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14화 (114/186)

제114화

‘갑자기 야외 수업이라니….’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아이작 교수가 야외 수업이 잡혔다며 대뜸 텔레포트 스크롤을 건넸다.

얼른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스크롤을 찢은 아이작 교수 덕분에 카단도 덩달아 스크롤을 찢어야 했다.

‘그것도 트라팔가에서.’

번쩍이는 빛과 함께 풍경은 빠르게 변했고, 이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꽤 익숙했다.

도시 트라팔가.

왕국의 기사 앤서니가 데스나이트가 되고 마족화가 진행 중이던 용병 프람이 죽은 장소.

전쟁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에 다시 오게 되었다.

“교수님?”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아이작을 바라보자, 아이작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졸업반 선배와 함께하는 야외 수업. 괜찮지 않습니까? 분명 좋아할 것 같았는데?”

카단은 아이작이 이곳에 온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도 여기에 있다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함께 도시 트라팔가로 왔었던 졸업반 네크로맨서 ‘에스더’.

그녀가 아직 이 도시에 머물고 있었기에, 아이작은 직접 그녀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고블린과의 전쟁 의뢰를 해결하고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 용병 프람의 배신으로 인해 생긴 아론 트라팔가와 용병왕 사이에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듯싶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온 용병들은 여전히 감옥에서 지내고 있는 건가?’

카단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도시는 여전히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고, 끝없는 전쟁이 만들어낸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전보다 공기가 더 무거워진 것 같기도 하고.’

도시를 돌아다니는 병사들만 봐도 이 도시의 피로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자, 우선 갈까요?”

아이작이 자상한 웃음을 지으며 손짓했고, 카단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더가 걱정돼서 그런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신 것 같은데?’

자상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미소 뒤로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별일은 없겠지.’

잠시 후.

“위, 위대한 왕국의 수호자! 가디언 아이작 님을 뵙습니다!”

영주의 성문 앞에 도착하자, 아이작은 곧바로 가디언의 증표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경비병들이 화들짝 놀라더니, 곧바로 자세를 낮춰 아이작을 향해 소리쳤다.

임시라고 하지만 아이작은 샬로트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가디언.

왕국에서 인정받은, 가장 강한 7명의 수호자. 그중 하나가 갑자기 찾아왔으니 경비병들이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게다가 아침 일찍 온 걸 보면 도시 트라팔가에 그 어떤 언질도 없이 왔을 테니.

“가디언께서 이곳엔 무슨 일로….”

질문을 던지던 경비병이 말끝을 흐리더니, 점차 표정이 어두워졌다.

“호, 혹시 큰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겁니까?”

가디언이 찾아와야 할 정도로 큰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그 원인이었다.

아무래도 성벽 너머에는 절망의 평원이 있었기에, 충분히 떠올릴 법한 일.

“아닐세. 난 이곳의 영주를 만나러 왔네.”

아이작은 자상하게 웃으며 답했고, 그제야 경비병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영주님은 회의실에 계십니다.”

“용병들의 왕과 대화중이라 당장 만나시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경비병들이 아이작의 눈치를 보며 곤란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그러자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가디언의 증표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음.”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작이 무덤덤한 얼굴로 살펴보던 가디언의 증표를 다시 경비병들에게 내밀었다.

그 모습에 카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가디언이다… 이건가?’

왕국을 수호하는 가디언이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그저 한 도시의 경비병이 그 걸음을 막기는 힘들 것이다.

“제, 제가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아이작이 가디언의 증표를 내밀자, 경비병들이 화들짝 놀라더니, 그중 하나가 재빨리 땅을 박찼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작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긴 좀 춥군요.”

“그러게요.”

카단은 아이작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는 사실에 신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권력의 힘을 이렇게 사용하시다니.’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작 님!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성문 너머부터 경비병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럼 부탁드리죠.”

아이작은 고맙다는 듯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고, 이내 경비병을 따라 성문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경비병이 안내해 준 곳은 카단도 와본 적 있는 영주성의 회의실이었다.

지휘관들과 사령관, 그리고 각 지원군의 대표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곳.

“들어가시면 됩니다!”

경비병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말하자, 아이작은 곧바로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철컥.

문이 열리자 차가운. 아니, 살 떨리듯 무거운 공기가 새어 나왔다.

‘뭐야?’

회의실 안에서 전투라도 있었던 걸까? 카단은 무거운 공기에 의아함을 느끼며 문 너머를 바라봤다.

일찍이 본 적 있던 도시 트라팔가의 주인 ‘아론 트라팔가’가 가장 먼저 보였고.

‘저 사람이 용병들의 왕….’

그 맞은편에는 마치 오크를 떠올리듯 커다란 덩치를 지닌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겉모습만으로도 그의 강함을 유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험악하게 생긴 외모, 커다란 덩치를 가득 채운 근육까지.

마나를 쓰지 않고도 맨손으로 오크를 찢어버릴 것만 같은 폐기가 느껴졌다.

‘어마어마하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가디언을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위대한 왕국의 수호자. 가디언 아이작 님을 뵙습니다.”

아이작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아론 트라팔가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론.”

아이작은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아론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이어서 아이작의 시선이 용병들의 왕을 향했다.

“…….”

용병들의 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아이작을 노려보았고, 아이작은 무표정한 얼굴로 용병들의 왕을 기다렸다.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고, 둘 사이로 무언가 스파크가 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무표정하던 아이작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고, 그 모습에 용병들의 왕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작의 부드러운 시선은 마치 ‘넌 왜 인사 안 하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위대한 수호자. 가디언 아이작을 뵙습니다.”

