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오크들의 서식지로 가야 해.”
마족 지령서에 적힌 내용을 들은 카단이 아공간 속에서 마법 스크롤 하나를 꺼내 펼쳤다.
촤락!
“지금?”
카단이 스크롤을 찢으려 하자, 루나가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간다고? 미쳤어? 거기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이거 마족 지령서라니까?”
마족이 있을 수도 있다. 마족의 수하라고 하더라도 위험하다. 루나가 큰 소리로 경고했다.
“아는 사람들이 위험해.”
지금쯤이면 클로제와 루카스, 아라드가 오크들의 서식지를 토벌하려는 토벌대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들 역시 마법 스크롤을 통해 이동했으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터.
‘마족의 수하 하나라면 세 사람이 충분히 쓰러트리겠지.’
그러나 그곳은 오크들의 서식지. 오크들을 상대하며 동시에 마족의 수하를 상대할 순 없을 것이다.
‘만약 마족의 수하가 아닌 하급 마족이나 그 이상의 마족이 나타난다며?’
클로제 일행은 물론 토벌대 전체가 위험할 것이다. 자칫 전멸까지도 갈 수 있는 상황.
‘토벌대라면 세 사람보다 강한 사람도 있겠지만, 오크들과 전투하며 마족이 나타난다면 막아내기 힘들 거야.’
물론 카단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토벌대에 합류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바뀔 리 없다는 걸.
그들을 지켜내긴커녕 카단 역시 위험할 수도 있었다.
“네가 간다고 해서 마족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위험하다고 경고라도 해야지. 그래야 전력을 강화하든 작전을 세우든 할 테니까.”
침착하게 대답하고 있었지만, 카단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새 클로제와 그의 일행들에게 정이라도 들었는지, 머릿속엔 온통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언젠가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이 무참하게 죽는 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하급 마족을 상대하려면 인간들 기준으로… 그래. 6성 이상은 되어야 해. 게다가 오크들이 잔뜩 있는 상황이라면?”
“7성급 실력자들이 3명 이상은 있어야겠지….”
루나는 카단의 팔을 세게 잡아당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위험한 거 알면서 왜 그래? 무엇보다 중급 마족은 지금의 나로서는 상대할 수 없어. 저번에 죽였던 두꺼비 녀석이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그녀의 강력한 경고에 카단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내가 토벌대에 가서 마족의 수하니, 마족이니 떠들어봤자 믿어줄 사람은 없겠지.’
마족 지령서를 꺼내 전해준다고 한들, 마족의 언어를 어떻게 읽었냐고 추궁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제야 흥분했던 카단의 머리가 침착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방법. 방법이 없을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카단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머리를 굴려봤다.
아쉽게도 확 떠오르는 해결책은 없었다. 토벌대에 합류하더라도 카단의 힘으로 토벌대를 지킬 수는 없을 테니.
“마족….”
자연스레 카단의 시선이 키메라를 향했고, 순간 카단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키메라의 몸은 오크. 이 몸을 가져다가 마족의 증표를 보여주면?’
오크를 사냥했는데, 마족의 증표를 발견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토벌대가 믿어주지 않을까?
‘경계는 하겠지. 무턱대고 오크 서식지에 들어가진 않을 거야. 전력을 강화하기도 할 거고. 그런데 이미 토벌이 시작됐다면?’
카단은 골치 아프다는 듯한 손으로 이마를 붙잡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그러자 그 모습을 씁쓸히 바라보던 루나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붙잡은 팔을 놓았다.
“카단. 전부터 나한테 안전이 제일. 그렇게 말했지?”
그 말에 카단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턱대고 들어가지 않을게. 걱정시켜서 미안해….”
그러나 클로제와 그의 일행들이 무의미하게 죽는 건 바라지 않았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순간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아니. 내 말은 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야.”
“그러면?”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루나를 바라보자, 루나는 심호흡을 짧게 하며 방 가운데 놓인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더니 주먹을 높게 들어 제단을 향해 있는 힘껏 내려쳤다.
