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06화 (106/186)

제106화

“뭐? 마법?”

카단의 말에 루나가 헛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다른 마법은 몰라도 피를 이용한 마법은 뱀파이어를 따라갈 수 없잖아.”

피를 다루는 마법을 사용하는 건 네크로맨서가 유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네크로맨서라고 하더라도 뱀파이어만큼 피를 잘 다루는 자는 없을 터.

“그, 그건 그렇지?”

루나는 괜히 머쓱해졌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루나 네가 날 가르쳐줄 수 있을까?”

네크로맨서. 1인 군단이라 불리며 등장만으로도 전장의 분위기를 뒤엎는 자.

분명 강력한 언데드를 계속해서 되살리는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단은 이번 마족과의 전투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모든 언데드들이 쓰러진 후 홀로 남았을 때의 외로움. 막막함. 그리고 절망감까지.

그 괴로운 감정들을 다시 느끼고 싶진 않았다.

“언제까지나 뒤에 서 있을 수는 없어.”

“네크로맨서는 원래 뒤에 서 있는 거야. 네크로맨서가 죽으면 다 끝이니까.”

“그러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 강한 네크로맨서가 되어야지.”

카단이 루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탁할게.”

그러자 루나가 조금 당황했는 지 눈을 끔뻑거렸고, 이내 팔을 내저으며 말했다.

“뱀파이어의 마법은 인간이 따라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힘들걸? 힘들 수밖에 없어.”

“시도해볼 수는 있잖아. 해본 적 없잖아.”

“응….”

루나가 알기로도 여태까지 뱀파이어에게 마법을 배운 인간은 없었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뱀파이어를 소환할 수 있는 건 고대 네크로맨서를 제외하면 카단과 샬로트뿐이었다.

게다가 고대 네크로맨서의 기록 중에도 뱀파이어에게 마법을 배웠다는 네크로맨서는 없었다.

“모르겠다. 가능할까?”

루나는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고, 카단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만약 안 되면 그때는 그 주먹 쓰는 법 좀 알려주라.”

휙!

카단이 주먹을 내지르며 말했고, 그 모습에 루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해보자. 물론 가르침이 쉽지만은 않을 거야.”

***

루나가 역소환된 후, 카단은 곧바로 잠이 들었고.

똑똑.

“카단. 저녁 먹으러 가자.”

저녁 시간이 되었다는 마티아스의 노크 소리에 눈을 뜰 수 있었다.

“네.”

카단은 대답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났고, 옷을 갈아입은 뒤 곧바로 방을 벗어났다.

“저 씻고 와도 될까요?”

방문을 나서자 멀끔한 모습의 마티아스가 서 있었고, 카단은 삐쭉 뻗은 자신의 머리칼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냥 먹고 씻어.”

“씻고 먹을게요.”

카단은 피식 웃으며 샤워실로 이동했고, 마티아스는 빨리 씻고 오라는 말을 남기며 1층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샤워를 끝낸 카단이 개운함을 느끼며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은 꽤 시끌벅적했다.

‘손님 전용 여관이라더니.’

식당으로 쓰이는 1층에는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식사만 해결하는 것도 아니었다.

“맥주 한 잔만 더 할까?”

“좋지!”

“이 사람들아. 전쟁 중이다. 적당히들 마셔. 숙취에 비틀거리다가 목 날아갈라.”

거하게 술판이 벌어진 곳도 있었고.

“1실버 받고 2실버 더!”

구석에선 작게 도박판이 열리기도 했다.

‘그래. 지금 전쟁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이렇게 파티 분위기야?’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1층을 둘러봤다.

“카단. 여기야.”

그때 마티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려보니 마티아스와 블랑쉬가 바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서 먹어.”

카단이 다가오자 블랑쉬는 고기가 담긴 접시와 스프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고.

“감사합니다.”

카단은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여기 손님 전용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손님 전용은 객실만. 1층은 주점이나 식당으로 사용하신대.”

마티아스는 카단이 질문할 걸 알고 있었는 지, 곧바로 대답해주었다.

“여기 음식 솜씨가 좋아서 매번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리나 봐.”

“그렇군요.”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여관을 찾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강해 보였다. 아마도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이 아닐까 싶었다.

