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얼음 동굴로 들어선 지 8시간째.
“끝! 고생했어요! 카단.”
“고생하셨습니다.”
카단과 발렌티나는 목표로 했던 8마리의 아이스 트롤을 무사히 포획할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네.’
발렌티나가 짐을 정리하는 사이,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조금 전까지 트롤이 서 있었던 자리를 바라봤다.
‘소환사의 마법은 아무나 사용할 수 없다더니, 이런 뜻이었군.’
트롤을 포획하는 장면을 8번이나 옆에서 지켜봤으나, 카단의 지식으로는 소환사의 마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깨너머로 소환사의 마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었지만, 욕심이었다.
‘애초에 기본 마법과 소환사의 마법은 구조부터가 다른 형태야. 아무나 이해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되지 않았으며, 무작정 외운다고 해서 소환사의 마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 봤으면 미련은 버려야지.’
소환사의 전투와 소환사의 마법에 대한 호기심은 해결되었고, 소환사의 마법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미련 없이 접었다.
“카단 덕분에 예상보다 더 일찍 끝났어요.”
카단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발렌티나가 옆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교관님이 고생하셨죠. 제가 뭘 했다고.”
“대단한 일을 했죠! 쉬운 일이 아닌데 끝까지 완벽하게 잘 해주셨어요. 든든하던데?”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네요.”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발렌티나를 돕는 일은 카단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발렌티나와 트롤이 일대일로 대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안전하게 포획할 수 있도록 방해되는 트롤들을 유인하거나 주의를 끌어주거나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만 해주는 것이 끝이었다.
트롤을 유인하는 것 역시 카단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
언데드를 소환해 시간을 끌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지 않았다.
물론 위험한 상황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런데 카단. 혹시 아이스 트롤의 시체 탐나지 않으세요?”
“네. 탐나죠. 좋은 재료니까요.”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이처럼 좋은 재료를 탐내지 않는 네크로맨서가 어디 있을까?
“그래서 말인데, 몇 마리 사냥 좀 하고 갈래요? 카단은 아직 4성이라 혼자서는 불가능할 테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녀의 말대로 카단이 4성이라면 혼자서 트롤을 사냥할 수가 없었다.
4성 네크로맨서에겐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트롤을 쓰러트릴 만한 강력한 기술이 없었으니.
‘혼자 할 수도 있긴 한데.’
물론 5성에 도달한 카단이라면 혼자서도 트롤을 사냥할 수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가진 힘을 몯 꺼내 쓸 수만 있다면 트롤 서식지를 초토화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데스나이트의 능력을 시험하기도 좋을 것 같고, 여차하면 루나를 소환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발렌티나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욱 편리하게 트롤을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기에 카단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이죠. 전투 경험을 쌓기도 좋을 테니, 옆에서 서포트하며 지켜보다가 제 소환수로 트롤의 목숨을 끊어버릴게요.”
“알겠습니다.”
***
쿠웅!
거대한 트롤이 바닥에 쓰러지며 지진이라도 난 듯 동굴 안이 울려댔다.
딱딱딱딱딱!
트롤이 쓰러지자, 오크 모습을 한 해골 병사들이 신난다는 듯 턱뼈를 움직여 소리를 냈다.
‘신입이라고 해도 확실히 교관은 교관이군.’
카단은 옆에서 보람찬 표정을 짓고 있는 발렌티나를 바라봤다.
5성이 되었다는 걸 숨겨야 하는 카단이 혼자서 트롤을 쓰러트릴 순 없었다.
4성이라면 트롤의 목숨을 끊기엔 부족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
카단이 할 수 있는 건 언데드를 부리고 뼈 마법을 이용해 방어적으로 전투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훈련이 되는 것 같네.’
발렌티나는 카단이 충분히 트롤과 전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었다.
이후 적절한 순간에 소환수를 이용해 아이스 트롤의 목숨을 거둬갔다.
‘이것도 나쁘지 않지.’