콰아아아아앙!
그녀의 주먹에 제단은 산산이 조각나며 부서졌고,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카단이 당황한 눈으로 루나에게 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부숴?”
루나는 매서운 눈으로 카단을 보면서 부서진 제단을 가리켰다.
“마족의 힘에 집어삼켜지면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이건….”
마석이 있었다.
‘무슨 마석이 이렇게 많아?’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부서진 제단 안에는 커다란 상자가 있었고, 그 상자 속에 13개의 마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혹시라도 네가 이 힘을 전부 흡수하면 마족이 될 것 같아서 말 않으려고 했는데….”
루나는 키메라를 쓰러트리기 전, 그러니까 방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제단 아래 숨겨진 마석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러나 카단이 마족의 힘을 흡수하는 것을 보고 혹여나 카단이 그 힘에 잠식되어 버릴까 봐 마석의 존재를 숨기려 했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도 네가 갈 것 같으니까… 조금이라도 강해져.”
루나는 여전히 매서운 눈으로 카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강해질수록 제약의 힘이 약해지면서 점점 내가 가진 힘을 쓸 수 있어.”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카단은 멍한 얼굴로 마석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렇게 많은 양의 마석은 본 적도 없으며, 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이 정도 마석이라면….’
카단이 멍하니 있자, 루나가 다가와 그의 정강이를 콩하고 걷어찼다.
찌릿한 통증에 카단이 정신을 차리며 루나를 쳐다보자, 루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경고했다.
“정신 차려. 내가 분명 말했다. 마족이 될 것 같은 징조가 보이면 고민도 안 하고 죽여버린다고.”
이내 정신을 차린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알겠어. 고마워. 루나.”
마족이 될 거라는 걱정은 없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카단의 머릿속이 평온하진 않았다.
‘영혼의 결정을 흡수해서 마족이 되었다면 네크로맨서의 전설은 쓰이지도 않았겠지.’
무엇보다 몇 번이나 영혼의 결정을 흡수해봤지만, 마족의 불길한 힘은 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툭, 툭. 툭.
카단은 곧바로 제단 아래 숨겨진 상자에서 마석들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총 13개.’
마석을 줄지어 내려놓은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 꽂아뒀던 단검을 뽑아냈다.
스릉!
***
“이런 미친! 여기 오크들은 왜 이렇게 강해!”
“일반적인 오크가 아니야! 다들 뒤로 물러나!”
전장에는 쇳소리와 비명이 가득했다.
아쉽게도 그 비명 중 대부분은 오크가 아닌 인간들의 절망이 섞인 비명이었다.
“끄아악! 내 팔!”
“제기랄! 퇴각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우리만으로는 못 해!”
“부상자 데리고 뒤로 빠져!”
전장에 있는 토벌대원 모두가 생각했다. 지금 토벌대의 전력으로는 오크들의 서식지를 토벌할 수 없다고.
오히려 토벌대가 전멸할 거라고.
“6성 기사들! 전방으로 이동해서 병사들을 지켜! 퇴각할 시간을 번다!”
“후퇴해라! 6성 이상만 오크들을 상대해라!”
“전열 유지하면서 퇴각해! 아무렇게나 도망가다간 다 죽는다고!”
오크는 5성에 도달한 이들이라면 혼자서도 안전하게 사냥이 가능한 몬스터였다.
2, 3성급의 훈련된 병사들이라면 10명만 모여도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
오크의 서식지를 토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토벌대는 안전하고 완벽한 토벌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당장 적국과 전쟁을 치르더라도 몇 번이고 승리를 거둘 수 있을 정도의 전력.
토벌대원의 평균 능력은 5성.
6성급 실력자들이 사방에 포진되어 있었고, 간부급은 7성에 가까운 6성 실력자들이었다.
“제기랄! 저기 오크 무리가 더 온다!”