“아마 전쟁의 피로를 풀기 위해 모인 것 같아.”

마티아스는 고기 하나를 집어 먹으며 말을 이었다.

“너 오기 전에 용병 길드 사람들이랑 인사 좀 하고 왔거든. 다들 꽤 오래 있었다고 하더라.”

용병들도 이곳에 있는 걸까?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지금 전장 상황에 대해서 들은 건 좀 있어요?”

“응. 좋은 상황은 아니래. 야만족 놈들이 작정하고 공격해온다고 하더라.”

“어차피 가디언도 계시잖아요?”

역사상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는 거대한 성벽.

가디언 디미타르를 필두로 무패 신화를 이어가는 이곳이 왜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까?

“아, 물론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위험한 상황이라면 저렇게 즐기진 못하겠지.”

확실히 이곳의 분위기는 도시 트라팔가보다 훨씬 밝고 경쾌했다.

전쟁 도중에 이처럼 술을 마시며 즐기는 곳이 또 어디있을까?

“전쟁 중 술을 마시는 건 이곳의 전통이야.”

카단이 의아하다는 듯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보자, 마티아스가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전통이요?”

“정말 몰랐어? 유명한데.”

카단이 눈을 끔뻑이며 되묻자, 마티아스가 피식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오랫동안 이어진 전투의 피로는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면서 순번을 정해서 차례대로 술을 마신다고 하더라고.”

“뭐, 피로가 쌓이면 좋지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술을….”

“즐거움이 없는 곳엔 승리도 없다. 디미타르 님이 그러셨거든. 아무래도 디미타르 님이 직접 이끄는 곳이니 그 말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모양이야.”

1년 내내 전쟁이 끊이지 않는 도시였음에도 에어록손은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곳이었다.

무패 신화에 한 발 걸치고 싶은 이들도 있고, 가디언의 지휘를 받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즐겁게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가치를 느낀 이들이 이곳의 병사로 지원한다고 했다.

“우리 아카데미 출신 선배들도 꽤 있다고 들었어.”

카단은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그런데 카단.”

한참 식사가 이어지던 중, 먼저 식사를 끝낸 마티아스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카단을 불렀다.

“네?”

“계속 숨길 생각이야?”

그 말에 옆에서 얌전히 식사를 이어가던 블랑쉬도 잠시 포크를 내려놓고 마티아스를 바라봤다.

“어떤 걸 숨겨요?”

“5성이라는 사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숨겨왔잖아.”

“아, 네.”

“계속 숨길 생각이면 나 역시 입을 다물고 있을게.”

마티아스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카단의 시선이 블랑쉬를 향했다.

“나, 나도 비밀로 해줄 수 있어.”

블랑쉬는 괜히 헛기침하며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아니에요.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수도 없고, 그냥 알려지는 게 편할 것 같아요.”

카단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블랑쉬가 다시 포크를 내려놓고 카단을 노려보며 물었다.

“도대체 언제 5성이 된 거야?”

이제야 궁금한 걸 물어본다는 듯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차갑기만 하던 그녀의 눈빛이 반짝이니 뭔가 어색함마저 느껴졌다.

“아, 그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까.

“너 만날 때까지만 해도 4성이었어.”

우선은 진실로 시작해야겠지.

원래 거짓말을 할 땐 진실이 섞여야 하는 법.

“그 이후에 어떤 깨달음이 있었고, 좋은 기회를 얻었거든. 그래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아카데미로 돌아와 계속 훈련만 했어.”

단순한 깨달음으로 4성이 5성이 되는 건 어려웠다.

무엇보다 마나 하트가 충분히 단련되어야만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

‘하긴. 저 녀석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누구보다 늦게까지 훈련하잖아?’

블랑쉬는 잠시 카단의 아카데미 생활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카단 정도의 성실함과 재능이라면 마나 하트쯤이야 충분히 단련되어 있을 터.

“좋은 기회라면?”

“그것까지는 말해줄 수 없지. 나도 비밀이라는 게 있는데.”

카단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옆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오렌지 주스는 잭 카터 씨가 만들어준 게 더 맛있었는데.’

