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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07화 (107/186)

제107화

스릉.

갑옷을 입은 여성은 어서 덤비라는 듯 검을 까딱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장난으로 던진 말이 아닌 것 같았다.

툭.

그러자 마티아스가 등에 메고 있던 방패를 조심스레 내려놓더니, 카단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카단. 창 하나만 만들어줘.”

공작 부인과의 전투 중 창이 부러지는 바람에 마티아스에게 마땅한 무기가 없었다.

상대가 진검을 꺼낸 이상, 어느 정도 무기다운 무기가 필요했다.

“선배가 하시려고요?”

“누가 봐도 내가 나서야 할 상황이지 않아?”

6성의 창술사. 근접 전투에 자신 있는 마티아스가 나서는 게 아무래도 가장 안정적이었다.

촤악!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공에 뼛가루를 뿌렸고.

스스스스슥!

허공에 뿌려진 뼛가루들이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얀색의 창 한 자루가 완성되었다.

“확인해보세요.”

창을 건네받은 마티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창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밸런스가 좋은데?’

단순히 모양만 그럴싸한 창일 줄 알았다. 네크로맨서가 대장장이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닐 테니.

그러나 창을 받아 드는 순간부터 놀라고 말았다.

뼈로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처럼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어줄 줄이야.

“카단. 너 혹시 대장장이 기술도 배운 적 있어?”

“네. 어릴 때요.”

“아….”

그 대답에 마티아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카단 이 녀석은 어디 가서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당장 뼈를 이용해 무기를 만들어 가져다 팔아도 웬만한 대장간보다 장사가 잘될 것 같았다.

물론 뼈로 만든 무기가 전부라는 게 흠이겠지만.

“선배 괜찮겠어요?”

마티아스가 다시 창을 확인하고 있을 때, 블랑쉬가 다가와 물었다.

“함께 덤벼도 된다고 했으니, 뒤에서 지원할게요.”

“아니야. 너희가 나서는 순간, 저 사람의 첫 목표는 내가 아니라 너희가 될걸?”

부드럽게 들려온 마티아스의 답변에 블랑쉬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신경이 분산되는 것보다 일대일로 집중하고 싶다는 거죠?”

“응. 다녀올게.”

자신이 있는 걸까?

상대는 가디언 디미타르가 이끄는 기사단의 기사로 보였다.

기사단 소속 기사가 아니더라도 그녀는 에어록손 성벽을 지키던 베테랑 기사.

과연 마티아스가 그녀를 혼자 상대할 수 있을까?

“시작하시죠.”

여성 앞에 멈춰 선 마티아스가 달려들 듯한 자세를 취했다.

“실전처럼 하셔야 해요. 저도 그럴 생각이니까.”

“아! 그 전에 소개를 먼저 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전 영웅 아카데미 생도 마티아스입니다.”

“전 기사 라디아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예를 갖춘 모습으로 인사를 나눴고, 다시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눴다.

먼저 땅을 박차며 움직인 건 마티아스였다.

타앗!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힌 마티아스는 일단 견제부터 할 생각이었는지, 가볍게 창을 내질렀다.

슉!

창끝이 라디아에게 닿으려던 순간, 마티아스는 창을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스릉!

그녀는 빠르게 마티아스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가볍게 검을 휘둘러 마티아스의 몸통을 후려쳤다.

쿠다당탕!

마티아스는 그대로 고꾸라지더니,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서, 선배!”

그 모습에 카단과 블랑쉬가 깜짝 놀라며 마티아스를 바라봤고.

“어라…?”

바닥을 구른 장본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라디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면으로 때렸어요. 검날로 그었으면 두 동강 나셨겠죠?”

마티아스는 그녀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사전 동작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순간적인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걸까?

“……저의 패배입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마티아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곧바로 라디아에게 말을 건넸다.

“고생했어요.”

라디아는 짧게 인사를 건네 후, 이번엔 카단과 블랑쉬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라디아의 무표정한 얼굴에 카단은 왠지 모를 불안을 느꼈다.

“자, 다음은 누구죠?”

***

화려한 패배였다.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 그것도 2학년, 1학년 최강자라 불리는 이들이 단 한 번의 공격도 맞추지 못한 채 패배를 인정했다.

마티아스도 단번에 쓰러트린 라디아를 블랑쉬나 카단이 어떻게 해볼 수는 없었다.

‘강하다.’

마지막으로 라디아를 상대했던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훈련장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아니, 기절했다가 이제 막 정신을 차려 헛웃음을 지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디아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순식간이었다.

‘분명 데스나이트를 소환했고 곧바로 저주 마법을 쓸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공격을 당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카단. 정신이 드냐?”

카단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마티아스가 다가와 카단의 어깨를 콕콕 찔러댔다.

“아, 네.”

그제야 카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마티아스를 바라봤다.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긴. 네가 데스나이트를 소환하자마자 저분께서 곧바로 달려와 너의 턱을 후려쳤지.”

공격 한 번 정도는 하게 해줄 줄 알았는데, 데스나이트 소환했다고 곧바로 공격하다니.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패배 앞에서 궁상맞게 굴고 싶진 않았다.

‘언데드를 소환한 순간부터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판단한 거겠지.’

카단은 씁쓸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문 앞에 서 있던 라디아가 세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 분께서는 저를 쓰러트리지 못하셨으니, 디미타르 님을 만나실 수는 없습니다.”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에 세 사람이 당황한 듯 서로를 바라봤고.

“저흰 의뢰를 받고 이 방패를 전달하기 위해 왔습니다.”

마티아스가 나서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절 쓰러트리지 못했죠.”

