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86화 (86/186)

제86화

“이게 무슨 짓이야!”

앤서니의 외침에도 프람은 무심한 얼굴로 앤서니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앤서니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원군으로 왔던 용병 프람이 어째서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드높은 명성을 지닌 용병.

그 명성은 모두 거짓이었던 걸까? 아니면 누구의 사주라도 받고 움직이는 걸까?

오른쪽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지만, 당혹스러움에 통증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역시 대단하군. 그 상황에서 급소를 피하다니.”

프람이 히쭉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 곧 죽겠군.”

프람의 말대로 앤서니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오러를 두른 프람의 창이 오른쪽 가슴을 관통했다.

“프람! 이 개자식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지만, 프람은 그런 앤서니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기사의 맹세만 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군.”

“새로운 생명?”

“뭐, 어쨌든 당신은 실패했어.”

프람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짓더니, 한쪽 무릎을 꿇은 앤서니에게 다가왔다.

“네가 원하던 고블린 로드는 저기 있다. 작전만이라도 성공시키고 싶다면 고블린 로드라도 죽이는 게 어때? 그럼 작전은 성공이야.”

“뭐?”

“물론 네가 소집한 별동대는 전멸이고.”

그 말에 앤서니는 분노하며 남은 힘을 쥐어짰다.

그의 몸 곳곳에서 오러가 피어올랐고, 그가 쥐고 있는 검에는 오러가 둘러졌다.

“푸흡!”

그러나 힘을 끌어 올리는 순간, 관통당한 부위에서 미칠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그의 입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넌 죽었다 살아나도 날 못 이겨.”

프람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앤서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동정하는 듯한 프람의 위로에 앤서니는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비참함을 느껴야만 했다.

“무, 무슨 짓을 할 생각이냐!”

“고블린 로드를 부탁드립니다. 별동대장님.”

프람은 앤서니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별동대원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주변에 모인 고블린들이 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마치 호랑이를 만난 토끼처럼 겁에 질린 모습으로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이,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붙잡고 싶지만, 힘을 낼 수가 없었다. 점차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남은 힘을 쥐어짠다고 해서 프람을 붙잡아 둘 수 있을까?

1초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까?

“제기랄!”

아니, 검이 닿기도 전에 프람의 창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으득.

무언가 결심을 했는지 앤서니가 무릎을 꿇은 채 별동대원들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도망쳐라!”

그리곤 오러를 끌어 모아 목소리를 증폭시켰고, 증폭된 그의 목소리가 숲속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끝까지 귀찮게 구는군.”

프람이 짜증이 난다는 듯 걸음을 멈추곤 뒤를 돌아 다 죽어가는 앤서니를 바라봤다.

털썩.

소리를 내지른 앤서니는 힘이 다했다는 듯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기사. 앤서니. 이곳에 비참하게 잠들다.”

프람이 그런 그를 향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분노를 담은 앤서니의 눈빛을 바라보던 프람이 혀를 차며 다시 걸음을 옮겼고.

“빌어먹을….”

앤서니는 프람의 마지막 말처럼 비참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키에에에엑!

프람이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두려움에서 벗어난 고블린들이 슬금슬금 앤서니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치 시체가 되기를 기다리는 까마귀 떼처럼.

몇몇 고블린들은 죽어가는 앤서니를 보며 군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가 고작 고블린에게 죽다니. 빌어먹을.’

분노와 절망 속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소리를 지르는 것도 눈물을 흘리는 것도 아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분노의 끝이 웃음이었나?

슬픔의 끝이 미소를 짓는 것이었을까?

허무함과 비참함 속에 앤서니가 입꼬리를 올렸다.

케르! 케!

무기를 든 고블린들이 앤서니의 목숨을 끊기 위해 천천히 다가왔고.

‘젠장.’

앤서니는 차오르는 비참함에 눈을 감았다.

달그락. 달그락.

그때 어디선가 뼛소리가 들려왔다.

키에엑? 캬아아아악!

이어서 무언갈 발견한 고블린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다시 눈을 떠보니 그의 주변으로 오크 형태의 해골 병사들이 나타나 고블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해골 병사? 설마 에스더 양? 안 돼. 도망치라고 해야 해. 도망….’

어렵게 눈을 뜬 앤서니가 해골 병사들의 주인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려 했다.

고개 한 번 돌리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가만히 계세요.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차가운 목소리. 적의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근심이 섞인 목소리.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목소리의 주인이 다가와 앤서니와 눈을 마주쳤다.

‘가면…?’

검은 옷에 검은 가면을 쓴 남자였다.

“……네크로맨서인가?”

어렵게 내뱉어진 그의 말에 가면을 쓴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후…. 그렇다면 부탁 하나만 하지.”

앤서니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주변에서 해골 병사와 고블린들이 정신없이 전투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부탁 말입니까?”

가면을 쓴 남자. 카단은 씁쓸함을 애써 감추며 되물었다.

그러자 앤서니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내가 죽으면 날 되살려줘. 언데드가 되어도 좋다. 죽은 자가 되어 너의 검이 되어도 좋다.”

힘없이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당신은 기사입니다. 제가 당신을 언데드로 만든다면 당신의 명예 또한 지워지겠죠.”

기사들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고 알려졌다.

“그 녀석을 죽일 수만 있다면, 산자의 명예 따위는 필요 없어.”

왕국 최고 기사단의 기사 중 하나가 지금 그 명예를 놓아버리려 했다.

도대체 왜?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겁니까?”

“책임자니까. 죽어서라도 책임져야 하는 기사니까.”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간절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카단은 씁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의 바람을 이뤄줄 수 있는 자는 카단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앤서니가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렸다.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군.”

