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부상자들의 막사 안은 처음과 달리 고요했다.
크게 다친 이들은 전부 근처 도시로 이동되었고, 부상자들의 막사 안에 남은 이들은 경상자, 혹은 휴식이 필요한 이들 뿐.
막사 안에서는 작게 끙끙거리는 신음만 들릴 뿐,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애들아.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냐?”
입구 근처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클로제가 헛웃음을 지으며 옆에 누워있는 루카스와 아라드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분명 영웅 놀이하던 클로제가 쓰러졌고, 우린 그걸 구하려다 오크들에게 미친 듯이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었는데?”
“내가 중간에 잠깐 깼었거든? 그때 우리 셋 모두 오크 부락지 한복판에 묶여있었어.”
막 잠에서 깨어났는지, 아니면 부상 때문인지 그들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그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물론, 잠이 든 부상자도 있었기에 서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아니, 잠깐만. 야, 루카스. 영웅 놀이라니….”
“그보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우리 꿈이라도 꾼 거냐?”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지.”
세 사람이 의아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하던 중, 지나가던 의무병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다들 일어나셨어요?”
“저기 혹시 저희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아십니까? 토벌대가 저희를 구한 겁니까?”
클로제가 대표해서 질문을 던졌고,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의무병을 향했다.
“네? 아뇨. 캠프 근처를 정찰하던 경비대가 세 분을 발견해 이쪽으로 데려왔습니다.”
“캠프 근처에요?”
“네. 아주 평온한 자세로 누워계셨다고 하던데.”
의무병의 대답에 세 사람은 사고가 멈춰진 듯 눈을 끔뻑거릴 뿐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포박되었던 흔적이 있지만, 발견 당시엔 밧줄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이 없었다. 어느 정도 회복되면 개인 막사로 돌아가도 좋다.
의무병은 그렇게 말을 남기며 다른 환자들을 살피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토벌대도 아니라면 누가 우리를 구해준 거지? 그보다 오크들이 우리를 그냥 던져두고 갈 리가 없잖아?”
“그나저나 우리 몬스터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던 거야?”
“내가 또 기억나는 게 있는데, 오크들이랑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거대한 쥐가 우리를 둘러업고 어디론가 가는 거 같았어.”
세 사람 중 아라드만이 붙잡혔을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억도 뚜렷하진 않았다. 혼미해진 정신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으니까.
“거대한 쥐? 새로운 몬스터인가?”
“혹시 랫맨 아니야? 아니, 랫맨은 하수구에 사는 놈들이잖아?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데?”
“랫맨이랑은 또 달랐어.”
세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던 도중.
촤락!
고요한던 막사의 천막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 누군가를 찾는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라? 카단?”
“엥? 카단! 네가 왜 여기에?”
“너도 토벌대 지원군으로 온 거야?”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카단.
“아뇨. 지원군으로 온 건 아니고 놀러 오라고 하셔서 놀러 왔는데, 다들 왜 이러고 계십니까?”
세 사람을 발견한 카단이 미소를 지으며 세 사람의 병상을 향해 걸어왔다.
“소식은 대충 들었습니다. 세 분 오크에게 인질로 잡히셨다고….”
카단이 실망스럽다는 표정과 말투로 말하자, 세 사람이 멈칫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하. 선배로서 면목이 없다. 너무 자만했어. 내가 너를 너무 믿은 게 죄야.”
“좀 억울해. 오크들이 생각보다 강했어. 일반적인 오크가 아니었다고.”
“어차피 뭐든 변명이야. 전력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무리한 우리 잘못이지.”
세 사람은 반성한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네.’
세 사람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곤 입으로 반성문을 외우고 있을 때, 카단은 아공간 속에서 과일 바구니 하나를 꺼내 병상 옆에 올려놨다.
그러자 세 사람이 동시에 ‘웬 과일?’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빈손으로 오긴 그래서 가져왔어요. 큰 거 사 왔으니, 나눠 드세요. 제가 평민이라 이 정도가 최선이었습니다.”
카단이 힘 빠진 소리로 말하자 세 사람은 동시에 손을 휘휘 저어대며 말했다.
“뭘 이런 걸 사와?”
“아니,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근처 마을가서 아침 먹자! 우리가 살게!”
그 모습에 카단이 피식 웃으며 아공간 속에서 두 개의 과일 바구니를 더 꺼냈다.
“던전 돌아다니며 돈 좀 벌었습니다. 이 정도는 부담 없어요. 마음껏 드세요.”
카단이 농담이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건네고 나서야 세 사람은 안심이 된 듯 평온한 얼굴을 되찾았다.
“잠깐만.”
카단을 바라보던 아라드가 순간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뜨며 카단에게 물었다.
“카단. 혹시 우리 구해준 거 너야?”
잠깐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아라드가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보자, 괜히 옆에 있던 클로제와 루카스도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고작 4성인 제가 토벌대도 퇴각하게 만든 오크들을 뚫고 선배님들을 구했다고요?”
카단은 재밌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클로제와 루카스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아라드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래. 아무리 카단이 대단한 놈이어도 어떻게 오크 부락까지 와서 우리를 구하겠냐?”
“아라드.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너 혹시 오크한테 맞을 때 머리 부분 맞은 거 아냐?”
셋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마족의 제물이 될 뻔한 세 사람을 구해준 사람이 카단이라는 것을.
“맞아요. 제가 선배님들 구하러 갔다면 선배님들이랑 같이 오크들에게 붙잡혀 인질이 되었겠죠.”
카단이 웃으며 던진 말에 다시 한번 분위기가 다운되었다.
“아. 앞으로 어떻게 하지? 쪽팔리게 오크들에게 생포나 당하고. 가문 사람들은 어떻게 보냐.”
