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어느 산속 깊은 곳 작은 오두막을 발견한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참 깊은 곳에 숨어 사시네.”
중년의 남자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오두막을 향했고, 이내 문앞에 도착해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오두막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남자는 곧바로 문을 열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오두막 안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이 식사를 차리고 있었다.
여성을 발견한 남자는 쓰고 있는 모자를 벗으며 그녀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총장님. 이렇게 뵙는 건 3년 만이군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그런데 전보다 살이 좀 찌셨네요?”
미모의 여성은 어서 앉으라며 손짓했고, 중년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뭐, 동굴에 숨어서 짐승만 잡아다 먹고 살다 보니 살이 찌더이다. 그런데 총장님은 어째서 얼굴이 더 좋아 보이시는데?”
“어머? 제가요? 농담도.”
“혹시 혁명 준비가 아니라 여기서 휴가를 즐기고 계신 거였습니까?”
“어서 식사부터 하세요. 여기까지 찾아오시느라 배고프실 텐데. 조촐하지만 열심히 준비해봤어요.”
총장이라 불린 여성은 피식 웃으며 식탁을 가리켰고, 중년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크. 정말 조촐하군요. 양송이수프라니.”
“어머. 마음에 안 드는 건가요?”
“마침 먹고 싶었던 음식입니다.”
중년의 남자가 해맑게 웃으며 스푼을 들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만 들릴 뿐, 그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 위엔 수프 대신 따스한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이 올려졌다.
그제야 두 사람의 입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먹었습니다. 총장님. 요리 실력은 여전하시군요.”
“맛있게 드셔주시니 제가 감사하죠. 자, 그럼 이제 일 얘기를 해볼까요?”
총장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중년의 남성은 안주머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 하나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놨다.
“우선 영웅 아카데미로 보낸 7번은 잘 적응한 듯했고, 이건 7번이 보내온 정보입니다.”
“고생했어요. 지원금은 얼마든 드릴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전해줘요.”
총장은 그렇게 말하며 양피지를 펼쳐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 7번 녀석이 신입생이다 보니,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별로 없었습니다. 고작 신입생들 정보와 교관, 교수들의 정보뿐이죠.”
물론 도둑 길드가 얻은 정보보다 더 정확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함께 지내며 기록된 정보들인 만큼 더 자세할 수밖에.
“역시 7번은 보고서도 잘 작성하는 군요. 이렇게 정리도 깔끔하고.”
총장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양피지를 돌돌 말아 식탁 위에 올려뒀다.
“그런데 총장님.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중년의 남자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조심스레 물었고, 총장은 미소와 함께 뭐든 물어보라는 듯 손짓했다.
“아카데미에 단원들을 두 명이나 잠입시킨 이유가 뭡니까? 정말 그날이 찾아오면 아카데미부터 무너트릴 계획이십니까?”
남자의 질문에 총장은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호로록.
남자는 묵묵히 답을 기다렸다.
총장이 다시 찻잔을 내려놓더니, 미소를 지운 냉정한 표정으로 중년의 남자를 바라봤다.
“몇 년 전부터 영웅 아카데미의 졸업반 생도들이 행방불명됐습니다. 그것도 늘 아카데미에서 상위 5명 안에 드는 실력자만.”
“흠. 그 얘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전부 던전 공략이나 토벌대에 참가했다가 사망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아무리 던전이나 토벌대에서 죽었다고 해도 사라진 생도들 전부 시체를 못 찾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요.”
한두 명이 아니라 실종자 모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총장이 차갑게 내뱉은 말에 중년의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요.”
“그런데 재작년에 생도가 사라졌다는 곳을 조사하던 중 그곳에서 마족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마족의 흔적? 마석을 발견했다는 겁니까? 그게 왜요? 아니, 마석이라면 흔하진 않아도 가끔씩 발견되곤 하잖아요?”
“아뇨. 마석이 아니에요. 우리가 발견한 건 마족의 피가 묻은 화살촉이었습니다.”
이어진 총장의 말에 찻잔을 들어 올리던 중년의 남자가 멈칫했다.
“마족의 피? 혹시 행방불명된 이들이 마족에게 잡혀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우리가 내린 결론을 그래요. 그래서 7번을 아카데미에 입학시키려 했어요.”
“7번을 일부러 납치당하게 할 계획은 아니시죠? 설마.”
중년의 남자가 전과 다르게 표정을 굳히고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비슷해요.”
“총장님!”
“매년 입학생 32명 중 누가 납치될지 아는 방법은 없어요. 다만 예측은 할 수 있죠. 상위 5명.”
총장은 남자의 부름을 무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7번한테 전하세요. 졸업 전까지 상위 5명 안에 들어가라고.”
“7번은 혁명단의 미래입니다.”
“혁명단의 미래라고 해도 혁명단을 위한 일이라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동안 죽은 사람들은 뭔데요? 그들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었습니까?”
중년의 남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죄송합니다. 총장님.”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2년 남았잖아요. 혹여나 2년 뒤 7번이 납치당하더라도 우리가 구할 겁니다. 알고 있다면 대처할 수는 있으니까.”
총장은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중년의 남자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7번이 납치당하는 게 저희에게 더 반가운 일이겠군요.”
“네. 맞아요. 그것보다 전달 사항이 더 있어요.”
“7번에게 전달해야 할 것입니까?”
