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88화 (88/186)

제88화

‘이 빌어먹을.’

데스나이트 하나가 사라졌고, 이번엔 범상치 않은 여자아이가 앞을 막아섰다.

프람은 잘린 어깨 쪽을 붙잡은 채 탄식을 내뱉었다.

승산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바로 앞까지 다가와 몸을 풀고 있는 여자아이가 심상치 않았다.

그녀에게 느껴지는 위압감에 몸이 움츠러들었고, 무거워진 공기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죽는다.’

사자와 눈을 마주친 사슴의 기분이 이런 걸까?

마족화가 진행되기 전. 그러니까 인간이었을 때만 느꼈었던 죽음의 공포가 머릿속을 채운다.

몸이라도 멀쩡했다면 모를까, 팔까지 잘린 지금은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도망가야 하나?’

평범한 인간이라면 마족의 힘까지 사용한 자신을 쫓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람의 몸에서 불길한 마력이 뿜어졌고.

타악!

그는 빠르게 땅을 박차며 루나와 카단이 서 있는 반대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풍경이 빠르게 그의 옆을 지나갔다.

확실하게 따돌릴 수 있다는 확신에 프람은 미소를 그렸다.

“어디 가?”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뭣?”

갑자기 루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고, 그대로 마나를 머금은 주먹을 휘둘러 턱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루나의 주먹이 턱을 후려치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고.

“크헉!”

프람은 폭발에 휩쓸려 뒤로 날아갔다.

‘갑자기 뭐야?’

따라잡힌 게 아니라, 추월당했다. 마족의 힘까지 사용했는데 따돌리긴커녕 얼마 도망치지도 못했다.

‘저, 저 꼬맹인 대체 뭔데!’

믿을 수 없는 힘과 속도였다.

루나에게 맞은 턱에서부터 굉장한 통증이 느껴졌고, 뇌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기분.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턱을 제대로 맞아서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루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는 프람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 망할 꼬맹이가!”

창을 지지대 삼아 겨우 몸을 일으킨 프람은 다가오는 루나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까아앙!

그러나 그의 창은 허공에 생겨난 뼈 방패를 후려쳤고.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데.”

루나는 콧방귀를 뀌며 그대로 멈칫하고 있는 프람의 배를 걷어찼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루나는 마나를 머금은 주먹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고, 프람의 몸에선 크고 작은 폭발이 몇 번이고 일어났다.

“커, 커억….”

짧은 신음.

그 유언을 끝으로 프람은 눈을 감았다.

***

‘마족화가 꽤 진행된 상태였던 모양이군.’

죽은 프람의 위로 떠 오른 영혼의 결정.

그 힘을 모두 흡수한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하급 마족이 남긴 영혼의 결정을 흡수했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힘이 흡수되었다.

마나가 회복되는 것은 물론 마나 하트가 한층 더 두꺼워졌다.

“이제 끝이지?”

한층 강해진 마나 하트를 확인하던 도중, 루나가 손을 탁탁 털며 카단에게 다가왔다.

“응. 이제 이 숲을 안전하게 빠져나가기만 하면 돼.”

“숲 밖으로 갈 때까진 같이 가 줄게. 여기 왠지 기분이 좋지 않은 곳이거든.”

루나는 숲을 가리키며 말했고,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저기에서 뭐가 느껴져? 혹시 마족의 힘과 비슷한 건가?”

카단은 절망의 평원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고, 루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런데 이질적이고 불쾌해.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기운이 느껴져.”

“그래?”

카단은 잠시 절망의 평원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더니, 다시 루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루나. 내가 뭔가 알아낸 것 같거든?”

“뭘 알아냈는데?”

“확실한 건 아니야. 그런데 이상해. 마족들이 생도들을 노리는 것 같아.”

마족. 혹은 마족화가 진행되고 있는 인간이 세 번씩이나 생도를 납치하려 했었다.

오크들의 서식지에서 클로제, 루카스, 아라드가 납치될 뻔했으며, 카단도 발렌티나에게 붙잡혀 강제로 마족이 될 뻔했다.

그리고 이번엔 졸업반 네크로맨서인 에스더가 마족화 중인 프람에게 잡혀갈 뻔했다.

생도만 노린다는 게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의심을 놓을 순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어. 그런데 이 번이 세 번째야.”

“이유야 뻔하지.”

그러자 루나가 프람의 시체에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마석을 무조건 인간의 몸에 집어넣는다고 마족이 되는 건 아닐 거야.”

“그러면?”

“마족의 힘을 견딜 만한 뛰어난 육체가 필요하겠지.”

“마족들이 생도들을 마족으로 만들 생각이라는 거야?”

“응.”

루나는 말했다.

마족화가 진행되는 중 마족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한 인간은 하급 마족보다 약한 쓸모없는 마족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네가 말한 그 생도라는 인간들이 마족들의 힘을 견딜 정도로 뛰어난 육체를 지녔다는 뜻이겠지.”

루나는 입술을 실룩이며 말을 이었다.

“마족 놈들 아무래도 인간계를 삼켜버릴 생각인 것 같은데?”

카단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답답한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저, 저기….”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카단은 가면을 고쳐 쓰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카단을 부른 목소리의 주인은 정신을 잃었던 에스더였다.

‘생각보다 빨리 깨어났네.’

카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주변에 있는 해골들을 소환 해제했다.

그리곤 곁눈질로 옆에 있는 루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루나.”

“응?”

“튀어.”

***

다음 날.

“별동대가 돌아옵니다!”

성벽 위에 있던 병사 하나가 성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별동대가 돌아온다!”

“빨리 가서 보고해!”

