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69화 (69/186)

제69화

부서진 신전 안.

캄캄한 어둠 속 녹색의 작은 화염 두 개만이 어렵게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멧돼지. 왜 소식이 없지? 대체 제물은 언제쯤 준비가 되는 건데? 너무 늦는 거 아니냐?”

조각상 뒤쪽에서 날카로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곳에서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신전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그러자 어둠 속에서 분노에 가득 찬 욕설이 들려왔고.

또각! 또각!

거친 구두 소리와 함께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이 신전 중앙을 향해 걸어왔다.

“난 타당한 요구를 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여우 가면은 거칠게 다가오는 멧돼지 가면을 보며 진정하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여우 가면 앞에서 걸음을 멈춘 여인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마법사들의 무덤이 공략됐어. 그곳은 오지 마. 폐쇄야.”

“뭐? 아니, 거기는 웬만한 용병들도 쳐다보지 않는 곳이잖아? 인간들이 공략할 가치도 없는 던전이고?”

“어. 중급 용병 이상의 실력자들이 왔던 것 같아. 키메라도 죽었더라. 제단도 박살이 났고.”

멧돼지 가면은 짜증이 난다는 듯 발을 동동 굴러댔다.

“젠장! 꽤 아끼던 던전이었다고! 으아악!”

여인이 악을 쓰자 여우 가면은 손가락으로 두 귀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저어댔다.

“그보다 제물은 어떻게 됐냐니까? 언제 줄 건데?”

여우 가면의 질문에 악쓰던 것을 멈춘 멧돼지 가면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못 잡았어. 제물을 잡아 오라 보냈던 래트도 죽어버렸고.”

“래트? 그 쥐새끼? 오크 서식지에 있던 놈이 왜 죽어? 아니, 설마 토벌대가 죽인 거야?”

“아니. 토벌대가 오크 서식지를 토벌한 건 사실인데, 마족과 관련된 소문이나 이야기는 없었어.”

“잠깐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죽였다는 거야? 토벌대가 오크들을 죽이기도 전에?”

여우 가면이 놀란 듯 질문을 던지자, 멧돼지 가면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런데 이상했어. 새벽에 토벌된 오크 서식지에 다녀왔거든? 근데 그곳에서 래트의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더라?”

“설마 마족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거야? 보그로스가 죽었을 때처럼?”

“어. 마석은 물론 마족의 마력 역시 남아있지 않더라. 래트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죽었는지 알 방법이 없어.”

“어쩌면 보그로스를 죽인 놈이 래트도 죽인 게 아닐까 싶은 거지?”

여우 가면의 질문에 멧돼지 가면이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얘긴 다 모이면 얘기하자고. 우리끼리 떠들어봤자 결론 없이 화만 낼 것 같으니.”

“그래. 그러자고.”

“급한 대로 잡아놓은 상급 용병 10명이라도 줄게. 영웅 아카데미 생도만큼 강한 몸은 아니더라도 나름 쓸만해.”

“멧돼지. 얘기가 틀리잖아? 고작 상급 용병 10명으로 내 순서를 건너뛸 생각은 아니겠지?”

“계획이 무너졌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냥 받아.”

“난 분명히 말했다. 네가 내게 줘야 할 제물은 무조건 영웅 아카데미 졸업반 생도여야 해.”

여우 가면은 할 말을 끝냈다는 듯 냉정하게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멧돼지 가면은 멀어지는 그를 바라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화륵-

여우 가면이 사라지자, 촛불 하나가 사라졌고, 어둠 속에 홀로 남게 된 멧돼지 가면은 허공을 노려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우선 던전을 턴 놈의 정보부터 알아봐야겠어. 대체 어떤 놈이 감히 내 던전을….”

***

며칠 뒤.

“야, 카단. 진짜 우리랑 같이 안 갈 거냐? 나중에 또 우리 보고 싶다고 몰래 찾아오지 말고 지금 같이 가지?”

오크 서식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마을 한복판.

카단과 클로제. 그리고 루카스와 아라드가 거리 한쪽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카단. 졸업반 생도들과 대련하고 같이 훈련할 기회가 흔한 건 아니잖아? 같이 가자.”

