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83화 (83/186)

제83화

도시 트라팔가.

왕국 최남단에서 몬스터의 침공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 변방의 요새.

평화 속에서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이곳은 ‘전쟁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했다.

‘과연. 죽음이 가득한 곳이군.’

텔레포트 마법을 통해 도시 안으로 도착한 카단이 주변을 둘러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죽음이 가득한 도시.

망자들의 기운이 넘치다 못해 흐르는 불길한 곳이었다.

‘무법 도시라 불리는 렐테이라도 이렇게까지 암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불법으로 물든 렐테이라의 거리보다 변방의 요새라 불리는 트라팔가의 거리가 더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자, 다들 집중해.”

멀뚱히 도시를 둘러보던 중, 졸업반 네크로맨서인 에스더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단과 칼리아는 자연스레 에스더를 바라봤고, 에스더는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상황을 보아하니, 벌써 전투가 시작된 것 같아.”

성벽 너머로 고블린들의 괴성이 들려왔고, 성벽 위쪽에서는 지휘관들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도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기에 에스더는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려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너희들의 책임자야. 그러니 내 말을 잘 따라줬으면 좋겠어.”

카단과 칼리아도 그녀의 말을 거역할 생각은 없었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내가 직접 너희를 지휘할 일은 없어. 어차피 우린 다른 곳에 배치될 거니까.”

에스더는 선배로서 카단과 칼리아가 해야 할 일을 다시 한번 짚어줄 생각이었다.

“카단. 너랑 내가 할 일은 성벽 위에서 언데드만 일으키는 거야. 다른 건 할 필요 없어.”

“네. 알겠습니다.”

“칼리아 너는 카단 옆을 지키기만 하면 돼. 아마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네가 그 검을 뽑을 일은 없을 거야.”

“네.”

에스더는 전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이 오든 간에 명령 없이 맡은 자리를 벗어나지 마.”

공성이 아닌 수성.

지휘관의 허락 없이 개별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질서가 어질러질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자리를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기에 에스더는 몇 번이고 강조하며 경고했다.

“우린 정해진 위치에서 맡은 임무만 수행하면 돼. 변수는 다른 누군가 알아서 처리해줄 거니까.”

“알겠습니다.”

“네.”

그녀의 말에 카단과 칼리아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지휘관들에게 인사부터 드려야 하긴 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니 우선 우리도 빨리 합류하자. 카단 넌 남동쪽 성벽으로 가. 난 북동쪽으로 갈 테니.”

“네. 알겠습니다.”

에스더는 얼른 가보라는 듯 손짓하더니 재빨리 걸음을 옮겼고.

“그럼 가볼까?”

카단은 옆에 있던 칼리아에게 제안한 뒤 곧바로 남동쪽 성벽을 향해 달려갔다.

***

“무슨 고블린이 이렇게 끝도 없어?”

“쏴! 화살 아끼지 말고 다 쏴!”

“성벽을 기어오르는 놈들이 있다! 구운 모래를 가져와!”

성벽 위 병사들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고블린들을 보면 사기가 떨어질 법도 했지만, 병사들은 이러한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 지휘관의 명령에 움직였다.

오히려 절망을 그리고 있는 것은 병사들이 아닌 지휘관이었다.

‘수가 너무 많아. 이대로는 화살이 금방 떨어지고 말 거야.’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마법을 날려도, 수천의 화살을 쏘아도 고블린의 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고작 하급 몬스터라지만 개미 떼처럼 몰려드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성문 쪽은 신경을 쓰지 마! 우린 이 성벽만 지켜내면 된다!”

절망감 속에서도 지휘관은 희망찬 목소리로 명령했다.

“수가 아무리 많아도 고작 고블린이다! 겁먹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해!”

자신의 절망감이 병사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그는 더욱 힘찬 소리로 외쳐댔다.

한참 정신없이 지휘를 이어가고 있을 때.

“안녕하십니까.”

누군가가 지휘관에게 다가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전투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는 이질적으로 들려오기도 했다.

“넌 누구지?”

지휘관은 인상을 팍 구기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자를 바라봤다.

“영웅 아카데미에서 온 카단이라고 합니다.”

“영웅 아카데미에서 온 칼리아라고 합니다.”

카단과 칼리아는 지휘관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드, 드디어 지원이 왔구나.”

두 사람이 정체를 밝히는 순간 지휘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절망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네, 네크로맨서는 누구지?”

지휘관의 질문에 카단이 손을 들었고.

“위급한 상황이니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곧바로 전투에 투입되어줘야겠는데. 괜찮겠나?”

지휘관은 성벽 너머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카단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벽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벽 아래로는 땅이 보이지 않았다. 고블린 군단은 땅을 전부 가릴 정도로 수가 많았고, 마치 물결이 치듯 일렁이는 그 모습에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이런 전투를 1년 내내 한다는 건가?’

카단은 다시 고개를 들어 고블린 군단이 몰려오는 동쪽 끝을 바라봤다.

‘도대체 저 끝에 뭐가 있기에 이 도시는 매번 몬스터들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일까?’

그 원인을 알 수는 없었다.

동쪽 끝으로 보이는 곳은 ‘절망의 평원’이라고 불리는 출입 금지 구역.

