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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79화 (79/186)

제79화

스릉.

카단은 단검을 이용해 손바닥을 살짝 그어냈다.

벌어진 상처 위로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카단이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상처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피가 새어 나왔고 이내 카단의 피는 야구공만 한 크기의 구체로 변했다.

“그냥 내가 깨물어도 되는데.”

피로 만들어진 구체를 바라보던 루나가 입맛을 다시며 말하자, 카단은 미간을 좁히며 뒤로 물러섰다.

“그건 내가 싫어.”

“나 언니한테 훈련받아서 피를 마셔도 크게 흥분하지 않아. 조절할 수 있어. 나.”

“아니야. 이렇게 주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래.”

루나가 다시 한번 제안했지만, 카단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쳇.”

루나의 아쉬움을 알면서도 카단은 곧바로 피로 만들어진 구체를 루나의 앞으로 보냈다.

둥실둥실 떠오던 구체는 루나의 코앞에서 멈춰졌고, 루나는 곧바로 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피의 구체를 모두 흡수하자 루나의 눈이 붉게 빛났고, 그녀의 몸 주변으로 붉은 마나가 피어올랐다.

“카, 카단. 그 손 좀 빨리 어떻게 해 봐.”

훈련을 받았다지만, 피의 유혹을 참는 게 힘들었는지 루나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거봐. 깨물렸으면 큰일 날 뻔했네.”

카단은 아공간에서 붕대를 꺼내 상처를 가리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흥.”

루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돌렸고, 카단은 그런 그녀에게 한 걸음 물러서며 물었다.

“바로 시작하는 거야?”

“응.”

루나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당당한 걸음걸이로 발렌티나에게 다가갔다.

발렌티나는 굉장한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천천히 걸어오는 꼬마가 뱀파이어란다. 게다가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려고 다가오는 중이다.

두려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냥 카단에게 죽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선 이것부터 처리해야 해.”

발렌티나 앞에 멈춰선 루나가 그녀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말했다.

“뭐, 뭘 할 생각이야?”

발렌티나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물었지만, 루나는 살벌한 미소를 지을 뿐 아무런 답도 해주지 않았다.

순간 루나의 몸에서 일렁거리던 핏빛 기운이 서서히 발렌티나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

그녀의 거센 저항에도 루나는 계속해서 발렌티나의 몸속으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컥! 커헉!”

얼마 지나지 않아 발렌티나가 검은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발렌티나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피를 토해냈고.

“루나. 그게 뱀파이어를 만드는 방법이야?”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단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아니. 이 녀석 몸에 박힌 마석부터 제거하려고. 따로 빼내는 방법이 없거든. 안에서 부숴야 해.”

“머, 멈춰…. 이걸 부수면 난 죽어! 죽는다고!”

루나의 말에 피를 토해내던 발렌티나가 힘을 쥐어짜며 소리쳤다.

“그야 그렇겠지. 마족의 힘이 흩어지면서 너의 몸 곳곳을 부식시킬 테니까.”

그러나 루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를 지켜보던 카단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만만한 루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빠각!

얼마 지나지 않아 발렌티나의 몸속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컥….”

발렌티나의 짧은 비명과 함께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초점 잃은 눈동자가 천장을 향했고, 쩍 벌어진 그녀의 입 안에서부터 검붉은 연기가 빠져나왔다.

우웅.

그리고 그녀의 몸 위로 카단에게만 보이는 검붉은 구체. 영혼의 결정이 떠올랐다.

‘마석은 마석이니까.’

마석을 부쉈을 때 영혼의 결정을 얻듯, 발렌티나 몸 안에 심겨 있던 마석 역시 영혼의 결정을 만들어냈다.

급할 건 없었기에 카단은 여전히 뒤에서 자리를 지키며 루나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됐다.”

루나는 준비가 끝났다는 듯 손뼉을 마주치더니, 이내 무릎을 꿇은 채 굳어버린 발렌티나를 향했다.

발렌티나의 뒤로 다가간 루나는 작은 입을 벌리더니, 발렌티나의 하얀 목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앙.

