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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11화 (111/186)

제111화

라디아의 배려 덕분에 카단은 정찰대에 소속되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빠르게 무기를 회수해! 언제 적들이 몰려올지 모른다!”

오늘 정찰대의 임무는 전장에 떨어진 야만족들의 무기를 회수하는 일이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먼 곳까지 순찰하며 적들을 감시하는 것보다는 안전하고 쉬운 일.

그저 정찰대에게 제공되는 아공간 마법 반지를 받아 전장으로 이동한 뒤 전장에 떨어진 무기들을 전부 회수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곳은 평화로운 평원이 아닌 전장이다! 임무가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마라!”

성문을 넘어 평원으로 나선 정찰대는 정찰대장의 외침을 들으며 재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정찰대가 이런 일도 하는군.’

정찰대에 소속된 카단 역시 다른 이들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무기들을 챙겨 아공간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러나 카단의 눈은 바닥에 떨어진 무기들이 아닌 공중에 떠다니는 구체를 향하고 있었다.

오로지 카단만이 볼 수 있는 검붉은색의 구체.

전장 곳곳엔 영혼의 결정들이 떠다녔다. 마족의 힘이 담긴 구체가 이곳에 있다는 건, 야만족 중 마족의 힘을 쓰는 자가 있다는 뜻.

‘가디언의 말은 사실이다.’

카단은 정찰대 임무를 수행하면서 틈틈이 영혼의 결정을 챙겨 힘을 흡수했다.

‘별로네.’

전장에 퍼져 있는 영혼의 결정들은 그저 소량의 마력을 담고 있었다.

‘이게 어디야.’

흡수되는 소량의 마력에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낭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소량의 마력이라고 할지라도 몇 날 며칠을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힘.

그런 힘을 손쉽게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음. 그런데 왜 이렇게 찜찜하지.’

영혼의 결정과 땅에 떨어진 무기들을 회수하던 도중, 카단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보이는 건 무기를 회수하는 정찰대원들과 야만족들의 시체뿐.

알 수 없는 불길한 기분에 카단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근처에 있는 정찰병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뭐지?”

정찰병은 쌀쌀맞은 얼굴로 카단을 바라봤다. 마치 바빠 죽겠는데 왜 말을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혹시 이렇게 무기를 회수하다가 습격받은 적이 있습니까?”

“없어. 이 넓은 평원에서 습격이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정찰대원은 귀찮게 굴지 말고 하던 일이나 하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숲처럼 나무가 많은 곳이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서 습격이라니.

전장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이라 생각한 카단은 다시 임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경계는 하고 있는 게 좋겠군.’

잠시 후.

어느덧 정찰대는 전장에 나뒹구는 무기를 모두 챙길 수 있었다.

“다 챙겼으면 돌아가자.”

정찰대장의 말에 정찰대원들은 드디어 끝났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덥석!

시체 더미. 그리고 땅바닥에서부터 커다란 손들이 튀어나와 정찰대원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쿵!

커다란 손들은 곧바로 정찰대원들을 넘어트렸고.

“부족의 원수!”

“죽어라!”

동시에 시체 더미와 땅 밑에서부터 야만족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스, 습격이다!”

바닥에 자빠진 정찰대원들은 야만족들을 발견하곤 큰소리로 외쳐댔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찰대원들이 넘어진 상태였고, 야만족의 수는 정찰대원에 비해 너무나 많았다.

몸을 숨기고 있던 야만족의 수는 대략 100은 넘어 보였다.

‘이상한 느낌이 든다 했더니, 이래서였군.’

카단은 모습을 드러낸 야만족들을 바라보며 혀를 둘렀다.

이 많은 인원이 숨어 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니. 마치 사냥하기 전 몸을 숨기고 있는 짐승들이 떠올랐다.

다행히 카단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에, 땅에서 튀어나오는 커다란 손에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달그락!

카단은 곧바로 사방에 널린 시체들을 이용해 수십의 해골 병사를 일으켜 야만족들을 향해 돌격시켰고.

스륵.

이어서 근처 시체들에게서 피를 추출해 정찰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야만족들을 향해 피의 화살을 쏘아댔다.

슈슉! 슈슈슈슉!

피의 화살을 맞은 야만족들은 짧은 비명과 함께 정찰대원들의 발목을 놓아주었고.

“고, 고마워.”

덕분에 정찰대원들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다들 괜찮아? 다친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난 정찰대장은 곧바로 정찰대원들의 상태를 살펴봤다.

다행히 아직 죽은 사람이나 다친 대원들은 없는 것 같았다.

“대장.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퇴각로가 막혔어요. 이 빌어먹을 야만족 놈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정찰대장은 어떻게든 퇴각해볼 생각이었지만, 야만족들이 정찰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쉽게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주진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에어록손 정찰대의 수준이 높다고 한들 수많은 야만족을 상대하려면 목숨을 각오해야 했다.

‘설마 시체 더미 아래 숨어 있을 줄이야. 너무 안일했다.’

정찰대장은 스스로 희생해서라도 정찰대를 구할 생각에 검을 고쳐 쥐며 입을 열었다.

“다들 후…….”

“다들 먼저 가세요.”

그러나 카단의 목소리가 먼저 정찰대원들을 향했다.

사람들은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카단을 바라봤고.

달그락!

카단은 근처의 시체들을 해골 병사로 일으키며 정찰대원들을 바라봤다.

“여기 저한테 아주 이로운 환경이거든요.”

시체들이 잔뜩 널려 있는 전장.

게다가 오랜 시간 전쟁이 이어진 에어록손 평원은 죽음의 기운이 강하게 휘몰아치는 곳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퇴각이나 하세요.”

전쟁터는 네크로맨서가 재능을 발휘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이봐. 이름이 뭐라고 했지?”

