 카단은 더글라스 가문의 막내 딸인 블랑쉬를 이긴 유일한 남자.

이런 대련을 어디 가서 또 볼 수 있을까?

이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대련을 지켜본 이들은 모두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 있었다.

“아니, 마나를 쓸 수 없는 건 불공평하잖아. 클로제 님의 패배라니. 인정 못 해.”

“애초에 클로제 님은 6성. 저 네크로맨서는 4성이잖아. 대련 자체가 불공평한 거지.”

대련이 끝나고 박수갈채를 보내던 사람들은 흥분한 상태로 조금 전 대련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클로제 님 멋지시다. 깔끔하게 곧바로 패배를 인정하시네.”

“그러게. 나였으면 아쉬워서 미쳤을 텐데, 클로제 님은 저렇게 환하게 웃고 계시다니.”

비록 10분 안에 카단을 쓰러트리진 못했으나, 사람들은 모두 클로제를 인정한다는 듯 입을 모았다.

패배했음에도 그의 명성이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2성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마나 없이 대련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클로제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도 영웅 아카데미 화제의 중심인 카단을 미친 듯이 위협했었다.

“만약 클로제 님이 마나를 사용했다면 저 네크로맨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3분도 못 버티지 않았을까?”

만약 마나의 사랑을 받는다는 더글라스 가문의 클로제가 마나까지 사용한다면 얼마나 강할까?

이 대련을 계기로 사람들은 클로제의 강함에 기대감을 지니게 되었다.

“아쉽긴 하지만, 저 네크로맨서도 진짜 잘 싸우더라. 무슨 네크로맨서가 저렇게 재빨라?”

“클로제 님이 봐준 게 아닐까? 후배잖아. 게다가 꽤 친해 보였는데?”

“10분 안에 쓰러트리면 기사단 창설해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거기서 봐주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물론 클로제만 언급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네크로맨서였다면 5분도 못 버티고 쓰러졌을걸?”

클로제를 상대로 10분을 멋지게 버텨낸 카단을 칭찬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10분 내내 해골을 소환하고, 쓰러지면 되살리고. 그러면서 저주와 뼈 마법을 계속 쓰더라.”

“리빙 아머 회복력 봤어? 계속 회복시키더라. 근데 마나가 부족해 보이지 않았어. 지친 기색이 없던데?”

“괜히 아카데미 생도가 아니구나.”

“저 정도 실력이라면 블랑쉬 님의 패배했다는 것도 납득이 돼.”

이번 대련을 통해 카단의 이름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사람들이 카단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블랑쉬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러나 그녀가 미간을 좁힌 이유는 사람들이 그녀의 패배를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새 또 성장했어?’

아카데미 상반기 평가 시험이 끝나고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카단은 그 당시보다 훨씬 더 성장해 있었다.

‘그때 그 실력이었다면 오빠를 상대로 10분은 버틸 수 없었을 텐데.’

강력한 리빙 아머를 구해온 것도 놀라운 일었지만, 그보다 놀란 건 카단의 실력이었다.

순간적인 반응 속도부터 신체 능력, 상황에 따른 대응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성장했다.

‘아니, 어디서 마족이라도 때려잡고 실력을 키워오기라도 한 건가?’

어떻게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이토록 강해질 수 있는 것일까?

뼈의 벽이 만들어진 속도도 빨라졌고, 도망 다니며 마법을 캐스팅하는 것도 보다 숙련되어 보였다.

미친 듯한 훈련이라도 한 것일까?

‘집에 돌아왔다고 마냥 마음 편히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

꽈악.

블랑쉬는 며칠간 휴식을 취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는지 주먹을 꽉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휴식기 안에 어떻게든 따라잡는다. 더는 지지 않아.’

그런 그녀의 시선이 손에 쥐고 있는 은색 팔찌를 향했다.

‘보는 눈은 제법 있는…. 아니, 왜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런 거나 주고 있고.’

이내 심통난 표정이 된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고. 다시 고개를 들어 가주에게로 향하고 있는 카단을 바라봤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녀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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