가디언조차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기에 아직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가디언에게도 위험한 곳이라는 뜻인가?’

문득 호기심이 생겨났지만, 지금은 호기심을 해결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키에에엑! 캬륵!

성벽 아래에서 들려오는 고블린들의 괴성에 카단은 정신을 차리곤 곧바로 앞으로 손을 뻗었다.

“죽음을 기억하라.”

작게 내뱉어진 말과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오크 해골 병사들이 나타나더니 그대로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쿵! 쿠웅! 쿵! 쿠우웅!

오크 병사들은 성벽 앞에 모인 고블린들 머리 위로 떨어졌으며, 그 충격으로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물론 추락의 여파로 해골 병사들 역시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지만.

달그락! 달그락!

카단의 손짓 한 번으로 해골 병사들은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키에에엑!

다시 되살아는 해골 병사들을 마주한 고블린들이 당황한 듯 괴성을 지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이라도 느꼈는지, 좀처럼 달려드는 고블린은 보이지 않았다.

“해, 해골 병사다!”

그때 성벽 아래로 떨어진 해골 병사를 발견한 병사 하나가 소리쳤고.

와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성벽에서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이제 됐어!”

“됐다! 이제 살았어!”

네크로맨서 하나의 등장만으로 전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버지는 이런 기분이셨겠군.’

2년 전 샬로트를 따라 전쟁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러했다.

네크로맨서인 샬로트의 등장만으로 손바닥 뒤집듯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이렇게 빨리 아버지가 느꼈던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카단은 피식하고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래. 전략 따위는 필요 없다.’

샬로트가 보여주었던 네크로맨서의 전투법을 카단은 그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달그락! 달그락!

카단은 반지 속에 있는 모든 뼛가루를 이용해 성벽 아래로 해골 병사들을 일으켰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대충 세어봐도 2천은 넘어 보이는 해골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딱딱딱딱딱!

해골 병사들은 곧바로 무기를 빼 들곤 고블린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 모습에 병사들은 열광하듯 다시 한번 환호성을 내질렀다.

해골 병사들의 돌진에 고블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뼈를 부서트려도 되살아나는 해골 병사들을 고블린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

불사의 존재들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수의 폭력.

단순하고 무식한 돌격이었지만, 확실한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누가 전쟁 중에 정신 놓고 있어! 다들 긴장 안 해! 집중해!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카단의 등장으로 병사들이 긴장의 끈을 놓자, 지휘관이 성벽을 빠르게 뛰어다니며 몇몇 병사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전쟁터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곳.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덕분에 카단의 전투를 구경하던 병사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며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손이 빈 놈들은 밑에 내려가서 화살 가져와! 네크로맨서를 돕는다!”

“성벽을 올라오는 놈들이 없으니까, 어서 재정비해!”

“마법사들은 준비되면 꾸준히 마법을 사용해주세요!”

사기가 올라간 병사들의 모습에 칼리아는 헛웃음을 지었다.

‘지쳐 쓰러져가던 사람들이 웃는다. 전쟁터에서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네크로맨서의 등장만으로 절망을 그리던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네크로맨서의 영향력이 이 정도였던가?

카단의 옆을 지키던 칼리아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카단의 해골 군단이 보여주는 위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혼란스럽던 성벽 위의 상황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정신없이 화살을 쏴대고 돌을 집어 던지던 병사들은 숨을 고를 수 있었고, 더욱 정교하게 고블린들을 상대로 수성전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카단도 전쟁은 처음일 텐데….’

카단의 활약에 칼리아 역시 머릿속에 담아뒀던 불안감을 지워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었어.’

불안감이 자리 잡았던 곳엔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생겨나 있었다.

“저, 저기 홉 고블린이다!”

그때 병사 하나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의 외침에 성벽 위에 있던 사람들은 동시에 먼 동쪽을 바라봤다.

그곳엔 일반 고블린보다 훨씬 큰 덩치를 지닌 고블린들이 있었다.

외모만 고블린이지 덩치만 보자면 왜소한 오크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

고블린에 이어 덩치 큰 홉 고블린들이 단체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투창병들 대기해!”

“투창병 대기!”

“홉 고블린들이 사거리에 들어오면 곧바로 던져라.”

“네!”

다시 성벽 위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고블린이 끝이 아니었다니.

홉 고블린은 일반 고블린보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몬스터.

성벽 위 병사들은 고블린에 이어서 홉 고블린들을 상대로 수성전을 펼쳐야만 했다.

긴장감이 맴도는 도중에도 카단은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홉 고블린들의 등장이 반갑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옆에서 카단의 미소를 발견한 칼리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 상황에 웃어?’

그녀는 카단의 미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위험해진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걸까?

칼리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카단은 반가운 마음으로 홉 고블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정도면 제법 쓸만한 재료들이군.’

고블린들의 시체들은 욕심이 나지 않았다. 해골 병사로 일으켜봤자 없느니만 못하다.

‘다른 곳에서 써먹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이 전장에서만큼은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그러나 홉 고블린들은 달랐다.

일반 고블린과 다르게 중급으로 지정된 몬스터.

그런 홉 고블린을 전부 언데드로 일으킨다면 이 전쟁은 보다 쉽게 끝날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 도시 마음에 드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