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80화 (80/186)

제80화

아카데미 연병장 끝에 마련된 벤치 위에 카단이 홀로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렌티나에게서 정보를 얻은 뒤, 카단은 발렌티나를 데리고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발렌티나는 평소처럼 교관으로서 지내기로 했으며, 멧돼지 가면을 쓴 여인이 찾아왔을 때도 여전히 그녀의 부하인 척 행동하라 일러두었다.

즉. 카단은 마족과 연결된 발렌티나에게 스파이 노릇을 시킬 생각이었다.

적어도 멧돼지 가면으로 인한 사고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 번은.

‘아무래도 이 정보는 혼자 알고 있어야겠지?’

카단은 답답하다는 듯 밤하늘을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그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고 여겼던 마족들이 어두운 그늘 뒤에 숨어 은밀하게 활동 중이었다니.

‘게다가 아카데미에도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을 투입하다니.’

이건 카단의 정보망이자 가장 신뢰하고 있는 잭 카터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정보였다.

자칫 이 정보가 새어 나간다면 왕국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아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위험해지는 건 왕국이 아니라 나겠지.’

마족은 이미 왕국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마족이 활동 중이라는 게 세상에 알려진다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정보의 시작점인 카단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이 정보는 카단의 머릿속 깊은 곳에 묻어둬야 할 것 같았다.

‘문신 있는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마족이 되어가는 인간들을 찾아내는 방법 하나를 알아낼 수 있었다.

마석을 몸속에 박아 마족화과 되는 인간들의 특징 중 하나는 마석이 박힌 곳에 괴상한 문신이 생긴다는 것.

‘물론 손목이나 목처럼 드러나는 곳에 문신이 새겨졌다면 찾기 쉽겠지만, 감춰졌다면 알아낼 방법은 없지.’

아쉽게도 마족이 되어가는 인간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쉽지 않은 방법이었다.

“날 찾았다고?”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벨리드 교관이 카단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안녕하십니까. 교관님.”

카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벨리드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래요. 이 늦은 시간에 왜 나를 찾았을까? 혹시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라도 전해주려고?”

벨리드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묻자, 카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쉽네. 이번엔 편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벨리드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카단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카단이 다시 벤치에 앉자, 벨리드 교관도 자연스레 그 옆자리에 앉았고 눈웃음을 지으며 카단을 바라봤다.

“그래서 왜 날 불렀어요?”

벨리드 교관의 질문에 카단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때 그 사람은 찾았습니까?”

“누구?”

“목걸이를 가져간 남자말입니다. 제가 망자의 기억 속에서 봤다던.”

순간 벨리드 교관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그 사람은 왜요?”

“그때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요. 망자의 기억을 본 후유증과 비슷한 거죠.”

사실대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누굴 믿고 누굴 믿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벨리드 교관이 마족을 배후로 두고 있는 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모든 사실을 알려줄 순 없었다.

“후유증?”

“네. 순간이지만, 기억을 엿보는 순간 기억의 주인과 감정이나 생각이 동화되는 바람에 이게 후유증처럼 계속 남아 있어요.”

“치료 마법이라도 걸어줄까요?”

“그런 걸로 되는 거면 진즉에 치료받았겠죠.”

그녀는 농담이었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드넓고 어두운 연병장을 바라봤다.

“굳이 신경 쓰지 마요. 이건 개인적인 일이니까.”

“그 개인적인 일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이라 신경이 쓰이네요.”

카단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연병장을 바라봤고, 짧게 숨을 들이쉰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혹시 아직 그자를 찾고 있다면 제가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네.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뭐, 망자의 기억을 들여다본 네크로맨서의 숙명이기도 하고. 제 오지랖이 넓기도 하고.”

“하긴. 카단이 오지랖이 넓긴 하죠.”

어쩐지 천천히 들려오는 그녀의 대답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무언가 고민을 하는 듯 미세한 떨림도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네. 교관이 생도를 위험에 빠트릴 순 없어요.”

그러나 이내 벨리드 교관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위험이 얽히고설킨 일.

단순히 던전에 보내는 일보다 더욱 잔혹한 부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자를 강하게 키우시는 줄 알았더니.”

“공식적으로 카단이 내 제자는 아니죠?”

“저도 도와드리고 싶다는 거지, 강요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영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지.”

“그렇게 후유증이 남는지는 몰랐네요. 알았으면 이런 부탁은 하지 않았을 텐데.”

물론 거짓말이었다.

망자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들여다본 이후까지는 혼란을 겪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잠시일 뿐이다.

망자의 자아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니었기에 후유증 따위는 조금도 남지 않았다.

“4성이 되고 적당한 훈련도 해보지 않고 시도해서 그런 겁니다. 훈련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아진다고 하더군요.”

카단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벨리드 교관을 통해 목걸이를 가져간 남자. 목에 문어 문신을 한 남자를 찾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중에 그 남자를 찾게 되면 말씀이라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카단은 벨리드 교관 옆에 서서 물었고, 벨리드 교관은 잠시 카단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나저나 잘 지내셨습니까?”

“빨리도 물어보네요? 휴식기 끝난 지가 언젠데. 한 번도 안 찾아오더니.”

“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4성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벨리드는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카단을 보더니,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농담. 농담. 내가 담당한 제자도 아닌데 굳이 인사까지 하러 올 필요가 있겠어요?”

“다음엔 좀 더 일찍 찾아뵙도록 하죠.”

“아, 도시 렐테이라 소식은 들었으려나?”

“네. 알비스에게 들었습니다.”

“그것도 카단, 당신이 한 짓이죠?”

벨리드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고,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와 걸음을 맞췄다.