“아뇨. 혁명단원 대장급 모두에게 내려진 단장님의 명령입니다.”
단장이라는 말에 중년의 남자가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질 총장의 말을 기다렸다.
“확실하진 않지만, 마족의 활동으로 예상되는 일들이 있었으니, 항상 전투를 준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총장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심각한 상황을 전하듯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어갔다.
“샬로트 님이 돌아가시기 전 남겨두신 정보 하나를 찾았습니다.”
“샬로트 님의 정보?”
“네. 가디언 중 마족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장급 이상은 가디언들의 개인 활동을 주시하세요.”
“자, 잠깐만요. 가디언이 마족과 내통한다니요? 마족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 가디언이 마족과 연결되었다고요?”
아니, 그 전에 샬료트 님이 남긴 정보가 맞습니까? 중년의 남자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네. 맞아요. 아마 이 정보를 구하시는 바람에 샬로트 님이 돌아가신 건 아닌지.”
“누구랍니까? 그 가디언이?”
중년의 남자가 이를 악물며 물었고, 총장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대답했다.
“누군지까지 작성되어 있진 않았어요. 아마 그것까지 밝혀내기 힘드셨던 건지. 아무튼, 나머진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빌어먹을. 왕족뿐만 아니라 가디언까지 마족과 연결되어 있다니.”
“부디 샬로트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왕국에서 마족의 뿌리를 뽑아내야 합니다.”
***
“혼자 하려니 생각보다 어렵네.”
실험대 위를 바라보던 카단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실험대 위에는 피부 곳곳에 꿰맨 흉터가 있는 오크의 시체가 놓여 있었고, 수술용 단검을 비롯한 다양한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누가 본다면 오크를 살리기 위해 수술이라도 한 듯한 광경.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좋은 부위들로만 골라 조합했으니 결과도 좋을 거야.”
이곳은 아카데미 내에 있는 아이작 교수의 실험실이었다.
언제든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으니, 카단은 아카데미에 들어온 즉시 이 실험실을 찾았다.
우웅.
실험대를 바라보던 카단이 아공간을 열었고, 그 안에서 놀 한 마리가 어정쩡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투크…락!
놀의 입에서 뱉어대는 어눌한 오크의 언어. 여전히 이질감 가득한 모습이었다.
“자. 이제 새로운 몸으로 옮길 시간이야.”
카단은 놀의 명치 위로 올렸고, 곧바로 녹색의 마나가 그의 손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쑥!
놀의 명치 쪽에서 녹색의 구체가 불쑥 뽑혀 나와 카단의 손에 착 달라붙었다.
진한 녹색을 띤 구체는 마치 말을 걸어오듯 웅웅 소리를 냈다.
“부디 새로운 몸이 마음에 들길 바란다.”
카단은 곧바로 실험대를 향해 걸어갔고, 이내 실험대 위에 올려진 오크에게 다가가 마력의 핵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
카단은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뜨드득! 뜨드드드득!
실험대 위에 있던 오크의 시체가 기괴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뜨득, 뜨드득!
이내 실험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플래시 골렘은 마치 몸 상태를 확인하듯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트 크루타…!
플래시 골렘의 입에서는 전보다 자연스럽게 오크의 언어가 튀어나왔다.
‘이렇게 보니 정말 오크가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 드네.’
꿰맨 자국과 핏기없는 모습만 아니었다면 오크가 되살아났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때? 몸은 마음에 들어?”
투루콰, 미테타!
카단의 질문에 오크. 아니, 플래시 골렘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언어를 알아들을 순 없지만, 플래시 골렘이 보여주는 표현만으로도 긍정적인 신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아. 그럼 한 번 걸어 봐.”
이어진 명령도 어렵지 않다는 듯 오크는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놀의 몸으로 어정쩡하게 걸어 다니던 때와 달리 훨씬 자연스러운 걸음이었다.
‘놀의 몸이었을 때처럼 재빠른 움직임을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오크의 괴력을 얻었다.’
저 거대한 몸으로 놀처럼 빠른 기동력과 민첩성을 기대할 순 없었다.
그러나 오크의 괴력과 탄탄한 방어력을 얻었으니 불만은 없었다.
게다가 영혼의 결정까지 흡수까지 했으니, 카단의 전력이 몇 배는 더 상승했을 것이다.
‘듬직한 동생 하나가 생긴 기분인데.’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아공간 속에서 오크들의 검과 한 자루와 도끼 하나를 내려놓았다.
“오크들의 무기는 보통 이 두 개 중 하나더라. 어느 게 더 편할 것 같아? 직접 골라봐.”
카단은 플래시 골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말을 할 정도로 이성이 생겼으니, 어쩌면 원하는 무기도 직접 고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몰라 오크 부락지에서 챙겨온 두 개의 무기. 과연 플래시 골렘은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투우! 타취하!
플래시 골렘은 거대한 검을 집더니 그곳이 마음에 든다는 듯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만족했음을 알리는 거친 외침에 카단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네가 그 검 쓰도록 해.”
타취할!
플래시 골렘이 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이 꼭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자의 모습 같았다.
‘플래시 골렘의 성능은 나중에 알아보고 우선.’
카단은 재빨리 해골들을 소환하더니.
“청소해. 최대한 빨리. 훈련장 가야 하니까.”
해골들과 함께 실험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