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57화 (57/186)

제57화

“두 사람 모두 수고했다.”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 오웬 더글라스가 가까이 다가온 카단과 클로제를 향해 말했다.

“클로제. 너는 아쉽겠구나.”

“아닙니다. 제가 부족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오웬이 자상하게 웃으며 말하자, 클로제는 예를 갖춘 채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래.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아야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기사단 이야기는 없던 일로 하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클로제는 순순히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고, 오웬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이번엔 카단에게 말을 건넸다.

“생각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지녔더군. 아마 아이작 교수에게 배우고 있겠지?”

“네. 맞습니다.”

“아이작 교수. 아니, 가디께서 가르치는 보람이 크겠어.”

“좋은 스승님 밑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카단의 대답을 들으며 오웬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아이작 교수. 아니, 샬로트를 능가하는 네크로맨서가 될지도 모르겠군.’

클로제를 상대로도 겁먹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오웬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다.

애초에 패배를 그리지 않는 듯한 모습과 상황마다 최고의 선택을 이어가는 모습은 몇 번이고 전장에서 굴러본 베테랑의 모습이었다.

‘순발력도 뛰어나. 게다가 단순히 네크로맨시 능력으로만 보더라도 4성 시절 아이작 교수보다 뛰어나다.’

카단은 4성 네크로맨서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보여주었다.

‘뭐, 최고급 재료를 이용해 리빙 아머를 일으킨 게 이 승리의 이유이긴 하지만.’

클로제의 공격을 몇 번이고 막아내던 리빙 아머가 이 승리의 주역이긴 했다.

오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 진심으로 카단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 약속했던 대로 자네의 부탁 하나를 들어주도록 하지.”

오웬이 어서 말해보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수군덕거리던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카단을 바라봤다.

‘역시 돈이나 땅을 달라고 하겠지? 영웅 아카데미 생도라면 딱히 작위 욕심은 없을 테니.’

‘블랑쉬 님과의 혼인? 제발 그것만 아니길!’

‘제일 좋은 선택지는 역시 후원자가 되어달라고 하는 거겠지. 더글라스 가문의 무한한 지원이라. 생각만 해도 배부르군.’

‘양자로 받아들여달라고 한다면? 그게 최고 아닌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카단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미묘한 기대함을 지닌 채 카단의 대답을 기다렸다.

‘과연 내 앞에서 어떤 배짱을 부릴까?’

카단의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오웬 역시 똑같았다.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가 부탁 하나를 무조건 들어준다고 했다. 과연 카단은 어떤 부탁을 해올까?

부와 명예는 물론 원한다면 더글라스 가문의 양자로 들어오는 것도 가능한 일.

오웬은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카단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혹시….”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다물고 있던 카단의 입이 열렸다.

“도시 렐페이라를 아십니까?”

이어진 카단의 말에 오웬이 고개를 갸웃했다.

“알다마다. 근처에 있는 도시고, 며칠 전 렐페이라 자작이 왕국에 붙잡혀 갔다지?”

오웬이 모를 리가 없었다. 고작 마차로 이틀 정도의 거리에 있는 도시.

게다가 유명한 무법 도시였다.

“네. 덕분에 도시는 현재 주인이 없는 상태이며, 그 어느 때보다도 치안이 좋지 않아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고개 숙여 대답하던 카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오웬과 눈을 마주친 채 말을 이어갔다.

“더글라스 가문이 그 도시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이게 제 부탁입니다.”

카단이 말을 끝내는 순간, 오웬이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도시 렐페이라의 소유권을 사서 그 도시를 운영하라 이건가?”

“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거리가 먼 것도 아니었으니.

다만 껄끄러울 뿐이었다.

‘상위 귀족들이 힘을 모아 지켜낸 무법 도시. 그 도시를 내가 운영하라니.’

오웬 역시 인근 도시가 무법 도시라는 사실을 상당히 거슬려 하고 있었다.

다만 몇몇 상위 귀족들의 훼방으로 인해 도시 렐페이라에 어떠한 간섭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가주로서 할 일은 그저 자신의 소슈인 도시들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꾸준히 경계하는 것뿐이었다.

‘렐페이라 녀석이 잡히긴 했지만, 그게 끝이 아닐 텐데.’

렐페이라 자작이 무법 도시의 근원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렐페이라는 그저 무법 도시를 이끄는 대표자일 뿐.

‘내가 그 도시를 사들이면 그의 뒤를 봐주는 상위 귀족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까?’

만약 상위 귀족들이 도시를 되찾으려 한다면 귀족끼리 전쟁을 치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가능하다. 그러나 궁금하군.”

고민하던 끝에 오웬은 카단에게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혹시 자네 도시 렐페이라 출신이었나?”

“아닙니다. 도시 렐페이라는 친구와 그의 가족들이 사는 곳입니다.”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에게 도시 렐페이라를 부탁한다는 뜻은 뻔했다.

무법 도시라는 이름을 벗겨내고 정화된 도시의 안정을 되찾아 달라는 말.

“나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자네가 아닌 친구를 위해 쓰겠다는 건가?”

“네.”

“도시를 사달라는 것도 아니라, 우리 가문에서 직접 관리해주길 바란다는 거지?”

이어진 질문에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저는 도시 경영에 관심도 없으며 그럴싸한 능력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또다시 제겐 무법 도시가 되는 걸 막을 힘이 없습니다.”

