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85화 (85/186)

제85화

회의를 끝내고 숙소에 돌아온 카단은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분명 멧돼지 문신이었어.’

게다가 발렌티나의 손목에 새겨졌던 문신과 똑같이 생긴 문신이었다.

이렇게 빨리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을 만나게 될 줄이야.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어떤 계획이 있는 걸까? 아니면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된 걸까?

그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은 없었기에 마땅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된 거라면 상관없지만….’

사고가 생길 수도 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자꾸만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에스더?’

순간 카단의 머릿속에 졸업반 네크로맨서인 에스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발렌티나도 날 마족으로 만들 생각이었잖아?’

어쩌면 에스더를 마족으로 만들 계획인 건가?

상상이 현실로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지 카단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내가 막아낼 수 있을까?’

루나를 소환한다고 해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었다.

발렌티나처럼 근접 전투에 취약하다면 모를까, 상대는 근접 전투의 달인.

어쩌면 처참하게 패배하여 죽을 수도 있었다. 더 비극적으로 생각해보면 마족이 되어 그들의 수족이 되고 만다.

‘차라리 죽음을 원하게 될지도 모르지.’

발렌티나와 전투 이후로 극적인 발전은 없었다.

꾸준히 수업을 듣고는 있지만, 지금의 카단은 발렌티나와 전투했을 당시와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그의 본능은 가지 말라며 발목을 붙잡았지만, 오지랖이 자꾸만 그의 등을 떠밀었다.

양심일까? 정의감일까?

단정 지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생존 본능이 갈등을 일으켰다.

슥.

이내 무언가 결정을 내린 카단은 아공간을 열었고, 그 안에서 검은색 가면 하나를 꺼냈다.

‘잭 카터 씨에게 받은 선물이 꽤 유용하군.’

카단은 잠시 가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해골 병사 하나를 소환했다.

달그락?

해골 병사는 자신이 왜 방 안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 잘 테니까 창문 밖을 보고 있다가 하얀 머리 여자가 지나가면 깨워.”

카단은 침대 위로 누우며 해골 병사에게 명령을 내렸고.

딱딱!

해골 병사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힘차게 턱을 부딪쳐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달그락.

가만히 창문 밖을 지켜보던 해골 병사가 급히 카단에게 다가가 몸을 흔들어댔다.

뼈로 만들어진 차가운 손이 어깨에 닿는 순간 카단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

긴장하고 있던 탓일까?

아무래도 깊게 잠들진 못했던 것 같았다.

‘이제 출발하는 모양이군.’

카단은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슥.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은 카단은 머리맡에 놓았던 검은색 가면을 붙잡았고.

‘아무 일도 없길 바라야겠군.’

이내 짙은 한숨을 내쉬며 가면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거대한 트라팔가의 성문 앞으로 고블린 로드를 퇴치하기 위한 별동대 5명이 모였다.

“별동대장을 맡은 앤서니입니다. 출발하기 전 간단하게 소개나 하도록 하죠.”

모든 인원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앤서니가 대뜸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가리키며 자신을 소개했다.

“용병 프람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프람도 허리에 매고 있는 창을 가리키며 자신을 소개했고.

“네크로맨서 에스더입니다.”

딱히 무기가 없던 에스더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어서 콜린퍼스 기사단의 궁수 리시타와 마법사 용병 에버릴까지.

총 5명이 자신을 소개했고, 앤서니는 별동대 인원을 확인하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든든한 구성이군요. 이 정도 별동대면 웬만한 전장도 두려울 것 같지 않네요.”

앤서니는 금발의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미소를 지었고, 다른 이들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댔다.

“최대 3일 내로 작전을 끝낼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절망의 평원 근처는 위험지역이라 오래 있을 수는 없거든요.”

“혹시 고블린 로드가 절망의 평원 안쪽에 있으면 어쩌실 생각인가요?”

에스더가 궁금하다는 듯 조심스레 손을 들며 물었고, 앤서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유인해야죠. 저희에겐 궁수도 있고 마법사도 있으며 네크로맨서도 있으니까, 어렵진 않을 겁니다.”

절망의 평원에 들어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도대체 절망의 평원이 어떤 곳이기에 7성 기사인 앤서니마저 들어가길 꺼리는 것일까?

에스더는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서 잘만하면 네크로맨서 최초로 콜린퍼스 기사단에서 영입 제안을 받을 수도 있어.’

차가운 새벽이었지만, 그녀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어서 앤서니는 작전에 관해 설명했다.

