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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96화 (96/186)

제96화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목소리가 들리자 생도들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수도에서 공작령까지 마차로 하루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세 사람은 마차에 탑승한 순간부터 공작령에 도착할 때까지 쭉 잠을 잤다.

임무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피곤했던 것인지, 그들은 악착같이 잠에서 깨지 않으려 했다.

“다들 몸 상태는 어때?”

기지개를 켠 마티아스가 눈을 비비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물었고.

“좋습니다.”

“괜찮습니다.”

카단과 블랑쉬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대답했다.

꽤 오래 잠을 잤지만, 피곤함에 찌든 모습을 보면 아직 잠이 부족한 것 같았다.

“우선 여관에 들려서 씻고, 식사는 영주성에서 해결하자. 괜찮지?”

마티아스가 먼저 마차에서 내렸고, 카단과 블랑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여관에서 나온 세 사람은 높게 솟은 거대한 성을 바라봤다.

“두 사람 다 플로리안 공작의 성은 처음 보는 건가?”

마티아스의 질문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리안 가문도 왕국에서 부유하기로 손꼽히는 가문이야.”

높게 솟은 영주성만 봐도 마티아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뿐이랴?

공작령 중심에 있는 도시 플로리안만 대충 훑어봐도 이곳이 가난이라는 단어와 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평민들도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으며, 도시 역시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더글라스 만큼이나 부유한 곳이군.’

플로리안 공작령에서는 던전 공략 보상을 다른 곳보다 두 배 이상 준다고 알려져 있다.

즉, 그만큼 부유하고 치안에 신경을 쓴다는 얘기.

“제 고향보다는 부유해 보이지 않네요.”

귀족의 자존심일까? 도시를 둘러보던 블랑쉬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뭐, 더글라스 가문이 다스리는 영지도 살기 좋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긴 하지.”

마티아스는 피식 웃으며 먼저 걸음을 옮겼고, 블랑쉬는 그 웃음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카단은 걸음을 옮기기 전 천천히 주변을 살펴봤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먼 곳에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에게서 멈춰졌다.

그녀의 한 손에는 샌드위치가 쥐어져 있었고, 한 손에는 우유가 든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단순하네. 먹을 걸 주니까 바로 화가 풀리다니.’

카단은 빵을 먹고 있는 루나를 바라보며 바로 전날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루나. 잘 따라올 수 있지?

-가서 소환하면 되잖아.

-사람들이랑 계속 붙어있을 것 같아서 그래. 따로 널 소환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플로리안 공작령으로 가기 전, 카단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루나를 소환했었다.

아무래도 공작령으로 출발하고 나면 루나를 소환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네가 없으면 플로리안 공작 부인의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어.

-참 나. 그래서 나보고 너를 미행하라고?

-멀리 거리를 두고 따라오라는 거지. 이걸로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면서 따라와.

루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루나가 없으면 기껏 플로리안 공작 부인을 만나도 그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카단은 루나에게 은화가 잔뜩 든 돈주머니를 쥐여주며 그녀를 설득했고.

-그 공작 부인인가 뭔가가 있는 곳까지는 얼마나 걸리는데?

-하루?

-하아….

돈주머니 하나를 더 쥐여주고 나서야 루나가 카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처음엔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마티아스와 블랑쉬가 씻으러 간 사이 루나에게 빵과 우유를 사주니 금세 또 풀린 듯싶었다.

‘영주성 안이 조금 위험하긴 한데, 안 들키고 잘 따라오겠지?’

카단은 멀리 보이는 루나를 향해 작게 손을 흔들었고, 루나는 피식 웃으며 카단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런 루나를 보며 웃음을 흘린 뒤, 카단은 마티아스와 블랑쉬의 뒤를 따랐다.

***

“영웅 아카데미에서 왔습니다.”

영주성 대문 앞에 도착해 경비병에게 신분을 밝히자, 경비병 하나가 급히 성 안뜰을 향해 뛰어갔다.

잠시 후 경비병과 함께 양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신사가 나타났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절 따라오시지요.”

노신사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카단과 블랑쉬, 마티아스는 얌전히 노신사의 뒤를 따랐고, 이내 세 사람은 영주성 궁전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궁전 안에 들어와서도 세 사람은 한참이나 걸음을 옮겨야 했고, 그들의 걸음이 멈춰진 곳은 햇볕이 잘 드는 방 안이었다.

“이곳은 응접실입니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식사부터 준비해드리지요.”

노신사는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에 있는 하녀들을 향해 무언가 명령하듯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하녀들은 급하게 어디론가 이동했고, 노신사는 다시 마티아스에게 다가가 말을 전했다.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공작부인께서 이곳에 오실 겁니다. 그럼 즐거운 식사가 되길.”

노신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방을 빠져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로 수많은 요리가 올려지기 시작했다.

요리들은 하나같이 고급스러웠다.

최고의 지원을 받는다는 영웅 아카데미의 식당에서도 보기 힘든 요리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돈이 많긴 많은가 보군. 손님 대접에 이렇게 정성스럽다니.’

테이블 위로 올려진 요리를 보며 카단은 내심 감탄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호화스러운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촌스럽긴.”

카단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자, 옆에 있던 블랑쉬가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눈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아마도 부유한 가문의 영애인 블랑쉬에게 이런 아침 식사는 익숙할 것이다.

“언제 공작 부인께서 오실지 모르니까 빨리 먹자고.”

