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89화 (89/186)

제89화

유일한 전사자.

기사 앤서니를 위한 장례식.

뿌우우우우-

전사자를 위한 나팔 소리가 들려왔고.

철컥!

늘 닫혀있던 도시 트라팔가의 거대한 성문이 열렸다.

뿌우우우우-

나팔 소리에 맞춰 장례식에 찾아온 이들이 성문 너머로 보이는 고요한 평원을 바라봤다.

시체조차 찾을 수 없던 전사자.

그러나 그 누구도 앤서니를 향해 희생자라 여기지 않았고,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전쟁을 끝낸 영웅.

앤서니는 죽음에 이르고 난 뒤, 그토록 원하던 영웅이 되었다.

저벅, 저벅.

트라팔가의 주인. 아론 트라팔가가 활짝 열린 성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툭.

이내 성문 앞으로 콜린퍼스 기사단의 마크가 새겨진 검과 방패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위대한 영웅 앤서니. 그대의 죽음을 잊지 않겠소. 트라팔가 가문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이어서 별동대원인 에스더와 에버릴, 그리고 리시타가 검과 방패 위로 하얀 꽃을 올려놓으며 묵념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사람들은 슬픔을 담은 감사로 앤서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검과 방패 위로 꽃들이 가득 쌓였고, 성문 앞에는 울음소리와 짙은 한숨 소리만이 맴돌았다.

그리고 성문 너머 평원 어딘가.

멀리서 장례식을 지켜보고 있던 루나가 옆에 있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물었다.

“어때? 자신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기분은?”

데스나이트가 된 앤서니.

투구를 쓰고 있었기에 그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 않습니다.”

앤서니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인간일 때의 감정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젠 그저 군주의 점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자신의 장례식을 바라보면서도 앤서니는 슬픔에 젖는다거나 감상에 빠지질 않았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미련은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덤덤하면서도 후련하게 들려왔다.

“그렇구나.”

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장례식이 펼쳐지는 곳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눈은 카단을 향하고 있었다.

“참 오지랖이 넓단 말이야.”

데스나이트 앤서니가 자신의 장례식을 볼 수 있도록 카단은 몇 시간 전부터 앤서니와 루나를 소환해 평원으로 보내놓았다.

“좋으신 분입니다.”

“너보고 너의 장례식을 보라고 하는 데 뭐가 좋은 사람이야?”

“배려해주시는 겁니다. 살아생전의 인연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라는 뜻이겠죠.”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데스나이트의 투구 안에서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더는 생의 미련이 없습니다. 명예와 책임감을 지킬 수 있었으니, 이제 제가 군주를 지키는 검이 되어야죠.”

데스나이트의 눈에서부터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카단이 강해지면 너도 강해지는 건가?”

“네. 맞습니다. 군주께서 강해지시면 저 또한 강한 힘을 얻겠죠.”

데스나이트는 성장형 언데드였다. 네크로맨서가 강해지면 데스나이트 또한 힘을 얻게 된다.

때로는 전투 경험이 데스나이트를 성장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너도 금방 강해질 수 있을 거야. 검이 되든 방패가 되든 분명 만족하겠지.”

루나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고, 앤서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보이는 카단을 바라봤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고블린 로드가 죽고 난 이후, 성벽 너머로 고블린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정찰 나갔던 대원들이 숲속에서 고블린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무리에서 이탈한 고블린이었으며, 전쟁을 준비하는 고블린 무리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고블린 군단과의 전쟁은 끝이 났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

그 평화 속에서도 병사들은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가 없었다.

“성벽 보수 작업 시작하자!”

“식량 창고 건설에도 인원이 필요하니까 눈치껏 움직여!”

“감시병들만 성벽에 남고 나머진 작업하러 간다! 아래로 이동해!”

그들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을 대비해야 했다.

몬스터들과 전쟁이 끊이질 않는 도시. 이곳은 전쟁이 끝난 직후가 가장 바쁜 곳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아 보였다.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났다.

지켜냈다.

그 사실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그리게 해주었다.

정신없이 바쁜 건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트라팔가의 수뇌부들 역시 며칠째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곳을 돕기 위해 찾아온 용병들을 계속 가둬두실 생각이십니까?”

“앤서니의 장례를 치른 지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용병들 모두가 프람과 같은 범죄자는 아닐 것입니다.”

“이러다가 나중에 용병 길드에 지원 요청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트라팔가 영주성의 회의실.

간부들은 아론 트라팔가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아론은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듯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용병들의 눈치만 보실 생각인가? 이 사건은 이 도시와 용병들. 그리고 왕국 기사단의 문제다.”

아론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안일한 대처를 보인다면 왕국 기사단에 지원 요청서를 넣을 수 없게 되겠지.”

용병 길드의 대표였던 프람의 배신.

즉 함께 온 용병 중에 프람과 같은 배신자가 더 없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가둬두는 게 맞다.

“하지만 영주님.”

“누가 위험한 자인지도 모르는데, 그런 자들을 도시에 풀어놓을 수는 없지.”

프람과 같은 목적을 지닌 자가 남아있다면, 언젠가 다시 한번 위험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회의장 안을 둘러봤다.

