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쿠웅!
오크 챔피언의 주먹에 맞은 클로제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야! 클로제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루카스는 불로 만들어진 창을 오크 챔피언에게 날렸고.
“루카스. 내가 데려올 테니까, 다가오는 오크들 좀 어떻게 해봐.”
이어서 아라드가 오크 챔피언을 향해 화살을 쏴대며 쓰러진 클로제를 향해 달려갔다.
크르릉.
그러나 오크 챔피언에게는 아라드의 화살이 통하지 않았다.
아라드는 이를 악물며 최대한 클로제에게 접근하려 했다.
루카스의 마법 덕분에 오크들이 빠르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이게 말이 돼?’
‘이렇게 무력하게 패배할 줄이야.’
6성의 실력자 셋이라면 오크 챔피언 하나를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니, 가능해야 했다.
게다가 세 사람은 영웅 아카데미의 졸업반. 왕국에서 손꼽는 재능과 잠재력으로 인정받은 뒤 최고의 기관에서 훈련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셋이서도 오크 챔피언을 상대할 수 없었다.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 부술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 세 사람은 무너지고 말았다.
‘제기랄. 오크 챔피언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오크들의 수가 너무 많아.’
‘상황이 좋지 않아. 빨리 클로제를 데리고 도망쳐야 해. 루카스도 곧 한계다.’
분명 처음에 오크 챔피언 앞에 도착했을 땐 가능성이 보였다.
어쩌면 셋이서 오크 챔피언의 목을 끊어낼 수도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클로제가 앞장서서 오크 챔피언을 상대했고, 루카스와 아라드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오크들을 막아냈다.
두 사람의 지원 덕분에 클로제는 오로지 오크 챔피언과의 전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셋은 지쳤다는 생각도 잊은 채 전투에 집중했고, 처음 클로제의 검이 오크 챔피언의 어깨에 박혔을 때 그들은 머릿속으로 승리를 그렸다.
그러나 승리를 그리던 희망이 무너지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클로제의 검으로도 베어낼 수 없을 줄이야.’
‘그때 포기하고 도망쳤어야 해.’
오크 챔피언의 어깨에 박힌 검은 빠지지 않았고, 클로제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바닥에 버려진 검 하나를 주워 다시 공격을 이어갔었다.
오크 챔피언은 별거 아니라는 듯 몇 번이고 클로제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냈고.
‘클로제를 쓰러트릴 줄이야.’
단 세 번의 공격만으로 클로제를 쓰러트렸다.
오랜 전투에 지쳐버린 탓도 있었지만, 오크 챔피언의 힘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다.
영웅 아카데미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자. 클로제는 그렇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크와호!
아라드가 클로제 앞에 도착하는 순간, 오크 챔피언이 두꺼운 손가락으로 루카스와 아라드를 가리키며 외쳤다.
크라학!
그러자 근처에 있던 오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루카스! 너라도 피해! 내가 어떻게든 막아볼게!”
“개소리하지 마! 내가 막는 동안 네가 클로제 데리고 튀는 게 토벌대에 이득이야!”
두 사람은 희망이 무너지는 광경 속에서 포기를 그렸다. 그러나 무작정 죽음을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나라도 더 잡고 죽는다!”
“빌어먹을!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고백이라도 하고 죽는 건데!”
그들은 달려드는 오크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기 위해 마법을 시전했고 활시위를 당겼다.
***
‘뭐야?’
토벌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카단이 당황한 듯 멈춰 섰다.
“앞에 비켜! 환자다!”
“막사 하나 비워! 빨리!”
오크들의 서식지에서부터 부상자들이 부축받으며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친 기색이 가득한 토벌대원들이 급하게 그들의 뒤를 이어 달려오고 있었다.
패배를 그리는 얼굴들.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
‘늦었다.’
카단은 이를 악물며 퇴각하는 병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제발, 제발 무사해라.’
재빨리 주변을 살피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익숙한 얼굴들은 보이지 않았다.
카단이 막사 곳곳을 돌아다녔음에도 카단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부상자들을 옮기고 퇴각한 대원들을 챙기기 바쁜 상황.
“사령관님! 큰일 났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외침이 들려왔고, 카단은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영웅 아카데미 생도들이 오크들에게 생포되었습니다! 구하러 가야 합니다!”
“뭐?”
사령관으로 보이는 사람은 당황한 얼굴로 자신에게 보고하는 기사를 바라봤다.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 셋이 마지막까지 토벌대의 후퇴를 돕기 위해 전장에 남았습니다. 당장 구하러 가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생포? 생포했다고?”
“네! 죽이지 않고 기절시키더니 그대로 들고 가버렸습니다.”
사령관은 곤란하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인질을 잡아간 건가?”
이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사령관이 땅을 구르며 다른 이들을 향해 손가락을 휘두르며 새로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근처 용병 길드와 마법사 길드. 그리고 영주성과 가까운 기사단에 모두 지원 요청해!”
“네!”
“최소 6성 이상의 실력자가 최대한 많이 필요하다! 7성 실력자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지시받은 이들은 어디론가 재빨리 사라졌고, 사령관은 이를 악물며 다시 대원들에게 외쳤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나머진 빠르게 정비하고 전투를 준비하라! 잡혀간 대원들을 구하러 간다!”
사령관의 지위에 맞춰 토벌대원들은 큰 소리로 대답하며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단은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퇴각하는 병사들을 거슬러 오크들의 서식지 쪽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후.
거대한 풀숲 뒤.
“미안해. 루나. 상황이 바뀌었어.”
검은색 가면을 쓴 카단이 펑퍼짐한 드레스를 입은 루나를 향해 고개 숙여 말했다.
