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72화 (72/186)

제72화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어.”

“첫날부터 또 체력단련이라니.”

1학년 생도들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연병장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이미 훈련이 끝난 지 한참을 지났지만, 모든 체력을 소진했는지 생도들은 좀처럼 일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카단 저 녀석은 여전하네.”

“상반기보다 훈련 강도가 올라간 것 같은데, 이것도 버틴다고?”

“저 녀석 네크로맨서 아니야.”

연병장에서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카단뿐이었다.

여전히 여유로워 보이는 카단을 보면서 생도들은 절로 혀를 둘렀다.

어쩐지 넘어설 수 없는 커다란 벽을 마주한 것 같은 막막함이 좌절감까지 심어주었다.

“이 상태로 보면 하반기도 카단이 1등을 유지하겠지?”

“모르지. 휴식기 사이에 4성이 된 녀석들이 몇 명 더 있잖아?”

“우린 왜 아직 3성이냐?”

수다쟁이 3인방인 허먼과 브렌트, 그리고 데이비드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수다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희 그 소문 들었냐? 카단 저 녀석 블랑쉬 생일 파티에 갔다는데?”

“뭐? 저 둘이 언제 그렇게 발전한 거야? 서로 개와 고양이 같은 관계 아니었어?”

“카단이 블랑쉬 생일인 건 어떻게 알고? 더글라스 가문이라면 유명한 귀족들에게만 초대장을 보냈을 텐데?”

허먼의 말에 브렌트와 데이비드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영웅 아카데미 생도라는 놈들이 정보 습득이 왜 이렇게 느리냐?”

허먼은 처음 듣는다는 듯 반응하는 브렌트와 데이브드를 보며 혀를 찼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생일 파티장에서 카단이 블랑쉬의 친오빠랑 한 판 붙었단다.”

“블랑쉬 친오빠라면 3학년 선배인 클로제 선배 아냐?”

“미친…. 그 소문이 사실이었어? 카단이 졸업반 선배 이겼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당연히 헛소문이라고 생각했거든.”

세 사람의 대화 내용이 흥미 깊었는지 주변에 있던 생도들도 몸을 일으키며 귀를 쫑긋 세웠다.

“10분 버티기 대련이었대. 클로제 선배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고.”

“아무리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클로제 선배인데? 졸업반 상위 5명 중 한 분이시잖아?”

“말도 안 돼.”

브렌트와 데이비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고, 허먼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평평한 접전 끝에 카단이 10분을 버텨냈다더라. 제대로 된 공격은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대.”

허먼의 말이 끝나자 브렌트, 데이비드. 그리고 주변에서 세 사람의 대화를 훔쳐 듣던 이들이 동시에 카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저 괴물.’

***

“잘 지내셨습니까? 카단?”

“오랜만입니다. 교수님.”

오후 수업 시간이 되자, 카단은 어김없이 네크로맨서 전용 강의실을 찾았다.

“휴식기 동안 꾸준히 단련하신 것 같군요.”

아이작이 기대 어린 눈으로 카단의 몸을 살펴 보았다.

“네. 네크로맨시는 물론 언데드 전력 강화에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오? 기대할 수밖에 없겠군요.”

아이작은 어서 성과를 보여달라며 손짓했고, 카단은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강단으로 걸어 나왔다.

강단에 올라선 카단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달그락!

반지에서 흘러나온 뼛가루가 굵고 두꺼운 뼈들로 변하더니, 이내 오크의 형태를 이루었다.

“오크 해골 병사…. 설마 휴식기 동안 오크를 사냥하신 겁니까?”

카단은 고작 4성. 쉽지 않았을 텐데 홀로 오크를 사냥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이작은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오크 해골 병사들을 살펴봤다.

‘음? 4성 네크로맨서가 일으킨 해골 병사가 이렇게 밀도 높은 마나를 지니고 있나?’

아이작이 무언가 의심스럽다는 듯 해골 병사를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카단에게 물었다.

“카단. 혹시 5성이 되신 겁니까?”

