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58화 (58/186)

제58화

“토벌대요?”

카단이 눈을 끔뻑이며 되묻자, 클로제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 국경 근처에 오크 서식지 하나가 있는데 이번에 토벌 지역으로 선정됐어.”

남쪽 국경 근처라면 꽤 거리가 있었다. 마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곳.

“너무 멀지 않습니까?”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클로제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아버지가 누구시냐?”

클로제의 질문에 카단이 잘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이다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숨을 들이마셨다.

“아….”

“아버지한테 부탁해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받아뒀어.”

텔레포트는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마법. 선택받은 이들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라고 할 정도였다.

텔레포트 마법이 담긴 마법 스크롤은 일반인들이 욕심내기도 어려울 만큼 비쌀 수밖에 없었다.

‘하긴. 여긴 더글라스 가문이지.’

그러나 이곳은 왕국 최고의 마법 명가이자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더글라스 가문.

텔레포트 스크롤을 구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졸업반이시니, 외부활동에 집중하시는 겁니까?”

“맞아. 외부활동을 통해 명성을 쌓으면 상위권 기사단이나 길드에서 영입 제안이 올 테니까.”

졸업반이라면 당연히 밟아야 할 순서. 카단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단. 같이 가자.”

“우리랑 가면 안전해!”

카단이 함께 가자는 답변을 내놓지 않자, 이번엔 루카스와 아라드가 합세했다.

“오크를 안전하게 사냥하려면 5성은 되어야겠지만, 카단 너라면 위험할 일은 없을걸?”

“네가 토벌대에 도움이 되면 됐지, 짐짝이 될 일은 없어!”

아무래도 세 사람은 카단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뭐, 명성이나 업적은 필요 없지만, 토벌대 활동하면 경험 쌓기에 좋겠지.’

오크 서식지에서 오크들을 토벌하는 일은 전쟁을 벌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질릴 정도로 전투를 치러야 할 것이고, 자연스레 경험이 쌓일 수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카단은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저에게 토벌대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클로제와의 대련을 통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클로제가 6성이라고 해도 마나를 쓰지 못했던 상태.

10분 정도야 거뜬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련이 시작된 순간부터 끝까지 위협적인 순간을 마주해야 했다.

‘오크를 홀로 상대하려면 최소 5성부터다. 루나를 대놓고 소환할 수 있다면 모를까, 리빙 아머만으로는 위험해.’

심지어 카단은 네크로맨서.

다른 이들과 호흡을 맞추기보다는 혼자 활동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편한 직업이다.

‘그래도 아쉽긴 하네. 네크로맨서에게 오크는 좋은 재료인데.’

토벌대에 간다면 빈약한 해골 병사가 강화될 것이고, 놀 형태를 유지 중인 플래시 골렘에게 변화도 생길 것이다.

뱀파이어 루나와 리빙 아머만으로도 충분한 전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지만, 만족할 순 없었다.

‘마족이 나타난 이상 더 빨리 강해져야 해.’

카단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전 아직 4성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 살아남는 법을 연구하고 단련할 시기라 생각합니다.”

단호하면서도 정중한 말투.

세 사람의 설득에도 카단의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선택은 너의 몫이지. 존중한다.”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클로제가 다가와 카단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선배.”

그러자 루카스와 아라드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뱉으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같이 가면 재미있을 텐데.”

“영웅 아카데미 최고의 유망주와 함께 사냥할 기회를 이렇게 놓치네. 아이고~”

그들의 모습에 카단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너무 가까워질 필요는 없지.’

그러면서 다시금 자신의 상황과 목표를 떠올렸다.

복수의 칼날을 왕국을 향해 겨누는 순간, 앞에 있는 세 사람은 듬직한 선배가 아닌 두려운 적이 될 것이다.

언젠가 적이 될 수도 있는 이들과 정을 나눠봤자 좋을 게 뭐가 있을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거 받아라.”

카단이 씁쓸한 생각으로 한숨을 내뱉는 순간, 클로제가 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 한 장을 건넸다.

“토벌대 베이스캠프 근처 도시로 가는 텔레포트 스크롤이야.”

“이건 왜…?”

