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03화 (103/186)

제103화

퍼억! 퍼억!

바네사는 카단을 떼어놓기 위해 엉망이 된 오른손을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나 카단에게 붙잡힌 손목은 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 빌어먹을!”

힘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은 상당히 불쾌했다.

불쾌한 것뿐만 아니라, 기력이 쇠약해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바네사가 머리를 굴려봤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카단이 사용하는 기술은 고대 네크로맨서들이나 사용했다는 잊힌 네크로맨시.

죽음을 경험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고대의 네크로맨시였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족이라지만, 고대 네크로맨서의 기술을 상대하는 법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카단이 놓아줄 때까지 있는 힘껏 그를 공격하는 것이 전부였다.

“미친!”

그리고 애석하게도 카단은 결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꽈아악!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목을 조르고 있는 바네사의 팔을 더욱더 세게 움켜쥐었다.

바네사의 팔이 마치 수분을 빼앗긴 듯 빠르게 말라갔다.

노화라도 일어난 듯 팔을 시작으로 그녀의 몸이 빠르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컥, 커억!”

이내 카단의 손에 달라붙어 있던 바네사의 손이 ‘툭’ 하고 떨어졌다.

“이 빌어먹을 네크로맨서가!”

바네사는 발악하며 카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주먹을 끝까지 뻗을 수가 없었다.

‘내, 내가 두려워한다고?’

카단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포식자를 마주한 피식자처럼 두려움이 뇌를 지배했다.

카단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었지만, 그의 눈이 푸른 안광을 품고 있었다.

스윽.

카단이 무표정한 얼굴로 바네사를 내려다봤다.

타앗!

바네사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며 재빨리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자 카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순수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이 순간에 지어진 순수한 미소는 바네사에게 수많은 공포를 선사했고.

“내가 누군 줄 알고!”

바네사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이를 악물며 카단을 향해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어?”

그러나 불꽃은 발화되지 않았다.

마력을 모조리 빼앗겼기 때문일까? 그녀는 전처럼 강렬한 화염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달그락!

그때 뼈로 만들어진 손이 땅에서 튀어나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전처럼 불로 몸을 바꿔 빠져나갈 수 없었다.

“자, 잠깐만!”

카단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네사를 향해 다가왔다.

떨칠 수 없는 공포가 몰려왔고, 두려움에 몸이 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발목을 붙잡은 해골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꺼져! 오지 마!”

그녀의 외침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카단은 계속해서 걸어왔고.

척.

이내 바네사의 앞에 도착했을 때 카단의 손이 그녀의 머리 위로 올려졌다.

“으아아아아아악!”

그의 손에 푸른 마나가 깃들더니, 이내 바네사의 남은 힘마저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점차 말라가던 바네사는 정신을 잃었고.

스스스스스….

이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비참하고 허망한 최후였다.

이미 그녀의 힘을 모두 흡수했기 때문일까?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는 마석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슈욱!

그때 숲속 어딘가에서부터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달그락.

카단은 무표정한 얼굴로 화살을 바라봤고, 곧이어 허공에 뼈로 만들어진 방패가 생겨났다.

팅!

화살은 방패에 부딪히는 동시에 바닥으로 추락했고.

사삭! 사사삭!

이어서 숲속에서부터 수십의 다크 엘프들이 튀어나왔다.

“죽여!”

“여긴 우리의 영역이다.”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은 죽인다. 알고 있겠지?”

다크 엘프들은 멀뚱히 서 있는 카단을 향해 위협적인 말들을 내뱉었지만.

“…….”

카단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빌어먹을 인간이 여기가 어디라고 이딴 짓을!”

다크 엘프들은 불에 탄 숲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고, 이내 분노에 찬 눈빛으로 카단을 노려봤다.

“평범한 놈이 아니다! 단숨에 죽여!”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수십의 다크 엘프가 땅을 박차고 카단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스윽.

다크 엘프들이 달려들려는 순간, 카단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고.

“뭐, 뭐야?”

다크 엘프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다가가면 죽는다.’

범접할 수 없는 공포.

불길한 힘을 느끼는 순간 다크 엘프들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작 인간 하나일 뿐인데, 이토록 불길한 힘을 지닐 수 있는 걸까?

‘이대로는 전멸이다. 달려들어봤자 죽음뿐이야.’

대장으로 보이던 다크 엘프는 주춤하며 주변을 살펴봤다.

다른 다크 엘프들 역시 무기를 쥔채 주춤거리기만 할 뿐, 그 누구도 공격하려는 자가 없었다.

굳어버린 표정. 절로 흔들리는 다리. 누가 보더라도 딱 겁먹은 자의 모습이었다.

슥.

카단이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다크 엘프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고.

“퇴각! 전력으로 도망쳐!”

이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자가 명령을 내렸고.

사삭!

겁에 질린 다크 엘프들은 그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땅을 박차 숲 속으로 사라졌다.

“…….”

카단은 다크 엘프들을 쫓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멍한 눈빛으로 다크 엘프들이 사라진 숲속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털썩.

카단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고요한 숲속의 밤.

나뭇잎 하나가 살랑거리며 기절한 카단의 코 위로 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단의 손가락이 까닥거렸고, 천천히 그의 눈이 떠졌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이 카단을 비추고 있었다.

“여긴….”

정신을 차린 카단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야로 처참한 전투의 흔적들이 들어왔다.

부서진 나무, 푹 파인 땅. 불에 그을린 풀숲.

