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87화 (87/186)

제87화

‘가면을 쓴 놈이 네크로맨서로군.’

프람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데스나이트까지 소환한 거 보면 적어도 5성 이상.’

오랜 세월 용병 생활을 이어온 그가 네크로맨서를 상대하는 방법을 모를 리 없었다.

‘다른 언데드를 꺼낼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거만한 놈이로군. 이 몸을 상대로 데스나이트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건가?’

언데드는 고작 하나.

‘데스나이트는 무시하고 네크로맨서만 죽이면 끝이다.’

마족의 힘까지 사용한다면 이 상황은 빠르게 종료될 것이다.

‘음? 저 꼬맹인 뭐야…?’

그런데 걸리는 것이 있었다.

네크로맨서 앞에 여유롭게 서 있는 10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어이가 없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는데, 여자아이에게서는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

‘뭐,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지.’

프람이 비릿하게 웃으며 거만한 눈으로 데스나이트와 네크로맨서. 그리고 여자아이를 내려다봤다.

‘이 힘만 있으면 날 막을 수 있는 놈들은 없어.’

화악!

곧이어 그의 몸에서부터 검붉은색의 불길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척.

그러자 데스나이트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하며 검을 고쳐 쥐었다.

“이 앞은 지나갈 수 없다.”

“너 맞지? 별동대장.”

프람이 데스나이트를 바라보더니, 히쭉거리며 말을 이었다.

“기사의 명예는 개나 줘버린 모양이군. 언데드가 되어서 당당히 나타나다니.”

“명예보다 중요한 게 있을 뿐.”

분노 섞인 외침이라도 들려올 줄 알았지만, 데스나이트는 무덤덤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하? 살아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 네가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넌 날 지나갈 수 없다.”

화륵!

순간 싸늘한 불길에 휩싸인 검이 프람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채앵!

“이거 봐. 언데드가 되더니 더 약해졌잖아. 명예도 힘도 모두 잃은 거 아니냐?”

가볍게 창을 휘둘러 검을 튕겨낸 프람은 있는 힘껏 땅을 박찼고.

피융!

그대로 빠르게 창을 내질렀다.

콰직!

마족의 힘 덕분일까?

화살처럼 빠르게 쏘아진 창은 데스나이트의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쯧.”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미동도 없었다.

“징그러운 언데드 새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죽음에 관한 공포와 두려움 따위도 느끼지 못하는 자.

“넌 날 이길 수 없다.”

데스나이트의 싸늘한 목소리에 프람은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네크로맨서가 있는 한 데스나이트와 싸우는 건 의미 없어.’

기회를 노린다. 프람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창을 내질렀다.

챙! 채앵! 챙!

불길한 마력을 두른 창과 싸늘한 화염에 휩싸인 검이 몇 번이고 부딪쳐댔다.

그 충격에 주변에 있던 나무가 쓰러지고, 근처를 배회하던 짐승들이 겁에 질려 도망쳤다.

“정말 가만히 있을 거야?”

산 자와 죽은 자의 결투를 바라보던 루나가 카단에게 물었다.

“응.”

“데스나이트 하나로 마족화 된 인간을 쓰러트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맞아. 불가능하겠지. 아무리 불사의 몸이라고 해도.”

7성 기사였던 앤서니가 불사의 몸을 얻어 데스나이트가 되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프람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7성 기사라지만, 살아있을 때의 힘을 절반도 사용할 수 없다.’

불사의 몸과 기사로서 살아온 수많은 경험이 부족한 힘을 간신히 대체하고 있을 뿐이었다.

쓰러트리긴커녕 버티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앤서니는 프람에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만 보고 있는 거야?”

루나가 답답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었다.

“명예보다 중요한 게 있다잖아.”

“그게 뭔데?”

“책임감이겠지.”

“책임감?”

루나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카단은 살짝 고개를 돌려 해골들에 의해 옮겨지고 있는 에스더와 에버릴, 리시타를 바라봤다.