카단의 대답을 들은 오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그 도시를 내가 관리하는 게 자네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뭐, 이득이라면 친구의 삶이 더 나아진다 정도뿐이겠군요.”

“이해가 되지 않아. 왜 자네가 아닌 친구의 삶을 위하는 거지?”

그러자 카단은 잠시 고민하듯 입을 다물었고, 얼마 지나지 않다 고민을 끝내고 대답했다.

“저를 가르쳐주신 교관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오지랖도 영웅의 자질 중 하나라고.”

카단이 욕심부릴 만한 것이 없었다. 돈이야 샬로트가 남겨준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명예 따위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오지랖이 영웅의 자질이라. 그래 틀린 말이 아니군. 그러니 그 오지랖 때문에 이 기회를 친구를 위해 쓰겠다 이건가?”

“네.”

카단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듯 단호하게 말하자, 오웬이 그를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더글라스 가문이 도시 렐페이라를 다스리도록 하겠네.”

***

파티가 끝난 후 카단은 클로제와 그의 친구들의 뒤를 따랐다.

“저 이미 여관을 구해뒀습니다. 굳이 방을 내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그래? 카단. 네가 아버지한테 그랬잖아? 나한테 얘기를 듣고 이 파티에 올 수 있었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죠?”

“상관있지! 내 초대로 온 내 손님이 되었는데, 내가 어떻게 손님을 홀대해?”

클로제는 카단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하겠다며 억지로 카단을 자신의 성으로 끌고 왔다.

카단은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클로제는 자신의 체면도 생각해 달라며 쉼 없이 카단을 설득했다.

“루카스와 아라드도 여기서 지내는 중이니까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 넌 겨우 하루만 자고 가는 거잖아? 아니면 혹시 내가 불편해?”

“아닙니다. 죄송해서 그렇죠.”

“나한테 이겨서 미안하다고?”

“아뇨. 처음엔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면 죄송할 수밖에요.”

카단이 고개를 저으며 정중히 말하자 클로제가 커다란 손으로 카단의 등을 퍽퍽 두드렸다.

“신세는 무슨. 선배 좋다는 게 뭐야? 이렇게 선배가 후배 챙겨야지. 안 그러냐 애들아?”

클로제가 혼자만의 힘으로 설득할 수 없었는지, 루카스와 아라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맞아. 카단. 너무 부담 갖지 마.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형들이야. 형들이 챙겨주는 건데 뭔 신세야.”

“혹시 혼자 자는 게 무서운 거라면 우리가 같이 자줄 수도 있어.”

루카스와 아라드가 장난스레 말했고, 카단은 하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감사히 머물겠습니다. 물론 잠은 혼자 자겠습니다.”

카단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네 사람은 곧바로 클로제의 방 안으로 이동했다.

“카단. 그런데 진짜 조금도 아쉬운 게 없어?”

방 안에 들어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진 건 루카스였다.

“아쉬움이요?”

“더글라스 가주님이 부탁 하나 들어준다는데, 설마 그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거든.”

루카스가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앉자, 아라드가 그 옆에 앉으며 말을 보탰다.

“그러니까. 난 순간 카단 네가 렐페이라 출신인가 싶었다니까?”

두 사람의 말에 카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도시 렐페이라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아쉬울 게 뭐가 있겠는가? 카단은 어깨를 한 번 들썩이며 의자에 앉았다.

“아버지한테 하려던 부탁이 그거였군. 진짜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클로제는 헛웃음을 지으며 카단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카단. 너 대단하더라. 괜히 아카데미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게 아니었어.”

“아니, 도대체 그 리빙 아머 정체가 뭐야? 아무리 클로제가 마나를 쓰지 않았다지만, 공격을 몇 번이고 막아대던데?”

루카스와 아라드가 쿠션을 안으며 멀찍이 앉아있는 카단에게 물었다.

그러자 클로제도 궁금하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카단에게 물었다.

“맞아. 리빙 아머가 그렇게 강하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어.”

그러자 카단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선배가 마나를 사용했다면 순식간에 제압되었을 겁니다. 그래도 확실히 성능이 좋네요. 실전에 쓰는 건 처음이거든요.”

카단은 더글라스 영주성에 오기 전날 처음으로 리빙 아머를 소환해봤다.

최고의 재료로 일으킨 리빙 아머가 궁금해서 소환했었지만, 성능까지 제대로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대련은 예상하지 못했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리빙 아머를 꺼낼 수밖에 없었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카단도 자신의 리빙 아머가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검술만 따지고 보면 적어도 5성 이상이야.”

네 사람은 한동안 리빙 아머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이어서 카단의 칭찬으로 주제가 바뀌었다.

한참 칭찬만 듣던 카단이 귀가 간지럽다며 손을 내저었고, 그제야 대화의 주제가 다시 바뀔 수 있었다.

“카단. 이제 뭐 할 거야? 다른 약속이나 계획이 있어?”

아직 휴식기가 끝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다.

벨리드 교관의 의뢰도 끝냈고, 도시 렐페이라의 문제도 해결한 상황.

“음, 딱히 계획한 건 없습니다. 던전이나 좀 돌아다녀 볼 생각이었어요.”

카단이 잠깐 생각한 뒤 대답하자, 클로제와 루카스, 아라드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무언가를 얘기했다.

그러더니 무언가 결정이 되었는지, 클로제가 활짝 웃으며 카단에게 물었다.

“카단. 혹시 몬스터 토벌대에 참가해볼 생각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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