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82화 (82/186)

제82화

쿠웅!

목을 잃은 트롤이 연병장 바닥에 쓰러지며 굉음을 내었다.

“돼, 됐다!”

“해냈다! 우리가 해냈어!”

“진짜 우리가 트롤을 잡을 줄이야….”

해골 병사 사이에서 기회를 엿보며 트롤의 빈틈을 노리던 수다쟁이 삼인방은 무기를 집어던지며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기나긴 전투 끝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 그들의 머리는 땀으로 젖어있었고, 셋 모두가 거친 숨을 몰아쉬어 댔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성공했네.’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카단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했다.

앞선 3팀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뒤떨어지는 사냥 속도. 그러나 그 누구도 카단의 팀을 비난하지 않았다.

“카단 저 녀석은 진짜 괴물이네.”

“네크로맨서가 트롤을 저렇게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어? 아무리 해골을 계속 살린다지만….”

“저렇게 트롤을 꽉 붙잡아 두면 다른 사람들은 진짜 편하게 사냥하겠다.”

“그러니까.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기회 봐서 빈틈만 노리면 끝이잖아.”

오히려 생도들은 카단의 활약에 넋을 놓고 이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넋을 놓고 있는 사람 중에는 크리스 교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존의 구조와는 정반대의 작전이라니. 아직 4성이라 방어적인 운용을 해야 한다지만, 이건 너무 사기적인데?’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블랑쉬, 라이덴, 칼리아에게는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카단을 보면서는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4성 네크로맨서의 수준을 이미 한참 뛰어넘은 듯한 모습.

‘이게 바로 재능의 차이라는 걸까?’

오랜 세월 아카데미 교관으로 지내 온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 중 몇몇은 크리스의 손을 거쳐 갔었다.

‘2학년의 마티아스 이후로는 특출난 재능을 가진 생도는 못 만날 것 같았는데.’

영웅 아카데미가 특출난 인재들만 모인 곳이라지만, 이곳에서도 차이는 존재했다.

카단과 수다쟁이 삼인방이 그러했다.

혼자서 상급 몬스터인 트롤을 상대로 수다쟁이 삼인방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선배 혹은 교관이 해야 할 일을 카단이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1학년 주제에 벌써 이렇게 성장하다니. 어디까지 성장할지 두렵군.’

제자의 성장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다니. 크리스 교관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실전 사냥 수업이 끝난 후 크리스 교관은 1학년 교관, 교수들이 모인 회의실에 들어섰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회의실에 들어선 순간, 자리에 앉아 있던 교관과 교수들이 크리스를 향해 물었다.

“무사히 종료되었습니다. 4성 생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8팀 모두가 트롤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부상자도 없었으며, 교관이 나서야 할 긴급한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전 투입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 교관이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회의장에 있던 모두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학년들에게도 임무가 주어질 때가 왔군요.”

크리스 교관은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수많은 양피지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몬스터 토벌 지원 요청서]

[지원 요청서]

[던전 공략 의뢰서]

양피지 앞에 적힌 글자들만 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임무들은 아닐 것 같았다.

“적절한 인원 배치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임무 투입 시기는 언제입니까?”

크리스 교관이 묻자 맞은 편에 있던 교관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최소 5일 이내에는 정리해서 보고해야 합니다.”

“시간은 충분하군요. 그럼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해 보도록 하죠.”

생도들이 위험한 임무에 투입하는 일이었지만, 회의실에 모인 이들에게서 걱정과 염려 따위의 감정은 읽을 수 없었다.

오히려 회의장 안에는 기대감이 맴돌고 있었다.

“우선 직업군 위주로 나누고 이후 임무 난이도에 따라 생도들을 배치하도록 하죠.”

크리스 교관이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에 있던 양피지 하나를 펼쳐보았다.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아이작 교수가 조용히 손을 들며 말했다.

“네크로맨서 카단은 따로 보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아이작의 나긋한 목소리에 회의장 안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바라봤다.

“어떤 임무입니까?”

크리스 교관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아이작 교수는 앞에 있는 양피지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도시 트라팔가에서 온 지원 요청서입니다. 네크로맨서가 필요하다는군요.”

“혼자 임무를 보내는 건 위험합니다. 아이작 교수님. 게다가 도시 트라팔가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졸업반에 있는 네크로맨서도 함께 보내야 할 것 같거든요.”

네크로맨서를 두 명이나 필요로 하는 요청서라니. 회의장 안 사람들은 궁금하다는 눈으로 아이작를 바라봤다.

“고블린들의 침공이 다시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어진 아이작 교수의 말에 사람들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 싸움에서 밀리는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트라팔가는 변방에 있으니 병력 보충에도 시간이 걸릴 테고.”

“영웅 아카데미의 네크로맨서 둘이라면 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크리스 교관 역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졸업반 네크로맨서와 함께 보낸다지만, 전쟁터에서는 따로 행동할 수밖에 없겠죠. 인원을 보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아이작은 크리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크리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그 녀석이 제일 좋을 것 같군.’

조금 전 실전 사냥 수업을 통해 생도들의 현재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이들의 얼굴이 크리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이내 한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에 남았다.

“정했습니다.”

***

식사 시간이 끝난 후, 카단은 수업을 듣기 위해 곧바로 강의실을 향했다.

