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네? 7번이요?”
카단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살펴보던 벨리드 교관이 순간 아차 하며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카단이 모르는 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벨리드가 무슨 의미로 물어봤는 지 모르는 듯한 순진무구한 표정.
아무리 봐도 벨리드가 말하는 ‘7번’과 카단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싶었다.
“아무튼. 굳이 문신을 한 사람을 찾아다니지 마세요. 위험하니까.”
벨리드 교관은 다시 표정을 바꾸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
“오지랖이 넓은 건 알겠는데, 이건 진짜 위험해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고 해도 아직 4성이잖아요?”
벨리드 교관은 카단과 그 어떤 정보도 공유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카단이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들을 사람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경고는 해야겠네요.”
그 말에 카단은 속으로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말대로 카단은 문신을 한 자들을 찾는 걸 멈출 생각이 없었다.
마족화가 진행되는 사람들.
어쩌면 샬로트 잉그마르를 죽인 자들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가디언 중에도 마족화가 진행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샬로트 잉그마르가 죽어야 했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마족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문신을 한 자들을 찾아 저도 나름대로 수소문 중이긴 해요. 그러니 카단은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생도로서 사세요.”
벨리드는 그렇게 말하며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분명 경고하기 위해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카단은 그 경고에 조금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오지랖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자꾸만 벨리드 교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비슷한 일이 있거나 문신을 한 사람을 본다면 보고드리겠습니다.”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잠깐 입을 다물었던 벨리드가 고개를 휙 돌리며 대답했다.
그녀 역시 정보가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카단이 걱정되어 그러라고 했던 것일까?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생각이잖아요?”
“괜한 오지랖이라고 해두죠.”
***
네크로맨서 강의실.
여느 때처럼 홀로 강의실에 앉아 있는 카단은 무언가 고민을 하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카데미를 다니면 안정적으로 강해질 수 있지만, 발전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어.’
아카데미를 더 다녀야 할까?
아카데미 입학 후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 인연들 덕분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고, 빠르게 약점이 보완되었다.
‘운이 좋아서 하급 마족만 만났을 뿐이지, 중급 이상의 마족을 만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
하급 마족 정도야 이제는 데스나이트만으로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족이 된 인간들도 문제야.’
마족화 중인 인간들도 강적이었다. 프람처럼 7성급의 인간들이 마족의 힘까지 얻는다면 그 강함은 하급 마족 이상.
어쩌면 중급 마족보다 강할 수도 있었다.
앞으로 그런 자들과 마주하게 된다면.
‘결국엔 죽겠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더라도 힘의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면 카단은 죽고 말 것이다.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선 영혼의 결정을 찾아다니는 게 답인데….’
앞서 경험했듯 영혼의 결정을 흡수해 힘을 키우는 것이 빠르게 성장하는 방법이었다.
안정적인 성장이 목표라면 아카데미에 남는 것이 맞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곳을 떠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했다.
‘기초는 충분하니까.’
아이작 교수를 만난 후 효율을 찾을 수 있었고, 단검술을 단련하며 미약하게나마 약점을 극복했다.
샬로트 밑에서 배웠던 기초.
아카데미에서 배운 효율.
선배와 동기의 도움으로 극복한 약점까지.
과연 이곳에서 더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뭐, 급하게 결정할 건 없지. 아직은.’
물론 당장 큰 위기가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대비하고 싶었을 뿐.
“카단.”
생각이 이어지던 중, 강의실의 문이 열리며 아이작이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카단이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인사를 건넸고, 아이작은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임무에 관한 얘기는 들었습니다. 고생이 많았겠군요.”
크리스 교관에게 얘기를 들었는 지, 그는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임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세한 얘기 좀 해주시겠습니까?”
“네. 우선 고블린 군단과 전투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카단은 칼리아, 에스더와 함께 수성전을 펼치던 것을 시작으로 도시 트라팔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부 들려주었다.
당연하게도 가면을 쓰고 별동대를 구하러 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굳이 정체를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
“다친 곳은 없습니까?”
카단의 보고가 끝나자, 아이작의 눈이 카단의 몸을 살폈다.
걱정할 것도 없었다.
성벽 위에서 해골 군단만으로 전투를 치렀기에 그의 몸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아이작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깐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내 다시 카단을 바라보던 아이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에스더는 좀 어떤 것 같습니까?”
“별동대 작전에서 프람에게 맞은 뒤 턱에 멍이 들었습니다.”
“쯧….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군요. 그렇다면 정신은 좀 차린 것 같습니까?”
“아뇨. 아직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시 트라팔가를 떠나기 전 만났던 에스더는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다.
‘애써 괜찮은 척하는 거였지.’
그러나 카단은 그녀가 선배이기에 괜찮은 척 후배들 앞에서 웃음을 보였다는 걸 눈치챘다.
웃음을 지었을 때 미세하게 떨리는 입가. 어색하게 감기는 눈.
가려지지 않는 불안의 징조들을 보곤 그녀의 거짓을 파악해냈다.
“별동대에서 복귀한 후 며칠 동안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숨어서 우는 걸 몇 번 봤습니다.”
“아무래도 힘들겠지. 그런 일이 있었으니.”
아무리 영웅 아카데미 생도라고 하더라도 사람이다.
극심한 공포. 죽음을 떠올릴 정도의 상황을 마주한다면 정신적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고작 보름 쉬었다고 정신적인 충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닐 테니.’
몸의 상처는 아물어도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 법이니까.
카단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아이작을 바라봤다.
아이작 역시도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둘밖에 없는 네크로맨서. 그 둘 중 하나가 사건에 휘말렸다고 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고는 잘 들었습니다. 고마워요. 카단.”
