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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77화 (77/186)

제77화

촤라라라락!

양팔과 양다리가 모두 쇠사슬에 묶이며 카단은 그대로 공중에 매달린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카단은 포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봤지만, 그의 손과 발은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움직이려 해봤자 더 아플 뿐이에요. 그냥 포기하고 힘 빼세요.”

몬스터를 포획하기 위한 마법이 사람에게도 통할 줄이야.

‘제기랄.’

웬만한 기사보다도 힘과 체력이 좋은 카단이었지만, 주황빛 쇠사슬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발렌티나의 말처럼 조여오는 강도만 높아질 뿐이었다.

“하아.”

카단은 이내 벗어나는 것을 포기한 듯 힘을 뺐고, 축 늘어진 채로 발렌티나를 바라봤다.

“교관이 아니었습니까?”

“아뇨. 교관인데요? 정식절차 밟았어요. 시험도 봤고, 인정도 받았고.”

“그런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아, 물론 제가 일의 보람을 느끼기 위해 교관이 된 건 아니에요.”

발렌티나는 해맑게 웃으며 입을 가렸다. 뭔가 수줍다는 듯한 느낌의 표정.

그러나 평소 수수해 보이던 그 웃음에서 사악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카단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상태이니, 발버둥을 치기보단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트롤은?’

잠깐 시선을 옮겨 거대한 트롤을 바라봤으나, 트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카단의 보호에서 풀려난 오크 해골 병사를 모두 쓰러트린 뒤 멍하니 발렌티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 트롤도 발렌티나의 소환수였나?’

이제 다른 변수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카단이 어떻게든 쇠사슬을 풀고 발렌티나와 싸워 이겨야만 했다.

‘5성의 힘을 감춘 채로는 저 여자를 이길 수 없다.’

힘을 숨긴 채 발렌티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영웅 아카데미의 교관으로 들어올 정도의 실력자라면 애초에 카단이 힘을 숨겨가며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뜻.

가진 힘을 모두 꺼낸다고 해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카단은 분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그의 입술에서 조금씩 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술까지 꽉 깨물 정도로 분해요? 곧 있으면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 텐데?”

카단의 입술에서 피가 흐르자 발렌티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내가 힘을 줄게요. 카단 당신은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어요.”

카단은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발렌티나를 노려봤다.

그러자 발렌티나는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영웅이 되고 싶어서 아카데미에 입학한 거잖아요? 내가 만들어줄게. 영웅.”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뭘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영웅 아카데미의 새로운 교관이라는 정보 말고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원래 그분의 허락 없이 생도를 건드리면 안 되지만, 당신은 탐이 나는 인재거든요. 누가 먼저 채갈까 겁나.”

순수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그녀는 매혹적인 눈빛과 목소리로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 그분이 누구지?”

“나중에 알게 될 거니까, 지금은 나한테만 집중해요. 우리 먼저 해야 할 게 있으니까.”

발렌티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을 열었고, 그 안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돌 하나를 꺼냈다.

‘마석?’

그녀의 손에 들린 건 마족이 죽으며 남긴다는 마석.

“새로운 세계가 열릴 거예요.”

우웅.

발렌티나가 마나를 활성화하더니, 이내 들고 있는 마석으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마석은 발렌티나의 마나를 빠르게 흡수했고, 이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 준비 끝!”

발렌티나는 해맑게 웃으며 카단을 바라봤고, 손에 들린 마석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저걸로 뭘 할 생각이지?’

카단은 의아함을 품으며 이어질 그녀의 행동을 기다렸다.

“아, 맞다. 우선 죽기 직전의 상태까진 만들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흥분해서 깜빡했네.”

그녀는 사악함이 느껴지는 미소를 그리며 마법진을 만들었고.

철그렁.

마법진에서부터 주황빛 쇠사슬이 천천히 빠져나오더니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꾸불거렸다.

“잘 버텨줘. 죽지 않을 정도로만 공격할 거니까.”

그녀가 마석을 들지 않은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꾸불거리던 쇠사슬이 움직임을 멈췄다.

철그렁거리던 소리가 사라지자 얼음 동굴 안에는 폭풍전야와 같은 고요가 맴돌았다.

