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08화 (108/186)

제108화

숙소로 돌아온 세 사람이 모두 마티아스의 방으로 모였다.

그들은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로 라디아에게 받은 양피지를 펼쳐놓은 상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여기 적힌 이름들이….”

“맞아. 성벽을 지키는 자들의 이름이야. 기사, 용병할 것 없이 다 적혀 있네.”

블랑쉬가 명단을 가리키며 묻자, 마티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 명단을 준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카단이 무언가 알겠다는 듯 말하자, 마티아스가 곧바로 답을 이어갔다.

“그래. 이 명단에 적힌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받으라는 뜻이겠지.”

에어록손 성벽에 머물며 이곳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 그들을 통해 성장해라.

그것이 이 전통의 핵심이었다.

귀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명단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카데미라는 우물을 나와 강자들의 세상을 경험하라는 뜻인가.’

카단은 이 전통의 뜻을 이해하며 곧바로 도움받을 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 명단을 살펴봤다.

‘쯧. 죄다 낯선 이름이고 네크로맨서는 없는 것 같네.’

카단이 누군가에게 배움을 받는다면 아무래도 네크로맨서를 찾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명단에 적힌 사람 중 네크로맨서는 보이지 않았다.

“다들 찾아갈 사람을 정했어요?”

명단을 살피던 카단이 묻자, 블랑쉬가 먼저 명단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난 정했어.”

[메디브 리안 / 53세 / 전투 마법사 / 동쪽 성벽 부근 위치]

“이분을 찾아가 보려고.”

“메디브 리안? 유명하신 분이군.”

그러자 마티아스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블랑쉬를 바라봤다.

“선배도 알아요?”

“모를 리가 있겠어? 전투 마법사 중에서도 꽤 유명하신 분이잖아. 스승님이 인정한 강자야.”

용병왕이 인정한 마법사라면 확실히 블랑쉬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블랑쉬는 명단을 펼치는 순간부터, 자신이 찾아가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정한 듯싶었다.

“그렇다면 선배는요?”

카단이 마티아스를 향해 묻자, 마티아스도 명단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라디아 / 27세 / 에어록손 기사단의 기사 / 대전투 훈련장 위치]

“아까 그 기사님이요?”

그러자 블랑쉬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응. 명단에 보면 유명하신 분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이분한테 배움을 받고 싶었어.”

조금 전 마티아스는 허무한 패배를 맞이했다.

창 한 번 내지른 것이 전부.

그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마티아스는 라디아와 자신의 차이를 인정했고, 패배를 선언했다.

“원래 내가 좀 끈질긴 성격이거든. 내가 왜 졌는지부터 어떻게 날 이겼는지까지 상세히 분석해볼 생각이야.”

“그렇군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카단은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블랑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마티아스를 바라봤다.

아마 마티아스가 귀족이었다면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순 없을 것이다.

자신을 쓰러트린 라디아에게 배움을 받는다니. 귀족이라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티아스는 평민 출신의 용병으로 살아왔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는 언제든지 내려놓을 수 있었고, 어느 사람에게든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을 지녔다.

“블랑쉬랑 나는 이미 만나 볼 사람을 정했고. 카단 너는?”

이번엔 마티아스가 카단에게 물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카단에게 집중되었다.

“아는 정보가 별로 없어서, 우선 도시를 좀 돌아다녀 볼 생각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명단에 적힌 이름 중 카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어때?”

카단이 고민하자, 블랑쉬가 누군가를 가리켰다.

“팔라딘…?”

“응. 상성이 좋지 않으니, 대련하다 보면 실력이 자연스레 늘지 않을까?”

그녀가 가리킨 건은 네크로맨서의 천적과 다름없는 팔라딘이었다.

“성기사도 아니고 팔라딘이라니. 과연 카단이 배울 만한 게 있을까? 패배 경험만 실컷 쌓을 것 같은데.”