그러나 정작 전투의 흔적을 남긴 바네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목을 조르던 바네사의 모습을 끝으로 기억이 끊기고 말았다.

‘몸은 또 왜 이렇게….’

개운했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미칠듯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넘쳐났다. 단순히 회복되기만 한 게 아닌 듯싶었다.

카단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다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은 어둠만이 그의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네사 또한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아.”

순간 동료들이 생각난 카단은 재빨리 주변에 떨어진 해골 병사들을 챙겼고.

“레이스. 기절한 사람을 찾아.”

곧바로 레이스들을 소환해 명령을 내렸다.

-찾았어요! 주인!

-따라와!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스들이 나타났고, 카단은 레이스들의 안내를 받으며 빠르게 달려갔다.

“다행이다….”

이내 처음 바네사와 전투를 벌였던 장소에 도착한 카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블랑쉬와 마티아스는 처음 쓰러졌던 그 자리에 그대로 기절해 있었다.

‘이렇게 소란스럽게 전투를 벌였는데 다크 엘프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니. 그것도 다행이네.’

카단은 뒤를 돌아 어두운 숲속을 바라봤고.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다시 시선을 돌려 기절한 블랑쉬와 마티아스를 바라봤다.

달그락!

혼자서 두 사람을 모두 들 수는 없었기에 카단은 해골 병사들을 소환해 두 사람을 둘러업게 했고.

“가자.”

부러진 마티아스의 창, 성유물 ‘신성한 수호자의 방패’를 포함한 일행들의 물건을 챙겨 숲의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카단과 그의 일행은 다크 엘프의 숲 에히아스를 벗어날 수 있었다.

잠시 후.

숲을 빠져나온 카단은 적당한 곳에 베이스 캠프를 만들었다.

뼈로 만들어진 간단한 텐트 속에 침구들을 펼쳤고 그 위로 마티아스와 블랑쉬를 눕혀 뒀다.

일행들을 눕힌 뒤, 곧바로 해골 병사를 시켜 장작을 가져왔고.

화륵!

텐트 앞에 모닥불을 피워냈다.

긴장이 풀리면 피곤함이 몰려오기 마련인데, 카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이 말짱했다.

피곤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숲속에서의 전투를 떠올렸다.

조금의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다. 절망뿐인 전투에서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상급 마족이었던 바네사 플로리안은 5성 네크로맨서인 카단이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두려움의 대상.

넘을 수 없는 벽.

바네사에 의해 목이 졸려지며 점차 흐릿해지는 그 순간에도 비참한 결말만이 그려졌다.

‘마족이 어째서 우리를 데려가지 않았지? 아니면 누가 우리를 구해준 건가?’

마족들이 하는 짓은 알고 있었다. 생도들을 납치해 그들을 강제로 마족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부하로 거두었다.

그렇다면 분명 기절한 카단과 그의 일행들을 데려갔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입막음을 위해서라도 우릴 죽였을 텐데.’

도무지 퍼즐이 맞춰지지 않았다.

‘기절한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행들이 깨어나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카단은 답답한 듯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카단…?”

그때 텐트 쪽에서 마티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티아스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카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어떻게 된 거야?”

주변을 둘러보던 마티아스가 멍한 얼굴로 걸음을 옮겨 카단에게 다가왔다.

“이것부터 마셔요.”

마티아스가 다가오자, 카단은 옆에 내려놓았던 물통을 들어 그에게 건넸다.

마티아스는 여전히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는지 멍한 표정으로 물을 마셔댔다.

극심한 갈증이라도 느꼈던 걸까? 빠르게 물통을 비워낸 마티아스가 카단의 옆에 앉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작 부인… 그 괴물은 어떻게 된 거야? 아니, 그 전에 성유물은?”

마티아스의 질문에 카단은 손을 뻗어 텐트를 가리켰다.

“텐트 안에 넣어뒀는데, 못 보셨어요?”

“아…. 지금 내가 정신이 없어서. 일단 설명부터 좀 해줘.”

마티아스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모르겠어요.”

카단은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후 곧바로 일행들을 챙겨 숲을 빠져나왔을 뿐, 공작 부인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빠악!

그러자 마티아스가 느닷없이 카단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야 인마! 너 내가 도망치라고 했는데 왜 멀뚱히 서 있기만 한 거야! 내가 목숨까지 걸어가며 너희 살리려고!”

카단이 멀뚱히 서 있던 상황을 떠올린 것일까? 마티아스가 처음 보는 화난 얼굴로 카단을 노려보며 외쳐댔다.

“한 명이라도 살았어야지! 그래야 공작 부인의 죄를 알릴 거 아냐!”

이 부분은 사실대로 변명할 수가 없었다.

마티아스와 바네사를 상대하는 사이, 머릿속으로 루나와 소통하며 시체로 함정을 만들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

“죄송합니다.”

카단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전했다.

진심 어린 그의 사과에 마티아스는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그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다행이다. 살아서 정말 다행이야.”

다행이라고 말하는 마티아스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분함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나 약하구나.”

늘 최고라는 얘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왕국 최고의 재능을 지닌 실력자만이 다닐 수 있는 영웅 아카데미.

그곳에서도 늘 꼭대기에 있던 그가 허무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허망한 패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티아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공작 부인의 정체가 뭐지?”

노력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존재.

처음 마주하는 거대한 벽.

가능성이라곤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간. 그 모든 것이 괴롭게만 느껴진다는 듯 마티아스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마티아스를 보며 카단은 무언가 결심한 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마족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