병사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누군가는 성문 구석에 마련된 작은 문의 자물쇠를 풀고 있었고, 누군가는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어디론가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문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론 트라팔가를 중심으로 지휘관들과 병사들과 왕국 기사단인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들.

그리고 용병들까지.

그들 모두가 별동대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만히 성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컥.

이내 성문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이 열렸고, 그 너머로 익숙한 얼굴들이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고생…했습니다.”

아론은 별동대를 반겨주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려 했지만, 성문을 넘어 온 세 사람을 바라보며 씁쓸한 한숨을 내뱉었다.

작전 수행을 위해 떠났던 별동대 인원은 총 다섯.

그중 7성 기사인 앤서니와 용병 프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론 트라팔가의 씁쓸한 질문에 기사단 궁수인 리시타가 한 걸음 걸어 나와 말해주었다.

“용병 프람이 별동대를 배신했습니다.”

순간 성문 앞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헛숨을 삼켰다.

“배, 배신이요?”

“뭘 위해서인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고블린 로드를 발견한 뒤, 별동대는 곧바로 세워둔 작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고블린 로드를 죽이러 고블린 캠프로 들어갔던 프람이 느닷없이 나타나 별동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리시타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곧바로 보고했고, 이를 들은 아론이 작게 신음했다.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건가….”

이어서 아론이 매서운 눈으로 한곳에 모인 용병들을 바라봤다.

“용병들을 감옥에 가둬라.”

아론의 말에 그의 뒤에 서 있던 지휘관과 병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용병들에게 다가갔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갑자기 왜 우리를!”

무기조차 들고 오지 않은 용병들이 당황하며 외쳐댔다.

그러나 아론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는 병사 하나의 어깨를 붙잡고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용병왕에게 전해라. 왕국과 용병이 척지고 싶지 않으면 최대한 빨리 날 찾아오라고.”

이번 배신이 프람의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지, 용병 길드 혹은 몇몇 무리의 목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용병들을 전부 죽이고 싶은 심정이지만, 무고한 용병까지 죽일 순 없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이상 용병들을 그냥 풀어줄 수는 없었다.

“제기랄! 도우러 온 사람한테 이게 무슨 경우야!”

“설명이라도 제대로 해주던가!”

붙잡힌 용병들이 병사들에게 끌려가며 외쳐댔다.

그러나 아론은 그들을 무시하며 앞에 있는 리시타와 에스더, 그리고 에버릴을 바라봤다.

“정황상 에버릴 양도 감옥에 가둬야 하나, 그대도 피해자인 것 같으니 우선 그러진 않겠습니다.”

아론의 말에 에버릴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시타 경. 그렇다면 프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론의 질문에 곧바로 에스더가 뒤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직 닫히지 않은 문에서부터 시체 하나를 둘러업고 있는 해골 병사들이 성문을 넘어왔다.

툭.

“누가 쓰러트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죽어 있더라고요.”

리시타는 싸늘하게 식은 프람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고, 아론은 이를 악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앤서니 경은?”

질문을 던지는 순간조차도 불안했다. 좋지 않은 대답이 들려올 것을 예상하며 던진 질문.

“정신을 차리고 별동대장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고블린 캠프로 가보니 고블린 로드를 포함한 고블린 군단이 죽어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앤서니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전사한 것 같습니다.”

리시타의 대답에 뒤쪽에 있던 콜린퍼스 기사단원들이 모두 울음을 터트렸다.

“리시타! 그게 무슨 말이야! 앤서니 선배가 왜!”

“리시타, 꼼꼼히 찾아본 거 맞아?”

“우리가 찾아볼게. 직접 찾아봐야겠어!”

앤서니는 기사단 내에서 평판이 좋았던 것일까?

기사단 모두가 슬픔에 젖었고, 결과를 보고하던 리시타 역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려댔다.

참혹한 결과를 보고하던 리시타는 더는 입을 열 수 없을 것 같았다.

“앤서니 경이 고블린 로드를 죽인 건가?”

아론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이번엔 에스더가 답변을 달았다.

“저희를 도와준 자. 아니, 용병 프람을 죽인 자가 고블린 군단까지 처리한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에 아론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고블린 캠프에서 전쟁 규모의 전투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어떤 남자와 여자아이 하나를 봤었습니다.”

“남자와 여자아이?”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해골을 다루는 모습을 봤죠.”

아마도 그가 프람을 죽이고, 고블린 군단까지 쓸어버린 장본인일 것이다.

에스더는 그렇게 말하며 순간적으로 어딘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에는 멀뚱히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카단이 보였다.

‘딱 저 정도 체형이었는데. 머리 스타일도 비슷한 것 같고….’

설마 카단이 프람을 쓰러트리고 고블린 군단까지 처리한 걸까?

‘그럴 리가.’

에스더는 말도 안 된다는 말을 속으로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카단은 고작 4성.

그런 카단이 7성 기사급의 용병을 쓰러트리고, 혼자서 고블린 군단과 전쟁을 벌였을 리 없다.

게다가 카단은 계속 이 성안에 있었을 것 아닌가?

“그 정도 실력의 네크로맨서가 이곳에 있다고?”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정신을 차려서 불러보니, 허겁지겁 도망가더라고요.”

에스더의 말에 아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크로맨서라면 홀로 고블린 군단을 상대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런데 네크로맨서가 용병을 쓰러트린 건 믿을 수 없군.”

과연 누구일까?

누가 고블린 군단을 쓸어버리고 별동대원들 배신자로부터 구해준 것일까?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별동대장은 대장으로서 책임을 다한 모양이군.”

“네. 도망치라는 외침이 유언이 될 줄이야….”

아론이 시선을 옮겨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기사단을 바라봤다.

씁쓸한 듯 혀를 차더니, 아론은 곧바로 옆에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장례식을 준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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