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2학년 마티아스다. 잘 부탁한다.”
마티아스가 피식하고 웃으며 카단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니, 선배가 왜….”
카단이 헛웃음을 지으며 마티아스를 바라보자, 크리스 교관이 마티아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내가 불렀다. 마티아스는 다크 엘프 숲 경험자거든. 소수 정예팀에 적합한 놈이기도 하고.”
“다크 엘프 숲 경험자?”
카단이 당황하는 사이, 블랑쉬가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오며 마티아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1학년 블랑쉬입니다.”
“아, 네가 그 블랑쉬구나?”
블랑쉬의 부름에 마티아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고.
“그 블랑쉬?”
블랑쉬는 기분 나쁜 티를 내며 미간을 좁혔다.
“2학년 사이에서 꽤 유명하거든. 더글라스 가문의 마법 천재가 입학했다고.”
마티아스가 해맑게 웃으며 말하자, 그 내용 때문인지 좁혀졌던 미간이 다시 풀어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티아스 선배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블랑쉬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고, 마티아스는 예를 갖춰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후배님.”
카단과 블랑쉬, 그리고 마티아스가 서로 인사를 끝내자 크리스 교관은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자, 이 세 사람은 12일 뒤 플로리안 공작령으로 가서 플로리안 공작 부인의 의뢰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진중하게 내뱉는 교관의 목소리에 세 명의 생도들은 자세를 바로 하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 팀의 대장은 당연히 마티아스가 맡아주고, 두 사람은 마티아스의 말을 잘 들어주길 바란다.”
크리스 교관은 공작 부인의 의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들려주었다.
“조심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운반할 물건을 노리는 자들. 그리고 다크 엘프.”
다크 엘프 숲을 지나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위험도가 상급이 되었다.
‘다크 엘프가 그 정도로 위험한 종족인가?’
몬스터 도감에도 다크 엘프의 정보는 적혀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얼마나 위험한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위험도가 높은 만큼 준비가 완벽해야 한다. 게다가 다크 엘프 숲을 아무런 대비도 없이 들어갔다간 죽기 십상이지.”
크리스 교관의 시선이 마티아스를 향했다.
“마티아스. 저녁 시간 이후 이 두 녀석을 데리고 함께 임무 대비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경험자고 또 선배이니까 충분히 잘하리라 믿는다.”
크리스 교관은 마티아스가 믿음직스럽다는 듯 웃음을 지었고, 마티아스는 그 신뢰에 보답하듯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후.
카단과 블랑쉬, 그리고 마티아스가 연병장 구석에 모여 앉아 있었다.
“오늘은 훈련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다크 엘프 숲이 어떤 곳인지 얘기를 해줄게.”
마티아스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연병장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전투 시 각자 맡아야 할 임무가 다를 거야. 우선 내가 전방을 맡을 거고.”
마티아스는 동그라미를 작게 그린 뒤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최후방엔 블랑쉬. 아무래도 마법사니까 가장 안전한 곳에서 전투해주는 게 좋겠지?”
“네.”
“그리고 카단. 너는 나를 보조해주면서 블랑쉬를 지키면 돼. 이게 전투 시 우리의 위치야.”
포지션은 간단했고, 각자 수행해야 할 임무도 간단했다.
“정찰과 감시, 경계 임무는 원래 정찰병이 하는 거지만, 이번엔 카단. 네가 해줬으면 하는데. 가능하지?”
“네. 가능합니다.”
레이스를 소환해 정찰을 보낸 뒤 보고만 들으면 되었다.
정찰 임무를 맡았다지만, 위험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안정적으로 팀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블랑쉬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마법만 날려주면 돼. 방어 마법은 널 위해서만 써. 나나 카단은 알아서 살아남으니까.”
“알겠습니다.”
카단과 블랑쉬가 질문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자, 마티아스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림을 그렸다.
슥, 슥.
이번엔 동그라미 옆에 뾰족한 귀를 그렸다.
“다크 엘프들은 단체 생활하는 녀석이고 인간들을 싫어해. 엘프들보다 더 인간을 싫어한다고 알려졌지.”
이어진 설명은 다크 엘프에 관한 정보였다.
“활보단 검을 쓰는데, 평균적으로 5성 기사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 너희 두 사람에겐 상당히 위협적이란 뜻이지.”
근접 전투가 취약한 마법사와 네크로맨서에겐 상당히 위협적인 적이었다.
“몸놀림도 빠르고 민첩해서 마법을 맞추기도 쉽지 않을 거야. 게다가 몇 놈은 저주와 마법을 사용하기도 해.”
들으면 들을수록 까다로운 적이었다.
“가장 무서운 건, 다크 엘프는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움직이는 녀석들이야. 만약 전투 중에 하나라도 놓치면 금방 포위되고 말 거야.”
그 말에 블랑쉬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니 카단 네 역할이 중요해. 우린 최대한 다크 엘프와 마주치지 않고 숲을 통과해야 해.”
다크 엘프와 전쟁할 것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숲을 빠져나가야 했다.
‘아직 숲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괜히 긴장되는군.’
마티아스의 말을 들으며 다크 엘프들을 떠올리자, 괜히 입 안이 말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만약에라도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블랑쉬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물었고, 마티아스는 짧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도망쳐야지. 우리 셋만으로 다크 엘프들과 싸워서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선배도 다녀왔다면서요? 다크 엘프와 싸우진 않았습니까?”
이번엔 카단이 질문했다.
“예전에 훈련 때문에 다녀오긴 했는데, 겨우 살아 돌아왔어. 도저히 상대가 안 되더라고.”