마티아스는 팔라딘의 이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상성이 최악인 팔라딘과 대련하다 보면 카단 역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팔라딘을 상대하는 법이라던지, 성스러운 힘에 맞서는 방법이라던지. 뭐라도 하나는 알게 될 것이다.

“아니야. 지금은.”

그러나 카단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도움은 되겠지만, 굳이 이 상황에 팔라딘과 전투를 경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블랑쉬가 아쉽다는 듯 손가락을 치우며 물었다.

“아까 그 기사분이 말씀하셨잖아. 강해지는 법은 다양하다고.”

카단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답했다.

대충 세 사람의 목적지가 정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마티아스가 명단이 적힌 양피지를 돌돌 말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최대한 빨리 돌아가자고. 우선 일주일 뒤. 재도전해 보는 게 어때?”

강해지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티아스의 말대로 이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일.

그렇기에 카단과 블랑쉬는 마티아스의 제안을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그럼 각자 시간 잘 보내보자고.”

***

숙소를 빠져나온 카단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용병 길드였다.

‘다들 강해 보이네.’

용병 길드 안으로 들어선 카단은 놀랍다는 듯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봤다.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용병 길드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용병 길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 모인 용병들이 죄다 강해 보인다는 것.

‘아무래도 중급 이하 용병은 없을 것 같군.’

에어록손 성벽의 용병 길드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용병 중에서도 실력이 인정된 이들만 이곳에 머물며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

“거기 무슨 일로 오셨소?”

카단이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바 테이블 뒤에서 유리잔을 닦고 있던 수염이 가득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 도시 근처에 갈만한 던전이 있는지 알아보러 왔습니다.”

카단은 곧바로 수염이 가득한 남성에게 다가가 본론을 꺼냈다.

그러자 순간 용병 길드 안이 고요해졌다.

술을 마시던 이들도, 장비를 점검하던 이들도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 카단을 바라봤다.

푸하하하하하하!

이내 용병 길드 건물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다.

카단은 폭소하는 용병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수염이 가득한 남성을 바라봤다.

“아니. 이곳까지 와서 던전을 찾는단 말이오?”

안내자의 질문에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용병 길드에 던전 정보를 묻는 게 이상한 겁니까?”

“평범한 용병 길드라면 모를까, 이곳은 전쟁을 위해 용병들이 모이는 곳이오. 근처 던전을 물어보는 자는 또 처음이군.”

수염이 가득한 남자는 시원하게 한잔하라며 물 한잔을 건넸다.

“이봐, 꼬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온 거야!”

“에어록손까지 와서 던전을 찾다니. 이상한 놈이구만!”

용병들이 카단을 놀리듯 외쳐댔다. 이상하게도 기분 나쁘게 들려오지만은 않았다.

마치 귀여운 조카에게 장난을 치는 듯한 느낌의 놀림이었다.

물론, 카단은 그들의 반응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수염이 가득한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지 말고 전쟁에 참여하는 건 어떻소? 야만족 녀석들이 위험하긴 해도, 에어록손은 한탕 벌기 좋은 곳이거든.”

용병 길드의 안내인으로 보이는 남성은 피식 웃으며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려놨다.

“용병 지원서요. 작성만 하면 적성에 따라 배치해드리리다.”

네크로맨서가 전쟁터에서 발군의 힘을 발휘한다지만, 굳이 전쟁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카단은 그저 마티아스, 블랑쉬와 약속한 일주일 동안 수련에만 몰두할 생각이었으니.

“괜찮습니다. 던전 정보나 좀 알려주세요.”

카단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사양했고.

“크하하! 저 새끼 까였어!”

“어린놈한테 까이다니, 이제 그 안내인 자리에서도 내려와야 할 것 같은데?”

주변 용병들은 더 큰 소리로 웃어대며 안내인을 비웃어댔다.

놀림 받고 있던 안내인 역시 기분 좋은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단체로 취하기라도 한 건가.’

괴상한 분위기에 카단은 헛웃음을 받으며 안내인을 바라봤고.

