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04화 (104/186)

제104화

“뭐?”

카단의 말에 마티아스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왕국의 귀족인 공작 부인이 마족이라고? 그게 말이 돼?”

“공작 부인이 자기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어요. 마족이라고.”

마티아스는 잠깐 공작 부인과의 전투를 떠올렸다.

신체가 불이 되어 공격을 회피하던 모습은 확실히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무자비한 힘 역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정말…. 정말 마족이라고?”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마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바네사 플로리안 공작 부인은 영웅 아카데미의 후원자.

왕국의 고귀한 귀족.

그런 여자가 마족이었다니.

“빌어먹을.”

마티아스가 욕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욕과 함께 내뱉어진 비참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약하면 아카데미를 다니는 이유가 없잖아.”

마족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 영웅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카데미.

그런 아카데미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마티아스조차도 마족 앞에선 무기력하기만 했다.

과연 생도 중에 마족을 상대할 만한 실력자가 있을까?

졸업생 중에는 마족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가디언….”

마티아스가 초라한 목소리로 혼자 읊조리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가디언마저도 공작 부인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만큼 강력했다.

범접할 수 없는 상대.

개미가 사람한테 짓밟히며 느낄 법한 허망함을 공작 부인에게서 느꼈었다.

“선배.”

마티아스가 절망 속에 빠지려고 하자, 카단이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마티아스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고, 그 씁쓸한 표정에 카단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진중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 사실을 전부 보고할 생각이죠?”

“어떤 사실?”

“공작 부인이 우릴 습격했으며, 마족이었다는 걸요.”

카단의 말에 마티아스가 잘 모르겠다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왕국에 혼란이 일어날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귀족 중에서도 영향력이 강력했던 공작 부인이 마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뇨. 혼란스러워지기도 전에 단순한 사고사로 공작 부인은 죽었고, 우리들의 말은 헛소리가 되겠죠.”

카단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뭐?”

“공작 부인이 마족이었던 이상, 왕국 어느 누가 마족인지 알 수 없어요.”

영웅 아카데미 생도의 말을 헛소리로 만들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 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족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기 위해 생도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물론 선배의 말이라면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상 왕국에 혼란이 찾아올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 말에 이해가 된다는 듯 마티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티아스는 더 큰 절망을 느끼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정답이 떠올려지지 않았다.

“마족의 존재를 믿는 자, 그리고 마족을 적대하는 자를 찾아야겠죠.”

“가디언.”

“아뇨.”

카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가디언조차 믿을 수 없는 존재.

가디언에게 말한다고 해서 그들이 생도들의 말을 믿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카데미 사람들도 똑같아요. 어쩌면 몇몇 교관님들은 믿어주시겠지만,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 겁니다.”

하다 못해 마석이라도 있었다면, 마족이 나타났다는 증거로 내밀 수야 있었을 텐데.

“하긴. 그 정도로 강한 마족을 만나고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하면서 우리의 말을 믿어주지 않겠지.”

“네. 그리고 저는 지금 그중 한 사람을 찾았네요.”

카단이 마티아스를 바라보며 말하자, 마티아스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

“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실 마족을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말에 마티아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게 진짜야?”

“네. 숨기고 있던 이유는 앞서 말한 상황들 때문이었고요.”

왕국은 카단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카단은 마족의 존재를 알면서도 숨겨야 했다.

“거짓으로 진실을 덮고, 저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겠죠.”

“도대체 언제…. 아니, 그보다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마티아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질문을 던졌고, 카단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급 마족이었어요. 공작 부인이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약한 마족이었죠.”

자세한 걸 모두 들려줄 수는 없었다. 마족의 힘을 흡수하는 능력, 샬로트의 자식, 루나의 존재.

여러모로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지금 마족은 인간들을. 아니, 생도들을 붙잡아 마족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이어서 카단은 마족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인한 몸을 지닌 생도를 붙잡아다 마석을 주입해 강제로 마족을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마족화가 진행되는 사람의 특징은 신체 어딘가에 문신이 새겨져 있죠.”

“그렇다면 프람도….”

“네. 손등에 멧돼지 문신이 있었죠. 그가 마족의 힘을 쓰는 걸 본 적은 없지만.”

프람을 죽인 네크로맨서가 자신이라는 걸 밝힐 순 없었기에 거짓을 섞어 말해야만 했다.

“1년 주기로 졸업반 생도가 던전이나 몬스터 서식지에서 실종되었다는 건 알고 있죠?”

카단의 질문에 마티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마족이랑 연관이 있다고?”

“매년 적게는 한 명 많게는 세 명씩 꾸준히 실종되고,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단순한 사고일까요?”

듣고 보니 이상하긴 했다.

어째서 상위 5명 중 1~3명이 꾸준히 실종될 수 있을까?

“졸업은 앞둔 생도가 업적에 욕심을 내어 무리한 시도 끝에 죽었다. 아카데미에는 이런 식으로만 알려졌죠.”

순간, 마티아스의 머릿속에 에스더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에스더 선배도?”

“네. 프람이 에스더 선배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가면을 쓴 네크로맨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납치됐겠죠.”

