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71화 (71/186)

제71화

연구실에서 빠져나온 카단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실내 훈련장이었다.

아카데미 휴식기 기간이었지만, 생도들에게는 24시간 훈련장이 개방되었기에 모든 문은 활짝 열려 있는 상태였다.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던전 구석에서 연구하고 훈련해야 했겠지?’

훈련장에 도착한 카단은 곧바로 아공간 속에서 오크들의 시체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툭! 투욱! 툭!

연병장 절반 정도의 크기를 지닌 실내 훈련장 바닥에 오크의 시체로 가득 찼고, 더는 꺼낼 시체가 없던 카단은 만족스럽다는 듯 손을 털며 아공간을 닫았다.

‘어휴, 많기도 하다. 플래시 골렘 재료로 시체를 꽤 많이 썼는데도 이 정도나 남았네.’

오크 서식지에서 미리 해골 병사로 만드는 것이 훨씬 편했겠지만, 플래시 골렘의 재료를 선별하기 위해서 시체를 전부 챙겨와야만 했다.

귀찮긴 하지만 플래시 골렘을 조금이라도 더 완성하고 싶은 욕심에 귀찮음과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제는 챙겨온 오크들을 해골 병사로 일으킬 차례.

“죽음을 기억하라.”

카단은 마나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네크로맨시를 사용했고.

화륵!

그와 동시에 훈련장 바닥에 누워있던 오크들의 시체에서부터 녹색의 화염이 타올랐다.

시체들이 전부 불타기 시작하니, 어둡기만 하던 훈련장 안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달그락….

이내 불길이 잦아들었고, 뼈만 남은 오크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대한 오크들이 언데드가 되어 일어나니, 그 넓어 보이던 훈련장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확실히 오크로 일으킨 해골 병사는 좀 다르네.’

오크 해골 병사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강함이 일반적인 해골 병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뼈만 남은 오크이지만, 오크 종족 특유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고, 아마 이를 마주해야 할 상대들은 두려움에 치를 떨 것만 같았다.

100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오크 해골 병사들만으로도 카단의 전력은 크게 상승했다.

‘물론 극한의 효율을 위해서는 이 중에서도 강한 것들로만 선별을 해야겠지만.’

달그락, 달그락.

어둠 속에서 해골 병사들의 안광이 모두 카단을 향했다.

다른 이었다면 섬뜩함을 느낄 장면이었지만, 카단은 든든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단은 손을 허공에 한 번 휘저었다.

스스스스스!

그와 동시애 훈련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오크 해골 병사들이 뼛가루가 되며 반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고요해진 훈련장 안.

‘5성 네크로맨서를 대표해야 할 언데드가 아직 남아있지.’

쿠웅!

카단은 다시 아공간을 열었고, 이번엔 다른 오크들과 다르게 붉은 피부에 몸집이 더 큰 오크의 시체를 꺼내 훈련장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비록 시체라고 하지만 오크 챔피언에게서는 왠지 모를 위엄 같은 것도 느껴졌다.

슥.

카단은 시체 앞에 서서 천천히 눈을 감았고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듯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선 푸른색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그 기운은 점차 크기를 키워갔다.

푸른 마나가 카단의 몸 전체를 덮은 순간, 마나의 색상이 점차 녹색으로 물들어 갔다.

우웅! 우웅!

몸 전체를 뒤덮었던 녹색의 마나가 서서히 카단의 양팔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의 손끝에 뭉쳐졌다.

동시에 카단이 눈을 뜨더니 천천히 자세를 낮춰 마나가 뭉쳐진 두 손을 오크 챔피언의 시체 위로 올려놓았다.

“위대한 자여. 죽음을 거역하라.”

평소와는 다른 주문.

화아아악!

주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 양손에 있던 마나가 빠른 속도로 오크 챔피언 시체에 흡수되었고.

화륵!

곧바로 오크 챔피언의 시체가 불타기 시작했다.

