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99화 (99/186)

제99화

숲에 들어온 지 3일 차.

카단과 그의 일행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들 지쳐 보이는군.’

카단은 팀원들을 바라보더니,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여정의 고단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피곤할 수밖에 없겠지.’

이동할 땐 늘 긴장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고, 휴식을 취할 때도 편하게 쉴 수 없었다.

잘 때조차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서야 했기에 잠조차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적진 한복판에 숨어 지내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그래도 오늘 내로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 그건 다행이군.’

지난 3일 동안 사건이나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레이스를 이용해 주변을 정찰했고, 안전이 확인되면 천천히 이동했기에 위험한 상황을 피해 갈 수가 있었다.

이 이동 방법은 느리지만 안전했고, 덕분에 세 사람은 꾸준하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가끔 다크 엘프들이 정찰하며 거리를 좁혀올 때도 있었지만, 그 순간 역시 레이스를 이용해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만약 이곳에서 마족과 마주했다면 곤란했을 텐데.’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아직까진 마족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건 정말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에히아스 숲에서 마족과 싸우게 된다면 다크 엘프들에게 위치가 발각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족과 다크 엘프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극악의 상황을 마주하겠지.’

마족이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슬슬 출발할까?”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마티아스가 잠시 내려놨던 창을 집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치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자. 이 숲만 빠져나가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어.”

이윽고 출발 준비를 끝낸 마티아스가 팀원들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속도를 조금만 더 내면 어두워지기 전에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다들 몸 상태는 괜찮아?”

“네. 멀쩡해요.”

“네. 괜찮습니다.”

카단과 블랑쉬는 무덤덤한 얼굴로 문제 없다는 듯 대답했다.

잠자리가 불편하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게 힘들었을 뿐, 전투를 치르진 않았기에 비교적 몸 상태는 좋았다.

완벽하게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속도를 더 내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그래. 조금이라도 빨리 이 숲을 벗어나는 게 심적으로 좋을 테니까. 속도를 조금만 높이자.”

마티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고, 카단과 블랑쉬는 그의 속도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

저 멀리 숲의 끝자락이 보였다.

그 너머로는 숲이 이어지지 않았다. 에히아스 숲의 출구가 분명했다.

‘출구다.’

열심히 걸음을 옮기던 세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 때문일까?

피곤함에 찌들었던 그들의 얼굴에 작게 미소가 걸렸다.

타앗!

한시라도 빠르게 이 숲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지, 세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그때.

나무 사이에서 한 여성이 여유롭게 걸어나 오더니, 출구로 향하는 길목 한가운데 멈춰 섰다.

“자, 잠깐 정지!”

여성을 발견한 마티아스가 급하게 뜀걸음을 멈추며 명령했고.

척. 척.

카단과 블랑쉬는 그의 지시에 따라 달리는 것을 멈춰야 했다.

‘설마 다크 엘프인가?’

마티아스는 경계 짙은 눈으로 길을 가로막고 있는 여성을 살펴봤다.

‘저 가면은 또 뭐야?’

여성은 멧돼지 가면을 쓰고 있었고, 후드가 달린 로브를 입고 있었다.

다행히 가면 너머로 엘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뾰족 귀는 보이지 않았다.

‘엘프는 아닌데.’

그렇다면 이 여성은 누구일까? 왜 갑자기 나타나서 길을 막은 것일까?

‘아무리 봐도 호기심에 숲속에 들어온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

순간 마티아스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가면을 썼다는 건 정체를 감추기 위함이고,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길을 막은 건 무언가 뚜렷한 목적이 있다는 뜻.

“혹시 저희를 노리고 오신 겁니까?”

마티아스의 질문에도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 돼지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히시던지, 아니면 얌전히 길을 비켜주시죠. 저희가 좀 급해서.”

“풉!”

그러자 멧돼지 가면 너머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 미안. 미안. 너무 같잖아서.”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은 비아냥거리듯 손을 저어댔다.

그 모습이 기분이 나빴지만, 왠지 모를 압박감에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다 끝났다고 생각한 거야?”

여성은 엄지를 이용해 자신의 뒤쪽. 숲의 출구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저기만 넘어가면 끝이니까?”

낯설면서도 익숙한 목소리.

부드럽게 내뱉어지면서도 섬뜩하게 들려오는 말투.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일까? 마티아스가 창을 고쳐 쥐더니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자세를 취했다.

“다들 준비해.”

마티아스의 속삭임에 카단과 랑쉬가 천천히 마나를 활성화했다.

생도들의 분위기가 바뀌자,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그런 게 참 좋더라. 희망 앞에서 무너져 절망하는 인간들의 모습. 그걸 지켜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더라.”

화륵!

“그러니 어디 한번 보여줄래? 너희의 절망을.”

그녀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생도들의 발밑에 화염이 일렁였다.

화아아아아아아악!

일렁이던 화염은 순식간에 크기를 키웠고.

“피해!”

마티아스의 외침과 함께 세 사람은 사방으로 몸을 던졌다.

조금만 늦었다면 그대로 거대한 화염에 삼켜졌을 것이다.

“놈은 마법사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한 마법사는 아니었다.

사전 준비도 없이 이토록 위협적인 마법을 선보였다면 적어도 6성 이상의 마법사.

“빠르게 처리해야 해. 전투가 길어지면 다크 엘프가 나타날 거야.”

길을 가로막은 여성이 적이라는 게 확실해진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다들 다친 곳 없지?”

마티아스는 생도들의 상태를 확인한 뒤, 곧바로 지휘를 이어갔다.

“큰 마법은 블랑쉬가 대응해주고, 카단. 너는 날 보조하며 동시에 블랑쉬를 보호해.”

