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74화 (74/186)

제74화

여느 때처럼 카단과 마티아스의 만남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이뤄졌다.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겠다던 이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훈련장에 남아 있는 건 오직 카단과 마티아스 두 사람뿐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 더는 못하겠습니다.”

단검을 들고 방어 자세를 취하던 카단이 힘들어 죽겠다는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훈련복은 땀에 젖어 있었고, 그의 이마에선 비오듯 땀이 흐르고 있었다.

“카단. 너 뭐냐?”

그런 카단을 바라보던 마티아스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카단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물음표를 그리며 마티아스를 바라봤다.

“너 혹시 휴식기에 왕국 기사단장님 만나서 특별 훈련이라도 받은 거야?”

“제가 고위 귀족도 아니고 기사단장님을 어떻게 만나 뵙습니까?”

“그럼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오랜만에 카단과 대련하게 된 마티아스는 몇 번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무기술 대련이라고는 하지만, 카단의 실력이 월등히 좋아졌다.

‘단순히 몸만 좋아진 게 아니었어. 아니, 무슨 네크로맨서가 이렇게 성장이 빨라?’

반응 속도, 판단력, 힘, 속도.

근접 전투에 필요한 모든 능력치가 몇 단계는 발전한 듯했다.

‘휴식기 전엔 공격 한 번 막아내기 힘들어하던 놈이 몇 번이고 공격을 막아낼 줄이야.’

연습을 위해 가볍게 내지른 창이 아닌 찌르기 위해 진심으로 내지른 공격도 막혔다.

진심이 담긴 공격을 열 번 중 여섯 번이나 막아낼 정도로 카단의 근접 전투 실력이 향상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걸까? 마티아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카단 역시 본인의 향상된 실력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마티아스 앞이라 표정으로 놀란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으나, 그 역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영혼의 결정을 많이 흡수했다지만, 신체 능력이 이 정도로 향상될 줄이야.’

단순히 마나 하트만 강화되는 것이 아니었다. 마족의 힘을 빼앗듯 신체 능력도 크게 강화되었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마티아스와의 대련을 통해 얼마나 신체 능력이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마티아스의 공격이 눈에 보인다.’

상반기에는 어깨와 다리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예측해서 공격을 막아냈다면, 이번엔 내질러진 창끝을 보며 공격을 막아냈다.

“너 도대체 휴식기를 어떻게 보낸 거야? 괴물 자식.”

“훈련이요.”

“…재미없는 놈.”

“선배님은 휴식기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훈련했다.”

“재미없는 선배님.”

“뭐?”

카단이 장난을 치자, 마티아스가 픽하고 웃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농담 그만하고 이제 얘기나 좀 하자. 어떻게 지냈어?”

오랜만에 만나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대련부터 했다.

카단의 이야기가 궁금했는지, 마티아스가 어서 말해보라며 손짓했고.

“음, 우선 던전에 다녀왔습니다.”

카단은 들려줄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만 선정해 마티아스에게 들려주었다.

“렐테이라 영주성 기사단이랑 붙었다고?”

“네. 당연하게도 이기진 못했습니다. 몇 번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게 전부였죠.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휴식기 내내 그런 전투를 했던 거냐? 그럼 어느 정도 너의 성장이 이해되긴 하는데.”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는 법.

몇 번이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전투를 치렀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마티아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카단은 잠시 휴식기에 싸웠던 상대들을 떠올려봤다.

도시 렐테이라의 기사단을 시작으로 클로제, 마족의 수하들과 하급 마족들까지.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려 죽음의 위기까지 갔던 상황들을 겪었고, 그 순간마다 카단은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이유는 영혼의 결정 덕분이긴 하지만.’

빠르게 성장한 이유가 따로 있긴 헀지만, 굳이 모든 것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위험했던 순간들이 큰 경험이 되긴 했습니다.”

카단은 대충 말을 마무리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놀랐어. 진심으로. 비록 방어 위주의 단검술이긴 하지만, 내 공격을 이렇게 막아내는 걸 보면….”

말을 이어가던 마티아스가 잠시 카단을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1학년은 물론이고 2학년 중에도 적수가 별로 없겠는데?”

‘내 공격도 그렇게 막아내는 놈한테 제대로 공격을 적중시킬 1학년이 몇이나 있겠어?’

2학년 중에도 떠오르는 인물은 몇 없었다.

“물론 마나를 두른 공격에는 너의 그 단검술도 무용지물이겠지.”

마티아스의 말에 카단은 흠칫하더니, 이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나를 두른 공격은 마나를 이용해 막아내야만 하니까요. 저는 마법을 써서 막아야겠죠.”

마법 클래스 유저는 무기에 마나를 두르는 것이 아닌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사용하는 자.

결국엔 카단도 마나를 두른 공격을 막기 위해선 마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러면 단검술을 단련하는 의미가 점점 없어지겠네.’

강해질수록 상대해야 할 적들 역시 강해지는 법. 어쩌면 앞으로 단검을 사용하는 일이 줄어들지도 몰랐다.

“이건 단순한 내 생각이기는 한데. 너라면 가능할 것 같거든?”

카단이 아쉽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자, 마티아스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걸어왔다.

“네?”

카단은 눈을 끔뻑이며 물었고, 마티아스는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의 단검술로 마나를 두른 공격을 막아내는 방법이 떠올랐거든.”

“전 마나를 두르는 법을 모르는데요?”

애초에 무기에 마나를 두르는 법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카단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마법 클래스와 근접 전투 클래스는 마나를 다루는 방식이 달랐으니까.

“일단 한 번 해보자. 내 공격 한 번 막아봐. 4성 정도의 마나만 둘러서 공격해볼 테니까.”

