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67화 (67/186)

제67화

‘말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오크의 언어를 내뱉었다며 실망할 법도 했지만, 카단은 기쁘다는 듯 미소를 그렸다.

우…라…키!

어눌하게 말을 내뱉는 모습은 꼭 처음 언어를 배우는 듯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외형은 어김없는 놀이었지만.

“놀의 모습으로 오크 말을 하네…?”

플래시 골렘의 입에서 언어가 튀어나오자 루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카단에게 물었다.

“그러게. 말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카단. 너 설마 오크의 영혼을 골렘 안에 넣은 거야?”

“뭐… 비슷해.”

카단의 대답에 루나는 헛숨을 삼켰다.

“이, 인위적으로 만든 골렘은 그저 하나의 병기일 뿐이야. 영혼이 깃들 수가 없어. 아니, 그 전에! 아무리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무생물에 생명이 깃들게 하다니? 불가능해!”

루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으며, 카단은 당황하는 그녀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카단 역시 자세히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마나의 핵에 영혼의 결정을 흡수시키는 건 책으로만 봤던 네크로맨서의 전설 중 하나.

아니, 정확히는 아이작 교수에게서 전해 들었던 전설.

정말 플래시 골렘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인지, 아니면 리빙 아머처럼 단순히 영혼이 특정 물체에 깃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저 몸에 영혼이 깃든 게 아니라 마나의 핵에 영혼이 깃든 거라고 할 수 있어.”

“마나의 핵 안에 마족의 힘을 넣었다고?”

“응. 그래서 생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야. 네 말대로 플래시 골렘은 하나의 병기니까.”

카단의 플래시 골렘은 그저 영혼이 깃든 마나의 핵을 통해 움직이는 병기.

루나의 말대로 어떤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도 그저 죽은 이들의 영혼을 부릴 뿐, 새로운 영혼을 창조하는 건 불가능했다.

‘네크로맨서 서적에도 나오지 않는 부분이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쯧.’

무어라 설명을 이어가려던 카단은 이내 잘 모르겠다는 듯 푹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내가 마족의 힘을 흡수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능력이잖아? 이것도 그래. 설명하기 힘드네.”

그저 전설 속 힘을 사용할 수 있을 뿐, 그 힘의 원리와 이유를 설명하기엔 카단도 알고 있는 것이 많이 없었다.

“야,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왜 그 전설 속 힘이 너에게 존재하는 것이냐? 루나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고.

“음…. 네크로맨서?”

카단은 잘 모르겠다는 듯 피식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루나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어댔고, 카단은 고개를 돌려 멀뚱히 서 있는 놀. 아니, 플래시 골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까지 걸어가 볼래?”

카단의 명령에, 플래시 골렘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크…락!

놀의 몸 주제에 마치 오크의 몸을 지닌 듯 어기적어기적 뒤뚱거리는 둔한 걸음걸이로 걷는 모습이 꽤 웃겼다.

“카단. 쟤 이상하게 걸어.”

“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긴 하네.”

루나는 표정을 찡그렸지만, 카단은 그런 플래시 골렘이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루나는 그런 카단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나 계약 잘못한 것 같은데. 뭔 계약하자마자 인간계에서 보기 힘든 마족을 만나질 않나, 계약자는 마족의 힘을 흡수하지 않나, 이제는….’

계약자가 만든 골렘이 오크의 말까지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루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뱀파이어로서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이런 경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니까.

루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카단은 그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플래시 골렘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걸로 앞으로 더 강해질 방법이 생겼다.’

왕국을 향한 복수를 이루기 위해서는 카단 혼자 강해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네크로맨서 혼자 강해져봤자 동급의 마법사만도 못해. 네크로맨서가 강해지려면 강한 언데드가 있어야 한다.’

왕국을 상대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이상, 그의 언데드 역시 평범해선 안 됐다.

그런 의미로 영혼의 결정을 플래시 골렘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카단에게 꽤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떤 효과가 있는지 빨리 확인해보고 싶네. 오크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오크의 특성을 좀 지니게 된 건가? 여기에 또 다른 영혼의 결정을 넣으면 어떻게 변할까?’

물론 당장은 플래시 골렘에게 영혼의 결정을 양보해줄 수는 없었다.

5성. 지금도 또래 중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마족이 나타난 이상 지금보다 더 빠른 성장이 필요했으니.

‘가만. 그런데 이 골렘을 아공간에 넣을 수 있으려나? 혹시 생명으로 인지해서 튕겨내면 어떻게 하지?’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이어가던 카단이 멈칫하더니, 눈을 끔뻑이며 플래시 골렘을 바라봤다.

골렘에게 생명 비슷한 것이 생겼고, 생명이 깃든 것처럼 행동하니 어쩌면 더는 아공간에 보관할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아공간에는 살아있는 것을 보관할 수 없으니까.

‘저 녀석을 늘 데리고 다닐 수는 없잖아?’

만약 플래시 골렘을 아공간에 보관할 수 없다면 곤란한 상황을 자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아카데미를 다닐 때는 물론, 평소에도 늘 골렘을 데리고 다녀야 할 테니까.

‘이렇게 되면 완전 계륵이 되어버리는데?’

숨겨놓는다고 해도, 시야 밖에 있는 골렘의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을 것이며, 필요한 순간에 소환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카단 혀를 차며 재빨리 아공간을 열었고.

“멈춰봐. 그만 걷고, 이 안으로 들어가 볼래?”

어정쩡하게 걷고 있는 플래시 골렘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라…? 토!

