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93화 (93/186)

제93화

‘두 번 정도 봤다고?’

여태껏 만난 사람 중 마족화가 진행 중이던 사람이 있던 걸까?

‘마티아스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면 아카데미에 관련된 사람들 말고는 없을 텐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누굽니까?”

카단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고, 마티아스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플로리안 공작 부인.”

“플로리안 공작 부인? 그게 누굽니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바네사 플로리안 공작 부인. 너도 입학식 때 봤을걸?”

“입학식이요?”

“응. 가장 마지막에 축사하셨던 사람인데 기억 안 나? 늘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으셔서 눈에 띄었을 텐데.”

그 말에 카단은 곧바로 기억을 되짚어봤다.

입학식과 개학식.

두 행사 모두 교관 대표와 생도 대표의 선서로 시작되었고, 다음으론 귀빈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마지막 여성이라면….’

순간 한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이는 대략 30대 초. 눈에 띌 정도로 화려한 외모를 지녔던 여성.’

기억 속 플로리안 공작 부인은 굉장히 매혹적이며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축사를 위해 아카데미를 찾은 귀족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

“혹시 플로리안 공작 부인의 몸 어디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습니까?”

“등.”

마티아스의 대답에 카단이 잠깐 멈칫하며 눈을 끔뻑거렸다.

“드, 등이요?”

“이상한 생각하지 마. 며칠 전 파티에 다녀왔는데, 그때 플로리안 공작 부인께서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으셨었어.”

카단이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마티아스가 곧바로 설명을 이어갔다.

하긴. 아카데미 생도가 공작 부인의 맨살이 드러난 등을 볼 일이 뭐가 있을까?

“문신 전체를 본 건 아니었지만, 분명 익숙한 문신이었어. 프람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딱 그 기억이 떠오르더라.”

“프람의 손등에 있던 문신과 똑같은 문신이었다는 거죠?”

“응. 내가 쓸데없는 걸 잘 기억하거든? 프람 손등에 있던 멧돼지 문신과 똑같았어.”

그런데 이상했다.

용병도 기사도 아닌 공작 부인이 어째서 마족이 되려고 한 걸까? 마족들은 공작 부인이 왜 필요한 것일까?

“혹시 플로리안 공작 부인께서 기사나 마법사이십니까?”

“아니. 그냥 평범한 귀족의 자제셨어. 전투에는 조금도 재능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건 모른다. 마티아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끝냈다.

플로리안 공작 부인이 마족이 되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이지? 생각을 이어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카단이 인상을 쓰며 고민에 빠지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티아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그 문신에 대해서 뭐 알고 있는 거라도 있어?”

“네? 아뇨.”

카단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뭘 그렇게 고민해?”

“똑같은 문신이라고 하시기에 공작 부인과 프람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말할 수 없었을 뿐.

‘괜히 문신이 마족과 관련되었단 얘기를 했다간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어.’

언젠가 마족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

그전까지는 마족이 음지에 숨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편이 훨씬 좋았다.

‘미리 정보를 공유해서 주의하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마티아스라면 선두에 나서서 마족과 싸우려고 들 거야.’

그렇기에 숨겨야 했다.

마티아스가 아카데미 역대 최고의 재능을 지녔다고 하지만, 아직 6성의 경지.

중급 이상의 마족을 상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에스더 선배님이 돌아오시면 나한테도 정보 좀 알려줘. 어떻게 상황이 정리되었는지 알고 싶거든.”

“물론이죠.”

카단은 굳이 더 깊은 얘기를 꺼내지 않기 위해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뭐, 여기까지 왔으니 훈련이나 하다 가. 어차피 나 말고는 올 사람도 없어.”

마티아스는 훈련장을 가리키며 말했고, 카단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종일 교관, 교수를 만나 임무와 관련된 얘기만 하고 다니느라 아직 체력 단련을 못 한 상태.

“예. 그럼 오랜만에 같이 체력 단련이나 하죠.”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기에 카단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몸을 풀었다.

“아, 맞다. 카단. 그때 말했던 건 잘 되어가?”

“그때 말했던 거라면?”

“마나 소드, 오러 소드를 대체할만한 기술 말이야. 생각은 좀 해봤어?”

발렌티나와 아이스 트롤을 잡으러 가기 전, 마티아스와 훈련 했던 때를 떠올렸다.

마티아스는 마나 소드, 혹은 오러 소드를 방어해낼 만한 기술을 떠올렸고, 카단에게 제안했었다.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지만, 믿어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보기로 했다.