해골 병사를 일으킬 때와 다른 거세고 큰 화염이 오크 챔피언의 시체를 뒤덮었다.

화염은 단순히 오크 챔피언의 살을 불태우는 것이 아니었다.

불꽃은 살을 불태우는 동시에 뼈에 달라붙어 점차 괴상한 모양의 갑옷으로 변해갔다.

불꽃이 점차 사그라들고, 그 화염 한가운데에는 기괴한 갑옷을 두른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악마를 떠올릴 정도로 두려움이 느껴지는 갑옷과 뭐든 부숴버릴 것처럼 흉측하게 생긴 거대한 도끼에선 작게나마 녹색의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크르르릉….

거대한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기사는 녹색으로 번쩍이는 눈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쿵!

그러더니 느닷없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카단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위대한 전사 카록! 군주를 뵙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기사가 왕에게 맹세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네크로맨서가 처음으로 일으킬 수 있는 최상위 등급의 언데드.

네크로맨서의 최고 전력 중 빼놓을 수 없는 데스나이트가 카단의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반갑다. 카록.”

카단은 데스나이트를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무덤덤한 목소리와 다르게 그의 눈에는 놀라움과 무수한 감탄이 담겨 있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 나왔네.’

데스나이트는 네크로맨서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최강의 언데드.

그 명성에 어울릴 정도로 뛰어난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주인과 함께 성장하기도 하며, 살아생전의 능력 대부분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뿐이랴? 죽음의 기사가 되며 더욱 강한 힘을 얻게 되었고, 언데드 주제에 마나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 시체만으로 이 데스나이트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시체만이 데스나이트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강한 충성심과 뛰어난 전투 능력. 한 무리를 이끌어 본 경험과 강인한 영혼까지.’

이 밖에도 다양한 조건들이 있었다. 웃기게도 그 조건들의 모두 부합하는 것은 ‘기사’였다.

언데드이면서 왕을 지키는 ‘기사’와 같은 조건을 지녀야만 데스나이트로 일으킬 수 있다니.

‘아버지의 데스나이트는 8성의 기사들도 상대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 녀석은 어떠려나? 이 정도면 6성의 기사들은 상대할 수 있겠지?’

네크로맨서가 얼마나 강한지. 혹은 데스나이트의 재료가 된 시체와 영혼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따라 처음 태어난 데스나이트의 등급이 정해진다.

‘토벌대 캠프에서 들은 바로는 이 오크 챔피언한테 선배들이 당했다고 하던데.’

6성 끝자락에 있던 클로제와 루카스, 아라드를 상대로도 꿈쩍하지 않던 오크 챔피언이었으니, 그 파괴력이 어떨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오크 서식지에서 데스나이트의 재료를 얻게 될 줄은 몰랐는데.’

플래시 골렘과 뱀파이어 루나에 이어 강력한 언데드가 추가되었다.

이보다 든든할 수 없었다.

카단은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데스나이트를 살펴봤다.

데스나이트 몸에서 풍기는 사악한 마나는 마치 죽음을 부르는 듯한 두려움을 불러냈다.

‘오크 챔피언이 이끄는 오크 부대가 아니라, 오크 데스나이트가 이끄는 해골 부대라니.’

게다가 오크의 몸을 개조해 만든 플래시 골렘까지 더 한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아났다.

어쩌면 이제부터는 정말 1인 군단이라 불리지 않을까?

원래 카단의 휴식기 계획은 이러했다.

5성이 됐을 때를 대비해 데스나이트의 재료를 찾아볼 생각이었고, 던전을 돌아다니며 해골 부대를 강화한다.

그런데 그 계획이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그저 오크 서식지에서만 모두 이루어졌다.

심지어 5성까지 되었으니,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쉽네. 당분간 이 녀석을 숨겨야 한다는 게.’

카단은 당분간 5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었다.

카단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성장 속도가 너무 비정상적이었다.