언제까지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아이작은 교수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다시 강단 위로 걸어가며 자상한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이제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강단에 선 아이작이 카단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휴식기 동안 4성 네크로맨서의 전투법을 연구하고 연습했을 테니, 오늘부터는 5성 네크로맨서의 전투법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죠.”
아직 에스더를 걱정하는 감정이 남아있는 듯했으나, 그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체 교수로서 집중하려고 했다.
“제가 강조했던 네크로맨서의 생존법. 말씀해보시겠습니까?”
“지금의 수준에서 최고의 효율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5성 네크로맨서가 된 이후로는 어떤 효율을 찾아야 할까요?”
“하급 언데드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작이 가르친 약한 네크로맨서의 생존법은 하급 언데드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었다.
해골 하나하나 재능을 살펴야 했고, 해골 병사 중에서도 정예를 선별하는 것.
그것이 여태껏 이어졌던 아이작의 가르침이었다.
확실히 아이작의 가르침은 도움이 되었다.
쓸데없이 많은 해골 병사를 소환해봤자 네크로맨서 혼자 그 많은 해골을 지휘할 수도 없을 것이며, 마나 소모도 심각하다.
그러나 해골 병사의 수를 줄이고 정예만을 선별해 지휘한다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도가 줄어들었다.
“맞습니다. 왜 하급 언데드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야 하는 지 그 이유까지 말씀해보시겠습니까?”
“데스나이트를 소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단의 대답은 서슴없었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
카단은 그 여유를 유지하며 대답을 이어갔다.
“데스나이트가 지휘관이 되어 언데드 군단을 통솔할 테니까요.”
“역시 기본 지식도 탄탄하군요. 맞습니다. 5성이 되어 데스나이트를 소환한다면 여태껏 카단이 해왔던 일을 데스나이트가 대신할 것입니다.”
카단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 지 아이작의 얼굴엔 진심 어린 미소가 걸렸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질 아이작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데스나이트는 개인적인 능력도 뛰어나지만, 군단을 이끌 때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데스나이트가 될 수 있는 시체의 조건 중 하나는 통솔력이었다.
즉. 생전에 한 무리 이상을 이끌어본 경험이나 재능이 있어야만 데스나이트로 되살릴 수 있었다.
카단의 두 데스나이트만 봐도 그러했다.
오크 부대를 이끌었던 오크 챔피언 카록.
콜린퍼스 기사단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을 이끌었던 7성 기사 앤서니.
그 둘 모두가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 동시에 통솔력을 지니고 있었다.
“네크로맨서가 뛰어난 통솔력을 지녔다고 해도 군단을 직접 이끄는 건 비효율적이죠. 그 이유는 뭘까요?”
“생전 통솔력을 활용했던 데스나이트들에게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일 테니까요.”
술술 나오는 대답에 아이작 교수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리 군단을 이끄는 것에 재능이 뛰어나다고 한들, 직접 군단을 이끌어본 경험자들보다 뛰어날 수는 없습니다.”
5성 네크로맨서가 아무리 뛰어난 통솔력을 지녔다고 해도 데스나이트들의 통솔력에 비하면 어린애 수준일 것이다.
“5성이 되었을 때부터 군단의 실질적인 지휘권은 데스나이트에게 맡기고 네크로맨서는 총사령관으로서 전투의 흐름을 지켜봐야 합니다.”
총사령관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전투의 흐름에 따라 필요한 마법을 적절히 사용해주고, 적에게 저주를 걸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
죽은 병사들을 다시 되살리며, 전장의 흐름을 뒤바꾸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뭐, 여기까진 일반적인, 그리고 정석적인 네크로맨서의 이야기였습니다.”
아이작 교수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인 카단은 그들과 달라야겠죠.”
무슨 말일까?
일반적으로 네크로맨서들은 5성 전까지는 음지에 숨어 살며 실력을 키운다.
그러나 아카데미에 입학한 순간부터 활동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는 카단은 다른 네크로맨서들과는 달라야 했다.
약한 네크로맨서의 생존법이 필요했고, 아이작은 ‘최고의 효율’이라는 가르침으로 카단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5성 네크로맨서부터는 정석대로 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점이 있는 건가?’
그런데 5성이 된 이후에도 다른 네크로맨서와 다를 수 있다는 걸까?
“카단이 생각할 때 카단은 다른 네크로맨서와 무엇이 다릅니까?”
여태껏 술술 대답하던 카단의 입이 꾹 닫혔다.
과연 정석대로 성장한 네크로맨서와 지금의 카단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
‘마족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는 걸 말할 수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카단이 침묵하자, 아이작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바로 저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뻔뻔한 소리일까?
물론, 아이작이 대단한 사람이긴 했다. 샬로트의 뒤를 이어 가디언이 된 네크로맨서이자, 왕국 최고 자리에 있는 네크로맨서.
그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정석대로 성장한 네크로맨서와 크게 다를 건 없을 것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엄청나게 특별하다곤 못 할 것 같은데.’
카단이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다른 네크로맨서들은 모르는 특별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뜻입니까?”
그 질문에 아이작이 미소를 지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단. 3성 네크로맨서의 가장 강한 언데드가 뭐라고 했죠?”
“플래시 골렘입니다.”
“그렇다면 5성 네크로맨서의 가장 강한 언데드는 무엇일까요?”
“데스나이트… 아니, 설마?”
아이작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특별한 플래시 골렘을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이번엔 데스나이트를 특별한 방식으로 탄생시켰다는 것일까?
“뭐, 데스나이트를 플래시 골렘처럼 새롭게 탄생시키는 방법을 찾아낸 건 아닙니다.”
카단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아이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카단은 눈조차 끔뻑이지 못한 채 아이작을 바라봤고, 아이작은 여유롭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시적이지만, 데스나이트를 한 단계 더 강화할 수 있는 법을 찾아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