마티아스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다크 엘프는 쉽게 생각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숲을 통과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주의해야 할 건 우리끼리 흩어져선 안 된다는 거야. 명심해. 아무리 나라도 너희 모두를 지켜줄 순 없을 거야. 그러니 붙어서 서로 의지해야 해.”
아직 임무가 시작하기 전까지 14일이나 남아있었다.
“도망칠 땐 카단이 맨 앞, 그 사람 다음이 블랑쉬, 최후방엔 내가 서 있을 거야.”
그러나 마티아스는 정말 위험한 임무라며 몇 번이고 경고했다.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다시 블랑쉬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카단이나 1학년 생도들을 대할 때와 달리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응. 얼마든지.”
“그렇다면 저희는 이제부터 무슨 훈련을 해야 합니까?”
마티아스가 뭔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고, 카단과 블랑쉬는 그 미소에 괜히 몸을 움찔했다.
“공격을 피하면서 도망치는 연습.”
***
일주일이 지났다.
“이 망할….”
늦은 밤, 블랑쉬가 욕이 튀어나오는 것을 겨우 참아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털썩.
그녀는 더는 움직일 수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이게 훈련이 됩니까?”
카단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마티아스에게 물었다.
“그럼. 최고의 훈련이지. 두 사람 모두 실력이 제법 늘었잖아.”
마티아스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대답했고, 카단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바닥에 앉았다.
일주일간 그들이 한 훈련은 마티아스의 재빠른 공격을 피해내며 도망 다니는 것이었다.
처음엔 쉽다고 생각했다.
“다크 엘프들 대부분이 이 정도로 민첩해. 그러니 너희는 내 공격에 더 빠르게 반응해야 해.”
그냥 마티아스의 공격을 피하며 도망 다니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마티아스는 마나까지 사용하며 빠른 속도로 카단과 블랑쉬를 추격했다.
지치고 힘들다고 손을 내저어도 질릴 정도로 쫓아와 나무로 된 창을 휘둘러댔다.
그렇게 일주일을 훈련하고 나니, 1학년 중 체력이 가장 좋다는 카단마저 지친다는 듯 쓰러지고 말았다.
체력이 약했던 블랑쉬는 이미 몇 번이고 기절했었다.
“서, 선배.”
블랑쉬가 바닥에 쓰러지듯 눕더니 조심스레 마티아스를 불렀다.
“왜?”
“차라리 싸우다 죽겠습니다.”
“아니야. 살아야 해. 너희 죽으면 나 아카데미 못 다녀.”
“망할….”
마티아스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고, 블랑쉬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선배.”
이번엔 카단이 마티아스를 불렀다.
“그냥 무작정 피하고 도망만 다녀야 합니까? 싸우면서 도망치는 법도 있을 텐데요?”
“가능하다면 공격도 해도 돼. 그런데 지금 너희 상태를 보면 도망 다니기 바쁠 것 같은데?”
도대체 다크 엘프들이 얼마나 재빠르고 강했으면 마티아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까?
문득 궁금한 게 생긴 카단이 호흡을 고르며 다시 질문했다.
“선배는 무사히 도망쳐서 숲을 빠져나오신 겁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스승님이 구해주셨어.”
그 말에 눈을 감고 체력 회복에 집중하고 있던 블랑쉬가 눈을 뜨며 마티아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크 엘프들의 특징 중 하나가 범접할 수 없는 힘을 마주하면 도망친다는 거거든?”
“네.”
“내가 딱 붙잡힐 때쯤, 스승님이 나타나니까 다크 엘프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더라고?”
용병왕 정도의 실력자라면 다크 엘프들이 겁먹고 도망칠 법도 했다.
카단과 블랑쉬는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우리 셋 중엔 그런 사람도 없고, 임무 중이라 우릴 구해줄 사람이 없어. 우린 우리 힘으로 그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숲을 돌아가게 된다면 의뢰인이 원하는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일이 아닌 왕국을 위한 일. 세 사람은 쉽게 임무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뭐, 숲만 무사히 빠져나가면 그때부터 크게 걱정할 건 없으니까, 이때만 좀 조심하자.”
마티아스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충분히 체력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계속 할까?”
두 사람이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서자, 마티아스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두 사람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마티아스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자세를 취했다.
“오늘부터는 너희들도 공격해. 물론 죽이기 위한 공격이 아닌, 방해하기 위한, 따돌리기 위한 공격을 위주로.”
***
며칠 뒤.
카단과 블랑쉬, 그리고 마티아스가 아카데미 정문 앞에서 크리스 교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훈련은 열심히 했겠지?”
오늘은 세 사람이 플로리안 공작령으로 떠나는 날.
크리스 교관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고, 마티아스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생존력은 충분히 길렀습니다.”
마티아스의 대답에 신뢰를 느낀 크리스 교관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티아스 뒤에 서 있는 카단과 블랑쉬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떤 훈련을 했기에 볼살이 쏙 빠지고 핼쑥해진 것일까?
“마티아스. 너를 포함한 팀원 모두 살아서 이곳에 돌아와야 한다. 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늦기 전에 출발하도록 해라.”
크리스 교관이 정문 앞에 세워진 마차를 가리켰고, 마티아스와 카단, 블랑쉬는 크리스에게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마차에 올라탔다.
“어쩌면 물건을 운반할 때까지 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그러니 공작령에 도착할 때까지 푹 쉬도록 해.”
마티아스는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눈을 감았고.
“네.”
블랑쉬는 기다렸다는 듯 차갑게 대답한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카단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잘 따라와. 루나.’
그의 시선은 먼 곳에서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