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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59화 (59/186)

제59화

더글라스 영주성 내에 있는 클로제 전용 훈련장.

타앗!

이른 아침부터 카단은 훈련장을 달리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카단.”

얼마나 뛰었을까?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카단은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막 가족과 식사를 끝내고 온 클로제가 서 있었고, 카단은 자연스레 그를 향해 걸어갔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아무래도 아침 식사는 꼭 가족끼리 해야 해서. 셋이서만 먹게 해서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맛있게 먹었어요.”

카단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자, 클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아버지가 너랑 대화를 좀 하고 싶다는데? 시간 괜찮지??”

“가주님께서요?”

왜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가 자신을 찾는 것일까? 카단은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가주님께서 부르시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녀석 생긴 것과 다르게 말을 참 예쁘게 한단 말이지.”

“과찬이십니다.”

“우선 씻고 와.”

클로제가 피식 웃으며 뒤에 서 있던 시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시녀가 조심스레 다가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샤워를 끝낸 카단은 시녀가 건네주는 화려한 옷을 입은 채 클로제 앞에 나타났다.

“그냥 제 옷 입어도 되는데.”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님을 뵙는데, 아무렇게나 입으면 쓰나?”

클로제는 턱을 괸 채 카단을 살피더니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야. 제법 옷이 잘 어울리네? 너 평민 출신인 거 거짓말이지? 외국에서 온 귀족 아니야?”

“옷이 날개일 뿐이죠. 전 평민 출신입니다.”

카단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클로제는 그런 카단의 어깨 위로 팔을 걸쳤다.

“가자고. 아버지 기다리시겠다.”

어쩐지 클로제의 목소리에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옷이 잘 어울려서 만족스러운 건가?’

카단은 그 흐뭇함의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클로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클로제가 걸음을 멈췄고, 그는 은색의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가 봐. 말씀드려놨으니, 바로 들어가도 상관없어. 난 내 방에서 기다릴게.”

“선배님은 같이 안 들어가십니까?”

독대하라고? 카단이 놀란 눈을 뜨자 클로제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카단의 등을 두드렸다.

파앙! 파앙!

“크헉!”

“평민으로 살면서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와 독대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냐? 가봐.”

카단이 통증에 미간을 찡그리자, 클로제는 얼른 들어가라며 손짓했다.

이내 클로제는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고, 혼자 남게 된 카단은 짧게 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똑똑똑.

“카단입니다.”

철컥.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고, 카단은 깜짝 놀라며 뒤로한 걸음 물러섰다.

“들어오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앞을 바라보자, 거대하고 화려한 공간이 카단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렐테이라 영주성이 무작정 화려하기만 했다면, 이곳은 확실히 고급스럽군. 세련됐다고 해야 하나?’

카단은 잡생각을 날리며, 다시 주변을 살폈다.

‘접대실 같은 곳인가?’

직사각형의 기다란 책상. 그리고 그 끝에는 가주 ‘오웬 더글라스’가 앉아있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앉게. 차도 한잔하면서 천천히 얘기하자고.”

오웬은 흡족한 시선으로 카단을 바라보며 손짓했고, 카단은 의아함을 느끼며 집사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나랑 무슨 할 말이 있으시다고?’

카단이 자리에 앉는 순간, 집사는 곧바로 찻잔 위로 달콤한 꽃향기가 가득한 차를 따라 카단에게 건넸다.

‘차를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네. 아버지랑 있을 땐 자주 마셨는데.’

카단은 찻잔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를 흘리더니, 이내 조심스레 찻잔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평민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차를 몇 번 마셔본 것 같군.”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귀족을 상대할 정도로 뛰어난 상인이셨나 보군.”

오웬은 카단의 정보를 확보한 것 같았다. 물론 잭 카터에 의해 조작된 정보이긴 했지만.

“네. 맞습니다.”

카단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오웬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제 대련은 인상 깊었네. 마나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클로제 녀석을 상대로 10분을 버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운이 좋았습니다. 대련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제가 패배했을 것입니다.”

“운이 좋긴. 비장의 수도 하나 준비해놓고 있었으면서.”

오웬은 방긋 웃으며 카단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마탑에서 만든 블링크 마법이 담긴 반지. 그 반지를 이용했다면 클로제의 마지막 공격도 쉽게 피해냈겠지.”

카단은 잠깐 놀란 듯 오웬과 용병 길드에서 얻은 반지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그러나 아공간 마법이 아닌 다른 마도구를 사용해도 될지 고민됐기에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순간엔 승패와 상관없이 썼겠지만.

“애초에 다른 규칙을 정하지 않았으니, 그 반지를 쓰더라도 자네의 승리를 인정해주었을 걸세.”

오웬은 껄껄 웃으며 다시 찻잔을 들어 올렸다.

이에 카단도 천천히 찻잔을 붙잡았고, 입으로 가져가려던 순간 다시 오웬의 목소리가 들렸다.

“클로제에게 들었네. 언데드가 나오는 던전을 찾고 있다고?”

다시 들려온 질문에 카단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어쩐지 조금 전 클로제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네크로맨서가 굳이 언데드가 나오는 던전에 갈 필요가 있나?”

다른 누군가의 힘으로 되살아난 언데드는 네크로맨서의 재료가 될 수 없다.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라면 그 사실 역시 알고 있을 터.

“수련을 목적으로 언데드가 나오는 던전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카단은 거짓말을 섞어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마족이 남긴 흔적을 찾아다닌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 돌려 말할 수밖에.

“음. 새로운 언데드를 일으킬 수 없는 곳에서의 수련이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 뭐 이런 건가 보군.”