그 태도는 확고했고, 회의장 안에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회의장이 조용해지자, 아론은 씁쓸한 듯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용병들을 감옥에 가두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나타났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사단은 앤서니의 죽음을 용병들의 책임이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을 거다.”

즉 용병들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는 감옥이었다.

“두 집단이 맞붙는다면 우리도 좋을 게 없어. 지금은 이렇게라도 떼어내야 한다.”

그러자 몇몇 간부들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앤서니의 장례가 끝난 지 보름.

그러나 콜린퍼스 기사단은 여전히 도시에 남아있었다.

용병 길드의 책임자가 나타나 진상을 규명할 때까지 이곳에 머무를 것 같았다.

“그렇지만 용병 길드와 척지게 되면 좋을 게 없습니다.”

“왕국 기사단과 척지게 되면 좋을 건 있고?”

하필 지원 병력 중 가장 큰 두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론 트라팔가도 침착 말을 전하고 있었지만, 그의 속은 문드러져만 갔다.

“이건 흉악한 범죄다. 용병왕이 직접 이 일을 해명하고 사죄해야만 끝이 날 수 있어.”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어댔다.

아무도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틀린 말도 없었거니와, 어느 정도 이해도 됐다.

“그런데 정말 용병왕이 올까요?”

그러나 도시를 돕기 위해 찾아온 용병들을 계속 가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용병들을 가둔 이유는 또 다른 범죄자가 도망갈 것을 막기 위함이고,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하지 않게 학기 위함이다.”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이 일을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선 용병들을 풀어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영웅 아카데미 생도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별동대원이었던 생도는 이곳에 남아있어야겠지.”

그녀 역시도 용병 길드로부터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만 했다.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생도들의 의견을 물어본 후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트라팔가 기사단의 훈련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카단은 여전히 도시 트라팔가에 남아있었다.

가만히 일이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는지, 그는 트라팔가 기사단의 훈련장을 빌렸고, 며칠 동안 홀로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카단.”

잠깐 휴식을 취하는 사이, 입구 쪽에서 칼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리아? 무슨 일이야?”

“오랜만에 어때?”

칼리아는 목검들이 걸려 있는 곳을 가리키며 물었고, 카단은 잠깐 고민하듯 입을 다물었다.

“교관님도 없는데?”

“정식 대련을 하자는 게 아니라 훈련을 하자는 거야.”

“그럼 나야 고맙지.”

홀로 훈련하는 것도 따분해지던 참이었다.

카단은 방긋 웃으며 목검들이 진열된 곳을 향해 걸었고, 이내 단검처럼 짧은 형태의 목검을 쥐었다.

“역시 단검이네?”

“뭐, 이게 제일 손에 익으니까.”

그 대답에 칼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검과 비슷한 길이의 목검을 꺼냈다.

간단한 대련.

교관이 없다지만, 상대가 칼리아라면 사고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시작할까?”

카단을 마주 보고 선 칼리아가 자세를 취하며 물었고.

슥.

카단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해.”

타앗!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칼리아가 땅을 박차며 카단에게 달려갔다.

‘4성이 되니까 더 빨라졌네.’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굉장항 속도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칼리아가 사선으로 목검을 휘둘렀고.

따아악!

카단은 자연스레 목검을 이용해 그녀의 목검을 흘려보냈다.

아무리 칼리아가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다지만, 4성 검사의 검을 이렇게 쉽게 흘려낼 줄이야.

칼리아는 놀랐다는 사실을 감추며 다시 공격을 이어갔다.

따악! 따아아악!

빠르고 변칙적인 공격에도 카단은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휴식기 사이에 단검술 실력도 늘었어. 어떻게 반응 속도가 이렇게 좋아질 수 있는 거지?’

검을 직접 부딪치고 있는 칼리아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순간이지만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암살자와 싸우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카단.”

칼리아가 목검을 휘두르며 카단을 불렀고.

따아악!

카단은 그녀의 공격을 어렵게 튕겨내며 눈을 끔뻑였다.

“왜?”

“보름 전에 어디 갔었어?”

따악!

카단은 이어진 공격을 튕겨내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보름 전?”

“응. 별동대가 성문을 나선 날.”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칼리아가 다시 거리를 좁혔고, 카단은 이를 악물며 다시 그녀의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그날 방에 찾아가 보니까 없던데? 어디 갔었던 거야?”

순간 카단은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람의 손등에 있던 멧돼지 문신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칼리아를 깜빡했군.’

에스더와 별동대가 걱정되어 무작정 그들의 뒤를 따랐으나, 칼리아를 깜빡하고 말았다.

“외진 곳에서 수련 좀 했어.”

카단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네크로맨시 훈련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하는 버릇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성벽 안에서 언데드를 보는 것을 좋아할 것 같지 않아 숨어서 훈련했다.

카단은 그렇게 설명하며 칼리아의 검을 피해 뒤쪽으로 물러났다.

슥.

곧바로 달려들 줄 알았던 칼리아는 목검을 든 손을 축 늘이더니, 차가운 시선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카단.”

칼리아는 헝클어진 머릿결 사이로 카단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른 매서운 눈빛에 카단은 잠깐 당황했고,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이어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칼리아는 평소와 다른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가면을 쓴 네크로맨서. 너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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