남들과 다른 성장 속도는 시기와 질투는 물론 의심까지 불러올 것이다.

‘심하면 마족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냐는 소문까지도 돌겠지.’

그렇기에 당장은 5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아무리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라도 4성이 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5성이 되었다는 걸 곱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테니까.

물론 실력을 숨긴다고 해서 카단이 불이익을 당할 것은 없었다.

이미 아카데미 동기들과 격차도 많이 벌어진 상태.

아직까진 신입생 32명 중 4성에 도달한 것은 카단이 유일했다.

다른 이들이 4성이 된다고 해도 카단을 이기긴 힘들 터.

‘학기 말까진 숨겨야겠다. 4성인 상태로도 아카데미 생활에 지장이 없을 테니.’

당분간은 힘을 숨긴 1등이 되기로 했다.

마족까지 나타난 상황이니 이 이상 눈에 띄는 것도 좋지 않았다.

‘교관, 교수님들이 문제인데.’

아마 교관, 교수들은 카단이 전보다 강해졌다는 걸 단번에 눈치챌 것이다.

물론 카단이 5성 네크로맨서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5성이 되었다는 확신은 못 하겠지만.

카단은 이내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카록이라고 했지?”

“예. 나의 군주시여.”

같은 오크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데스나이트는 플래시 골렘과 다르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물론 그 모습에 카단은 놀란다거나 신기해하지 않았다.

어떤 재료를 이용해 만들었든, 데스나이트는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한다.”

“군주시여. 적들의 영혼을 갈취하는 당신의 검이 되겠나이다.”

어쩐지 진지한 성격을 지닌 것 같았고, 카단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나서 반가웠다. 다음에 부를 때까지 푹 쉬고 있어.”

“영광의 날을 기다리겠나이다.”

카단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카록을 향해 손을 뻗었고.

스르르륵.

데스나이트는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변하더니, 카단의 손목에 흡수되었다.

그렇게 데스나이트가 사라지자, 카단은 검은 연기가 흡수되었던 손목을 확인해보았다.

‘도끼 문양이라. 무슨 바이킹 문신 같네.’

손목에는 마치 문신처럼 섬뜩함이 느껴지는 도끼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

아카데미의 휴식기는 두 달.

뒤떨어지는 생도들에겐 앞선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기회였으며, 성장에만 몰두했던 이들에겐 휴식에 전념할 수 있는 기간.

물론, 아카데미 생도 중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휴식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음 학기의 성적이 뒤바뀐다는 말이 있었기에, 대부분 생도들은 성장에 초점을 맞춰 휴식기를 보냈다.

그 때문일까?

웃기게도 아카데미 휴식기는 생도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빨리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다들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와 주어 기쁘다.”

1학년들이 모인 강의실 강단에 선 크리스가 반갑다는 듯 웃으며 생도들을 바라봤다.

‘과연 다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구나.’

성장에 목을 매야 했던 두 달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성장한 생도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아카데미에 돌아왔다.

“아직 1학년이라 여유롭게 휴식기를 보낼 것 같더니, 이렇게 성장해서 돌아올 줄이야. 이 교관은 기쁨을 참을 수 없구나.”

생도들이 성장한 것이 흐뭇했는지, 크리스 교관은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뭐, 딱히 전달 사항은 없다. 강당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전달 사항이 전부니, 곧바로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생도가 대강당에 모여 지겨운 행사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멀뚱히 서서 1시간을 넘게 보낸 생도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지친 상태.

크리스 역시 그 괴로움을 이해했기에 별다른 말 없이 공지를 끝내기로 했다.

“첫날이라고 쉴 수는 없지. 안 그러냐?”

“네! 맞습니다!”

크리스의 말에 생도들은 오히려 환영한다는 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그럼 다들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할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고. 모두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연병장으로 모이도록.”

크리스 교관이 해맑게 웃으며 강의실을 빠져나갔고, 생도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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