4성의 네크로맨시와 마법만으로 전투를 하다보면 몇 번이고 한계를 마주할 수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한계를 마주하는 것만큼 좋은 훈련은 없었고, 이 시간은 나름대로 카단에게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역시 실력이 좋네요. 카단. 기대 이상이에요. 4성 네크로맨서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교관님 덕분입니다. 아직 혼자서 트롤을 사냥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발렌티나 뒤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거대한 늑대 두 마리를 가리켰다.
크르릉.
거대한 늑대 두 마리는 카단이 상대하던 트롤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역할을 해온 발렌티나의 소환수였다.
‘어디서 저런 늑대들을 구한 거지? 탐나는 재료인데?’
두 마리의 늑대들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트롤의 목을 물어뜯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을 정도.
그 끈질긴 트롤도 두 늑대의 협공에 무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카단이 5성이 된다면 혼자서도 트롤을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강력한 기술이 없을 뿐이지, 이 정도 실력이면 베테랑 용병도 울고 가곘어요.”
발렌티나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아무리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라지만 혼자서 트롤을 상대로 전투를 이어갈 수 있을 줄이야.
‘5마리를 사냥하면서도 조금도 흔들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정적이야.’
트롤의 목숨을 끊어내지 못할 뿐이지, 전투 내내 위협적인 상황은 찾아오지 않았다.
강력한 기술이 없어 트롤을 쓰러트리는 것까지는 무리였지만, 안정적인 전투를 이끌어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이 녀석 괜히 주목받는 생도가 아니었네.’
영웅 아카데미 생도 중 혼자서 트롤을 상대하며 안정적으로 전투를 운영할 수 있는 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교관님. 이쯤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사냥한 트롤은 총 5마리.
언데드 재료가 많을수록 좋겠지만, 슬슬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네. 그럼 여기까지만 할까요?”
발렌티나도 미련 없다는 듯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허리춤에 꽂혀 있던 마법 스크롤을 꺼내 카단에게 건넸다.
쿵! 쿵! 쿵!
그때 동굴 벽을 타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트롤?’
카단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거리상으로 그렇게 멀리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단순한 트롤이 아닌 것 같은데요?”
발렌티나 역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고, 위협적인 발소리를 들으며 흥미롭단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대로 여태껏 들었던 트롤의 발걸음 소리와는 달랐다.
더 커더란 무언가가 땅을 디디는 묵직한 소리.
“마지막으로 어때요?”
발렌티나는 해맑게 웃으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가리켰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저 묵직한 발걸음의 주인도 사냥할 생각이 없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카단에게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발걸음 소리만으로 판단하긴 힘들지만, 분명 트롤 중에서도 상위계체에 속하는 트롤일 것이다.
특별한 트롤을 재료로 사용한다면 데스나이트 카록과 비슷한 언데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렌티나를 바라봤다.
“그럼 마지막으로 저 녀석만 잡을까요?”
“네. 좋아요.”
발렌티나는 그렇게 말하며 뒤에 앉아 있던 두 마리의 늑대를 바라봤다.
크르릉.
그러자 두 늑대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전투 방식은 하던 대로. 카단이 먼저 나서서 충분히 전투를 즐기세요.”
“이번에도 그렇게 합니까?”
“네. 이런 기회 흔치 않잖아요? 서포트할게요. 위험하면 곧바로 구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
하긴. 교관의 도움을 받으며 상위 개체 트롤과 전투하는 경험은 흔치 않은 기회.
“알겠습니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8시간 동안 몇 번이고 호흡을 맞춰봤으니, 어려울 건 없지.’
카단의 언데드와 발렌티나의 소환수가 쓰러지지 않는 한 위험한 상황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달그락! 달그락!
카단은 다시 오크 해골 병사들을 일으켜 앞세웠고.
쿵! 쿵!
이내 거대한 발걸음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일반적인 녀석들이랑 다르다. 4m는 넘어 보이는데?’
여태껏 만났던 트롤보다 훨씬 큰 덩치를 지닌 트롤이 나타났다.