“죽어서라도 책임져야 한다고 하더라고.”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 언데드가 되어가면서 자신의 책임을 지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어떻게 무시할까?

카단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기다려 주려고.”

카단은 양쪽 부자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으며 데스나이트가 된 앤서니를 바라봤다.

‘한을 푸는 것. 그것이 데스나이트가 한 단계 더 강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

“이 빌어먹을!”

프람이 괴롭다는 듯 외쳤다.

‘왜! 왜! 왜!’

분명 언데드가 된 앤서니는 살아있을 때보다 약해져 있었다.

7성 기사의 위엄은 없었으며, 7성 기사만이 보여줄 수 있던 찬란한 오러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쓰러트릴 수 없었다.

마족의 힘을 얻은 그의 공격에도 데스나이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채앵!

어느 순간부터는 앤서니가 프람의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살아있을 때도 이 정도로 강했던 건가?’

아무리 기습이었다지만, 프람은 손쉽게 앤서니를 쓰러트렸었다.

마족의 힘을 사용해 빠르고 확실하게 그의 목숨을 끊어냈었다.

그런데 어째서 살아있을 때보다 약해진 앤서니를 쓰러트릴 수 없는 것일까?

순간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동시에 몸이 무거워졌다.

‘이 빌이먹을 놈이!’

프람의 눈은 데스나이트 뒤로 보이는 네크로맨서를 향했다.

저주.

갈증과 쇠약의 저주부터 시작해 다양한 저주들이 프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슈우욱!

데스나이트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검을 휘둘렀고.

채앵!

프람은 간신히 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분명 기회가 온다. 기다리자.’

프람은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네크로맨서와 데스나이트를 번갈아 바라봤다.

‘네크로맨서만 죽이면 끝이야.’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도 불사의 몸을 지닌 데스나이트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가 없다.

질 것 같진 않지만 이대로 체력을 더 소모했다간 위험한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

‘한 번이면 돼. 딱 한 번.’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데스나이트를 따돌린 뒤 네크로맨서에게 다가가 창을 내지르는 것.

그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그 한 번으로 네크로맨서를 죽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네크로맨서 앞을 지키고 있는 여자아이가 신경 쓰였지만, 상관은 없었다.

‘마족의 힘을 최대한 끌어낸다면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막을 수 없는 힘으로 공격한다면 창끝은 분명 네크로맨서에게 닿을 것이다.

프람은 승리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꾸욱.

이번엔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무게 중심을 아래로 두며 자세를 낮춘 뒤 창끝은 데스나이트를 향했다.

“명예를 저버릴 정도의 각오가 있던 게 아니었나? 고작 이 정도로 날 쓰러트릴 생각이었어?”

척.

그의 도발이 먹혀든 것일까?

데스나이트가 천천히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한 자세를 취하며 검을 고쳐 쥐었다.

“군주시여.”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달려는 것이 아닌 뒤쪽에 있는 네크로맨서를 불렀다.

“말해.”

“실력이 부족하여 이 녀석을 쓰러트리진 못할 것 같습니다.”

복수를 포기하려는 것일까?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데스나이트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팔 하나만큼은 가져오겠습니다. 이후로는 뜻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의지와 확신이 담긴 목소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7성 수준을 넘어선 용병의 팔을 5성 네크로맨서가 소환한 데스나이트가 잘라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팔 하나면 충분해?”

그러나 카단은 조금의 걱정도 없이 되물었다. 가면으로 가려진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 같습니다. 실망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걱정하지 마. 넌 너의 책임감을 지켜라. 난 너의 명예를 지켜주마.”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데스나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카단의 손끝에서 푸른 마나가 흘러나왔고, 마나는 곧바로 데스나이트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은혜는 죽음으로 갚겠습니다.”

화륵!

데스나이트의 몸을 불태우던 녹색 화염이 크기를 키웠다.

“주제를 파악하고 포기하는 줄 알았더니, 뭐 내 팔을 가져가?”

프람은 어이없다는 듯 데스나이트를 비웃으며 말했다.