4성이 된 지 고작 두 달 사이에 5성에 도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지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해골 병사에게 강력한 마나가 느껴지는데?’

아이작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카단은 작게 미소를 그렸다.

“깨달음도 있었고, 상반기보다 발전한 건 맞지만, 5성은 아직입니다.”

“그런가요?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언데드라서 그런지, 보통 4성 네크로맨서가 일으킨 해골 병사보다 더 강해 보이는군요.”

카단은 어쩌면 아이작에게는 5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평생 네크로맨서로 살아온 남자. 임시라지만 가디언의 자리에 앉아있으며 최강의 네크로맨서라 불리는 그의 앞에서 5성이 된 걸 숨길 수 있을까?

“저도 놀랐습니다. 오크가 이렇게 강한 해골 병사로 태어날 줄은 몰랐거든요.”

다행히 아이작의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고작 두 달 사이에 5성이 되었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저 재료가 좋았다. 그것이 아이작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아, 그리고 또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카단은 아직 놀라기 이르다는 듯 곧바로 아공간을 열었다.

“나와.”

카단의 명령에 맞춰 아공간 안에서 거대한 오크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쿵.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등장한 거대한 오크를 발견하자 아이작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플래시 골렘이군요.”

“네. 우연히 토벌된 오크 서식지에서 오크들의 시체를 잔뜩 얻을 수 있었거든요.”

“혼자 만드신 겁니까?”

“네. 신체 부위 하나하나 직접 선별해서 만들어봤습니다.”

카단의 플래시 골렘을 살피던 아이작이 감탄 어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군요.”

카단의 플래시 골렘은 영혼의 결정을 흡수한 이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전에 말을 하지 말라고 명령해 놓은 상태.

네크로맨서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언데드의 특성을 알았기에 카단은 여유롭게 플래시 골렘을 꺼내 보여줄 수 있었다.

“이 플래시 골렘이라면 큰 힘이 되어줄 것 같군요. 확실히 강인해 보입니다.”

“네. 전방에 세워놓으면 꽤 든든할 것 같습니다.”

아이작이 대견하다는 눈으로 카단을 바라보며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가르쳐준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며 발전해 나가는 제자가 어찌 대견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아, 마지막으로….”

“또 보여줄 것이 있습니까?”

카단이 입을 열자, 아이작이 기대 어린 시선으로 되물었다.

그 질문에 카단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답을 보여주었다.

철그럭! 철그럭!

카단의 손짓하는 동시에 아공간에서부터 녹슨 풀 플레이트 갑옷이 걸어 나왔다.

“리빙 아머까지 얻으셨군요?”

리빙 아머를 발견하자, 아이작이 손뼉을 치며 감탄을 가득 담은 표정을 지었다.

‘잠깐.’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감탄에서 놀라움으로 변했다.

“일반적인 리빙 아머가 아니군요.”

리빙 아머에서부터 느껴지는 한기. 짙은 망자의 한이 느껴졌다.

“네. 좋은 재료를 선물 받았습니다.”

“최상급 재료로 일으킨 리빙 아머라니. 계속 절 놀라게 하시는군요.”

아이작의 눈이 리빙 아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작년 경매에 나왔던 적국 기사의 갑옷이군요. 꽤 비싸게 낙찰되었다고 하던데, 그게 설마 내 제자의 아공간 속에서 튀어나올 줄이야.”

아이작은 갑옷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네크로맨서였고 강함의 욕구를 놓지 않은 자.

처음 경매에 올라왔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지만, 이내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포기했던 갑옷이었다.

‘굉장한 후원자라도 생긴 것일까?’

아이작은 자상한 웃음으로 감정을 숨긴 채 카단을 바라봤다.

‘평민에게 이런 선물을 할 정도의 후원자라면….’

순간 아이작의 머릿속에 한 가문의 이름이 떠올랐다.

‘더글라스?’

아이작 역시 카단이 더글라스 영주성에 다녀왔다는 소문을 알고 있었다.