“휴식기 동안 후회 없도록 먹여준다! 내가 또 요리 실력이 끝내주거든. 야생 요리 전문이야. 같이 가자!”

클로제에 이어 루카스와 아라드도 자신들과 함께 가자며 카단에게 계속해서 제안했다.

그러나 카단의 대답은 여전했다.

“이렇게 뵐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졸업반 선배들이랑 대련, 훈련 다 해봤잖아요?”

정중하게 거절하면서도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가볍게 농담까지 던져주었다.

세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이렇게 아침이라도 같이 먹은 것으로 만족해야지. 아니, 어째서 선배인 우리가 후배한테 이러고 있는 거지?”

“그러게. 카단이 뭐라고. 고작 1학년 네크로맨서 주제에.”

“유명하신 분이잖아~ 대단하신 분이고~”

아쉬움이 담긴 퉁퉁거리는 말투에 카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휴식기 끝나고 얼마나 더 성장하셨는지 기대합니다. 선배님들.”

전략을 바꿔봤지만, 조금도 꺾이지 않는 카단의 모습에 세 사람은 항복한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나저나 카단 아카데미에 왜 간다는 거야? 휴식기는 한참 남았는데?”

클로제가 질문하자, 옆에 있던 루카스도 의아하다는 듯 눈을 끔뻑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 카단 너 집에 안 가? 부모님이 기다리시진 않고?”

따악!

“이 또라이!”

그러자 옆에 있던 클로제가 그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아! 왜 때려!”

“멍청한 루카스. 어떻게 마법사가 된 거지? 널 보면 마법사들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싶어.”

꿀밤을 맞은 루카스는 머리를 감싸며 바닥에 쪼그렸고, 클로제와 아라드는 혀를 차며 그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린 카단은 괜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아카데미에 있는 실험실 좀 쓰려고요. 제가 아직 실험실이 없어서.”

루카스를 한심하게 노려보던 클로제는 카단에게 다가오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 뭐, 너도 너만의 훈련 방식이 있겠지. 존중한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럼 이만 우리도 출발해야겠다. 오늘 안에 목적지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거든.”

클로제는 머리를 부여잡고 쪼그려 앉은 루카스를 둘러업더니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카단.”

두 사람이 멀어지자, 아라드가 조심스레 카단에게 다가왔고.

“너 정말 아니지?”

무언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카단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구해준 사람. 너 아니냐고. 아니, 꿈인지 아닌지 아직 헷갈리는데, 잠깐이나마 널 본 것 같은 기억이 있거든. 뒷모습이긴 했지만.”

아라드가 알쏭달쏭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카단의 눈을 바라봤다.

“제가 선배님들을 구했다면 조금 더 으스댈 수 있었을 텐데. 그건 좀 아쉽네요.”

카단은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그렇지? 아~ 아무래도 말이 안 돼. 아무튼 우리 아카데미에서 보자? 보면 꼭 아는 척하고!”

이내 카단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아라드는 급하게 손을 흔들며 클로제와 루카스가 향한 곳을 향해 뛰어갔다.

‘중간에 잠깐 깨어났던 모양이네. 그래도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야.’

홀로 남게 된 카단은 멀어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우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눈빛엔 기대감이 어렸다.

‘하루 빨리 아카데미로 돌아가야겠어.’

***

늦은 밤이 되었지만, 주점 고양이들의 저녁

안은 여전히 한산했다.

휘휘휘-

손님 하나 없는 주점 안을 바라보면 한숨이 나올 법도 하지만, 이곳의 주인인 잭 카터는 기분이 좋다는 듯 휘파람까지 불며 주점 안을 청소했다.

철컥.

그리고 휘파람과 함께 이어지던 청소가 끝날 무렵 오랜만에 주점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 어? 카단 님!”

문을 열고 들어온 카단을 발견한 잭 카터가 반갑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생각보다 늦게 돌아오셨네요? 걱정했습니다. 아니, 저택에만 다녀오실 줄 알았더니 어디에 있다가 오신 겁니까?”

“일이 좀 있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멀리. 그리고 오래 있다 오게 되었네요.”

카단은 가볍게 웃으며 주점 안으로 들어섰고, 자연스레 바 테이블 앞을 향해 걸어갔다.

“무사히 돌아오신 게 다행이죠.”