“휴식기가 꽤 길잖아? 휴식기 끝나기 전에 놀러라도 와.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토벌대 참가하라는 말은 안 할게.”

클로제가 큰 소리로 웃으며 카단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고, 카단은 저도 모르게 마법 스크롤을 받고 말았다.

“커헉!”

그 모습에 흐뭇한 웃음을 짓던 클로제가 몸을 풀 듯 허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요새 훈련을 너무 못했잖아? 훈련장이나 갈래?”

“좋은데? 너무 늘어지면 훈련하기 싫어져. 조금이라도 움직여야지.”

“우리 오랜만에 체력 대결 한 번 할까?”

클로제의 제안에 루카스와 아라드가 신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력은 이 클로제 님이 최고 아니겠냐? 어딜 체력 대결을 운운해?”

분위기는 갑작스레 바뀌었고,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근육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야! 카단! 너도 덤벼! 1학년 중 체력이 가장 좋다고 들었는데? 맞지?”

“우리 졸업반인데, 설마 카단한테 지겠어?”

“루카스. 너는 3학년 중에 체력 꼴찌잖아. 넌 카단한테 질 거 같아.”

세 사람이 만든 밝은 분위기 속 카단은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죠. 훈련.”

***

화륵!

부서진 신전 안.

녹색의 화염이 각각의 촛불 위에서 춤을 추며 주변을 밝혔다.

“보그로스가 사라졌다.”

조각상 뒤에서 들려온 말에 촛불들이 일렁거렸다.

“보그로스? 그 두꺼비 녀석?”

어둠 속에서 질문이 들려왔고, 조각상 뒤에 있던 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중앙에 섰다.

흰색 여우 가면을 쓴 남자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샬로트의 저택에 잠입시켜뒀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계약이 끊긴 건가?”

이번엔 다른 곳에서 질문이 들려왔고, 이번에도 여우 가면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래도 샬로트의 저택에서 소멸한 듯싶다.”

그 대답에 다시 한번 촛불들이 일렁이며 그림자를 흔들었다.

“샬로트의 유산을 가져간 놈인가?”

“샬로트의 동료가 생각보다 강한 녀석인가 보군. 하긴 가디언의 동료라면 강할 수밖에.”

“에이. 다들 왜 그래? 보그로스는 고작 지능 떨어지는 하급 마족이야.”

“그나저나 다른 단서는 없어? 마족과 전투를 치렀다면 근처에 있던 경비병이 모를 리 없는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질문들. 그에 여우 가면의 남자는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아무런 단서가 없다. 침입자에 관한 보고는 물론, 저택 안에서도 다른 흔적을 못 찾았어.”

“보그로스가 죽었다면 마석이 남았을 거 아냐? 그것도 못 찾은 건가?”

“파괴한 것 같아. 그것이 왕국의 법이니까.”

“아니, 마석을 파괴하든, 소지하든 마력의 흔적이 남을 텐데?”

여우 가면의 남자는 질문이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답변을 들려주었다.

“그래. 그래서 이상한 거야. 마석이 파괴되었으면 미세하게나마 마족의 마나가 묻어 있어야 하잖아? 그조차도 없었다.”

지칠 법도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처음과 다름없이 여유로움이 유지되었다.

화륵!

일렁이던 촛불들이 다시 잠잠해졌고, 여우 가면의 남자는 목소리들이 들려온 곳을 훑어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해. 샬로트의 유산을 가져간 놈이 존재한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샬럿의 저택에 찾아올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놈이 열쇠를 가지고 있겠지. 네크로폴리스로 갈 수 있는 그 열쇠를.”

이어진 여우 가면의 말에 다시 어둠 속에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여우. 넌 잘 알고 있겠지? 우리의 계획을 위해서라도 그 열쇠가 필요하다는 걸.”

“여우야. 반드시 찾아내. 네가 맡기로 한 일이니까. 협조가 필요하면 말하고.”

“열쇠가 없으면 시간이 걸릴 뿐, 계획이 무너지는 건 아니야. 부담 갖지 마.”

샬로트의 유산을 가진 자를 찾아라. 모두가 입 모아 말을 하자, 여우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짓했다.

“다들 왜 이렇게 흥분했어?”