‘클로제와 대련에서 승리한 보수로 이 갑옷을 받았을 수도 있겠군.’

후원자가 생긴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영웅 아카데미 생도 중에는 가난한 이들도 있었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후원자들도 존재했다.

‘정치적으로 휘둘리지만 않았으면 좋겠군.’

후원자들이 투자를 대가로 생도들을 마음대로 휘두를 위험이 있었다.

특히 더글라스처럼 거대한 가문이 영웅 아카데미 생도를 수하처럼 부린다면 정치적으로 큰 힘을 얻게 될 터.

“카단.”

생각을 끝낸 아이작이 조심스레 카단을 불렀고, 자신의 언데드를 바라보던 카단은 눈을 끔뻑이며 아이작에게 시선을 옮겼다.

“네. 교수님.”

“소신을 잃지 말길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카단이 의아한 얼굴을 지었고, 아이작은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영웅은 그 누구의 말에도 휘둘려선 안 됩니다. 돈과 명예에도 휘둘려선 안 되지요. 명심하십시오.”

아이작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카단은 그저 하나의 가르침이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애초에 카단에게 영웅으로서의 소신 같은 건 없었다.

오로지 복수를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가디언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다.

돈과 명예에 흔들릴 소신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카단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대답하자, 그제야 안심한 듯 아이작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언데드도 생겼으니, 오늘은 4성 네크로맨서의 전투에 관해 수업을 진행해보도록 하죠.”

***

하반기 첫 수업이 끝난 후 생도들은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회포를 풀 생각이었는지, 힘든 훈련을 받았음에도 생도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카단 역시 오랜만에 만난 알비스와 칼리아에게 다가갔고, 세 사람은 간단한 악수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알비스. 도시 상황은 좀 어때?”

식사 도중 카단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고, 알비스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더글라스 가문에서 우리 도시를 관리하기로 했대! 더글라스 가문에서 온 관리자분이 모든 불법적인 행위의 전쟁을 선포하셨어!”

카단의 부탁대로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는 곧바로 도시 렐테이라의 소유권을 획득했다.

“그래? 다행이네.”

당연하게도 치안을 끔찍이 생각하는 더글라스 가문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도시 렐테이라는 점차 평화를 되찾는 중이라고 한다.

“덕분에 내 고향이 다시 살기 좋은 곳으로 변했어. 고마워. 카단. 부모님이 언제 한 번 놀러오라셔. 맛있는 거 해주신다고.”

알비스는 해맑게 웃으며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고, 카단은 답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그때 옆에서 식사를 이어가던 칼리아가 물음표를 그리며 물어봤다.

“아, 그게….”

“휴식기 때 우연히 알비스를 만났었거든.”

알비스가 우물쭈물하자 카단이 곧바로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도시 렐페이라의 불법 조직들을 붙잡았고, 렐페이라의 영주까지 감옥에 보낸 이야기.

칼리아는 놀랍다는 눈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영주성의 기사들이라면 적어도 5성 이상일 텐데?”

“벨리드 교관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살았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카단이 웃으며 대답하자, 칼리아는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크로맨서라지만 죽음에 있어서 너무 겁이 없는 거 아냐?”

칼리아가 차갑게 식은 얼굴로 말하자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살기 위해서 강해질 생각이었는데, 오지랖이 넓어서 오래 살긴 힘들 것 같네.”

카단의 실없는 말에 칼리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고.

“식사나 마저 하자! 카단 내 샌드위치 먹어! 칼리아! 너도 하나 먹어!”

알비스는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싫었는지, 자기 식판 위에 있는 샌드위치를 반으로 나눠 카단과 칼리아에게 건넸다.

그때.

“네가 카단이냐?”

낯선 목소리가 카단을 불렀고, 카단은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며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뭐 이렇게 우르르 몰려왔어?’

생도복을 입고 있었지만,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낯선 이들이 카단을 둘러싸더니,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상황에 칼리아와 알비스는 물론 근처에 있던 1학년 생도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상황을 살폈다.

“네. 제가 카단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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