“그나저나 여긴 늘 조용하네요? 괜히 저 때문에 주점을 수도로 옮기셔서 돈도 못 버시는 건 아닌가 걱정입니다.”

“정보 상인들이 늘 만나서 정보를 파는 건 아닙니다. 카단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잘 벌고 있으니 그런 걱정까진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잭 카터는 가볍게 웃으며 청소 도구를 창고에 넣어 놓고는 곧바로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바 테이블로 돌아온 잭 카터의 손에는 오렌지 주스가 담긴 유리잔이 들려있었다.

“저택에서 별일 없으셨습니까?”

잭 카터의 질문에 카단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오렌지 주스를 천천히 들이켰다.

‘어디까지 말해야 하려나.’

잭 카터를 못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걸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이내 오렌지 주스를 다 들이켠 카단은 유리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저택 안에 마족이 숨어 있었습니다.”

“마, 마족이요? 아니 왜 샬로트 님의 저택에 마족이?”

“마족과 아버지를 죽인 이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카단은 검지를 자기 입 앞으로 가져다대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만 이 정보도 비밀입니다.”

“다치진 않으셨습니까? 괜찮아요? 사지는 멀쩡해 보이시는데, 아니, 그보다 어떻게 살아 돌아오신 겁니까?”

잭 카터가 바 테이블에서 튀어나와 카단의 몸을 빠르게 살피더니, 이내 깜짝 놀란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운이 좋아서 쓰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카단이 직접 쓰러트린 건 아니지만, 따져보면 카단과 계약한 루나가 쓰러트린 것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무리 아카데미 생도라고 하지만 마, 마족을 쓰러트릴 줄이야.”

잭 카터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하급 마족이었고, 녀석이 방심했어요.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내 카단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심한 잭 카터가 깊은 한숨과 함께 바 테이블 뒤쪽으로 돌아갔다.

“정말 마족이 나타나다니. 저번에 놀 던전에서 마족의 증표를 가져와 보여주실 때만 해도 설마설마했는데.”

“저도 좀 당황했죠. 이런 식으로 마족을 보게 될 줄이야.”

“그런데 마족이 샬로트 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건 무슨 말씀이시죠? 혹시 왕국의 배후에 마족이 있다는 뜻입니까?”

잭 카터가 냉수를 급히 들이켜며 정신을 차린 뒤 차분하게 질문을 던졌다.

“거기까진 모르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습니다. 정보가 필요해요.”

“마족과 관련된 정보가 필요하신 겁니까?”

“혹시 마족의 제물과 관련하여 아는 정보가 있습니까?”

카단의 질문에 잭 카터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광신도들이 가끔 마족을 위해 살아있는 것들을 잡아다 제물로 쓴다는 것 말고는 모르겠군요.”

아무래도 도둑 길드에도 마족과 관련된 정보가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정보는 도서관에서 좀 더 알아봐야겠군.’

카단이 생각을 정리하곤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행방불명자들에 관한 정보 좀 구해주시겠어요?”

“네? 갑자기 행방불명자들이라뇨? 게다가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정보를 찾아오기 좀 힘듭니다. 카단 님.”

왕국의 행방불명자들의 정보를 모두 수소문하려면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모자랄 것이다.

“원하시는 정보의 범위를 좀 줄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던전, 서식지 등에서 시체도 남지 않고 사라진 사람들 중 공통점이 있는 이들 위주로 좀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흠. 그 정도면 해볼 만합니다.”

정보의 범위가 줄어들자 그 정도면 가능하다며 잭 카터가 고개를 끄덕여댔다.

“뭔가 짚이시는 게 있으시군요.”

“아직은 확신은 아닙니다. 의심할 뿐이죠.”

그렇게 대답하며 카단은 입을 다물고 허공을 바라봤다.

‘분명 이번이 끝이 아닐 거야. 마족 지령서에 제물이라고 쓰여 있었으니, 또 다른 제물을 노릴 수도 있어.’

이번엔 운이 좋아 누군가 행방불명되는 걸 막아낼 수 있었다.

또 다른 마족 지령서를 얻지 못하는 한 마족들의 계획이나 목표를 알아내기는 힘들 터.

‘만약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 분명 행방불명자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 거야. 분명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