그러자 정찰대장이 조심스레 카단에게 물었고.

“네크로맨서. 카단입니다.”

카단은 무덤덤한 얼굴로 답한 뒤, 야만족들을 바라봤다.

“고맙다. 퇴각로는 알아서 뚫을 테니, 조금만 버텨라.”

정찰대장은 대원들을 이끌고 곧바로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흠. 화가 많이 났네.’

카단은 마주 보고 있는 야만족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아무래도 동료들이 언데드가 되어 되살아나니, 그 모습을 보며 화가 난 듯싶었다.

“저주받은 주술사를 죽여라!”

야만족들이 분노의 찬 포효를 내뱉으며 카단에게 달려들었다.

달그락!

야만족의 시체로 만들어진 해골 병사들은 오크 해골 병사 못지않은 괴력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6성 네크로맨서가 일으킨 해골 병사. 보통 해골 병사랑은 그 위력의 차이가 달랐다.

“보통 언데드가 아니다! 모두 집중해라!”

야만족들은 이처럼 강인한 해골 병사를 마주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야만족들은 해골 병사의 강함에 놀라며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오크 해골 병사는 꺼낼 필요도 없겠네.’

카단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앞으로 2기의 데스나이트와 리 빙아머를 소환했다.

“리빙 아머는 내 옆에 있고.”

철그럭.

리빙 아머는 곧바로 검과 방패를 뽑아 든 뒤 카단의 옆을 지켰고.

“너희는 저 녀석들과 싸워라.”

두 데스나이트는 명령과 동시에 땅을 박차며 야만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사이 뒤를 돌아보니, 정찰대가 무사히 퇴각로를 만들며 성벽을 향해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다가 나도 퇴각해야겠다.’

야만족 모두를 쓰러트릴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지만,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적당히 시간을 벌어준 뒤, 슬슬 퇴각할 계획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멀리서부터 함성이 들려왔다.

이건 단순한 함성이 아니었다.

에어록손 병사들의 함성 역시 아니었다.

‘아, 큰일 났네.’

이 함성은 야만족들이 성벽을 향해 몰려오며 내는 소리였다.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곧바로 바닥에 있는 시체를 이용해 해골 병사들을 일으켰다.

“카록, 앤서니. 그만 돌아와. 고생했어.”

명령과 동시에 카록과 앤서니는 곧바로 검은 연기로 변해 카단의 손목으로 빨려 들어갔고.

철그럭!

리빙 아머 역시 아공간 안으로 되돌아갔다.

퇴각 준비를 끝낸 카단은 해골 병사를 더 소환한 뒤, 성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성벽 위라면 모를까, 성벽 아래에서 혼자 야만족과 전쟁을 벌이는 건 죽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슉! 슈욱!

여기저기서 창과 도끼들이 카단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야만족들의 의지가 보이는 공격.

촤라라라라락!

그러나 카단은 틈틈이 뼈로 된 벽을 세우며 야만족들의 원거리 공격을 막아냈다.

어느덧 카단은 성벽 근처까지 다다랐고.

“고생했다!”

성벽 위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동시에 카단을 향해 몰려드는 야만족들을 향해 화살을 비롯해 다양한 마법들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쾅! 콰아아앙!

마법 폭격 덕분인지 야만족들은 걸음을 멈추고는 점차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지원 사격 덕분에 카단은 안전하게 성문을 넘어설 수 있었고.

쿵!

카단이 성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성문은 곧바로 닫혔다.

뿌우우우우우!

성문이 닫히는 순간, 성벽 위에서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전쟁이 시작된다는 신호에 성벽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이제 할 일은 다 끝낸 건가?’

조금 전까지 홀로 군단을 이룬 야만족들에게 쫓기던 신세였지만, 카단의 얼굴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먼 거리를 빠르게 달려왔음에도 힘든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과연 영웅 아카데미 생도인가?”

“엄청나네.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

성문 앞에 있던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둘렀다.

카단이 가볍게 기지개를 켜는 사이, 먼저 성벽 안으로 돌아왔던 정찰대장이 다가왔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정찰대장은 진심을 담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카단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아뇨.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덕분에 정찰대원들 모두 무사할 수 있었어. 내가 너무 안일했다.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그래도 이번 일 덕분에 확인 사살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잖아요? 그러면 된 거죠.”

카단은 괜찮다고 손사래 치며 말했고, 정찰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의 활약은 확실하게 위에 보고하겠네. 아마 큰 포상이 있을 거야.”

“괜찮은데….”

“이제 정찰대의 임무는 끝났고, 전쟁은 성벽 위에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니 푹 쉬도록 하게.”

***

한편 본대의 합류한 마티아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성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 듯이 몰려오는 야만족들.

그 수는 이미 수천을 넘어섰고, 몇만인지 세어볼 수도 없었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야만족의 수가 이토록 많은지는 처음 알았다.

많은 수의 적들을 보고 있으니 새삼 에어록손의 성벽을 지키는 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단 녀석도 제대로 활약한 것 같고.’

솔직히 본대는 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저 가디언이 전장을 지휘하는 모습과 전장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이 전부.

“마티아스라고 했지?”

마티아스가 성벽 너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가디언 디미타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방패를 사용한 게 자네인가?”

뒤를 돌아보니 디미타르가 방패를 가리키며 마티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맞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마족의 힘을 쓰는 자를 만나 전투를 벌였습니다.”

공작부인이 마족이라는 사실을 감추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섞어 대답해야 했다.

다행히 디미타르는 크게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성유물에게 인정받은 놈이라니. 오래간만에 흥미로운 녀석이 나타났네.”

디미타르는 피식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차기 가디언으로 지정받았다던데 사실인가?”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내 후계자 자리가 딱 제격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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