“좀 더 쉬게 해주고 싶었는데, 바로 불러야 했어.”
“내가 바로 부르라고 했잖아. 왜 안 부르나 기다리고 있었어.”
루나는 괜찮다며 카단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그나저나 확실히 다르네. 다시 소환되면서 확인해보니 제약이 몇 개 풀렸더라고.”
루나는 오히려 잘됐다며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이내 짧은 팔을 붕붕 돌리던 루나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카단을 바라봤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오크들에게 생포됐어. 아무래도 그 지령서에 적힌 제물과 관련 있는 것 같아.”
카단의 답변에 루나가 미간을 찡그렸다.
“마족 녀석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또 오크들이 생각보다 강한 것 같아. 토벌대가 패배했어. 피해가 상당한 것 같아.”
“그러니까 토벌대는 당장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이용해 풀숲 너머를 가리켰다.
“이 너머로 오크들이 보일 거야. 생각보다 많더라.”
그러자 루나는 뒤꿈치를 들고 목을 쭉 빼며 풀숲 너머의 광경을 확인했다.
카단이 가리킨 곳은 오크들이 모여있는 곳. 오크 군락지였다.
“쯧.”
그녀가 혀를 차는 소리에는 탄식이 담겨 있었다.
“강할 수밖에 없네. 저중 절반 이상이 마족의 수하들이야.”
“절반 이상?”
카단이 놀란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켜 풀숲 밖을 바라봤다.
군락지에 모인 거대한 오크들은 하나같이 강해 보였다.
“카단. 아무리 네가 강해졌다지만, 우리 둘만으로는 힘들어. 알지?”
마족의 수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면 카단과 루나만으로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루나가 다시 풀숲 뒤로 쭈그려 앉아 몸을 숨겼고,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특히 멀지 않은 곳에서 마족의 기운이 느껴져. 이건 최소 하급이야.”
게다가 하급 마족까지 있는 상황이라면 토벌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클로제와 그의 일행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걱정하지 마. 나도 무리할 생각은 없어.”
전과 다르게 급박한 상황에서도 카단이 당황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한 모습.
슈우우. 슈우.
그리고 그의 뒤로 세 마리의 레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구름이 가득한 흐린 날씨라 완벽한 밤이 되지 않았음에도 레이스들이 카단의 부름에 응답했다.
“레이스는 갑자기 왜? 오크 주술사는 안 보이던데?”
질문하는 루나를 바라보며 카단은 입가에 미소를 그릴 뿐 정확한 대답은 들려주지 않았다.
“오크들이 사람 셋을 생포했어. 만약 오크든 마족이든 생포된 인간들을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면 둘은 따라붙고 하나는 나한테 와서 보고해.”
대신, 레이스들에게 지시하는 것으로 루나는 카단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분부대로!
-알겠어요! 주인님!
-내가 보고하러 올게! 주인!
카단의 명령에 레이스들이 짧게 대답하더니 빠르게 오크들의 군락지를 향해 날아갔고.
“어쩌려고?”
루나는 눈을 끔뻑이며 진중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마족 지령서에 적힌 대로라면 여기서 제물을 잡아다 마법사들의 무덤으로 데려간다고 했잖아?”
“응. 그랬지.”
“그렇다면 마족이든 오크든 제물을 옮기면서 따로 행동할 거야. 호위는 많이 붙지 않겠지?”
“흠. 그러니까…. 생포된 인간들을 옮기는 녀석들의 뒤를 칠 생각이야?”
“응. 오크 군락지에서 멀어질 때를 기다려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겠네.”
재정비한 토벌대가 빨리 와준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겠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토벌대 만으로는 이 많은 오크를 상대할 수 없을 터.
‘지원 병력이 합류해야만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할 거야. 지금 토벌대는 피해가 너무 커.’
생포 당한 클로제와 루카스, 아라드가 최대한 늦게 끌려가길 바라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5성이 되었는데도 루나를 소환하는데 절반 이상의 마나가 소모됐어. 제약이 풀렸다고 몇 개 풀렸다고 하던데, 그 때문인가?’
제단 아래 숨겨져 있던 마석은 카단이 처음 발견했던 마석보다 더 많은 힘을 품고 있었다.
13개 전부.
품질로 따지자면 상급이랄까?
덕분에 13개의 질 좋은 영혼의 결정을 흡수한 카단은 5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휴식기가 되자마자 5성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카단은 곧바로 전투를 준비했다.
‘혹시 모르니 레이스들이 올 때까지 마나를 최대한 회복해 놔야겠어.’
카단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마나를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전보다 진하고 많은 양의 마나를 얻었으며, 마나 하트 또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그뿐이랴? 피로가 사라진 건 물론 신체 능력이 상당히 발전되었다.
이 정도면 4성 기사들의 신체 능력 수준과 비슷하지 않을까 할 정도.
‘5성이 되고 훈련도 없이 전투를 치러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힘은 차라리 안 쓰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실전 경험이 없을 뿐, 5성에 관한 지식은 머릿속에 차고 넘쳤다.
마나를 회복하며 토벌대를 기다리기거나 레이스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조급함 속 카단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 주인!
레이스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풀숲에 숨은 카단을 불러냈다.
‘쯧. 토벌대가 늦는군.’
레이스의 등장에 마나를 회복하던 카단이 천천히 눈을 떴고, 옆에 있던 루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스를 바라봤다.
“보고해.”
레이스가 앞으로 다가오자 카단은 굳은 표정으로 말해보라며 손짓했다.
-거대한 쥐가 오크 셋과 함께 포박된 인간들을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