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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16화 (116/186)

제116화

회의실 문이 열리며 정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멋지게 자라난 수염이 인상적인 남성. 사나우면서도 터프한 매력을 지닌 남성이었다.

“아론 백작. 오랜만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덱스터 경.”

남성미 넘치는 분위기의 남성은 다름 아닌 왕국 5대 기사단 중 하나인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단장 ‘덱스터’였다.

덱스터는 아론의 인사를 가볍게 받은 뒤 위협적인 눈으로 회의장을 둘러봤다.

아마도 감옥에 가둔 용병들의 처형을 막아서는 용병들의 왕을 찾기 위함인 듯싶었다.

“아, 아이작 님?”

그러다 그의 눈에 아이작이 보였다.

왜 왕국의 수호자가 이곳에 있는 것일까?

매섭게 주변을 살피던 덱스터의 눈에 당혹함이 서렸다.

“위대한 왕국의 수호자. 가디언 아이작 님을 뵙습니다.”

잔뜩 무게를 잡고 회의실에 들어왔지만, 아이작을 발견한 순간 덱스터는 곧바로 예를 갖춰야만 했다.

“오랜만이오. 덱스터 경.”

아이작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콜린퍼스의 기사단장 ‘덱스터’를 향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작의 여유로움 때문인지, 마음껏 위압감을 내뿜던 덱스터가 순간적으로 작아 보였다.

왕국 5대 기사단의 기사단장도 가디언 앞에서는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 님께서 이곳엔 무슨 일로….”

덱스터가 애써 당혹스러움을 감추며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트라팔가에 내 제자가 머물고 있어서 데리러 왔었다네.”

순간 덱스터는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 중 하나도 용병 프람에 의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군요.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감옥에 가둔 용병들을 모조리 죽이려 한다고 하던데.”

아이작의 말에 덱스터의 표정이 굳어졌다.

“맞습니다. 프람이라는 용병이 작전 중 배신을 했고, 콜린퍼스의 기사 앤서니를 죽였습니다.”

감옥에 가둔 용병 중 프람의 동료가 있을 수도 있으나, 그의 동료를 찾아낼 방법이 없으므로 용병들을 모두 죽이려 한다.

이것이 콜린퍼스 기사단의 결정이었다.

무식한 결정이기는 했다.

더 큰 위험을 막아내기 위한 결정이라고는 하나 죄가 없는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 결정.

“국왕 폐하의 결정이십니까?”

아이작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덱스터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회의 끝에 내려진 결정입니다. 국왕 폐하께서 결정권은 기사단장들에게 넘겨주셨고, 5대 기사단이 모여 긴 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결정권은 국왕 넘겨준 결정권이니, 아무리 가디언이라도 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덱스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용병왕과 아론 백작을 설득하러 온 것이 아닌, 용병들을 처형하러 이곳에 온 것입니다.”

“경고와 협박을 하러 왔겠지.”

덱스터가 말을 끝내는 순간, 용병들의 왕 ‘제이드’가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을 던졌다.

덱스터는 매서운 눈으로 제이드를 노려봤고, 제이드 역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매섭게 눈을 떴다.

잠깐의 신경전이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죽일 듯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회의장의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 아이작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락.

그의 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고, 아이작은 서류 하나하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이 보고서에 용병 프람의 시체가 이상하다고 적혀 있는데, 어떤 점이 이상하다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이작은 아론 트라팔가를 향해 물었고, 아론은 잠깐 멈칫하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처음 확인했을 땐 두 눈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몸 곳곳에 검은 반점이 생겨 있었습니다.”

그 대답에 이상함을 느낀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말을 꺼냈다.

“혹시 그 시체를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사건 판결이 나지 않았기에, 범죄자의 시체를 함부로 치우진 않았을 것이다.

보존 마법이 걸린 관에 넣어 보관했으리라 생각한 아이작은 당연하다는 듯 제안했다.

“그, 그게….”

아론은 당황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설마 시체를 처리하신 겁니까?”

“아, 아닙니다.”

시체를 처리한 게 아니라면 왜 이렇게 당황하는 것일까?

아이작은 의문을 품은 눈으로 아론을 바라봤고, 아론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시체를 보관하려 했으나, 시체가 갑자기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졌습니다. 보고서 마지막 장에 그렇게 적혀 있을 겁니다.”

사락, 사락.

아론의 말에 아이작이 곧바로 서류를 넘겨보았고.

“흠. 그렇군요.”

이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툭.

아이작은 무언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고, 이어서 차가운 시선으로 기사단장 덱스터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용병 프람은 마족화가 진행 중이었던 모양이군요.”

아이작의 말에 회의장에 있던 모두가 숨을 참았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고, 모두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담겼다.

“마족화요?”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덱스터였다.

“네. 마족화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가 죽은 뒤 눈이 검게 변하며 피부 곳곳에 검은 반점들이 나타나게 되죠.”

아이작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족들이 죽을 때처럼 마지막엔 그 시체가 남지 않고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집니다.”

“마족들은 죽자마자 검은 연기로 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하지만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들은 아직 인간이죠.”

용병 프람이 완벽히 마족이 되었다면 죽는 즉시 연기로 변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프람은 마족화가 완성되지 않은 인간이었고, 죽은 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일반 마족처럼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프람 녀석이 마석의 힘을 사용한 건가? 어쩐지 급격하게 실력이 늘어나는 게 이상하긴 했는데.”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용병왕의 표정도 굳어졌다.