그러자 플래시 골렘은 발길을 돌려 카단이 가리키는 아공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공간이 골렘을 튕겨낸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어쩌면 여태껏 성장시킨 플래시 골렘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

툭, 툭, 툭.

카단은 긴장한 채 아공간 앞에 선 플래시 골렘을 바라봤다.

우웅….

다행히 플래시 골렘은 아무런 문제 없이 아공간 안으로 들어갔고.

“하… 됐다.”

카단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의 생각처럼 플래시 골렘 안에 영혼이 깃들었을 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건 아닌 듯했다.

즉 아공간도 플래시 골렘을 생명이 아닌 언데드로 인식했다는 뜻.

“뭔지 모르겠지만, 이제 다 끝난 거야? 재료는 다 챙겼고?”

카단이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숙이자, 옆에 있던 루나가 그의 손등을 콕콕 찌르며 물었다.

“응. 거의. 오크 시체도 다 챙겼고, 영혼의 결정도 모두 흡수했어.”

카단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고, 이내 걸음을 옮기려 했다.

‘어라?’

그때 그의 눈에 아직 챙기지 않은 오크 시체 하나가 들어왔다.

녹색의 피부를 지닌 일반적인 오크들과 달리 붉은 피부를 지닌 거대한 시체.

“오크 챔피언?”

오크 중 최고의 전사라 불리는 오크 챔피언의 시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카단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당연히 마족의 수하라고 생각했는데.’

오크 족장이 마족의 수하였기에 오크 챔피언 역시 마족의 수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크 챔피언 위로는 영혼의 결정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벌거벗은 몸 어디에도 마족의 증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뜻은.

‘마침 이런 재료가 필요했는데.’

새로운 언데드를 얻을 기회가 생겼다는 것.

‘여기서 바로 만들어 버릴까?’

카단이 새로운 언데드를 만들기 위해 마나를 활성화하려던 순간.

“카단.”

루나가 다가와 카단의 옷 끝을 잡아당겼다.

“응?”

“저쪽에서 사람들이 와.”

루나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고, 카단의 시선이 그녀의 손끝을 따라갔다.

그러나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만 잔뜩 보일 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난 네가 보는 것보다 멀리 볼 수 있고 더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그녀가 여태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으니, 카단은 알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전리품을 마저 챙기러 오는 모양이군.’

전투가 끝난 후, 충분한 전리품을 챙기고 돌아갔던 토벌대가 미처 챙기지 못한 전리품을 확인하러 현장으로 돌아오는 듯싶었다.

‘아오. 더럽게 무겁네.’

카단은 재빨리 아공간 안으로 오크 챔피언을 집어넣었고, 이내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루나를 바라봤다.

“루나. 당분간 전투는 없을 거야. 돌아가서 편히 쉬도록 해. 이번에도 정말 고마웠어.”

“계약상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고마워할 것까진 없어. 그나저나.”

말을 이어가던 루나가 실눈을 뜨며 카단의 몸을 쓱 훑어보았다.

“이곳에서 마족의 힘을 많이 흡수했을 텐데, 왜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지? 쥐 마족에게서 힘을 흡수한 이후랑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오크 서식지에 있던 오크들 전반 이상이 마족의 수하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카단은 그들의 시체 위에 있던 영혼의 결정을 모두 흡수했다.

그러나 카단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과 질이 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고, 이에 의아함을 느낀 루나가 질문을 던진 것.

“이 전장에 남은 시체들에게서 얻은 영혼의 결정엔 소량의 마력만 남겨있더라고. 전부.”

카단도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영혼의 결정이라고 해서 무조건 많은 양의 마력을 지닌 건 아니었어.’

어느 시체에서 영혼의 결정을 얻느냐에 따라 마력의 양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순수 마족에게서 얻은 영혼의 결정과 마석, 마족의 수하에게서 얻은 영혼의 결정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흠. 하긴 순수 마족과 마족의 수하가 지닌 마력은 다르니까.”

루나는 대충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 역시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잘하면 6성도 노려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욕심이었군.’

카단이 처음 이곳에서 수많은 영혼의 결정을 발견했을 땐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막상 힘을 흡수하고 난 이후로 그의 머릿속엔 실망감이 자리 잡게 되었지만.

‘그래도 쥐 마족의 힘을 흡수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하급 마족의 힘을 흡수했고 마족의 수하들에게서 힘을 흡수했지만, 6성의 벽을 넘어서기엔 한참 부족했다.

‘하급 마족의 힘을 30번은 더 흡수해야 6성이 될 수 있으려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카단이 이곳에서 아예 성장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몇 년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마력을 얻었으며, 신체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자그마한 연못이 큰 호수로 변한 것 같은 풍족함.

몸에서 넘치는 듯한 마나에 카단은 미소를 지으며 루나에게 말했다.

“피곤할 텐데 어서 가서 쉬어. 나도 이제 가볼 때가 있거든.”

“카단. 마족이 나타나면 괜히 나서지 말고 나부터 소환해. 마족의 수하는 가능하겠지만, 넌 아직 하급 마족도 상대할 수 없으니까.”

루나는 경고하듯 카단을 쳐다보며 말했고, 카단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알겠어. 걱정하지 마.”

“아무튼. 너도 고생했어. 카단. 다음엔 더 강해져 있길 바랄게.”

루나는 할 일을 끝냈다는 듯 탁탁 손을 털더니, 이내 붉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카단은 멀리 보이는 사람들의 형체를 발견하곤 가면을 고쳐 썼다.

이내 사람들의 발길이 가까워지자.

스륵.

자연스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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