휙.

참담한 고요 속 발렌티나가 손을 아래로 내리자.

촤라라라라라라락!

쇠사슬들이 빠른 속도로 카단을 향해 날아갔다.

또옥.

그때.

카단의 아랫입술에서부터 흐른 피가 턱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떨어졌다.

피 한 방울이 땅을 적시는 순간.

“루나!”

카단은 루나의 이름을 외쳤고, 발렌티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카단을 바라봤다.

“죽기 전에 애인 이름이라도 부르는 거야? 죽이진 않는다니까?”

발렌티나는 그저 죽기 전 마지막 외침이라 여기며 가볍게 웃었다.

콰아아아아앙!

그러나 이어서 들려오는 큰 폭발음에 웃음 짓던 발렌티나의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쿵! 쿠웅!

카단을 향해 날아들던 쇠사슬들은 모두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고.

“꼬마?”

피어오른 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쇠사슬을 쳐낸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예쁘장한 여자아이.

아이는 불만이 가득한 듯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인상 쓴 모습마저도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할 수 있었지만, 발렌티나는 차마 그 아이를 귀엽게만 바라볼 수 없었다.

‘뭐,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지?’

트롤조차도 한 번에 포박해버리는 강력한 쇠사슬 마법.

그 마법이 꼬마 앞에서 막히다니. 발렌티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꼬마. 아니, 루나를 바라봤다.

그 사이 루나는 고개를 돌려 쇠사슬에 묶여 허공에 매달린 카단을 바라봤다.

“진짜 내가 별걸 다 보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보던 루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좀 많이 위험한 상황이었어.”

카단은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피식 웃으며 루나를 바라봤다.

‘순발력이 대단하네. 소환되는 순간 그 많은 쇠사슬을 전부 쳐낼 줄이야.’

루나는 소환되는 순간 곧바로 카단의 위험을 감지했고, 마나로 강화한 주먹을 휘둘러 쇠사슬들을 쳐내버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어라? 저건 또 뭐야?”

루나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시선을 돌렸고, 그녀의 시야 안에 발렌티나가 들어왔다.

“뭔 저런 잡종이 다 있어?”

루나는 발렌티나를 가리키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인간 주제에 마족의 힘을 쓰네? 마족화라도 진행중인가?”

루나의 혼잣말에 카단과 발렌티나가 깜짝 놀라며 동시에 말했다.

“마족화?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루나는 질문을 던져온 발렌티나를 무시하며 다시 카단을 바라봤다.

“말 그대로야. 인간의 몸으로 마족의 힘을 받아들이면 마족화가 진행되지. 저 녀석도 마족화가 진행중이고.”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너 무슨 마족이랑 원수졌어? 보통 인간은 평생 마주하기 힘든 마족을 몇 번이나 만나는 거야?”

명확히 말하면 발렌티나는 마족이 아닌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이었다.

“잔소리는 나중에 들을 테니까, 우선 이것부터 좀 풀어줄 수 있을까?”

카단이 가볍게 웃으며 양팔과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휴.”

루나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고.

찰그랑!

주황빛 쇠사슬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녀의 주먹에 닿은 쇠사슬은 마치 나뭇가지가 부러지듯 쉽게 잘려나갔고.

‘미, 미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발렌티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소환사보다 강한 상대가 아닌 이상 쇠사슬을 부서트릴 순 없었다.

그런데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의 주먹질에 쇠사슬이 부서지다니.

카단을 구속하던 쇠사슬이 부서지자, 카단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고.

툭.

루나는 떨어지는 카단을 낚아챈 뒤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여간 손 많이 가.”

루나가 퉁명스럽게 말을 하며 고개를 저었고, 카단은 그런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다.”

루나는 카단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나쁘지 않았는지, 그 상태 그대로 앞을 가리키며 말헀다.

“이번엔 저 녀석을 죽이면 되는 거지?”

“아니, 죽이면 내가 곤란해지는 상황이야.”

카단을 죽이기 위해 공격했지만, 발렌티나는 영웅 아카데미의 교관.

게다가 아카데미에도 카단과 발렌티나가 함께 외출을 승인받고 나온 상태.