귀족 중 귀족. 더글라스 가문의 장남인 클로제가 얼굴을 붉히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루카스도 허망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넋두리를 내뱉었다.
“살아남은 게 부끄러울 줄이야. 이건 마법사의 수치다.”
그 말에 아라드는 마치 숨을 곳이라도 찾는 듯 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차라리 죽었으면 수치라도 느끼지 않았을 텐데. 부끄럽다. 쪽팔리다.”
카단은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살아있는 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다행입니다. 다들.”
다정한 위로의 말이었지만, 그 말이 더 자극되었는지 세 사람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세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카단은 천천히 표정을 굳히며 생각했다.
‘만약 마법사들의 무덤에서 마족 지령서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클로제와 루카스, 아라드는 꼼짝없이 마족의 제물이 되어 영영 볼 수 없는 이들이 되었을 것이다.
‘마족들이 대체 뭔 짓을 하려고 하는 거지? 왜 제물이 필요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답은 내려지지 않았다.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도서관에서 정보 좀 찾아봐야겠어.’
카단이 생각에 잠기려던 찰나, 클로제가 뚱한 얼굴로 카단을 바라보며 물었다.
“카단. 그런데 넌 진짜 여기 어떻게 온 거야?”
“맞아. 던전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 마법사들의 무덤이었나?”
“그쪽이랑 여기랑 꽤 거리가 있었을 텐데?”
토벌대가 퇴각하며 지원 요청을 했지만, 그 멀리 있던 카단이 토벌대의 소식을 들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카단이 이곳에 있는 걸까?
세 사람은 물음표를 그리며 카단을 바라봤다.
“던전은 다 공략했어요. 결과는 만족스러웠고요.”
카단은 미리 생각해뒀던 변명을 자연스레 내뱉었다.
“막 던전을 빠져나온 순간 선배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거든요. 토벌대에 놀러 오라고. 그런데 설마 세 분이 이렇게 병상에 누워 계실 줄이야….”
카단이 주제를 바꾸기 위해 은근슬쩍 놀리는 듯 말을 건넸다.
그러자 클로제와 그의 친구들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잠깐! 토, 토벌대는? 우릴 구하러 오크 소식지에 간 거 아냐?”
순간 토벌대 상황이 떠오른 클로제가 고개를 번쩍 들며 물었다.
“진정하세요. 제가 대충 얘기를 들었으니 알려드릴게요.”
카단은 세 사람에게 진정하라는 듯 손짓하며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퇴각했던 토벌대가 지원 요청을 했었대요. 남은 병력으로는 선배들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곤 지원 병력을 기다렸죠.”
이내 지원 병력이 도착하는 순간 재정비를 끝낸 토벌대가 다시 서식지를 향했고, 무사히 토벌을 끝내게 되었다.
“사망자가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토벌을 맞췄다고 합니다.”
카단이 말을 끝내자, 세 사람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병상에 몸을 뉘었다.
“다행이야.”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다행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에 잠시 잊고 있었던 토벌대의 소식.
다행히 그 소식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그럼 토벌대는 곧 해체되는 건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클로제의 말에 루카스와 아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목표로 했던 오크 서식지를 토벌해버렸으니 더는 할 게 없잖아?”
“오크 놈들을 조금씩 쓸어버릴 계획이었는데, 우리가 잡혀가는 바람에 일정이 확 당겨져 버렸네.”
휴식기 내내 오크 서식지를 토벌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던 세 사람은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세 사람의 얼굴에는 아쉬움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다음 해야 할 것을 계획하는 사람들처럼 눈빛이 반짝였다.
“아무래도 6성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 같아. 열정이 부족했다.”
“맞아. 수련이 더 필요해. 오크 챔피언한테 내 마법이 안 통했을 땐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
“마나를 실은 화살을 튕겨냈을 땐 욕 나오더라. 설마 내 수련이 부족할 줄이야.”
셋은 막사 천장 위로 패배를 그려냈다.
그렇다고 절망감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패배 위로 계획이라는 것을 덧씌우고 이내 더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애들아. 근처 던전 하나 공략한 다음 거기서 남은 휴식기 동안 훈련만 미친 듯이 하는 거 어때?”
“이왕 던전에서 훈련할 거면 좀 넓은 곳으로 찾아보자. 나 실험해볼 마법이 있어.”
“던전 가기 전에 도시부터 들리는 게 어때? 화살도 좀 사야 하고 식량도 미리 챙겨가야지?”
세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은 표정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고.
‘나도 여기서 만족하고 있을 수는 없지.’
카단도 그들을 따라 막사 천장을 바라보며 그곳으로 그림 하나를 그렸다.
‘어쩐지 앞으로 마족을 좀 더 자주 볼 것 같은데, 루나의 말대로 지금 난 마족 하나 상대할 수가 없다.’
지금까진 운이 좋아서 하급 마족 하나를 상대했지만, 다음 만날 마족이 중급 마족일지, 혹은 수가 많을지도 모르는 상황.
죽고 싶지 않다면 더 강해져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6성이 되기 위해 시간을 쓰기보단 5성 기술들의 숙련도를 올려야 해.’
물론 급하다고 기초까지 내버릴 순 없는 일.
5성이 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기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4성 기술들의 숙련도도 부족해. 급하게 성장만 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
선배들을 따라 카단도 머릿속으로 남은 휴식기 동안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야. 카단. 너도 같이 갈래? 여기까지 왔으니 특별히 우리 훈련에 끼워주도록 하지.”
계획을 마무리할 때쯤, 병상에 누워있던 클로제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아뇨. 저는 아카데미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러나 카단은 단호하게 그 제안을 거절하며 자신의 목적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