카단이 어물쩍 대답을 넘어가자, 블랑쉬가 분하다는 듯 카단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녀 역시 더는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물고 늘어지는 건 예의도 아니었으며 귀족으로서의 위상을 떨어트리는 일.

“아무튼. 대단하네. 벌써 5성이라니.”

분위기가 차가워지자, 가운데 앉아있던 마티아스가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선배도 1학년 때 5성 됐잖아요.”

카단의 말에 마티아스가 블랑쉬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자기 입에 가져다 댔다.

‘아. 그렇네.’

카단은 마티아스의 행동을 보고는 곧바로 왜 그가 블랑쉬의 눈치를 보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마티아스도 1학년 때 5성이 되었고, 카단 역시 1학년이 끝나기 전에 5성이 되었다.

그러나 블랑쉬는 여전히 4성.

마티아스는 혹여라도 그녀가 불편해할까 봐 조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생각대로 블랑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 역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마법 명가인 더글라스 가문의 영애로 태어나 가문에서도 출중한 재능을 뽐냈다.

게다가 단번에 영웅 아카데미까지 입학하며 그녀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그녀보다 뛰어난 사람은 존재했다.

‘저 녀석 성격에 평민 둘이 자신보다 더 빨리 강해졌다는 사실에 기분 상해할 수도 있겠어.’

물론 카단이나 마티아스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를 미워할 수도 있겠다는 뜻이었다.

‘이게 좋은 자극이 되었길 바라야지.’

의도하진 않았지만, 5성이 되었다는 게 알려지고 말았다.

없던 일로 할 수 없었기에, 카단은 블랑쉬가 성장의 재능을 질투하거나 부러워하며 절망감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오히려 그 질투심을 원동력으로 더 노력하는 그림이 그려지길 바랐다.

‘어차피 6성이 된 이상, 4성이라 속이는 것도 힘들 거야.’

이제부터 소환하는 해골 병사들은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갑자기 성장한 해골 병사를 본다면 아이작 교수는 카단이 한 단계 더 성장했다고 눈치챌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5성이 되면 데스나이트를 강화하는 법을 알려주신다고 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언제 어디서 마족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아이작에게 배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배워둬야 했다.

“영웅 아카데미에서 오신 분들 계십니까?”

그때 누군가가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카단 일행을 찾았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갑옷을 입은 한 여성이 여관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여기있습니다.”

마티아스가 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주점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이 마티아스에게 집중되었다.

시끌벅적하던 식당 안이 고요해졌고, 마티아스는 괜히 뻘쭘해지는 것을 느끼곤 뒷머리를 긁적였다.

“따라오시겠습니까? 디미타르 님께서 찾으십니다.”

“아, 네.”

마티아스는 카단과 블랑쉬 앞에 놓인 접시를 바라봤고.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이내 두 사람을 이끌고 갑옷을 입은 여성에게 다가갔다.

식당에 내려올 때도 성유물을 등에 멘 상태로 왔기에 따로 챙길 짐은 없었다.

“그럼 따라오시죠.”

갑옷을 입은 여성은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먼저 걸음을 옮겼고.

“영웅 아카데미에서 왔다고?”

“지원이라도 온 건가?”

”디미타르 님을 따로 뵐 정도면, 그냥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식당 안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마티아스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재빨리 여관을 벗어났고, 카단과 블랑쉬 역시 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갑옷을 입은 여성이 세 사람을 이끌고 온 곳은 거대한 훈련장 안이었다.

영웅 아카데미의 훈련장만큼 넓고 깔끔한 곳이었다.

‘왜 이곳으로?’

영주 성이나 막사 같은 곳으로 안내할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훈련장이라니.

스릉.

그때 길을 안내하던 여성이 느닷없이 검을 뽑았고.

“한 명씩 덤비셔도 좋고 함께 덤비셔도 좋습니다.”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티아스와 카단, 블랑쉬가 눈을 끔뻑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이야?’

세 사람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자, 갑옷을 입은 여성은 무뚝뚝한 얼굴로 다시 말을 꺼냈다.

“저를 쓰러트리기 전까진 디미타르 님을 만나실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마티아스가 헛기침을 하며 되물었다.

“아니, 왜요? 저흰 의뢰 때문에 온 건데.”

그러자 여성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대답해주었다.

“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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