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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10화 (110/186)

제110화

대전투 훈련장 안.

“2주 만에 뵙는군요.”

에어록손의 기사 라디아가 문을 열고 들어온 세 사람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네.’

라디아는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카단과 블랑쉬를 바라봤다.

마티아스는 직접 가르쳤기에 그의 변화와 발전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단과 블랑쉬는 정확히 2주 만에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전과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헛된 시간을 보내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군.’

라디아는 흐뭇하게 웃음을 지으며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디미타르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시죠.”

그녀의 말에 카단과 블랑쉬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분명 디미타르를 만나기 위해선 자신을 쓰러트리라고 했으면서 왜 갑자기 따라오라는 걸까?

카단과 블랑쉬가 멈칫하자, 라디아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3일 전에 마티아스 생도가 저를 쓰러트렸어요. 그러니 또 대련할 필요는 없겠죠.”

이어진 그녀의 말에 카단과 블랑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티아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마티아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둘 다 바쁜 거 같아서.”

어색하게 웃으며 답하자, 블랑쉬가 헛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배신자.”

카단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치사하네.”

두 사람 모두 2주간 노력하며 발전한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말없이 혼자 행동해서 미안. 갑자기 자신감이 생겨서 도전했다가 그만….”

마티아스가 미안하다며 말을 전해왔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뚱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이러려고 라디아 님에게 배움을 받는다고 했던 거구나.”

“언질이라도 해주면 좋았을 텐데.”

라디아와 다시 붙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세 사람 중 한 명은 라디아를 쓰러트렸어야 했다.

그렇기에 마티아스의 행동에 큰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그저 마티아스가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농담을 이어갈 뿐이었다.

“저도 두 분의 발전이 궁금하긴 하지만, 디미타르 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서두를까요?”

세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 라디아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그제야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라디아를 바라봤고, 라디아는 자상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따라오세요.”

대전투용 훈련장을 벗어나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자 기다란 복도가 나왔다.

라디아는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고, 세 사람은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내 네 사람은 은으로 만들어진 문 앞에서 멈춰 섰고, 라디아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똑똑.

“라디아입니다. 생도들을 데려왔습니다.”

“들여보내.”

그러자 문 너머로 디미타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중에 또 뵙도록 하죠.”

라디아는 어서 들어가 보라는 듯 은빛 문을 가리켰고, 마티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문고리를 붙잡았다.

철컥.

문이 열리자, 향긋한 허브향이 먼저 세 사람을 반겨주었다.

“위대한 왕국의 수호자. 가디언 디미타르 님을 뵙습니다.”

“가디언 디미타르 님을 뵙습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마티아스가 예를 차리며 인사를 건넸고, 카단과 블랑쉬 역시 마티아스를 다라 인사를 건넸다.

“다들 와서 앉도록.”

창문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던 디미타르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 사람은 그의 지시에 따라 방 가운데 놓인 소파에 앉았고.

척.

디미타르는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세 사람을 살펴봤다.

“그사이 많이 발전한 것 같군. 다들 고생했다.”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마티아스가 생도들을 대표해 대답했다.

“확인서는 내 책상 위에 있으니, 챙기도록 해.”

디미타르가 이번엔 책상을 가리켰고, 책상과 가장 가까웠던 블랑쉬가 일어나 확인서로 보이는 양피지를 챙겼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더 고맙지.”

디미타르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기대 이상이야. 한 달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2주도 안 지나서 라디아를 쓰러트릴 줄이야.”

그의 흥미로운 시선은 마티아스를 시작으로 카단, 블랑쉬를 훑어봤다.

“젊음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나보네. 이렇게 빨리 성장들을 할 줄이야.”

물론 그들이 성취가 오른 건 아니었다.

각자의 기술을 다듬었고, 실전에 맞춰진 훈련을 미친 듯이 이어갔을 뿐이다.

다듬어진 실력으로 경험까지 쌓아놓으니, 전보다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의 눈에선 전보다 더 진한 자신감이 느껴졌고, 디미타르는 흡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제 의뢰를 완수했으니, 아카데미로 돌아갈 생각인가?”

디미타르의 질문에 세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디미타르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하루 정도만 더 머물러 보는 건 어때?”

갑작스러운 제안에 세 사람은 눈을 끔뻑이며 그를 바라봤다.

“에어록손 성벽의 전투를 경험할 기회가 자주 오진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 말씀은… 전쟁에 참여해보란 말씀이십니까?”

마티아스의 질문에 디미타르가 미소를 지었다.

“실컷 훈련했을 텐데, 성과는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어? 마침 야만족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으니까.”

마티아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양옆에 앉은 카단과 블랑쉬를 바라봤다.

“어때?”

마티아스의 물음에 카단과 블랑쉬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에 참여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본인들의 발전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전쟁터는 성장한 실력을 마음껏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곳.