그리곤 검지를 이용해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니, 그곳엔 고블린 챔피언을 학살하고 있는 데스나이트가 있었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앤서니를 바라봤다.

“…….”

더는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힘겹게 들썩이던 그의 가슴도 움직임을 멈췄다.

“고생하셨습니다. 앤서니 경.”

초점을 잃은 그의 눈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카단은 조심스레 손을 이용해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 누구도 당신의 죽음이 비참하다고 여기지 않을 겁니다.”

이내 카단의 손에 마나가 깃들기 시작했다.

“위대한 자여… 죽음을 거역하라.”

카록을 일으켰을 때와 같은 주문이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고.

화아아악!

카단의 마나가 빠른 속도로 앤서니의 시체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화륵!

곧바로 앤서니의 시체가 불타올랐다.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녹색의 화염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타오르며 앤서니의 몸을 뒤덮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염 속에서 앤서니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활활 타오르는 녹색의 불꽃은 사그라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군주를 뵙습니다.”

녹색의 불꽃을 휘두른 기사가 기사의 맹세를 하듯 한쪽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자신의 검을 카단에게 건네주었다.

황금빛을 내던 검은 칠흑빛으로 물들었고, 녹색의 화염이 붙어 있었다.

카단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이 사람 얼마나 강했던 걸까?’

데스나이트의 몸과 무기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은 생전의 강함을 뜻한다.

대부분은 오크 데스나이트 카록처럼 갑옷과 무기에만 작게나마 화염이 남아 있어야 했다.

게다가 화염이 남아 있지 않은 데스나이트는 실패작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앤서니. 아니, 눈앞에 데스나이트는 여전히 녹색의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처럼 그 화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부디 당신의 기사로 받아주소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카단이 당황한 사이, 데스나이트가 다시 말을 걸어왔고.

슥.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내민 칠흑빛 검을 붙잡았다.

녹색 화염에 타오르고 있다지만, 뜨겁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카단이 느끼고 있는 건 오로지 강렬한 죽음의 기운뿐.

스릉.

카단은 검을 천천히 들어 검면을 이용해 데스나이트의 머리와 양어깨, 그리고 뺨을 한 번씩 두드렸다.

툭.

“널 영원한 죽음으로 이끌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카단이 다시 데스나이트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데스나이트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군주님을 위해 저는 죽음이 되고 어둠이 되겠습니다. 죽음을 수호하고, 산 자를 경멸하겠나이다.”

***

에스더는 공포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가, 갑자기 왜! 왜 이러는 거냐고!”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는 프람이 서 있었고, 프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히 에스더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에버릴! 정신 좀 차려봐요! 리시타! 리시타 일어나보라고!”

에스더는 겁에 질린 얼굴로 멀리 쓰러져 있는 에버릴과 리시타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두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에스더는 이 상황이 믿어지질 않았다.

고블린 로드를 처리하기 위해 고블린 캠프로 뛰어들었던 프람이 왜 갑자기 돌아온 것일까?

별동대원들이 전투 중인 곳에 나타난 프람은 가장 먼저 나무 위에서 활을 쏴 대는 리시타를 공격했다.

이어서 당황하고 있던 에버릴을 힘껏 발로 차버렸고, 마법사였던 에버릴은 제대로 된 방어도 못한 채 멀리 날아가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프람이 서서히 에스더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고블린들은 왜?’

이상했다. 사람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었던 고블린들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프람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뒤로 물러났다.

“시끄럽군.”

이내 에스더 앞에 도착한 프람이 혀를 찼고, 창대를 휘둘러 에스더의 턱을 후려쳤다.

빠악!

턱을 맞은 에스더는 곧바로 의식을 잃었고, 프람은 한 손으로 기절한 에스더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에스더를 어깨에 두른 뒤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저 녀석이네.”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망의 평원 입구인 이 숲속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

프람은 고개를 갸웃하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고, 이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프람의 시선 끝에는 오렌지 빛 머리칼을 지닌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귀여운 드레스를 입은 아이는 삐딱하게 서서 프람을 가리키고 있었고.

“응. 저 녀석의 손등에도 문신이 새겨져 있더라고.”

그 뒤에는 검은 가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맞네. 마족화가 진행 중이야. 발렌티나랑은 다르게 꽤 많이 진행됐는데?”

“아직 마족은 아니라는 거지?”

“응. 그래도 좀 많이 위험할 것 같은데.”

카단과 루나는 프람이 쳐다보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 서로 대화를 이어갔다.

‘마족화를 알고 있어?’

프람은 그 둘의 대화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건가? 어떻게 알고 있지?’

어차피 고민해봤자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툭.

프람은 둘러업고 있던 에스더를 바닥에 내던졌고, 이내 창을 고쳐 쥐며 카단과 루나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왔다.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프람이 말을 걸어오자, 카단과 루나는 대화를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일단 살려두면 안 될 것 같으니, 처리해야겠군.”

슥.

프람이 뒤로 물러서는 듯 하더니, 이내 땅을 박차고 카단과 루나를 향해 쏘아졌다.

마치 활시위에 튕겨진 화살처럼 그의 창이 빠르게 내질러졌다.

그때.

채애애앵!

어디선가 나타난 검이 프람의 검을 튕겨냈다.

프람은 놀란 눈으로 자신의 공격을 튕겨낸 자를 바라봤고.

“이건 또 뭐야?”

이내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죽었다 살아나도 내가 이길 수 없다고 했었나?”

“뭐?”

앞을 막아선 데스나이트를 보며 프람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너, 너는 설마?”

“죽었다 살아났으니, 결투를 신청한다. 부디 너의 말에 책임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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