“왜 조사했던 것보다 오크의 수가 많은 건데!”
“왼쪽 전열 무너지려고 하잖아! 지원 좀 해!”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했지만, 토벌대는 오크 무리에게 밀려나고 있었다.
이 전력으로 오크들에게 밀리는 상황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서걱!
다행히 6성 이상의 실력자들의 활약 덕분에 전멸의 상황까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6성급이라도 마나가 부족한 사람들은 부상자 챙겨서 후퇴하는 사람들과 합류해!”
“지친 사람들은 무리하지 마! 전열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뒤로 빠진다!”
6성 이상의 실력자들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토벌대는 전멸했을 것이다.
“후퇴할 시간을 벌 테니, 6성 이하 분들은 빨리 뒤쪽으로 이동하십시오! 루카스, 아라드. 엄호 좀 부탁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보이는 건 다름 아닌 클로제와 그의 일행이었다.
클로제와 루카스, 아라드의 활약으로 수십의 오크들이 순식간에 쓰러졌고, 그 틈에 토벌대가 빠르게 전장을 빠져나갔다.
오크들은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더 강하게 토벌대를 몰아붙였다.
“어딜 가려고!”
“이 이상은 못 간다! 빌어먹을 돼지 새끼들아!”
토벌대가 다시 한번 주춤했지만, 6성 실력자들과 간부들이 전방까지 나와 오크들을 상대하기 시작하자,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6성 이하는 모두 대피했어! 슬슬 우리도 후퇴한다!”
지휘관의 외침에 전방에서 오크들을 막아내던 이들이 땅을 박차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제부터는 이기적으로 도망쳐!”
전장에 남은 이들은 6성 이상의 실력자들.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지킬 힘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 말에 토벌대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때.
콰아아아앙!
거대한 도끼가 날아와 도망가던 기사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도끼는 큰 소리를 내며 땅에 박혔고, 도망가던 이들은 깜짝 놀라며 도끼가 날아온 곳을 바라봤다.
“미, 미친…….”
보통 오크보다 덩치가 크고 붉은 피부를 지닌 오크가 살의를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오크 챔피언이다!”
“빌어먹을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있어!”
“오크 족장 옆에 있어야 할 녀석이 왜 전장에 나타난 건데!”
오크 챔피언은 오크 전사 중 가장 강한 오크. 오크 챔피언의 등장만으로도 전장은 싸늘한 죽음의 기운이 맴돌았다.
“도망쳐! 전력으로 튀어!”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적어도 6성의 실력자 셋은 달라붙어야 겨우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
“루카스. 아라드. 먼저 가라.”
땅을 박차며 후퇴하던 클로제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검을 고쳐 쥐었다.
“뭐? 야, 이 미친놈아! 지금 업적, 명성 따질 때가 아니야!”
“보통 오크들이 아니야! 오크 챔피언은 아무리 너라도 힘들어!”
루카스와 아라드가 소리치며 반대했지만, 클로제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잡을 생각 아니야. 저 녀석을 가만히 놔뒀다간 부상자만 늘어나. 내가 시간 좀 끌어볼게.”
도끼 한 번 던질 때마다 한 사람씩 죽어난다면, 토벌대의 전력이 크게 손실될 것이다.
“빨리 따라갈 테니까, 먼저 가라!”
클로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오크 챔피언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동시에 그의 검에 푸른 마나가 깃들었다. 6성 검사의 오러라고 볼 수 없는 정돈되고 날카로운 오러.
그 든든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카스와 아라드가 소리 없이 욕을 내뱉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나 죽으면 저 새끼부터 원망한다.”
“영웅병 걸린 또라이!”
루카스와 아라드의 외침을 들은 클로제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의리 있는 새끼들.”
그들의 동행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조금만 시간을 끌고 도망간다.’
이내 오크 챔피언 앞에 도착한 순간, 클로제는 고민도 하지 않고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될 수 있으면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