“선배님. 혹시 제가 뭐 잘못한 게 있습니까?”

“아니~ 아깝잖아. 이렇게 훈련했는데 앞으로 실전에서 못 쓴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렇지만, 어차피 호신용으로 배운 무기술입니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죠. 게다가 전 네크로맨서니까.”

굳이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단검술 말고도 네크로맨서가 할 수 있는 건 많았다.

고작 방어 기술 하나 잃는다고 크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내가 마나 두르는 법을 알려줄게. 일어나봐.”

마법 클래스의 유저가 무기에 마나를 두른다면 인첸트 정도의 효과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즉 배운다고 해도 써먹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렇기에 카단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굳이 의미 없는 것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차피 네가 무기에 마나를 둘러서 공격할 건 아니잖아. 단검술을 단련하는 이유도 결국엔 방어를 위해서 아니야?”

“네. 그렇긴 합니다.”

“그러면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해보는 건 어때?”

“다르게요?”

카단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고, 마티아스는 더욱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가 마법은 잘 모르지만, 왠지 너라면 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낼 것만 같아.”

마티아스가 어서 일어나라는 듯 손짓하자, 카단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나 보겠습니다. 선배님이 떠올린 방법이 어떤 방법인지 궁금하긴 하네요.”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의견을 들어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티아스에게 다가갔고, 마티아스는 해맑게 웃으며 훈련장에 있는 목검 하나를 가져왔다.

***

하반기가 시작되고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개인의 시간에 익숙해진 생도들은 다시 아카데미의 흐름에 맞춰 생활하기 시작했고, 적응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반기 평가 시험 중엔 ‘던전 공략’ 시험이 있다.”

강단에 선 크리스 교관이 1학년 생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오늘부터 너희들에게 소형 몬스터 사냥법부터 시작해 대형 몬스터 사냥법을 가르칠 것이다.”

휴식기 전 공지했던 대로 하반기부터는 실전 투입을 위한 수업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클래스 심화 수업에선 개인의 실력 향상을 위한 시스템이 짜여있다면, 오전 수업은 오로지 설전만을 위한 수업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가 하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 사냥법까지 배울 필욘 없겠지?”

고블린, 해골 병사 등 하급으로 분류된 몬스터들의 사냥법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영웅 아카데미 생도들이 하급 몬스터들을 상대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네!”

“하급 몬스터는 눈 감고도 사냥할 수 있습니다!”

영웅 아카데미 생도들이라면 하급 몬스터쯤은 손쉽게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중상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법부터 가르칠 생각이다.”

크리스 교관은 그렇게 말하며 굳게 닫힌 강의실 문을 바라봤다.

“들어오세요.”

크리스 교관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강의실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문 너머에서부터 청아한 느낌의 여성이 천천히 걸어 강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새로운 사람의 등장에 생도들은 술렁였고, 크리스 교관은 그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오전 수업을 도와주실 발렌티나 교관님이다. 이번에 새로 부임하신 분이다.”

“안녕하세요. 발렌티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아카데미에 들어와 첫 수업이라 긴장되네요.”

그러자 몇몇 남자 생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교관님 아름다우십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기 때문인지, 아니면 크리스 교관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지녀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강의실의 분위기가 전보다 화사해졌다는 것.

생도들의 환호를 들은 크리스 교관이 잠시 섭섭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바꾸며 말했다.

“오늘 수업부터는 방심하다간 크게 다치니, 집중하도록.”

도대체 어떤 수업을 한다기에 이런 말까지 하는 걸까?

생도들은 크리스 교관의 말에 따라 입을 꾹 다문 채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중상급 몬스터인 리자드맨 사냥법을 가르쳐 주겠다. 다들 동요하지 말고 자리에 잘 앉아서 관찰하기를 바란다.”

가르쳐주는 건 가르쳐주는 건데, 왜 동요하지 말라는 걸까?

크리스 교관의 말이 이어질수록 생도들의 표정엔 물음표가 늘어났다.

“발렌티나 교관님. 그럼 부탁드립니다.”

크리스 교관은 술렁이는 생도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옆에 있는 발렌티나에게 말을 걸었고.

“네.”

발렌티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서 완드를 꺼내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녀가 몇 마디를 읊조리자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졌고, 그 마법진에서부터 리자드맨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뭐, 뭐야?’

‘소환 마법?’

‘저 교관님 소환사였어?’

실전 대비 수업이라더니, 설마 강의실에 몬스터를 소환할 줄이야.

리자드맨을 본 생도들은 전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놀란 것은 아니었다.

리자드맨이 중상급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고작 한 마리.

생도 중 하나만 나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몬스터였기에 놀라거나 겁에 질릴 필요는 없었다.

그저 화끈한 크리스 교관의 수업 방식에 당황했을 뿐이다.

“리자드맨은 뛰어난 지능을 지니고 있다. 우리처럼 무기도 사용하고 저 낀 꼬리도 하나의 무기나 다름없다.”

생도들이 당황하던 말던 상관없다는 듯 교관은 계속 수업을 이어갔다.

스릉!

“지금은 고작 한 마리지만, 던전에서는 수십 마리의 리자드맨과 싸울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검을 뽑아 든 교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자드맨을 바라봤다.

방금 소환되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건지, 리자드맨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자드맨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와 동시에.

키에에엑!

리자드맨이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느끼며 적의를 드러냈다.

“리자드맨의 공격은 변칙적이다. 지능적인 놈답게 저렇게 적의를 드러내면서도 곧바로 달려들지 않는 것 역시 특징이다.”

리자드맨이 적의를 드러낸 순간에도 크리스 교관의 시선은 생도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교관을 걱정하는 생도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홀로 외로이 서 있는 리자드맨이 조금은 안쓰럽다고 생각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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