용병들의 왕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대충 인사를 던졌다.

그러자 아이작이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제이드. 참으로 오랜만이군. 그 흉측한 근육들도 여전하고.”

“그 음흉한 웃음도 여전하시고.”

두 사람 사이에 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것 같았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분위기.

“그나저나 위대한 가디언께서 여기까진 무슨 일로?”

“가디언으로서 이 일을 해결하러 왔네. 갈등이 깊어지면 좋을 게 없잖아?”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며 자랑스레 가디언의 증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제이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오지랖은 넓으시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던 걸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둣 두 사람은 가볍게 툭툭 말을 던져댔다.

“별동대에 합류한 용병 하나가 배신하여 별동대가 전멸할 뻔했지. 왕국의 기사가 죽었고, 심지어 내 제자까지 죽을 뻔했다.”

지 정도면 단순한 오지랖은 아니다. 아이작은 미소를 지우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자가 죽을 뻔했다는 말에 용병들의 왕 제이드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작은 기분 나쁘다는 듯 제이드를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사건은 간단하고. 죽은 용병을 처벌할 수 없으니, 용병 길드의 총책임자인 자네가 사과하고 합당한 보상을 지급하면 끝나는 것 아닌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제이드가 콧방귀를 뀌었다.

“용병의 잘못은 인정한다. 충분히 사과할 마음도 있었으니, 여기까지 온 거고.”

“그런데?”

“그런데 왕국에서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리더군.”

“터무니없는 결정?”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아론 트라팔가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론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왕국에서 감옥에 가둔 용병들을 모두 처형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아이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두 사람의 갈등이 아니었군.”

“맞습니다. 제이드 님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갈등을 벌이는 척 시간을 끌고 있었습니다.”

배신한 용병 하나 덕분에 지원군으로 온 용병들이 모두 죽을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용병들의 왕 제이드는 물론이고 아론 트라팔가 역시 그 의견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왕국 기사단인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가 전사했기에 생긴 문제인 듯싶습니다.”

다른 이도 아닌 왕국의 기사가 죽음으로서 일은 커지고 말았다.

“왕국의 기사가 죽었다지만, 죄없는 용병들까지 죽일 순 없죠.”

아론 트라팔가의 말에 제이드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용병 길드의 총책임자로서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네. 뭐,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왕국의 결정을 되돌릴 방법은 딱히 없었다. 용병들의 왕과 아론 트라팔가가 나선다고 하더라도 변함은 없을 것이다.

“뭐, 끝까지 결정이 되돌려지지 않는다면 그땐….”

“거기까지 하게.”

제이드가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반역을 말하려 하자, 아이작이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끊어냈다.

“흠. 그런 문제가 있었군.”

아이작은 이제야 왜 이 사건이 빠르게 마무리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옆에 있던 카단 역시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트라팔가는 용병왕의 사죄와 그에 합당한 보상만을 원할 뿐입니다. 트라팔가를 지키기 위해 찾아온 용병들의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용병 프람처럼 또 다른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용병들 전체를 죽이라는 왕국의 결정은 너무나도 극단적이었다.

“나 역시 사죄와 보상을 하기 위해 찾아왔을 뿐인데, 용병들을 죄다 처형하라는 말을 들으니 참을 수가 없더군.”

용병들의 왕 제이드가 왜 이렇게 화나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콜린퍼스 기사단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저 역시 이 결정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군요.”

아이작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에서 또 다른 연락은 없었습니까?”

“용병들의 처형을 위해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이곳으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에 연락이 왔으니, 곧 도착하시겠군요.”

“텔레포트 스크롤을 쓰지 않았다는 건 기사단을 이끌고 오고 있는 모양이군요.”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용병들의 처형이라는 결정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용병왕과 왕국 기사단 기사단장의 갈등으로 번져나갈 수 있는 상황.

“제이드. 자네는 나서지 말게.”

“내가 왜? 용병들의 왕이 용병들을 지키지 말라는 건가?”

제이드가 흥분해서 말하자, 아이작은 고개를 저으며 테이블에 올려놓은 가디언의 증표를 가리켰다.

“마침 내가 적절한 시기에 찾아와서 다행이군.”

순간 아론 트라팔가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치 굉장한 해결책이라도 찾은 듯 감탄한 모습.

“수도에서 출발했다면 아직 며칠 남아있는 겁니까?”

이어진 아이작의 질문에 아론 트라팔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 기사단장을 기다리는 동안 오랜만에 한 판 어떤가?”

아이작이 고개를 돌려 제이드를 바라봤고, 제이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 이 상황에 할 말인가?”

“내가 왔으니, 해결할 수 있네. 용병들이 죽을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확실한 거지?”

“그럼. 콜린퍼스 기사단장이라면 몇 번 본 적도 있으니, 잘 해결할 수 있네.”

가디언이라면 왕국의 결정을 뒤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제이드 역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쯧. 자네랑 나랑 한 판 붙으면 3일 이상은 필요할 텐데?”

용병왕과 가디언의 대련을 보게 되는 걸까?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카단의 얼굴에 기대감이 생겨났다.

“누가 나랑 한 판 붙자고 했나?”

아이작은 피식 하고 웃더니, 옆에 있던 카단을 바라봤다.

“카단. 준비됐겠죠?”

아무래도 아이작이 이곳에 온 목적은 단순히 졸업반 네크로맨서인 에스더를 데려오기 위함만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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