날카로운 송곳니가 발렌티나의 목을 물었고, 동시에 루나의 몸에서부터 붉은 마나가 발렌티나에게 흡수되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루나는 곧바로 입을 떼며 다시 카단의 옆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끝이야.”

“성공이야?”

“아니. 아직 몰라. 지켜봐야 해.”

뜨득! 뜨드득!

루나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발렌티나의 몸에서부터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뜩! 뜨드드득!

뼈가 재조립되는 듯한 소리가 얼음 동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여전히 발렌티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요란하고 기괴한 소리만이 들려올 뿐.

“끅….”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몇 번이나 이어지던 기괴한 소리가 멈추었고, 발렌티나의 입에서부터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끄아아아아아아악!”

발렌티나의 눈동자가 초점을 되찾더니,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마치 짐승이 포효하듯 울부짖었다.

“뭐야?”

그 기괴한 모습에 카단이 당황한 듯 루나를 바라봤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주 순조로워.”

루나는 진정하라는 듯 손짓하며 무덤덤한 얼굴로 발렌티나를 바라봤다.

“으으….”

쉬지 않고 괴성을 지르던 발렌티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붉게 물든 눈동자.

전과 다르게 윤기가 도는 머릿결과 피부. 그리고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붉은색의 마나.

다시 일어선 발렌티나는 무언가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따악!

그 모습에 루나는 기쁘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동시에 발렌티나를 구속하고 있던 피로 만들어진 밧줄이 사라졌다.

“된 거야?”

“응.”

루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발렌티나를 향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발렌티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루나 앞에 도착한 발렌티나가 대뜸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 나의 주인을 뵙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나온 말일까?

말과 다르게 발렌티나의 표정은 불안함과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카단. 다 됐다.”

루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발렌티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이 녀석은 내 부하야.”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루나. 혹시 마족화가 진행 중인 다른 인간들도 이렇게 뱀파이어로 만들 수 있을까?”

카단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고, 루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녀석은 마족의 힘을 얻었지만, 아직은 인간에 훨씬 가까워서 가능했던 거야.”

마족의 힘이 몸 전체에 퍼진 상태였다면 뱀파이어의 피를 넣는 순간 과부하를 일으키며 죽음에 이를 것이다.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히쭉 웃어 보였고, 카단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만약 또다시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과 싸우게 된다면 오늘처럼 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카단은 곧바로 체념하며 발렌티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루나. 이제 묻고 싶은 거 물어봐도 되는 거지?”

“응. 전부 대답해줄 거야.”

카단의 질문에 루나는 매서운 눈빛으로 발렌티나를 쏘아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발렌티나가 몸을 움찔하며 곧바로 고개를 팍 숙여버렸다.

“발렌티나 교관님?”

카단은 가볍게 그녀를 불렀고, 발렌티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단을 바라봤다.

“네. 주, 주인의 계약자시여.”

“그냥 하던 대로 해. 듣기 거북하니까.”

“알겠다….”

“나한테 뭘 하려던 거야? 너처럼 몸속에 마석을 집어넣어 마족으로 만들 생각이었나?”

카단의 질문에 발렌티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으로 만들어 내 수하로 둘 생각이었다….”

비밀을 폭로하듯 조심스러운 목소리.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석 사용자들은 기력을 모두 소모한 뒤 마족에게 육체를 빼앗겨 마족이 된다. 이건 알고 있겠지?”

멀지 않은 과거. 마석 사용자들이 마족이 되며 마족과의 2차 전쟁이 시작됐고, 그 당시 가디언이 탄생했다.

왕국의 비극적인 역사를 카단이 모를 리 없었다.

“하, 하지만 그건 마족이 되는 데까지 너무 오래 걸려. 게다가 제멋대로인 마족이 탄생해서 제어하기도 힘들고.”

“그런데?”

“그런데 죽기 직전인 인간의 몸 안에 마석을 박아 넣으면 더욱 빠르게 마족화가 진행되지.”

그녀의 말에 카단이 미간을 찌푸리며 계속 말하라고 손짓했다.