‘내가 죽였다는 걸 믿기도 어렵겠지만, 날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 영웅 아카데미 교관이 고작 트롤에게 죽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녀를 죽인다면 카단에게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었다.

“우선 제압만 해줄 수 있을까? 일단 제압하고 나서 추후를 생각해보자.”

“까다롭네. 나 아무래도 계약 잘못한 거 같아.”

루나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두 눈을 부릅뜨며 땅을 박찼다.

폭발적인 속도.

루나는 순식간에 발렌티나와 거리를 좁혔고.

“무, 무슨!”

발렌티나는 당황하며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크왕!

이어서 거대한 늑대 두 마리가 루나의 앞을 막았고.

쿵! 쿵! 쿵!

뒤로는 거대한 트롤이 돌도끼를 휘두르며 루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두 마리와 늑대도 거대한 트롤도 루나를 향해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시도할 수 없었다.

‘오크? 갑자기 어디서 오크가?’

거대한 트롤의 공격은 온몸에 꿰맨 자국이 가득한 오크가 막아냈고.

라… 쿰!

‘게다가 저건 데스나이트?’

두 마리의 늑대 앞으로는 괴상한 갑옷을 입은 큰 덩치의 기사가 막아서고 있었다.

“군주의 영광을 위해!”

오크의 정체는 무엇이며, 고작 4성인 카단이 어찌하여 데스나이트를 소환할 수 있던 것일까?

루나의 존재만으로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어진 언데드들의 등장에 발렌티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꿰맨 자국이 가득한 오크는 홀로 트롤을 상대할 정도로 강력했으며.

서걱! 서걱!

두 마리의 늑대는 데스나이트가 휘두른 거대한 도끼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순식간에 세 마리의 소환수를 잃었지만, 당황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제길!”

빠르게 다가오는 루나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했으니까.

촤라라라라락!

발렌티나는 재빨리 마법진을 만들어 쇠사슬을 쏘아댔다.

쾅! 쾅! 쾅! 콰앙!

마법진에서부터 주황빛 쇠사슬들이 매섭게 쏘아졌지만, 루나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쇠사슬을 피해냈다.

쇠사슬은 땅에 박히며 굉음을 낼뿐, 루나의 머리칼조차 스치지 못했다.

발렌티나는 전처럼 해맑은 웃음을 지을 수가 없었다.

‘말이 안 되잖아!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데!’

절망과 당혹스러움만이 그녀가 지금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감정들이었다.

쇠사슬을 모두 피해낸 루나는 어느새 발렌티나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녀석이!”

발렌티나는 악을 쓰며 앞으로 손을 뻗었고.

이번엔 그녀가 만들어낸 마법진에서부터 두꺼운 가시넝쿨들이 빠져나와 루나를 향해 뻗어졌다.

가시넝쿨은 금방이라도 루나를 휘감을 것처럼 휘어져 날아갔다.

순간 발렌티나는 잠시나마 희망의 미소를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타악!

루나는 자신을 향해 뻗어지는 넝쿨을 주먹질 한 번으로 무력화시켰다.

잠시라면 오우거도 포박할 수 있는 소환사의 마법.

발렌티나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이 고작 주먹질 한 번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퍼억!

코앞으로 다가온 루나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발렌티나의 배를 가격했고.

“커헉!”

발렌티나는 당황할 새도 없이 그대로 배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무, 무슨 힘이!’

그녀 역시 근접 전투가 취약했으나, 마족화로 인하여 어느 정도 약점이 보완되었다.

웬만한 기사 부럽지 않은 방어력이 생겨났지만, 10살로 보이는 꼬마 아이의 주먹에 무력하게 무릎 꿇고 말았다.

“나도 그런 거 잘하는데.”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발렌티나를 바라보며 루나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짝!

루나가 손뼉을 치자, 허공에 핏빛 마법진이 생겨났고, 마법진에서부터 피로 만든 밧줄이 튀어나와 곧바로 발렌티나를 휘감았다.

“이, 이건 뭐야!”

속박 마법에 능통한 발렌티나도 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뭐긴 뭐야? 네가 하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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