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카단이 5성이 된다면 그 네크로맨시를 알려드리도록 하죠.”
이어진 아이작의 말에 카단이 헛웃음을 삼키며 물었다.
“언데드 전용의 버프 마법이나 네크로맨서의 마나를 공유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내셨단 말씀입니까?”
5성 네크로맨서부터는 언데드의 능력을 강화하는 버프 계열의 네크로맨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언데드에게는 마나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를 강화하는 일반적인 방법.
그런데 다른 방법이 있다고?
“이 네크로맨시는 단순한 강화 마법이 아닙니다. 언데드를. 아니, 정확히는 최상급 언데드를 한 단계 더 강해지게 하는 마법이죠.”
카단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강해진다는 말씀이십니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제가 찾아낸 이 네크로맨시는 5성급 데스나이트를 6성급의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주죠.”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역사의 획을 그을 정도로 대단한 발견일 것이다.
“이 네크로맨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저 말고는 없을 겁니다.”
그는 마탑을 포함한 그 어느 곳에도 이 네크로맨시를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아이작만이 지닌 그만의 특별한 기술.
‘굳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 필요는 없었겠지. 노력 끝에 찾아낸 그 네크로맨시가 지금의 교수님을 만들었을 테니.’
남들과 다른 방식의 성장을 찾아낸 것은 치열한 네크로맨서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아이작 교수만의 생존법이었다.
굳이 그 특별한 네크로맨시를 남들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제게 이런 특별한 네크로맨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남들은 그저 제 언데드가 특별하다고만 생각하더군요.”
순간 카단은 의문이 들었고, 조심스레 아이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특별한 것을 왜 저에게 가르쳐주시려고 하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카단의 질문에 아이작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자가 죽을 뻔했으니, 스승의 가르침도 발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스더가 죽을 뻔했다는 소식에 아이작의 마음이 변한 것이었다.
“단순한 효율만 가르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더군요.”
아이작이 너그럽게 웃었다. 씁쓸하면서도 슬픔에 잠긴 웃음.
“저보다 제자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건 보고 싶지 않더군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모든 걸 가르쳐주기로.”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차마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대신 카단은 다른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교수님. 남들과 다른 방법. 특별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그는 다른 네크로맨서와 다른 길을 걸으려고 한 것일까?
어떻게 하다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특별한 네크로맨시를 찾아낸 것일까?
알고 싶었다. 어떤 욕구가 그를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했는지.
“저는 천재가 아니었으니까요.”
아이작 교수가 평온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뛰어난 재능도 없었고, 성장 속도도 빠른 편이 아니었습니다.”
속히 천재라고 불리는 재능을 타고난 이들에 비하자면 너무나 초라한 재능.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성장해봤자 타고난 자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죠.”
재능이 뛰어난 자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또 뛰어넘기 위해선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전 빠른 발전보다는 생존을 위한 최고의 효율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타고난 이들을 뛰어넘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발걸음을 연구실로 향하게 했다.
“연구 끝에 찾아낸 첫 번째 특별함은 플래시 골렘이었습니다.”
아이작은 일반적인 플래시 골렘과는 다른 자신만의 플래시 골렘을 만들어냈고, 그때부터 그의 명성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긴 시체들이 뭉쳐져 만든 고기 방패가 아닌 전투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골렘을 만들어내셨으니.’
그 플래시 골렘의 효과를 카단 역시 받고 있었다.
아직 성장이 더뎠기에 제대로 활용하고 있진 못했으나, 꾸준히 성장시킨다면 언젠가 플래시 골렘의 도움을 받는 날도 올 것이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질 아이작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5성이 되었을 때 또다시 현실의 벽을 마주쳤죠. 3성이 되었을 때 마주한 벽보다 훨씬 높고 두터운.”
5성이 되었을 땐, 플래시 골렘만으로 다른 네크로맨서들을 넘어설 수 없었다.
“발전은 멈췄고,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저를 추격하기 시작했죠.”
타고난 재능을 지닌 이들은 다시 아이작을 따라잡았고, 추월해냈다.
“다시 뒤로 밀려났지만, 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 역시 거부했죠.”
남들과 같은 길을 걸어봤자 동등해지긴커녕 뒤처지기만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5년 정도 공략된 던전을 연구실로 개조해 그곳에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작은 이번에도 남들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데스나이트를 플래시 골렘처럼 개조할 수는 없었기에 재료가 될 시체들을 키메라처럼 개조한 후 데스나이트로 만들려 했지만 실패했죠.”
그 외에도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했고 그 수많은 시도 끝에 결국엔 새로운 네크로맨시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네크로맨시가 지금의 저를 이 자리에 앉혀주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네크로맨시이기에 평범한 재능으로 가디언의 자리까지 오르게 해준 것일까?
궁금증은 증폭되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 네크로맨시를 가르쳐줄 것 같지는 않았다.
“카단. 그 방법을 알고 싶다면 얼른 5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이미 6성에 도달한 에스더가 이 기술을 배우게 될 것 같았다.