푸른 피부를 지닌 트롤은 성인 남성만 한 돌도끼를 바닥에 질질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 녀석이 이 동굴의 주인 같은데, 무리하지 마세요. 카단. 어디까지나 실전 훈련일 뿐이니까.”
“알겠습니다.”
무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긴 시간 전투를 치렀으나 그의 마나는 여전히 풍부한 상태.
교관의 도움만 있다면 거대한 트롤과 전투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
크와아아아!
카단과 발렌티나를 발견한 트롤이 괴성을 지르더니.
쿵! 쿵! 쿵!
점차 속도를 높이며 다가왔다.
달그락! 달그락!
그러자 오크 형태를 한 수십의 해골 병사가 트롤의 앞을 막아섰다.
촤륵! 촤르륵!
트롤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오크들은 향해 곧바로 돌도끼를 휘둘렀다.
덩치에 걸맞은 괴력이었다.
돌도끼를 맞은 해골 병사들은 힘없이 부서졌으며, 그 파편들은 여기저기로 날아갔다.
그러나 카단은 조금도 당황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침착하게 트롤을 살펴보고 있었다.
‘과연 힘이 좋은 놈이네. 일반 해골 병사였으면 한 번에 뚫렸겠는데?’
한 번의 돌진만으로는 오크 해골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해골 병사들을 부수며 전진하던 거대한 트롤은 어느새 발걸음을 멈춘 채 해골 병사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카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탁!
양손을 바닥에 대고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다.
촤르륵! 촤르륵!
그러자 뼈로 만들어진 손이 바닥에서부터 튀어나와 그대로 트롤의 발목을 붙잡았다.
크롸아아!
수십 개의 해골 손이 나타나 발목을 붙잡자 트롤은 짜증 난다는 듯 괴성을 질러댔다.
그사이 해골 병사들은 제각각 무기를 휘두르며 트롤의 몸에 상처를 내었다.
카단도 곧바로 뼈로 창을 만들어 날리며 트롤을 괴롭혔다.
‘재생력은 진짜 미쳤군.’
상처를 금세 회복해대는 트롤을 보며 카단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트롤을 언데드로 일으키게 된다면 저 특출난 재생력도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트롤의 시체는 네크로맨서에게 상급 재료니까.’
뛰어난 재생력도 무한히 되살아나는 언데드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재생력이 좋은 것과 더는 죽지 않는 것의 차이랄까.
그것을 증명하듯 트롤이 쓰러트린 해골 병사들이 다시 일어나 트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대로면 안전하게. 그리고 순조롭게 전투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카단은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고 판단한 카단이 뒤에 서 있는 발렌티나를 바라봤다.
트롤이 더는 전진할 수 없는 상태였고, 오크 해골 병사들과 싸우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태.
이제는 발렌티나의 소환수가 활약할 차례였다.
그러나 발렌티나는 늑대들을 향해 그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더 싸워보라는 건가? 이제 딱히 더 할만한 건 없는데?’
5성의 기술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4성의 기술은 이미 쓸 만큼 쓰며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다.
이미 5번의 전투를 서포트했던 발렌티나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카단이 그렇게 의아하다는 생각을 품은 순간.
“카단.”
발렌티나가 미소를 그리며 카단을 불렀다.
“네?”
“더 빠르게 강해지고 싶지 않아요? 내가 보기엔 카단은 참 강함에 대한 열망이 큰 거 같은데.”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일까?
“제가 빠르게 강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교관님?”
“무엇보다 당신이라면 자격이 충분해.”
촤악!
발렌티나가 카단을 향해 손을 뻗었고. 동시에 카단의 주변으로 마법진들이 생겨났다.
“이게 무슨?”
카단이 깜짝 놀라며 무언가 대처하려 하는 순간.
촤라라라라라라라락!
마법진 안에서부터 주황빛 쇠사슬들이 날아와 카단의 몸을 휘감았다.
몬스터를 포획할 때 쓰였던 소환사의 마법이 이번엔 카단을 포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