에스더가 사라진 뒤, 아카데미에서는 에스더가 작전 중 사망했고, 시체를 찾을 수 없었다고 알려질 것이 뻔했다.

“그게 사실이야?”

그때 뒤에서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텐트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는 블랑쉬가 보였다.

블랑쉬를 보는 순간 카단은 잠시 고민했다.

‘마티아스 선배는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 그런데 블랑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아직 탄탄한 신뢰가 없었기에 블랑쉬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기가 두려웠다.

“일어났어?”

카단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블랑쉬를 반겼다.

“말해. 사실이냐고. 네가 한 말.”

“뭘?”

“다 들었어. 공작 부인이 마족이라는 사실부터 마족화, 에스더 선배가 납치될 뻔했다는 것까지.”

그 말에 카단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마티아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마티아스는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모닥불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사실이야.”

이내 한숨과 함께 카단이 사실을 인정했다.

더글라스 가문이 마족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역시 아니었다.

‘그랬다면 클로제 선배를 납치하려고 하진 않았겠지. 자발적으로 마족이 되었으면 몰라도.’

무엇보다 블랑쉬 역시 말도 안 되는 힘을 지닌 공작 부인과 직접 맞부딪혀 싸웠었다.

그 이질적인 강함을 느꼈었기에 그녀 역시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정말 마족이었구나….”

카단이 사실을 인정하자, 블랑쉬가 충격받은 듯한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일단 와서 앉아.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던 얘기는 마저 해야겠다.”

카단은 아공간에서 물통 하나를 꺼내며 블랑쉬에게 건넸고.

척.

블랑쉬는 물을 마시곤 곧바로 마티아스 옆에 앉아 모닥불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도 역시 허망함과 절망감이 묻어났다.

“두 사람. 잘 들어요.”

카단은 멍하니 앉아있는 마티아스와 블랑쉬에게 경고하듯 말을 이었다.

“동물 문신을 한 사람을 만나면 경계해요. 그리고 절대로 마족을 봤다는 말은 하지 말고.”

“왜?”

카단의 말에 블랑쉬가 의문이 든다는 얼굴로 물었다.

“얘기 다 들었다며. 마땅한 증거도 없는 우리 말을 누가 믿어주겠어?”

“그, 그건….”

“가족이라고 해도 믿기 힘들 거야. 무엇보다 우리가 마족과 싸웠다는 게 알려지면 우리만 위험해질 뿐이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야 한다. 카단은 강하게 경고했다.

블랑쉬는 알겠다며 고개를 숙였고, 이번엔 마티아스가 고개를 들며 카단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지?”

카단은 잠깐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힘을 키워야죠. 다들 느꼈잖아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 죽음을 앞둔 절망감.”

그 말에 마티아스와 블랑쉬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힘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카단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모닥불을 바라봤다. 그리곤 모닥불 속으로 누군가를 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오래전에 모시던 분이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오래전에 모시던 분?”

카단의 말에 마티아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고, 카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에 계신 분은 아니에요.”

“아, 미안하다. 내가 괜한걸.”

아무래도 잘못 이해한 듯싶었으나, 카단은 상관없다는 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평온을 원한다면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라.”

카단은 전생에 모시던 보스의 얼굴을 모닥불 위로 그렸다.

정작 조폭 시절에는 평온을 누릴 수가 없었다.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엔 세상은 넓었고, 결국엔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니.

‘네크로맨서가 된 이번 생에는 평온 좀 누려보려고 했더니.’

평온을 꿈꾸기도 전에 생존부터 떠올려야 했으며,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힘을 키웠고, 이제는 마족까지 나타난 상황.

머릿속이 참 복잡했다.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족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카단은 다시 마티아스와 블랑쉬를 바라봤다.

“무기력감을 느끼며 허무하게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강해져야 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공작 부인. 아니 그보다 강한 존재가 찾아오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왕국의 귀족까지 마족이 된 상황이고, 마족들이 인간을 마족으로 만들고 있다면.”

절망과 허무함을 그리던 블랑쉬의 눈이 다시 냉정함을 되찾았다.

‘정신 좀 차렸네.’

냉기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눈이 카단을 향했고, 카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굴 믿을 수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족의 정보를 흘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클로제 오빠나 우리 아버지는?”

“두 분 모두 행동력이 뛰어나시지. 괜히 일을 키울 수도 있어.”

카단의 말에 블랑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클로제와 더글라스 가주는 일을 키우기에 제격인 사람들이었다.

“가족도 스승도 아카데미 사람들도 믿을 수 없어. 두 사람은 함께 마족과 싸웠으니 믿고 말하는 거야. 둘 중에 마족은 없잖아?”

카단이 블랑쉬와 마티아스를 가리키며 말하자 두 사람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힘을 키워. 만족해선 안 돼. 마족이 언제 어떤 짓을 할지 몰라.”

말은 쉬웠다.

그러나 말처럼 강해지는 것은 쉬운 게 아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마족들이 더 날뛸지. 잠시 잠잠해질지.”

카단이 텐트 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린 아무 일 없다는 듯 의뢰부터 끝내면서 얌전히 지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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