“거, 잠깐 기다리쇼. 던전 정보를 꺼낸 지 좀 오래돼서. 찾아봐야 하니.”

안내인은 바 테이블 뒤로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꾸겨진 양피지 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툭.

“이 근방 던전인데, 웬만한 곳은 공략되어있을 거요. 에어록손 기사단이 죄다 공략했을 테니.”

전쟁 중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으면 안 되었기에, 에어록손 기사단에선 따로 몬스터 토벌팀을 꾸리기도 했다고 한다.

‘뭐, 빈 던전이면 더 좋지.’

카단의 목적은 던전 공략이 아닌 적당한 훈련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다 챙겨도 상관없죠?”

“물론. 상관없소. 어차피 찾는 사람도 없고, 양피지만 넘쳐나니.”

카단은 양피지를 정리해 챙긴 뒤 곧바로 용병 길드를 벗어났다.

***

“여기가 적당하겠네.”

카단이 찾은 곳은 에어록손 인근에 있는 지하 던전이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공략된 던전이었으며,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크기도 꽤 컸기에 훈련 장소로는 제격이었다.

‘공략된 던전에 찾아올 사람은 없을 테고, 거리도 꽤 되니까….’

스릉.

카단은 주변을 살피더니, 이내 단검을 이용해 자신의 손바닥을 콕 찔렀다.

또옥.

피 몇 방울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마나를 활성화하자, 번쩍하는 빛과 함께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어디야?”

루나는 소환되는 즉시, 주먹을 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전투 상황에 소환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주먹은 벌써 붉은빛 마나를 머금고 있었다.

“훈련 장소입니다.”

“훈련 장소?”

“네. 선생님.”

“으엑? 선생님?”

카단이 피식 웃으며 답하자, 루나가 질색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어댔다.

“저번에 가르쳐 주기로 했잖아? 피 마법. 마침 시간이 좀 생겨서.”

그 말에 루나가 팔짱을 낀 채로 카단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일단 언데드를 이용해서 몬스터든 동물이든 잡아 와.”

“그건 왜?”

“네 피를 이용해서 수련하다 보면 너 죽어. 어차피 5성이니까 다른 생명체의 피도 다룰 수 있을 거 아냐?”

그제야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데스나이트 하나를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군주.”

거대한 덩치의 잔혹함이 느껴지는 도끼를 든 오크 데스나이트. 카록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카단에게 인사를 건넸다.

“밖에 나가서 몬스터 좀 사냥해와. 네가 사냥할 수 있는 놈으로.”

“죽음을 받치겠습니다!”

쿵! 쿵! 쿵! 쿵!

카록은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재빨리 땅을 박차며 던전 밖을 빠져나갔다.

“저 녀석이 뭘 잡아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도 있어.”

데스나이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나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카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할 일?”

“너 6성이 되고 마나 하트를 점검해본 적 있어?”

카단은 고개를 저었다.

마나 하트를 점검할 시간도 정신도 없었다.

“그럴 줄 알았어. 지금 네 몸속 마나의 흐름이 엉망진창이야.”

그 말에 카단은 곧바로 눈을 감고 마나 하트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질 좋은 마나가 가득했고, 마나 하트 역시 크기를 키운 상태.

확실히 5성 당시의 마나 하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루나의 말대로 몸 곳곳으로 흘러가는 마나의 흐름이 불안정해 보였다.

“마나의 흐름은 중요해. 네가 무작정 언데드만 소환한다면 상관없지만, 마법을 사용한다면 한 번 정리해줄 필요는 있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루나가 손바닥을 펼치더니, 그곳에 붉은빛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파도 참아. 정신 잃으면 안 돼.”

“어?”

루나가 다가오자 카단은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지만,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분위기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마나 흐름에 집중해.”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카단에게 다가갔고.

쫘악!

이내 마나를 머금은 손바닥을 이용해 카단의 등을 후려쳤다.

“크억!”

동시에 죽음을 떠올릴 법한 미칠듯한 고통이 빠른 속도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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