“무슨 짓 말씀입니까?”

“더글라스 가문이 도시 렐테이라의 주인이 되었잖아요? 느닷없이.”

“그 도시가 탐났던 모양이죠.”

카단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고, 벨리드가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블랑쉬의 생일 파티에 참여했고, 더글라스 가주가 클로제 생도와 대련을 붙였다고 들었는데.”

“역시 그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네요.”

“모르는 게 이상하지. 영웅 아카데미의 졸업반이자 더글라스 가문의 가장과 1학년 기대주인 네크로맨서의 대련인데.”

벨리드 교관은 알려준 소문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 대련에서 이겨서 가주에게 부탁했죠. 도시 렐테이라를 맡아달라고.”

더는 숨기는 것도 무의미하다 싶었는지 카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벨리드 교관은 한심하다는 한숨과 함께 아쉬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어디 땅덩어리라도 사달라고 하지. 그 좋은 기회를 고작 오지랖 부리는 데 사용하다니.”

“뭐, 후회는 없습니다. 그것 외에는 딱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뭐, 좋네요. 그 오지랖. 나중에 나한테도 좀 부려줘요. 나도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

“기회가 된다면요.”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새 시답잖은 주제로 넘어왔고,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걸어 다녔다.

***

다음날.

“오늘은 중형 몬스터 사냥법에 대해 수업하도록 하겠다.”

연병장 한가운데 선 크리스 교관이 바닥에 앉아 있는 생도들을 보며 말했다.

“오늘 너희들이 사냥할 몬스터는 트롤 중에서도 악랄하기로 유명한 아이스 트롤이다.”

크리스 교관의 말이 끝나자, 1학년 생도들은 놀란 눈을 뜨며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트롤이면 상급 몬스터잖아?”

“그냥 상급이야? 사냥 난이도로만 봤을 땐 상급 이상이야.”

“우리가 트롤을 어떻게 사냥해?”

“설마 한 명씩 사냥하는 건 아니겠지?”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지닌 사람들은 자기 주제를 잘 알고 있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자만심에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지금 이들이 그러했다.

트롤은 5성 4명은 있어야 안전하게 사냥 가능한 몬스터.

3성이 대부분인 생도들은 자신들의 힘으론 트롤을 사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멍청하게 혼자서 어떻게 트롤을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반성하도록.”

크리스 교관이 몇몇 생도의 생각을 읽었는지 비웃음을 섞어 말을 이어갔다.

“4인 1조. 팀을 정해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크리스의 말이 끝나자 생도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질문했다.

“교관님! 트, 트롤은 5성 4인이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희는 아직….”

4성 몇 명을 제외한 나머지 생도들은 여전히 3성에 머문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트롤을 사냥하란 말인가?

“겁쟁이 같은 질문을 하는군.”

그러자 크리스 교관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은 남들과 같아선 안 돼. 3성이지만 4성이어야 하며 4성이어도 5성만큼 강해야 한다. 그것이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다.”

크리스 교관이 당당하게 외쳤지만, 그 말에 동의하는 이들은 몇몇 없는 듯했다.

아무리 남들보다 특출난 실력과 재능, 잠재력을 지녔다고 하지만 3성 4명이 트롤을 사냥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니.

생도들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크리스 교관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트롤이 우글거리는 던전이라면 5성 이상의 4인이 함께 다녀야 안전하다.”

트롤 하나를 사냥하다 또 다른 트롤이 나타났을 시를 대비해 5성 4인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됐다.

그러나 이곳은 아카데미.

“트롤은 한 팀당 한 마리씩 소환할 것이고 너희들의 뒤에는 나와 발렌티나 교관이 있다.”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곳이었으며,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게 트롤과 전투를 벌일 수 있다.

크리스는 생도들을 향해 걱정하지 말고 더 강해질 생각이나 하라며 핀잔을 주었다.

이내 몇몇 생도들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고, 크리스 말을 받아들이기로 한 생도들은 눈을 반짝였다.

크리스 교관의 말대로 안전하게 사냥과 전투를 경험해볼 수 있는 곳은 아카데미뿐일 테니.

“그럼 지금부터 팀을 나누도록 하겠다. 우선 4성인 생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크리스 교관이 생도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바닥에 앉아 있던 32명의 생도 중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단에 이어서 휴식기 사이에 4성을 달성한 생도들이 하나씩 일어나자 생도들은 놀라움을 삭히며 수근거렸다.

“역시 블랑쉬. 4성이었구나.”

가장 먼저 일어선 건 블랑쉬.

카단을 이기기 위해 이를 갈고 수련한 끝에 결국 그녀도 4성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네. 라이덴도 4성이야.”

이어서 카단을 늘 아니꼽게 생각하는 라이덴.

“미친. 칼리아도 4성이라고? 근접 전투 수업의 탑 2명이 전부 4성이 됐네.”

그리고 카단과 알비스의 친구인 칼리아 역시 4성이 되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뿐만은 아니었다.

생도들이 가장 빠르고 많이 성장한다는 휴식기 이후로 총 7명의 생도가 4성에 도달했다.

카단까지 합하면 1학년 생도 중 4성에 도달한 건 총 8명.

1학년 하반기에 4성에 도달한 생도가 8명이나 있다는 건 지금까지의 아카데미 역사에서도 없는 일이었다.

“4성에 도달한 생도가 무려 8명이라니. 이 교관은 이 순간 눈물이 날 것 같다.”

크리스 교관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닭똥같은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아카데미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순간이다. 겠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나 보지. 그나저나 우린 언제 4성 돼냐?”

4성에 도달한 8명의 생도를 바라보던 허먼과 브렌트, 그리고 데이비드가 부럽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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