“참고로 이 네크로맨시는 데스나이트와 같은 최상위 등급의 언데드라면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 났다.
당장이라도 지금 5성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를 그만두는 건 좀 더 뒤로 미뤄야겠군.’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반기 일정이 끝날 때까지는 5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었으니, 아이작의 특별한 네크로맨시를 배우기 위해선 적어도 반년은 기다려야 했다.
“자, 그럼 다시 돌아와서 데스나이트에게 지휘권을 넘긴 네크로맨서의 전투에 관해 수업하도록 하죠.”
이후 아이작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 내용들은 이미 샬로트에게 배운 것들이라 딱히 특별함은 없었다.
어느 순간에 어떤 마법을 써야 하며, 어떤 저주가 효율적인지, 또 피를 다루는 마법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전투 방식까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카단은 복습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
밤이 되자 카단은 어김없이 훈련장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찾아간 곳은 1학년 전용 실내 훈련장이 아니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훈련 중에 죄송합니다.”
그가 찾은 곳은 2학년 전용 실내 훈련장. 밤마다 마티아스가 홀로 훈련하는 곳이었다.
“카단?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여쭤볼 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우리 사이에 실례는 무슨.”
문을 열고 들어온 카단이 반가웠는 지 마티아스가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몸에서 뿜어지는 열기에 호흡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 대충 소식은 들었어. 임무 때문에 도시 트라팔가에 다녀왔다며?”
마티아스는 벽에 걸린 수건을 가져와 땀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건도 있었다지? 마침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얘기 좀 해줄 수 있어? 소문으로만 들어서 자세히는 몰라.”
“그럼 사건에 관해 먼저 말씀드릴게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 뿐,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것 같았기에 카단은 도시 트라팔가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요약해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용병 프람이 왕국 기사단의 기사를 죽이고 에스더 선배를 납치하려고 했다고?”
이야기를 들은 마티아스가 충격을 받은 듯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들은 바로는 네크로맨서가 나타나 프람을 죽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이내 마티아스가 한숨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 프람이 도대체 왜?”
아무래도 마티아스와 프람은 아는 사이였던 모양.
‘이렇게 충격받으면 물어보기 미안한데. 혹시 친한 사이였나?’
카단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도시 트라팔가의 영주님이 용병 길드에 최고책임자를 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스승님을 불렀다고?”
용병 길드의 가장 위에 있는 자는 마티아스의 스승이자 용병들의 왕이라 불리는 자였다.
“네. 별동대가 돌아온 후부터 용병들은 쭉 도시 트라팔가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프람 이 빌어먹을 새끼.”
마티아스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카단은 그가 분노를 사그라트릴 때까지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티아스가 짧은 한숨과 함께 사과를 전했다.
“미안하다. 너한테 화낸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괜찮습니다. 그런데 혹시 프람이라는 용병과 아는 사이입니까?”
카단이 조심스레 물어보자, 마티아스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말에 카단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질문하는 것에 있어서 부담이 조금은 줄어든 듯했다.
“예전에 몇 번 같이 던전을 공략한 적이 있었어.”
“혹시 프람도 용병왕의 제자입니까?”
“아니. 아버지의 눈에 들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놈은 아니었어.”
마티아스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고, 분노를 참아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2년 전인가? 그때부터 뭔가 깨닫기라도 했는 지 급격하게 실력이 늘어났지.”
5성에 머물며 중상급 용병으로 활동하던 프람이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성장했다고 한다.
“1년 사이에 6성을 달성하더니, 올해 7성이 되었단 소식을 들었었어. 뭐,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 만난 적은 없지만, 길드에서 활약 중이라는 얘긴 들었어.”
“그렇군요.”
“그런데 갑자기 프람의 정보는 왜 물어보는 거야? 사건 조사를 하는 건 아닐 테고.”
“그저 궁금했습니다. 첫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거든요.”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더 질문해봤자 추궁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았다.
‘2년 전. 그때부터 마족화가 진행됐구나.’
루나의 말에 따르면 프람은 마족이 되기 직전의 상태라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완벽하게 마족으로 변하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가?’
카단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마티아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
“어떤 게요?”
“마지막으로 녀석을 봤을 때 손등에 문신이 새겨져 있더라고.”
“문신이요?”
문신 얘기에 카단이 다시 마티아스의 말에 집중했다.
“갑자기 웬 문신이냐고 물었는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새겼다는 거야?”
“네.”
“뭐, 용병 중에 문신을 새기는 놈들은 많았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거든?”
마티아스는 말을 이어가더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려댔다.
“그런데 며칠 전에 녀석과 똑같은 문신을 새긴 사람을 봤어.”
이어진 마티아스의 말에 카단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똑같은 문신이요?”
“응. 프람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인데, 완전 똑같은 모양의 문신을 하고 있었어.”
“그게 누굽니까?”
“너도 본 적 있을 거야. 아마 두 번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