그러자 고양되던 목소리들이 차분해졌고, 다시 여우를 향해 질문이 이어졌다.

“여우야. 짚이는 건 없어? 샬로트 그 녀석은 평생 외톨이로 살 줄 알았더니, 언제 또 동료를 구한 거지?”

“응. 아직까진 없어. 가디언도 의심해봤는데,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혁명집단 녀석들은? 요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던데.”

“그쪽 움직임도 주시하고 있긴 한데, 아직까진 조용해. 어디서 반역을 도모하고 있겠지.”

여우 가면이 내뱉는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곳곳에서 답답함이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종일 질문해봤자, 모른다는 소리만 내놓을 생각이야? 우리 여우는 아는 게 없어. 아는 게.”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여우가 불쾌하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노려보았다.

“멧돼지. 너야말로 일은 제대로 하는 거냐? 영웅 아카데미 출신들의 활약이 대단하던데? 이러다가 우리 꼬리까지 밟는 거 아닌지 몰라?”

여우의 질문에 공감하듯, 곳곳에 배치된 촛불 위 화염들이 크기를 키웠고, 어둠 속 목소리가 이번엔 ‘멧돼지’라고 불린 자가 있는 곳을 향했다.

“필요 이상으로 인간들의 힘을 키우면 우리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도 있어.”

“멧돼지.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잊지 마. 너 때문에 우리가 피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거야.”

또각, 또각.

그러자 어둠 속에서 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멧돼지 가면을 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왜 이렇게 예민해? 그리고 여태까지 나 잘하고 있잖아? 다들 내 덕을 보고 있는 거 아니었어?”

멧돼지는 여우 옆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질 좋은 녀석들 선별해서 가져다주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이가 없네?”

그녀는 요염하게 팔짱을 끼며 여유를 노려봤다.

“인간이 마족의 힘을 견뎌내려면 충분히 단련된 육체가 필요한 법이야. 알잖아? 자칫하다간 기사단에 있는 녀석들처럼 애매한 녀석들만 탄생한다고.”

잘하고 있는데 왜 건드냐. 멧돼지가 경고의 뜻을 담은 목소리로 말을 끝냈다.

그에 여우는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영웅 아카데미가 우리 일에 방해가 되는 순간, 그곳을 파괴해버릴 거야.”

“참 나.”

“인간들을 육성하는 건 양날의 검이야. 주의하도록 해.”

“여우야.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선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멧돼지 가면의 여인이 가소롭다는 듯 손을 까딱이며 말하자, 여우는 기분 나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뭐, 좋아. 아직은 괜찮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번엔 내 차례지?”

“자기 차례는 잘 알고 있네.”

“쓸만한 놈으로 준비해달라고. 보그로스가 죽어버려서 손실이 좀 크거든.”

멧돼지 가면을 쓴 여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이번에 데려올 생각이야. 꽤 이름있는 귀족의 자제라는 게 걸리긴 하는데, 문제는 없을 거야.”

“여태껏 그랬듯 전투 중 사망했다고 처리하면 어지간한 귀족이라도 슬픔에만 잠기겠지.”

의심은 없을 것이다. 여우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하자, 멧돼지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붙잡은 녀석은 지난번처럼 마법사들의 무덤에 둘 테니까, 내가 연락하면 바로 가져가도록 해. 마석도 몇 개 보관해놨으니까 부족하면 챙겨가고.”

“기대하지. 대기하고 있을 테니 연락해.”

두 사람은 대화를 끝내며 어둠 속을 바라봤고, 여우가 그곳을 향해 말했다.

“다른 보고사항은 없는 거지?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자고.”

들려오는 답변은 없었고, 여우는 만족스럽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짜악!

“다들 바쁘신 분들일 텐데 어서 가서 일들 보도록 하라고. 나도 어떻게든 샬로트의 유산을 가져간 놈을 찾아보도록 할 테니까.”

화륵!

여우의 말이 끝나자 촛불들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고, 멧돼지도 발걸음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두가 사라진 걸 확인한 여우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스윽.

어둠을 간신히 밝히고 있던 촛불 하나마저 사라지며, 신전은 어둠과 함께 고요함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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