“급하다고 해서 목숨 걸고 다크 엘프들이 사는 숲도 지나쳐 왔는데요?”

슥.

그러자 라디아가 마티아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물론 방패는 받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확인서는 드릴 수 없습니다.”

디미타르가 방패를 받았단 확인서를 받지 못하는 이상, 임무는 완수할 수가 없었다.

의뢰를 끝내기 위해선 디미타르의 직인이 찍힌 확인서가 필요했다.

그러자 마티아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본인이 아니라면 방패는 넘길 수 없습니다. 저흰 당신을 무작정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내가 직접 받기만 하면 문제는 없겠군.”

2층 난간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엔 갑옷을 입은 기사 하나가 난간에 기댄 채 생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온몸이 찌그러지는 듯한 위압감.

생도들은 단번에 그 기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위대한 왕국의 수호자. 가디언 디미타르 님을 뵙습니다!”

마티아스가 먼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가디언을 향해 예를 갖췄고.

“가디언 디미타르 님을 뵙습니다!”

이어서 카단과 블랑쉬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생도들은 일어나도 좋다. 편하게 있어. 편하게.”

디미타르는 일어나라는 듯 손짓을 하며 말했고, 이어서 그대로 난간을 뛰어넘어 1층으로 내려왔다.

툭.

무거운 갑옷을 입고 빠른 속도로 뛰어내렸지만, 착지하며 들리는 소리는 무척이나 가볍게만 들려왔다.

‘가디언….’

카단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디미타르를 바라봤다.

길버트와 아이작에 이어서 세 번째로 만나는 가디언.

‘이 자도 언젠가 마주해야 할 사람 중 하나였는데.’

샬로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카단은 왕국의 수호자인 6명의 가디언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었다.

실제로 처음 만났던 가디언 ‘길버트’를 만나기 전부터 그를 만났을 당시에도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

분노라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디미타르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은 차분한 느낌이었다.

조금도 흥분되지 않았다.

뜨거워지기보단 차가워졌다.

‘마족의 존재 때문인가?’

어쩌면 마족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진정한 복수의 대상은 가디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죄가 없는 건 아닌데.’

물론, 가디언들을 향한 원망은 남아 있었다.

오랜 친구였다면, 친구의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반역을 저지른 죄인이라며 무작정 칼부터 들이밀 게 아니라.

‘모든 게 확실해진 뒤, 분노를 표출해도 늦지 않아.’

그러나 카단은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기로 했다.

당연하겠지만, 지금 카단의 실력으로는 가디언의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없을 것이다.

괜히 감정을 앞세웠다가는 제대로 된 복수를 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지금 이성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하나다.’

과연 디미타르는 마족의 편에 서 있는 자일까?

‘마족과 손을 잡은 사람이 성유물을 사용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

다만, 디미타르가 마족과 손을 잡지 않았다면 상급 이상의 마족을 상대할 수 있는 몇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즉. 마족을 상대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

‘모르겠군.’

그가 마족과 손을 잡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성유물을 쓴다고 무작정 마족과 손을 잡지 않았다고 판단하기도 일렀다.

마족이 되는 것을 거부한 상태로도 마족과 손을 잡는 것 역시 가능할 테니.

“방패는 잘 받겠다.”

디미타르는 무심한 얼굴로 마티아스가 들고 있던 방패를 빼앗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티아스가 자기도 모르게 디미타르에게 방패를 건네줬다.

“의뢰를 완수했다는 확인서를 받고 싶으면 정식으로 라디아를 이기고 날 만나러 와라.”

방패를 이리저리 확인해보던 디미타르가 다시 생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마티아스가 다시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확인서만 주면 될 일을 굳이 어렵게 일을 해결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라디아가 말했을 텐데? 전통이라고.”

“어떤 전통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의뢰든 뭐든,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온 영웅 아카데미 생도들을 시험하는 전통이랄까?”

디미타르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수업을 빼먹는 게 아쉽다고 생각하지 마. 수업받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테니.”

마티아스는 더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애초에 영웅 아카데미는 가디언들의 관리하에 있는 곳.

마티아스와 그의 팀원들이 오랜 시간 아카데미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영웅 아카데미 생도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이라고 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질문 해도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정식으로 디미타르를 만나고 싶으면 전통을 따르라고.

“라디아. 잘 얘기 좀 해주고 쉬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디미타르는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라디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너희들. 날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막 훈련장의 출입문을 열던 디미타르가 잠시 뒤를 돌더니, 마티아스와 카단, 그리고 블랑쉬를 향해 말했다.

디미타르는 세 사람이 무언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곧바로 훈련장을 빠져나갔고.

척.

기사 라디아가 세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전 당분간 이곳에서 지낼 겁니다. 언제든 도전을 받아줄 테니, 충분히 준비되었다면 이 훈련장으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생도들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영웅 아카데미의 최강자라고 손꼽는 마티아스도 순식간에 쓰러트린 그녀를 어찌 이기란 말인가?

순식간에 강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모를까.

“툭.”

생도들이 당황하며 생각에 빠진 사이, 라디아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생도들 앞으로 던졌다.

“이건….”

라디아가 건넨 건 돌돌 말린 양피지였고, 마티아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양피지를 들어 올렸다.

사락.

천천히 양피지를 펴보니, 그곳엔 알 수 없는 자들의 이름이 가득 적혀 있었다.

게다가 그 옆엔 이름이 적힌 사람들의 직업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게 뭡니까?”

알 수 없는 명단을 확인하던 마티아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라디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생도들에게 말했다.

“에어록손에서 강해지는 법은 상당히 다양합니다. 그건 일종의 힌트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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