말을 끝낸 마티아스는 곧바로 땅을 박차며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을 향해 달려갔다.

달그락!

카단은 명령에 따라 재빨리 블랑쉬 주변에 오크 해골 병사들을 소환했다.

‘물리적인 공격이면 모를까, 마법 저항력은 약해.’

마법사를 상대로 해골 병사들이 잘 버텨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없는 것보단 나았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면, 블랑쉬가 몸을 피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테니.

“블랑쉬. 저 불부터 좀 꺼줘.”

카단은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을 가리키며 말했고.

“어? 어.”

당황하고 있던 블랑쉬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며 불기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법에 의해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한 카단은 다시 시선을 옮겨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을 바라봤다.

‘멧돼지 가면이라니.’

가면을 보는 순간 카단의 머릿속엔 그동안 마족화가 진행 중이던 인간들에게 봤던 멧돼지 문신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그때 봤던 멧돼지 문신과 멧돼지 가면이 비슷한 것 같았다.

‘설마 마족….’

불길함이 증폭된 사이, 어느덧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과 거리를 좁힌 마티아스는 오러를 활성화한 창을 빠르게 내질렀다.

채애애앵!

그 순간 여성의 근처에서 불기둥이 솟아나더니, 불기둥에서 뱀의 꼬리 같은 게 튀어나와 창대를 후려쳤다.

‘뭐, 뭐야?’

마티아스는 그대로 창을 회수하며 빠르게 뒤쪽으로 물러났다.

‘쯧. 난리 났네.’

솟아오르던 불기둥은 빠르게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뱀의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순수한 화염으로만 만들어진 거대한 뱀이라니.

불로 만들어진 뱀은 꼬리를 살랑이며 마티아스를 노려보고 있었고.

‘빠르게 끝내긴 힘들겠는데.’

마티아스는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창을 고쳐 쥐었다.

“블랑쉬! 저 뱀 좀 처리해줄 수 있겠어?”

마티아스의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얼음의 창이 불로 만들어진 뱀을 향해 쏘아졌다.

화악!

그러자 불의 뱀은 거대한 화염구를 토해냈고.

콰아아아아앙!

얼음의 창과 화염구가 허공에서 부딪치며 크게 폭발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불로 만들어진 뱀이 단순한 마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불로 만들어진 뱀은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고, 스스로 판단하며 블랑쉬의 공격에 대응했다.

그것도 아무런 피해도 없이.

‘어떻게 고작 마법으로 만들어진 뱀 따위가 내 마법을….’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블랑쉬 역시 짐작하고 있었다.

고작 4성 마법사인 자신의 실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그런데 고작 소환수에게 마법이 막힐 줄이야.

화아아악!

블랑쉬가 당황한 사이, 불로 이루어진 뱀이 다시 한번 화염구를 토해냈다.

거대한 입에서 튀어나온 화염구는 블랑쉬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고.

퍼어어어엉!

카단은 재빨리 허공에 뼈로 만들어진 방패를 만들어 마법을 막아냈다.

“정신 차려.”

카단은 차가운 목소리로 블랑쉬에게 말했고, 그제야 블랑쉬가 침착함을 되찾으며 마나를 빠르게 활성화했다.

그 사이 마티아스가 불로 이루어진 뱀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 채애앵! 챙!

수준급의 창술이었지만, 불의 뱀은 꼬리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냈다.

“블랑쉬. 소환사나 네크로맨서를 상대할 때의 정석이 뭐지?”

카단이 이를 악물며 블랑쉬에게 물었고.

“소환수는 무시하고 소환사부터….”

블랑쉬가 조심스레 답하자, 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가 저 뱀을 상대하는 동안 우리가 저 여자를 쓰러트려야 해.”

까마득한 실력 차이.

과연 그 차이를 극복하고 여성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블랑쉬는 불가능을 떠올리며 불안한 눈으로 하단을 바라봤다.

‘어째서 이렇게 담담할 수 있는 거지?’

카단의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알겠어.”

블랑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마법을 준비했다.

쿠구구구구궁!

그녀의 주변으로 냉기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폭풍은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기세를 보이며 크기를 키웠다.

‘저건?’

카단은 그녀가 사용하려는 마법을 본 적이 있었다.

3성이었던 블랑쉬가 카단과의 대련에서 사용하려 했던 4성 마법.

불안해 보였던 전과 다르게, 그녀가 만들어낸 냉기의 폭풍은 안정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범위를 넓혀나갔다.

척!

마법이 완성됐는지, 블랑쉬는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을 향해 손을 뻗었고.

쿠구구구구구!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냉기의 폭풍이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실로 굉장한 위력이었다.

냉기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꽁꽁 얼어버렸으며, 블랑쉬에게서 멀어질수록 폭풍이 크기를 키워갔다.

콰아아아아아앙!

냉기의 폭풍이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에게 도달하는 순간 굉음을 내며 폭발했고.

‘됐다.’

블랑쉬는 공격에 성공했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법이네. 역시 더글라스 가문의 핏줄인가.”

폭발로 인해 생겨난 연기 뒤편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연기가 걷히고,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마법을 맨몸으로 받아냈음에도 여성의 몸에는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냉기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모조리 꽁꽁 얼어붙었지만,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 주변은 멀쩡한 상태였다.

당혹스러움에 제대로 숨을 들이쉴 수도 없었다.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조금의 피해도 줄 수 없다니.

“어?”

당황하기도 잠시.

‘저건 뭐야?’

블랑쉬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의 뒤로 기괴한 갑옷을 입은 2명의 기사가 나타났고.

부우우우웅!

그들은 멧돼지 가면을 쓴 여성을 향해 검과 도끼를 있는 힘껏 휘두르고 있었다.

‘데스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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