‘응?’

강의실 문을 여는 순간 카단은 멈칫하고 말았다.

분명 네크로맨서 심화 수업을 듣는 사람은 카단뿐이었고, 여태까지 늘 혼자서 수업을 받아왔다.

‘누구지?’

그런데 강의실에 한가운데 누군가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

하얀 피부의 하얀 긴 머리를 지닌 여자가 퀭한 눈으로 카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꽤 예쁘다고 할 수 있지만, 어딘지 음침한 느낌이 드는 여자.

카단은 순간 강의실을 잘못 찾아왔나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이곳은 카단이 아이작을 만나 수업을 진행하던 그 강의실이었다.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카단을 발견한 여자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네가 그 유명한 1학년 네크로맨서구나?”

외관적으로 느껴지는 어두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은 밝은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카단이 조심스레 묻자, 여성은 조금 놀란 듯한 얼굴로 헛웃음을 삼켰다.

“아카데미에 둘 뿐인 네크로맨서인데,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니?”

그녀의 말에 카단은 곧바로 그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졸업반에 있다는 그 네크로맨서인가?’

영웅 아카데미에는 카단을 포함해 총 두 명의 네크로맨서가 존재했다.

‘여자였어?’

졸업반이었기에 얼굴을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네크로맨서들이 다 그렇지 뭐. 나도 오늘 너를 처음봤는 걸?”

“그런데 이 강의실에는 왜 오셨습니까? 아니면 혹시 제가 강의실을 잘못 찾은 건가요?”

카단이 알기로 졸업반 네크로맨서 수업은 오전에 잡혀 있었다.

“아이작 교수님이 오라고 하셨으니까 왔지. 자세한 건 나도 아직 몰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고, 가벼운 걸음으로 카단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난 에스더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전 카단이라고 합니다.”

카단은 곧바로 그녀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너 클로제랑 친하다며? 얘기는 자주 들었어.”

“아….”

아무래도 같은 졸업반이었으니, 그녀가 클로제를 알고 있는 건 당연한 일.

“클로제가 네 얘기를 하도 해대서 네 이름은 외우기 싫어도 외워지더라.”

“무슨 얘기를 했기에….”

“뭐, 칭찬이 대부분이고 나를 소개해주고 싶다나 뭐라나.”

그녀는 앉아서 대화하자는 듯 손짓하며 근처에 있던 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카단은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랐고,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그게 사실이야? 너 4성이라며?”

“아, 네. 뭐.”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꽤 수다스러운 네크로맨서였다.

“난 1학년 때 쭉 3성이었는데. 대단하네. 그래도 지금은 6성이야.”

에스더가 자신만만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왜 6성 네크로맨서가 여기에 있는거야?’

카단은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졸업반 네크로맨서가 누군인지 궁금해했던 적은 있었지만, 굳이 이렇게 대화를 하고 싶을 정도로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다.

‘오늘 도대체 무슨 수업이기에.’

카단이 그렇게 생각할 무렵.

철컥.

강의실 문이 열리고 이번엔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칼리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칼리아였다.

근접 전투 클래스 수업을 들어야 할 칼리아가 왜 네크로맨서 강의실을 찾은 것일까?

“혼자가 아니네?”

“아, 이분은 졸업반 에스더 선배님이셔.”

카단은 급히 옆에 있던 에스더를 가리키며 소개했고, 칼리아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1학년 칼리아입니다. 선배님.”

“안녕! 와, 너 예쁘게 생겼다?”

“……감사합니다.”

졸업반 네크로맨서에 이어서 칼리아까지.

도대체 오늘 어떤 수업을 하기에 이런 조합이 탄생한 것일까?

궁금한 건 카단뿐이 아니었다.

칼리아와 에스더 역시 교수들의 지시에 따라 이곳에 왔을 뿐, 무엇을 위해 모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궁금증이 증폭되기 직전. 다시 강의실 문이 열렸고 아이작 교수가 자상한 웃음과 함께 등장했다.

“모두 모였군요.”

아이작 교수는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며 강단으로 향했고, 세 사람은 자연스레 근처에 있는 자리에 앉아 아이작을 바라봤다.

“다들 서로 인사는 하셨습니까?”

아이작의 질문에 에스더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조금 전에요!”

아이작은 그녀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곤 다시 카단과 칼리아까지 바라봤다.

“갑작스럽게 모이게 해서 당황하셨을 테니, 이유를 곧바로 알려드리죠.”

아이작은 품 안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냈고 그것을 들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지원 요청서입니다. 위치는 도시 트라팔가. 변방의 있는 도시죠. 다들 들어보셨죠?”

변방의 도시 트라팔가.

몬스터들의 침공에 365일 전투 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도시였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으나, 자원이 풍부하여 왕국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도시.

그런 곳에서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은.

“또 몬스터들이 쳐들어온 모양이네요.”

에스더의 말에 아이작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블린들의 침공에 맞서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 병력 지원도 안 되는 상황.

그렇기에 도시 트라팔가는 영웅 아카데미의 네크로맨서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상급 몬스터였다면 다른 이들에게 지원 요청서가 전달됐겠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수 싸움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 같습니다.”

아이작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을 열었고, 그 안에서 6장의 양피지를 꺼냈다.

“간단히 얘기한 후에 곧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다들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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