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90화 (90/186)

제90화

겨울이 지난 지 한참이었지만, 어쩐지 싸늘한 기운이 훈련장을 가득 채웠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짧은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카단이었다.

“성벽 너머에서 별동대를 구하고 용병 프람을 죽인 네크로맨서. 그거 너 맞지?”

칼리아는 무언가 확신한 듯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카단을 보며 재차 물었다.

‘뭘 알고 말하는 건가?’

괜히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꺼림칙한 기분.

그러나 카단은 당황스러움을 표현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7성 기사급인 프람을 죽이고 별동대를 구했다고?”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마족의 힘을 얻은 프람은 7성 이상. 아무리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라고 해도 이기는 건 불가능해.’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았다.

4성 네크로맨서가 7성급 용병을 이기는 건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앤서니가 데스나이트가 되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니었다면 아무도 구할 수 없었겠지.’

데스나이트 카록, 플래시 골렘, 루나까지 동원한다고 해도 프람을 죽이긴 힘들었을 것이다.

7성 기사였던 앤서니는 자처해서 데스나이트가 되었고, 그는 최상급 데스나이트로 되살아나 프람의 한쪽 팔을 날려버렸다.

‘아무리 루나라고 해도 프람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못 이겼겠지.’

앤서니가 아니었다면 카단이 마족의 힘을 얻은 프람을 이기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기적이라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에 카단은 더욱더 뻔뻔하고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있었다.

칼리아 역시 카단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이 안 되긴 해.’

카단이 7성 기사급의 용병을 죽인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는 듯했다.

“그날 새벽. 네가 방에서 나가는 걸 봤어.”

잠시 멈칫했던 칼리아가 추궁하듯 말했다.

“잘못 봤겠지. 그날 아침 일찍 나간 건 사실이지만, 성문을 넘어간 적은 없어.”

카단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작 4성인 내가 7성급 기사랑 싸웠다면 이렇게 몸이 멀쩡한 건 말이 안 되지 않아?”

하긴. 카단의 몸은 너무나 멀쩡했다.

7성급 용병과 전투를 벌였다면 카단의 몸은 상처로 가득했어야 했다.

아니, 죽진 않더라도 어디 하나 부러지거나 잘렸어야 정상.

“직접 확인해 봐. 내 몸에 상처가 있는지.”

카단이 당당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하자 칼리아의 얼굴에 조금씩 망설임이 담겼다.

‘심증만 있을 뿐, 명확한 증거가 없다.’

칼리아는 입을 꾹 다물며 카단을 살폈다.

‘분명 그날 성문으로 향하는 카단은 가면을 쓰고 있었어.’

그러나 가면 얘기까진 꺼내지 않았다. 칼리아는 침묵했고,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카단의 진짜 정체가 뭘까?’

아무래도 카단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말해주지 않는 한 칼리아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의문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실례했어. 미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대련이나 이어서 하자.”

칼리아는 다시 자세를 취했고, 카단도 고개를 끄덕이며 단검을 고쳐 쥐었다.

“아, 그리고 실력이 꽤 좋아졌어. 단순한 무기술만으로는 동기 중에 중상급이야.”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데?”

“누구의 도움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방어 실력이 상당히 늘었어.”

“너도 전보다 공격이 더 날카로워졌어. 꾸준히 훈련하지 않았다면 이미 난 쓰러졌을걸?”

대련을 이어가기 전, 칼리아가 느닷없이 칭찬을 던졌다.

이유야 알 수 없었지만, 카단 역시 대련 하며 느꼈던 소감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번엔 속도를 더 높여볼게.”

“더 빨라질 수가 있다고?”

“나도 다 보여준 건 아니니까.”

칼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땅을 박찼고.

따아아아악!

목검과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훈련장을 가득 채웠다.

‘수상한 녀석이야. 도대체 정체가 뭐지?’

‘칼리아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어.’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목검을 휘둘렀다.

***

다음 날이 되어 에스더가 카단과 칼리아를 불렀다.

지원군 전용 숙소 앞에 모인 세 사람은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고, 칼리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배.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칼리아의 시선이 에스더의 턱 끝을 향했다.

“멍 아직도 심하지? 생각보다 오래가네. 그래도 아프진 않아. 어지러운 것도 사라졌고.”

에스더의 턱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프람이 창대를 이용해 에스더의 턱을 후려치며 생긴 멍이었다.

“죽지 않고 멍만 남았으니 다행이지. 진짜 그 네크로맨서 아니었으면 난 죽은 목숨이었어.”

에스더가 무언가 떠올리듯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선배님. 갑자기 왜 저희를 부르셨어요? 이렇게 일찍부터.”

그러자 카단이 자연스레 말을 돌렸다.

“아! 다름이 아니라.”

그 말에 에스더가 무언가 생각난 듯 급하게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슥.

그녀는 주머니에서 두 장의 양피지를 꺼냈고, 곧바로 카단과 칼리아에게 양피지를 건넸다.

“영주님이 너희는 아카데미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셨어.”

그 말에 칼리아가 눈을 끔뻑이며 에스더를 바라봤다.

“네? 그럼 선배님은요?”

“난 아무래도 아직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이곳에 남아있어야 할 것 같아.”

아직 사건이 종료되지 않았다.

용병들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었고, 기사들은 울분을 삭이며 도시에 남아있었다.

사건의 피해자인 에스더 역시 이 도시를 마음대로 떠날 수 없는 상황.

“너희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잖아. 어차피 여기 남아있어 봤자 얻을 것도 없고.”