“죽어서야 쓸 수 있게 되었군.”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프람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혼잣말을 이어갔다.

“몸이 버티질 못하겠지만…. 이 몸이기에 가능한 기술.”

무언가 결심했는지 데스나이트가 자세를 바로 했다.

화륵!

그의 몸을 뒤덮고 있던 녹색 화염이 점차 그의 검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추악함에 영혼을 판 네 녀석의 팔 하나만 가져가더라도 내 죽음이 가치가 있겠지.”

데스나이트 앤서니의 눈에서 붉은빛 안광이 번쩍였고.

타악!

그와 동시에 앤서니가 땅을 박찼다.

‘한 방을 노린 공격은 동작이 커질 수밖에 없지. 그건 언데드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아.’

이 상황에서도 프람은 이성적으로 대처하려 했다.

‘굳이 받아칠 필요도 없지. 피하고 네크로맨서를 죽인다.’

이내 머릿속으로 작전을 세운 프람이 매서운 눈으로 다가오는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데스나이트는 프람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평소처럼 빠르게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한 방을 노린 공격은 동작이 클 수밖에 없었고. 프람은 데스나이트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확신의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놈. 언데드가 되면서 뇌까지 썩어버린 모양….’

서걱!

생각을 끝까지 이어갈 수가 없었다.

“어?”

프람은 헛웃음을 지으며 오른쪽 팔을 바라봤다.

팔이 사라졌다.

‘어, 어떻게?’

프람이 당황한 눈으로 다시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괴상한 갑옷 여기저기가 부서져 있었다. 프람은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는데, 데스나이트의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당당히 프람의 앞에 서 있었다.

“눈속임.”

“뭐?”

“눈속임일 뿐이었다.”

데스나이트는 그렇게 말하더니 천천히 뒤를 돌았다.

척!

그러더니 이를 지켜보고 있던 카단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군주시여. 뒤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불사의 몸을 지녔다지만, 힘을 다했는지, 그의 몸 일부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이지. 그런데… 이제 만족스러워?”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기사 앤서니. 군주님을 위한 죽음이 되어 살아갈 준비를 끝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앤서니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며 충성을 다한다는 듯 예를 갖췄다.

“그래. 그만 쉬도록 해.”

카단은 그를 향해 손을 뻗었고.

스륵.

그와 동시에 데스나이트의 몸이 검은 연기로 변해 카단의 손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검은 연기가 모두 흡수되고 나자, 카단은 자연스레 손목을 들어 확인해보았다.

‘이 세계에서도 문신을 새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도끼 문양의 문신 옆에는 검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카단이 문신을 확인하는 사이, 프람은 팔이 잘린 어깨를 붙잡은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속임수에 당했다고? 내가?’

데스나이트 앤서니는 모든 힘을 검에 집중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은 녹색의 화염이 그의 검을 휘감았다.

그 거대한 불꽃을 보고 있으면 일격필살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큰 공격으로 상처만이라도 남기겠다는 듯한 모습으로 달려들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와 검을 휘두를 때만 해도 데스나이트의 동작은 컸고 빈틈은 가득했다.

뼈를 내어주고 살이라도 가져가겠다는 모습.

프람은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네크로맨서에게 달려갈 생각이었다.

‘그 순간 검에 모아놓은 마나를 폭발시키고, 그 추진력을 이용해 내 팔을 베어낸 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식으로 마나의 흐름을 강제로 틀어버리면 몸이 멀쩡할 수 없을 텐데?’

분명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사용자에게 위험이 큰 기술이었다.

프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데스나이트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이미 데스나이트는 검은 연기가 되어 카단에게 흡수된 이후였다.

그의 시선엔 네크로맨서와 여자아이밖에 보이질 않았다.

‘이 빌어먹을 언데드 새끼!’

분노가 극에 치달았다.

불사의 몸이기에 그렇게 쉽게 몸을 희생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때.

“이제 내 차례지?”

분노하고 있던 프람의 앞으로 여자아이가 짧은 보폭으로 다가왔다.

“응. 힘들면 말해.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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