그러자 마티아스가 피식 웃으며 먹으라고 손짓했고, 그렇게 세 사람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테이블 위 요리들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분명 천천히 예를 갖추며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빈 접시가 테이블 위에 빠르게 쌓여만 갔다.

‘다들 며칠 굶으신 건가?’

‘영웅 아카데미라면 요리도 꽤 잘 나올 텐데?’

‘게걸스럽게 먹는 것도 아닌데, 먹는 속도가 왜 이렇게 빨라?’

주변에 서 있던 하녀들은 그 모습에 헛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어느덧 테이블 위에는 빈 접시만 놓이게 됐고, 세 사람의 식사는 빠르게 끝이 났다.

하녀들은 급하게 빈 접시를 치우고 곧바로 따듯한 차가 담긴 찻잔을 세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마티아스는 배부르다며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댔고. 블랑쉬는 고상한 자세로 품격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카단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조금 전까지 요리가 올려져 있던 테이블을 바라봤다.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라고 이렇게까지 대접해 주다니.’

새로운 인생을 얻은 뒤 가장 감명 깊은 식사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요리에 독 같은 건 없었어.’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플로리안 공작 부인은 마족화가 진행 중인 사람일 수도 있었다.

졸업반 생도들을 납치하려고 했던 그 일당 중 하나일 수도 있었으며, 어쩌면 이번에도 생도를 납치하기 위해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몰랐다.

‘루나는 잘 지켜보고 있으려나?’

카단의 시선이 햇볕이 드는 창문을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종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종탑 꼭대기에는 익숙한 외형의 여자아이가 보였다.

‘제법 괜찮은 자리를 찾은 것 같은데, 저렇게 멀리 있으면 공작 부인이 마족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으려나?’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있으니 루나가 종탑 위로 올라간 게 아닐까?

카단은 그렇게 생가하며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때.

철컥.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륵.

그러자 마티아스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블랑쉬와 카단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로리안 공작 부인을 뵙습니다.”

마티아스가 대표로 여성에게 인사를 건넸고.

“반가워요. 플로리안 공작을 대신해 이곳을 관리하는 바네사 플로리안이라고 해요.”

확실히 매혹적인 외모였다.

공작 부인이라고 하기엔 주름 하나 없이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

게다가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꽤 우아했다.

화려함과 우아함. 그리고 매혹적인 매력이 합쳐진 여인.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자연스레 시선이 끌릴 수밖에 없는 여인이었다.

“편하게 앉아서 대화할까요?”

공작 부인은 우아한 손짓으로 앉으라고 지시했고. 그 지시에 따라 생도들은 자리에 앉았다.

“우선 의뢰를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위험한 곳을 지나야 해서 망설여졌을 법도 한데.”

하녀들이 빠르게 공작부인이 앉은 자리 앞으로 다과와 찻잔을 올려놓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공작 부인은 하녀들을 향해 고맙다는 듯 웃어 준 뒤 말을 이었다.

“생도분들께서 운반해주실 물건은 이겁니다.”

공작 부인이 근처에서 대기하던 하인을 향해 손짓했고.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하인은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방패를 끙끙거리며 끌고와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저건 뭐지? 방패?’

카단은 방패를 바라보더니 왠지 불쾌한 마음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신성한 수호자의 방패 아닙니까?”

카단을 제외한 두 생도는 방패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했다.

“네. 왕국의 성유물이자, 가디언 디미타르 님의 방패입니다.”

방패의 이름과 성유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카단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성유물이었구나.’

성스러운 힘이 가득 담겨 있는 방패. 아무래도 카단에게는 상극의 힘으로 느껴졌기에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왜 성유물을 공작 부인이 가지고 있는 거지?’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공작 부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카단이 뭘 궁금해하는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며칠 전 리치가 나오는 던전을 발견했어요. 아무래도 용병이나 기사들만으는 힘든 상대였죠. 그래서 신성 기사단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거절당했죠.”

공작부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던 도중 이 방패가 떠올랐고, 디미타르 님에게 연락도 없이 찾아갔죠. 그러더니 이 방패를 빌려주시더라고요.”

“역시 디미타르 님이시군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래서 던전 공략은 무사히 끝내셨습니까?”

마티아스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공작 부인 역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게 다 디미타르 님 덕분이죠. 이 방패 덕분에 무사히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어요.”

그녀의 대답에 마티아스는 다시 테이블 위에 있는 방패를 살폈다.

그러자 공작 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성유물이라서 그런지 텔레포트로 이동이 안 되며 이걸 노리는 적들이 꽤 많더라고요”

즉 수많은 적이 이 방패를 노리는 가운데, 위험한 다크 엘프 숲을 지나 방패의 주인에게 전달해 달라?

마티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런 방패라면 운반자들을 노리는 건 당연한 일이죠.”

“15일 전쯤인가? 급하게 방패가 필요하다고 가디언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이 방패가 필요하시다고 최대한 빨리 보내달라고 하셨죠.”

공작 부인이 말을 이어갈 때, 카단은 멍하니 방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성유물 운반 의뢰라니. 이 정도면 위험도 상급 이상이잖아?’

절로 혀가 둘렸다.

자칫 이 방패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죄인이 되어 곧바로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카단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응? 왜 저래?’

그런데 종탑 위에 있는 루나가 무언가 말하는 듯 손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루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카단의 머릿속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당장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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