전쟁이 없는 한, 영웅 아카데미 생도에게는 이곳에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벌써 보름이나 있었잖아? 수업을 몇 번이나 빼먹은 거야? 아까워, 아까워.”

에스더는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다른 사람들한테 굳이 인사하고 떠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다들 정신없고 예민해서 인사 받아줄 시간이 없을걸?”

“하지만….”

텔레포트 마법이 담긴 마법 스크롤을 건네받은 칼리아가 망설이듯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에스더를 혼자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넌 생긴 것과 다르게 참 정이 많은 아이구나?”

그 모습에 에스더가 괜찮다고 웃으며 칼리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정말 괜찮으니까 어서 가서 수업이나 들어.”

에스더의 말에 카단과 칼리아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사건이 종료되면 나를 통해서 따로 임무 보상을 주실 테니까,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식사나 같이하자.”

카단과 칼리아는 에스더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선배님.”

“카단. 너랑은 좀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아쉽네.”

“아카데미로 돌아오시면 그때 대화하면 되죠.”

“그래. 우린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까. 자, 어서 짐 챙겨서 가. 나도 좀 더 쉬러 갈래.”

그 말을 끝으로 에스더는 손을 흔들었고, 카단과 칼리아는 짐을 챙기기 위해 곧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

아카데미로 돌아온 카단과 칼리아는 곧바로 크리스 교관에게 트라팔가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크리스 교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순간 카단은 크리스 교관이 앤서니와 같은 콜린퍼스 기사단 출신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기사단의 후배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크리스 교관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앤서니. 그 녀석은 내 기사단 후배라기보다는 제자라고 해야겠지. 너희들의 선배기도 하고.”

그 말에 카단과 칼리아가 놀란 얼굴로 크리스 교관을 바라봤다.

“녀석도 영웅 아카데미 출신이다.”

크리스 교관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설마 이렇게 제자를 먼저 떠나보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리 위험한 일을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떠날 녀석이 아니었는데.”

가디언의 자리까지는 노려보지 못하더라도 기사로서 넘치는 재능을 지녔던 자.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크리스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 일은 내가 보고하도록 할 테니, 너희들은 이만 돌아가 쉬도록 해라. 참고로 임무에서 돌아온 날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크리스 교관이 카단과 칼리아의 어깨를 한 번씩 두드리곤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앤서니가 아카데미 선배였다니.’

그런 앤서니를 데스나이트로 들인 카단은 왠지 마음이 불편한 것 같았다.

불편하다고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카단.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난 오전 수업은 빼고 오후 수업만 들을 생각인데.”

“나도 그러려고.”

“그럼 숙소로 돌아갈 건가?”

칼리아는 갈 거면 어서 가자는 듯 손짓했고, 카단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전에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 먼저 가봐.”

“그래? 알겠어.”

“고생했어. 칼리아.”

“너도.”

전날 밤, 카단을 의심했던 칼리아가 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카단을 대했다.

그 어떤 의심도 담기지 않은 평온한 모습.

‘가면 없었으면 정체가 들통날 뻔했네.’

카단은 멀어지는 칼리아를 바라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고.

‘뭐, 앞으로도 계속 조심해야지.’

이내 카단이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카단이 도착한 곳은 졸업반 교관들의 휴게실이었다.

“카단? 어쩐 일이에요?”

카단이 휴게실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발견한 벨리드 교관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다가왔다.

“마침 계셨네요.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그러자 벨리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카단을 향해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까, 따라올래요? 듣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얘기겠죠?”

“네.”

카단의 의도를 파악한 벨리드는 곧바로 졸업반 전용 훈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수업 시간이었기에 훈련장은 모두 비어있었다.

“이쯤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괜찮죠?”

“네.”

“듣기론 임무에 다녀왔다고 하던데? 도시 트라팔가. 맞죠?”

“네. 고블린 군단과 전쟁을 치르고 왔습니다.”

카단이 무덤덤하게 대답하자, 벨리드 교관이 효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무슨 전쟁 치르고 온 사람이야. 피부가 더 좋아진 거 같은데요?”

벨리드 교관이 피식 웃으며 말했고, 카단은 아니라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제 본론을 얘기해볼까요? 무슨 할 말이기에 임무 다녀오자마자 날 찾아왔어요?”

벨리드의 질문에 카단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이내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망자의 기억 속에서 봤던 문어 문신과 비슷한 문신을 한 사람을 봤습니다.”

순간 벨리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떤 문신이었죠?”

“문어 모양의 문신은 아니었어요. 멧돼지 문신이었는데, 뭔가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죠?”

순식간에 굳어버린 얼굴.

벨리드는 차가운 얼굴로 추궁하듯 질문을 던졌고.

“죽었습니다.”

카단은 무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설마 카단이 죽였어요?”

“아뇨. 그 문신이 있던 사람은 7성급 용병이었어요.”

카단은 별동대 사건에 관해 짧게 요약해 전달했고, 그제야 벨리드가 긴장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게다가 앤서니라면 이곳의 생도였는데.”

그녀도 앤서니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차갑기만 하던 얼굴에 점차 슬픔이 묻어났다.

“그런데 카단. 이걸 왜 저한테 얘기해주는 거죠?”

다시 벨리드가 표정을 바꿔 물었다. 이번엔 의심이 가득한 눈빛.

카단은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문신과 관련된 일이라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그 문신에 관해 아는 건 교관님뿐이었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신한 자를 쫓는 것을 보면 벨리드 만큼은 마족과 관련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문신을 한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신뢰할 수 있는 자와 정보를 공유하는 게 좋을 것이다.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벨리드에게 프람의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카단.”

잠깐 침묵하던 벨리드 교관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카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당신이 7번인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