제자로 거두진 않았어도, 두각을 드러내던 용병이었기에 어느 정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

어떤 깨달음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용병들이야 한둘이 아니었으니 프람의 급격한 발전을 의아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즉. 이번 사건은 용병 길드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되는 거죠.”

아이작이 서류를 가리키며 말하자, 덱스터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용병이 마족화가 진행 중인 것을 몰랐던 용병 길드의 책임은 있다고 봅니다.”

덱스터가 용병왕을 바라보며 말하자, 아이작은 그의 분노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끼던 부하를 잃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마족과 관련된 사건인 만큼 이성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잔잔한 그의 목소리가 덱스터를 토닥였고, 이내 덱스터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숙였다.

“마족화 중인 인간을 단순히 육안으로 구별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 말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카단이 고민했다.

‘동물 문신….’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들의 특징을 카단은 알고 있었다.

‘우선 지켜보자.’

그러나 왕국의 수뇌부에도 마족이 있다고 판단되는 지금, 왕국의 기사단 앞에서 이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카단이 곧바로 표적이 될 수도 있으며, 동물 문신이 드러난 자들이 문신을 가리고 다닐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마족화가 진행 중인 녀석을 찾아내는 게 더 힘들어지겠지.’

이내 생각을 정리한 카단은 입을 꾹 닫은 채 다시 아이작을 바라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물론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을 찾아내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직자들의 신성력.

마족의 힘과 완벽한 상극을 이루는 신성력을 사용한다면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즉.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을 가려낼 수 있다면 감옥에 가둔 용병들을 모두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아론과 용병왕 제이드, 기사단장 덱스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드.”

아이작은 고개를 돌려 용병들의 왕을 불렀고, 제이드는 매서운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봤다.

“만약 용병 중 마족화가 진행 중인 녀석이 있다면 직접 처리해줄 텐가?”

그의 말에 제이드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이내 제이드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하는 게 맞겠지.”

“덱스터 경.”

아이작이 이번엔 기사단장을 향해 시선을 옮겼고.

“말씀하시지요.”

덱스터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작의 말을 기다렸다.

“마족화가 진행 중이지 않은 용병들은 풀어주어도 되겠죠? 용병 프람의 동료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할 테니.”

물론 마족화가 진행 중이지 않은 인간도 프람과 내통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도 없었고, 아이작이 있는 이상 무조건 용병들을 처형할 수도 없었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아이작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아론 트라팔가를 바라봤다.

“이 도시에도 고위 성직자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감옥으로 그를 불러와 주시지요. 저와 제이드, 그리고 덱스터 경이 함께 있으니 안심하고 오셔도 된다고 전해주시고요.”

가디언과 용병왕. 그리고 왕국의 기사단장까지 있으니, 마족을 찾는 일이라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론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 벽면에 붙어 서 있는 병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지금 바로 감옥으로 갈 것이다. 너희는 성직자들을 모셔와라.”

***

용병들을 가두고 있다는 지하 감옥은 퀘퀘한 냄새가 가득하며 찜찜한 공기가 맴도는 곳이었다.

“제, 제이드 님!”

감옥 안에 들어서는 순간, 철장 안에 있던 용병들이 철장에 달라붙어 용병왕의 이름을 불러댔다.

‘다들 상태가 좋은데?’

카단은 철장에 매달린 요병들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아무리 죄가 없다지만, 이곳은 감옥. 그런데 철장 안에 있는 용병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해 보였다.

얼마나 잘 먹었는지 살이 찐 용병도 있었으며, 철장 안에서 운동하며 몸을 키우는 용병도 있었다.

아론 트라팔가는 죄가 없는 용병들이 최대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열심히 관리해준 모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옥 안이 편안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저희 언제 나갈 수 있는 겁니까?”

“편하게 지내고 있긴 하지만, 답답해 죽겠습니다!”

그들은 용병왕에게 제발 꺼내달라며 호소했다.

자유롭게 떠돌던 용병들이 감옥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그 답답함이 얼마나 컸을까?

용병왕은 씁쓸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이어서 아이작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서 진행해주시게.”

그 말에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하얀 성직자의 옷을 입은 여성이 서 있었고, 아이작의 시선을 받자, 성직자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안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덱스터 경과 제가 지켜드릴 테니.”

“네. 알겠습니다.”

성직자는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걸음을 옮겼고.

“어리석은 자의 진실을 밝혀주소서.”

이내 철장 앞에 도착한 성직자가 신성력을 내뿜으며 기도를 시작했다.

“제이드 님. 이게 뭡니까?”

“왜 갑자기 성직자를?”

“저희 체력은 충분합니다. 아니, 넘칩니다.”

철장 안에 있던 용병들은 성직자의 기도에 의아함을 느끼며 제이드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성직자가 체력을 회복하는 마법이나 축복 마법 등을 사용한다고 생각한 모양.

“이분들에겐 불결한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성직자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철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철장을 지나쳤을까?

“어리석은 자의 진실을 밝혀주소서.”

조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한결 표정이 밝아진 성직자가 마지막 철장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시작했다.

그때.

“크아아아아아아악!”

철장 안에 있던 용병 하나가 괴롭다는 듯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고.

드드드드드득!

그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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