“인간으로서 정신, 이성을 남긴 채 마족이 되는 방법이기도 하고.”

“아까 보니까 마석에 마나를 주입하던데, 그건 왜 그런 거야?”

“내 마나를 먹인 마석을 인간의 몸에 넣게 된다면 마족이 된 인간은 나를 모체로 여기게 돼.”

“복종하게 된다. 이 말이야?”

“그래. 나 역시도 그렇게 마족이 되는 중이었고.”

카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마족들이 이런 식으로 인간계에서 발을 넓혀가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너의 모체는 누군데?”

순간 발렌티나의 붉은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다시 다물어진 입술은 열릴 것 같지 않았고, 점차 그녀의 몸까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말해.”

발렌티나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자, 루나가 팔짱을 끼며 그녀에게 명령했다.

“저, 저도 모릅니다.”

그녀의 확고한 대답에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루나에게 물었다.

“다 말한다며?”

“이건 진짜 모르는 거야.”

루나는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발렌티나가 그 말이 사살이라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댔다.

“지, 진짜 몰라. 이름 같은 건 들은 적 없어. 그저 한 번 만나본 게 전부야.”

“그럼 얼굴은 알고 있겠네?”

어쩌면 발렌티나의 배후에 있는 마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단은 긴장한 상태로 발렌티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몰라.”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카단의 기대를 무너트리는 대답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어.”

“가면?”

“그래. 늘 멧돼지 가면을 쓰고 있었지.”

발렌티나가 멧돼지 가면을 쓴 여인을 만났던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발렌티나는 마탑 소속의 소환사였다.

분명 선택받은 재능을 지닌 채 태어났지만, 그녀는 늘 강한 힘을 원했다.

소환사로서 가디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지닌 채 살아왔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선택받은 재능만으로는 영웅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 역시 힘들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마탑 소속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멧돼지 가면을 쓴 여인이 찾아왔다.

“매혹적인 여자였어.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마주한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

멧돼지 가면의 여자는 힘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그 힘을 지니면 가디언이 되는 것 역시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힘을 갈망하던 발렌티나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순간 발렌티나는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몸이 달라진 걸 느꼈어.”

마족의 힘은 그녀를 흥분시켰다.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에 상기되었고, 은혜를 입었다 생각했다.

발렌티나가 정신을 차리자, 멧돼지 가면을 쓴 여인이 타인을 마족화 시키는 법부터 시작해 다양한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녀가 나에게 마석을 주며 명령했어. 영웅 아카데미의 교관으로 들어가라고.”

“이유는?”

“몰라. 교관이 되어 자신을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거든.”

거짓은 아닐 것이다. 루나가 있는 한 그녀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을 테니.

이후로도 몇 번의 질문을 던졌지만, 생각보다 많은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발렌티나는 약 한 달 전부터 마족화가 시작되었으니, 마족들 사이에선 신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니까 일단 마족들이 인간인 척 인간들 사이에 숨어 지낸다는 거잖아?’

마족들은 마졔에서 마족들을 데려오는 것이 아닌 인간들을 마족으로 만들고 있다.

인간들을 하나씩 마족으로 만드렁 천천히 인간계를 장악하려는 계획.

‘아마 발렌티나와 같은 자들이 더 존재하겠지.’

카단은 발렌티나에 팔목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그 문신은 뭐지?”

카단의 말에 발렌티나는 소매를 들추며 손목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목에 새겨졌던 멧돼지 모양의 문신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뭐야? 분명 있었는데?”

“마석이 박혀 있던 곳이다. 그 여자를 만난 후 손목에 생겨났더라고.”

발렌티나가 쓰게 웃으며 대답했고, 카단은 순간적으로 벨리드 교관의 의뢰를 위해 망자의 기억을 들여다봤던 때가 떠올렸다.

‘그때 목걸이를 가져간 그 남자도 비슷한 문신이 있었잖아?’

목에 문어 모양의 문신을 새겼던 남자. 혹시 그자도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이지 않을까?

‘돌아가서 벨리드 교관님부터 만나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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