한 명씩 다른 임무를 주었고, 전투 시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흠. 이 정도면 설명은 충분한 것 같은데, 이제 출발할까요?”

앤서니의 물음에 별동대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앤서니가 이끄는 별동대는 거대한 성문을 넘어섰다.

며칠 전만 해도 고블린들의 시체로 가득했던 성벽 앞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새 병사들이 시체를 치우고 정리라도 했는지, 전쟁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저기 대장님?”

한참 걸음을 옮기던 에스더는 무언가 궁금한 게 생겼는지 작은 목소리로 앤서니를 불렀다.

앤서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해보라는 듯 손짓했고, 에스더가 목을 가다듬으며 질문했다.

“절망의 평원에서 성벽 근처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하는 방법도 있는데, 왜 이렇게 일찍 출발하는 거죠?”

“흩어진 고블린들이 절망의 평원이 아니라 성벽을 향할 수도 있으니까요.”

최대한 성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앤서니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었다.

“제가 나갔던 별동대 작전이 모두 그랬습니다. 아군의 기지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적과 싸워야 했죠. 아군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서.”

멋지지 않습니까? 앤서니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고, 에스더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에스더 양. 참고로 저도 영웅 아카데미 출신입니다.”

앤서니가 바로 옆까지 다가와 걷고 있는 에스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쉿. 고블린은 귀가 밝으니 작게. 그리고 인사는 아까 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에스더가 얼굴을 붉히며 다시 걸음 속도를 늦춰 앤서니와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앤서니가 피식하고 웃으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앤서니의 눈은 가장 앞서서 걷고 있는 궁수 리시타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문제는 없는 것 같군.’

성문을 빠져나와 꽤 오래 걸음을 옮겼으나, 위협이 될 만한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성벽 너머 드넓은 평원을 지나자, 거대한 숲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깐 정지.”

앤서니가 걸음을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고, 별동대원들이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경계하듯 주변을 살폈다.

“근처에 따로 위협이 될 만한 건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앞서서 걷던 리시타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긴장을 풀어도 된다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그제야 별동대원들은 잠시나마 어깨에 힘을 풀 수 있었다.

“걷기만 했는데도 숨이 막히네요.”

용병 마법사 에버릴이 지친다는 듯 말했고, 옆에 있는 에스더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돼 죽겠어요.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르니.”

그러자 앤서니가 피식 웃으며 마치 도발하듯 에스더에게 말했다.

“영웅 아카데미가 언제부터 생도들을 그렇게 나약하게 육성했지? 세월이 많이 변했나.”

“아, 아닙니다! 멀쩡합니다!”

에스더는 다시 기강이 잡힌 듯 반듯하게 서서 대답했다.

반듯한 자세와 다르게 그녀의 입에서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막내가 긴장하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에버릴과 리시타도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프람만 무덤덤한 표정으로 숲속 너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앤서니는 목을 잠시 가다듬더니, 다시 진중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 숲은 절망의 평원으로 향하는 입구 같은 곳입니다. 뭐가 살고 있는지는 알려진 게 없죠.”

즉 조금 전보다 더 긴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

그 말에 에스더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물론 이 다섯 명이라면 쉽게 전멸하진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대장으로서 책임지고 여러분들을 살려낼 겁니다.”

“네.”

“리시타는 계속 정찰 임무를 해주면 됩니다. 이어서 제가 선두에 설 것이며, 그 뒤로 에스더와 에버릴 두 분이 서도록 하세요.”

“네.”

앤서니가 프람에게 시선을 옮기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프람. 당신은 가장 뒤에서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프람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짓하더니, 이내 허리에 매고 있던 창을 꺼내 들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어떤 놈들이 사는지 구경이나 해보고 싶군.”

프람의 말에 에스더가 고개를 저었다.

“윽. 말이라도 그렇게 하지 마세요. 정말 나타나면 어쩌려고.”

“6성 네크로맨서가 왜 이렇게 겁이 많으십니까? 크하핫!”

프람의 말에 에스더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입을 꾹 다물고는 에버릴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출발할까요?”

어느 정도 정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앤서니가 다시 출발 신호를 내었다.

그렇게 별동대는 절망의 평원으로 향하는 숲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먼 곳에서부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고 은밀하게 숲속을 향해 달려왔다.

‘이제부터는 거리를 좀 줄여도 되겠군.’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카단이었다.

성벽 너머로 평원이 쭉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몰래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거리를 벌려야 했고, 혹시라도 놓칠까 레이스까지 소환해 별동대의 뒤를 밟았다.

그러나 숲속이라면 조금 더 거리를 좁혀도 문제가 없을 터.