다행히 오웬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자네에게 던전 한 곳을 추천해줘도 괜찮겠나?”

“가주님께서 말씀이십니까?”

카단이 되묻자 오웬은 너그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4성 네크로맨서라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는 곳이야. 물론 쉽진 않겠지만.”

“저야 영광입니다.”

카단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자, 오웬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법사들의 무덤이라는 던전으로 가보게. 자네가 생각한 훈련을 시행하기에 딱 적당한 곳이지.”

한계를 시험하는 훈련에 적당한 곳이라는 뜻일까?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오웬이 옆에 있는 집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집사는 곧바로 카단에게 다가와 그의 앞으로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열어보게.”

오웬의 말에 따라 상자를 열어보자, 그곳엔 두 장의 양피지가 들어있었다.

“이건?”

“텔레포트 마법이 담긴 마법 스크롤과 던전 정보를 요약해둔 것일세. 편하게 던전 앞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이렇게까지 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카단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내 딸의 친구이자 아들의 친한 후배인데, 아비 된 사람이 이 정도도 못 해줄까?”

가주가 아닌 아버지로서 자식들의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다. 오웬은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어댔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머뭇거리던 카단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감사를 전했다.

“중급 던전이라고 하기엔 꽤 크기가 큰 곳이니 늘 방심하지 말게. 정보는 꼭 확인하고 들어가도록 하고.”

***

“이건 또 어디서 구한 거야? 평민 주제에.”

침대에 걸터앉은 블랑쉬가 은색 팔찌를 바라보며 불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령의 힘이 담긴 팔찌. 평민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닐 텐데….”

그녀는 이번 생일에도 수많은 귀족에게 선물을 받았다.

하나같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그녀의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선물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한참을 은색 팔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한테 도시 렐테이라를 부탁하러 온 거겠지만.”

카단이 순순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저 빈손으로 파티에 참석할 수 없었기에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평민이 준비한 선물이라기에는 너무 비싼 물건.

‘빈손으로 올 수 없었으니까 가져온 거겠지만, 너무 과해.’

카단이 마법사 길드에서 파는 아무 마도구를 선물로 줬다면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나한테 잘 보이려는 건가? 아니야. 그 녀석이 그럴 리 없어. 혹시 착용하면 독이나 저주 따위에 걸리는 걸까?”

혹시 몰라 정화 마법까지 사용해봤지만, 아무런 반응은 없었다.

“흠. 그래도 꽤 예쁜 걸 가져왔네. 실용성도 좋아.”

불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선물이 마음에 들기도 한 걸까?

그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속셈을 모르겠네. 아, 2학기 때 자기한테 덤비지 마라. 뭐 이런 뜻으로 준 것 같은데?”

블랑쉬가 팔찌를 침대 위에 내려놓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런다고 내가 1위 자리를 포기할 것 같아?”

선물이 고맙고 마음에 들긴 하지만, 마냥 기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블랑쉬는 입학시험 때부터 카단을 좋게 보지 않았고, 늘 차갑고 까칠한 태도를 유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단이 이렇게 비싼 선물을 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아. 내가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순간, 클로제와 대련하던 카단의 모습이 떠올랐고.

털썩.

블랑쉬는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내 실력으로 오빠와 대련한다면 5분도 못 버텨. 아니, 4성이 된다고 해도 10분은 무리야.’

어쩐지 카단과의 거리가 더 멀어진 기분.

카단과 대련에서 패배한 이후 이를 갈며 성장에 집중했지만, 그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어째서?’

차마 자신의 입으로 카단의 빠른 발전이 불공평하다는 말은 내뱉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위대한 가문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라온 그녀가 불공평을 논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평민을 상대로.

‘내가 녀석의 성장을 부러워하는 건가?’

마음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감정의 정체는 시기와 질투.

더글라스 가문의 핏줄을 지닌 자신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하다니.

으득.

블랑쉬는 이를 악물며 허공을 노려봤다.

‘아카데미 휴식기가 끝나기 전에 4성에 도달해야 해.’

어린아이처럼 선물을 확인하며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블랑쉬는 그렇게 생각하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휴식기가 끝나고 아카데미로 돌아갔을 때 다시 승부를 봐야 해.’

카단이라면 휴식기 사이에 더 큰 발전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잠깐. 지금 당장 한 번 붙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얼마나 실력 차이가 나는지 확실히 알아볼 필요도 있어.’

무언가 결심했는지 블랑쉬는 비장한 눈빛으로 거울을 확인한 뒤, 이내 걸음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카단이 머물고 있다는 클로제의 성.

똑똑똑.

클로제의 방문을 두드리자, 곧바로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철컥.

블랑쉬는 곧바로 문을 열며 방 안을 살펴봤다.

“블랑쉬. 왔어?”

“우리가 준 생일 선물들은 어때?”

소파에서 쉬고 있던 루카스와 아라드가 몸을 일으키며 블랑쉬를 반겨줬고.

“무슨 일이야? 네가 여길 다 오고?”

클로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블랑쉬를 바라봤다.

블랑쉬는 세 사람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주변을 바라봤다.

“뭐야? 카단 이 녀석 어딨어?”

“카단? 조금 전에 떠났는데?”

클로제의 대답에 블랑쉬가 헛숨을 들이키며 되물었다.

“떠났다고? 어디로?”

“아버지한테 텔레포트 스크롤을 받았는데, 조금 전에 스크롤 찢고 사라졌어. 내가 도시락도 챙겨줬다. 잘했지?”

클로제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블랑쉬가 얼굴을 붉히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빌어먹을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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