그렇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의 의지를 확인한 마티아스가 다시 디미타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

디미타르를 만나고 나온 세 사람은 곧바로 라디아의 안내를 받으며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성벽 너머로는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으며, 치우지 못한 시신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까마귀들이 시체 위에 앉아있었고, 멀리서는 들짐승들이 시체를 노리고 있는 건지 어슬렁거리며 점차 거리를 좁혀왔다.

“참혹하죠?”

성벽 너머를 바라보고 있자, 라디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전쟁터가 이래요. 적의 시체를 보면서도 기쁘기보단 씁쓸함을 느끼는 곳이죠.”

언젠가 자신이 평원 위의 시체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들이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마음속에 병을 키우게 된다.

“성벽 위에서 참혹한 전투를 치른 자들은 성벽 아래로 내려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지내려고 해요.”

끝없는 전쟁을 겪으며 생기는 부정적 감정들을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진 에어록손만의 전통.

“전투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전쟁 후유증을 이겨내기 위한 전통이죠.”

라디아의 설명에 세 명의 생도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혹하게 늘어져 있는 시체를 365일 지켜보고 있으면 없던 불안감도 생겨날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 전쟁은 좀 이상해요. 야만족들이 좀처럼 포기하지도 않고, 이상한 힘을 쓰는 주술사도 데려왔더라고요.”

“이상한 주술사요?”

마티아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라디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먼 평원을 바라봤다.

“디미타르 님께서는 마족의 힘을 쓰는 주술사 같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신성한 수호자의 방패가 필요했던 거고요.”

순간 세 명의 생도가 얼어붙었다.

마족의 힘을 쓰는 주술사라니.

상급 마족에 의해 죽을 위기에 놓였었던 세 사람은 괜한 두려움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가디언께서도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겁니까?”

마티아스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라디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생각만큼 강하진 않았어요. 물론 그렇게 약하지도 않았고요. 문제는 수에요.”

“수?”

“마족의 힘을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 주술사들의 수가 꽤 많아요.”

가디언 디미타르의 추측에 따르면 야만족이 어디선가 마석을 주웠고, 그 마석을 이용해 마족의 힘을 쓰는 것 같다고 한다.

라디아의 설명이 끝나자, 카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성벽 너머를 바라봤다.

‘다행히 마족이 아니라 마족화가 진행 중인 녀석들인가 보군.’

그 순간, 카단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놀란 눈으로 성벽 너머를 살폈다.

그 사이에도 라디아의 설명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성유물을 돌려받았으니 이 전쟁도 곧 끝날 듯싶어요.”

라디아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사람 사이에는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이내 마티아스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저희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우선 블랑쉬 생도는 동쪽 성벽 마법사들이 모인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카단 생도는 서쪽에서 기사단을 보조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사단원 중 부상자가 많아서 인원이 부족한 곳입니다.”

라디아는 동쪽 성벽을 가리키며 말했고, 이어서 카단에게는 서쪽 성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마티아스 생도는 저와 함께 본대에 합류하시면 됩니다.”

그러자 마티아스가 놀란 눈으로 라디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본대라면 디미타르 님과 함께….”

“네. 디미타르 님께서 마티아스 생도를 본대에 합류시키라 말씀하셨어요.”

가까이서 실력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래도 디미타르가 마티아스를 좋게 본 듯싶었다.

“알겠습니다.”

마티아스는 기분이 좋아졌는 지,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저기.”

그때 카단이 손을 들어 올리며 라디아를 불렀다.

“혹시 배치된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건가요? 뭐, 바꿔드릴 수는 있습니다.”

라디아는 자상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고, 카단은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보다는 다른 곳에 지원하고 싶었거든요.”

“아, 원하시는 곳이 따로 있었구나? 말씀해보세요.”

라디아가 괜찮다며 손짓했고, 카단은 곧바로 대답했다.

“정찰대에 합류하고 싶습니다.”

“정찰대? 전쟁터의 정찰대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라디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수성전이 시작되기 전 성벽 아래로 내려가 성벽 너머를 수색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고작 1학년 생도가 그런 위험한 임무를 자처하려 하다니.

라디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은 해가 떠 있어서 레이스를 이용해서 정찰하는 것도 불가능해요. 햇빛이 가려지는 숲속이라면 모를까, 성벽 너머는 평원입니다.”

해가 떠 있는 이상, 네크로맨서가 정찰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라디아는 경고하듯 말을 끝냈고, 카단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꼭 정찰대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성벽 너머로 나갈 수 있다면 제가 이 전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카단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자, 라디아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카단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다고 판단한 듯싶었다.

“정찰대에 말해보겠습니다. 물론 그쪽에서 거절하면 저도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어요.”

“네. 감사합니다.”

카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성벽 너머를 바라봤다.

‘성벽 너머로 얻을 게 잔뜩 널려 있는데 성벽 위에서 언데드나 소환하고 있을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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