카단은 가면을 고쳐 쓰며 다시 땅을 박찼고, 빠른 속도로 숲속을 향해 달려들었다.

***

“고블린 로드를 발견했습니다.”

숲속에 들어서고 2시간이 지났을 무렵, 정찰을 나섰던 리시타가 급히 돌아오며 보고했다.

“거리는?”

수풀 뒤에서 휴식을 취하던 앤서니는 반갑다는 듯 웃으며 물었고.

“이곳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고블린 군단이 캠프를 만들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수는 더럽게 많아요.”

개미 떼처럼 잔뜩 몰려있는 고블린 군단을 떠올린 리시타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고블린 로드의 위치는 파악했겠지?”

“물론이죠. 캠프 중앙 쪽에서 고블린 챔피언들의 보호를 받으며 쉬고 있던데요.”

“고블린 군단도 발견했고, 고블린 로드의 위치도 파악했으니 시간 끌 거 없겠네.”

앤서니는 몸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전은 간단합니다.”

그리곤 별동대원들을 향해 별동대장으로서 명령을 내렸다.

“에스더. 언데드 군단을 일으켜 저들을 습격하세요. 에버릴도 고블린 무리를 향해 신나게 마법을 날리시면 됩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에스더와 에버릴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 리시타. 너는 주변을 감시하며 추가 병력이 없는지 확인한 뒤, 지원 사격 좀 부탁할게.”

“그 정도야 가능합니다.”

리시타 역시 자신만 믿으라며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펼쳐 보였다.

“프람. 고블린 챔피언 정도는 충분히 상대하실 수 있으시죠?”

“챔피언이라고 해봤자 고블린. 몇 마리가 오든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네크로맨서와 마법사가 전투를 시작하면 프람 씨는 저와 함께 곧바로 고블린 로드를 향해 돌격하도록 하죠.”

“그럽시다.”

프람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이내 앤서니가 미소를 그리며 대원들에게 말했다.

“속전속결입니다. 고블린 로드가 죽는 즉시 퇴각할 것이고, 가장 뒤에는 제가 서 있을 겁니다.”

앤서니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자, 별동대원들은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동대원들은 고블린 군단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고.

“에스더 양. 그럼 부탁드리죠.”

앤서니는 시작하자는 듯 손짓하며 에스더에게 명령했다.

“네.”

에스더가 손을 앞으로 뻗자,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흙바닥 안으로 스며들었다.

파악!

이내 해골 병사들이 바닥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고.

달그락! 달그락!

그 수는 점차 늘어나며, 숲속 가득히 뼈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키엑? 키에에엑!

기괴한 소리에 고블린들이 반응하며 별동대원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고.

“시작합시다.”

앤서니의 말과 동시에 용병 마법사 에버릴의 손에서부터 거대한 화염구가 고블린 군단을 향해 던져졌다.

콰아아아아앙!

화염구가 폭발하는 순간, 리시타가 빠르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 활시위를 당겼고.

“갑시다!”

앤서니가 프람에게 외치며 땅을 박찼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고블린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그사이 앤서니와 프람이 빠른 속도로 고블린 로드를 향해 달려갔다.

‘저기 있다.’

거대한 고블린 챔피언들 사이로 고블린 로드가 보였다.

속전속결. 빠르게 치고 빠져야 했기에, 힘을 아낄 필요도 없었다.

스릉!

검을 뽑은 동시에 앤서니는 오러를 활성화했고 그의 검이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죽음의 공포라도 느꼈는지, 고블린 로드는 다가오는 앤서니를 가리키며 소리쳤고.

쿵! 쿵! 쿵!

오크만한 덩치를 지닌 고블린 챔피언들이 무기를 뽑아 들더니 앤서니를 향해 달려왔다.

“프람.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고블린 챔피언들은 신경 쓰지 말고 달리시죠.”

이처럼 든든할 수가 없었다. 최고의 용병 중 하나.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용병이 뒤를 받쳐주다니.

앤서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어차피 나한테 뒤질 거니까.”

그 순간 뒤에서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뭐, 뭐지?’

오싹함을 느낀 앤서니는 곧바로 몸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미친!”

뒤를 도는 순간, 검은 마나를 두른 프람의 창이 앤서니를 향해 내질러졌다.

“커헉!”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피할 수도 튕겨낼 수도 없었다. 이미 뒤를 돌아봤을 때 프람의 창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

어떻게든 몸을 틀어 창을 피해보려 했지만.

“빌어먹을.”

무참하게도 프람의 창은 앤서니의 몸을 관통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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