“그날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너라면 고민을 좀 더 해봤을 것 같은데?”

비록 당일엔 실패하고 말았지만, 카단 역시 도전해볼 법하다며 꾸준히 고민을 이어오긴 했었다.

“시간 날 때마다 몇 번씩 시도해보긴 했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보여줘 봐.”

“아직 보여드릴 정도는 아니에요. 조금 더 다듬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이르다며 카단이 단호하게 거절했고, 마티아스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뭐,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그럼 훈련이나 하자고.”

***

며칠 뒤.

휴일이 되어 카단은 오랜만에 잭 카터의 주점인 ‘고양이들의 저녁’을 찾았다.

“오? 카단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카단은 자연스레 바 테이블 앞으로 이동했고, 잭 카터는 여느 때처럼 오렌지 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저야 물론 잘 지냈죠.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번에 부탁드린 정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휴식기가 끝나기 전, 잭 카터를 찾아왔던 카단은 ‘행방불명자들에 관한 정보’를 요구했었다.

“제가 누굽니까? 그것 때문에 오셨군요.”

잭 카터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바 테이블 밑에서 두꺼운 책 하나를 꺼냈다.

“던전, 서식지 등에서 시체도 남지 않고 사라진 사람 중 공통점이 있는 자들을 위주로 알아봐달라고 하셨죠?”

“네.”

잭 카터는 빠르게 책을 펼쳐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고, 이내 그가 움직임을 멈추며 카단을 바라봤다.

“설마설마했는데 공통점이 있는 자들이 있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솔직히 특이한 공통점을 찾는 건 좀 힘들었습니다. 던전과 서식지를 찾는 건 대부분 용병, 기사, 마법사들이었으니까요.”

시체가 남지 않았다는 건 몬스터에게 잡아 먹혔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런데 공통점을 찾는 도중에 특이한 걸 찾아냈어요.”

“특이한 거?”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1년 주기로 꾸준히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적게는 1명 많게는 3명 정도?”

그 말에 카단은 오크 서식지에서 마주쳤던 마족과 이번 도시 트라팔가에서 본 프람을 떠올렸다.

“행방불명된 생도들은 전부 당시 졸업반 상위 5명에 드는 실력자였어요.”

“그들의 실종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나요?”

죽음은 던전, 몬스터 서식지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이상해요. 1년 주기로 꾸준하게 행방불명되는 생도들의 시체를 전부 찾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 말에 카단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잡혀간 생도들은 모두 마족이 된 것일까?’

여기서 또 의문이 들었다.

마티아스에게 들은 프람의 정보를 통해 유추해봤을 때 마족화 기간은 대략 2년 정도.

그렇다면 1년 주기로 꾸준히 행방불명된 생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래전 잡혀갔던 생도들은 이미 마족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되돌아온 생도는 없나요?”

혹시 마족이 된 생도들이 다시 돌아와 인간인 척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는 건 아닐까?

“네. 없습니다. 단 한 명도. 가끔 용병이나 기사 중에는 행방불명되었다가 2, 3년 정도 지나고 나타난 적은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카단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이번에도 4명이 마족에게 납치될 뻔했다.’

클로제, 루카스, 아라드에 이어서 에스더까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 마족에게 잡혀갈 뻔한 생도들은 모두 카단이 구해낼 수 있었다.

‘마족이 생도들을 노리는 건 확실해.’

마족이 생도를 납치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마족으로 만들기 위함이다라고 유추할 뿐, 그것 역시 정확하진 않았다.

“수소문하며 찾아보긴 했는데, 아쉽게도 이 정도가 끝입니다.”

“그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고생했어요.”

카단은 살짝 웃음을 지은 뒤, 유리잔 안에 담긴 오렌지 주스를 홀짝였다.

“아, 잭 카터 씨.”

주스를 마시던 카단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다시 유리잔을 내려놓으며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플로리안 공작 부인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플로리안 공작 부인이요?”

잭 카터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아무래도 카단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뜬금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정보는 있긴 합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죠?”

“전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음, 우선 바네사 플로리안 공작 부인은 로드릭 플로리안 공작의 부인이십니다.”

기본 정보들만으로는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외국의 귀족이며 대략 10년 전 어린 나이에 리베라 왕국으로 넘어와 로드릭 플로리안 공작과 결혼하게 된 여성.

예술을 사랑하는 자였으며,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여러 기관에 기부를 많이 하는 자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만으로는 ‘마족’과 연관된 그 어떤 것도 연상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로드릭 플로리안 공작이 병들어 눕는 바람에 공작 부인께서 플로리안 공작령을 관리하고 있답니다.”

공작의 병세가 깊어지며, 지금은 공작의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여성.

그런 여성의 등에 왜 멧돼지 문신이 새겨져 있을까?

“플로리안 공작령은 여기서 먼 곳에 있습니까?”

“아뇨. 그렇게 멀진 않습니다. 마차를 타고 간다면 하루 정도 걸릴 겁니다.”

촤락!

잭 카터가 바 테이블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로 펼쳐놨다.

그가 꺼낸 건 리베라 왕국의 지도였고.

툭!

그는 손가락으로 지도 위를 찍으며 말을 이었다.

“수도에서 남서쪽에 있는 이곳이 플로리안 공작령입니다. 꽤 넓고 평안한 곳이지요.”

카단은 빠르게 그곳을 두 눈에 담았다.

‘직접 한 번 만나봐야겠어. 루나에게 플로리안 공작 부인을 보여주면 마족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

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그녀와 만날 수 있을까?

‘마티아스는 파티에서 플로리안 공작 부인을 만났다고 했었지?’

그렇다고 그녀가 나타날 만한 파티장을 전전긍긍할 수는 없는 일.

직접 그녀가 있는 플로리안 공작령에 가서 그녀를 만나는 것이 최선.

‘던전 공략을 핑계 삼아 가는 방법도 있긴 한데. 이 일은 조금 뒤에 생각해봐야겠다.’

고민을 이어가던 카단은 이내 오렌지 주스를 한 번에 들이켠 뒤 빈 유리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한 잔 더 드릴까요?”

그러자 잭 카터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물었고.

“아뇨. 괜찮습니다.”

카단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흠. 듣자 하니 도시 트라팔가에서 활약을 하셨다고 하던데.”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소식을 들으신 겁니까?”

“고블린 군단과 수성전에서 승리한 건 벌써 보름 넘게 지나지 않았습니까?”

하긴 보름이 넘는 시간이라면 수성전의 결과나 활약한 자들의 정보가 왕국에 퍼지기 충분한 시간.

“덕분에 카단 님의 명성이 올랐습니다. 이제부터는 의뢰자가 카단님을 따로 지정하여 의뢰를 부탁해올 수도 있겠군요.”

“그건 생각보다 귀찮을 것 같은데요?”

카단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고, 잭 카터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 생활이 어떠신지 좀 들려주시죠. 저를 정보원으로 두시면서 개인적인 얘기는 조금도 하지 않으시다니.”

아무래도 카단의 아카데미 생활이 궁금했던 것 같았다.

“별로 대단한 건 없습니다. 단조롭고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죠.”

카단만이 겪은 특별한 일들은 많았지만, 마족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기에 그 부분은 모두 빼놓고 얘기해야 했다.

“수석 졸업이라도 노리시는 겁니까? 좀 쉬면서 하세요. 쉬는 것도 수련의 일부라 들었습니다.”

“뭐, 잠도 잘 잡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길어졌고, 카단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잭 카터 씨가 생각보다 수다쟁이었군.’

카단의 일상만을 들을 순 없다며, 잭 카터는 자신의 일상과 직접 겪었던 특별한 경험을 카단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은 없었다.

“카단. 왔구나.”

외출 복귀 보고를 위해 1학년 교관, 교수들의 휴게실을 찾은 카단은 곧바로 크리스 교관에게 다가갔다.

“네. 사고는 치지 않았고,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지켰습니다.”

무사히 잘 왔다. 이 말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귀찮긴 했어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카단은 여느 때처럼 간단한 보고를 끝내고 빨리 훈련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 카단. 이번에 너에게 지정 의뢰가 들어왔다.”

복귀 보고를 듣던 크리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휴게실 한쪽에 배치된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카단에게 다가왔다.

“한번 확인해 보고 결정해. 갈지 안 갈지는 너의 마음이니까.”

느닷없이 의뢰서를 받아든 카단은 멀뚱히 크리스 교관을 바라봤다.

그러자 크리스 교관은 얼른 읽어보라는 듯 눈짓했고,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의뢰서를 확인했다.

내용을 확인한 순간 카단의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지정 의뢰서.]

-의뢰자 : 바네사 플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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