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기괴하게 몸이 뒤틀리던 용병 하나의 몸에서 곤충의 다리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점차 몸집이 커지고, 등에서는 사마귀의 날개 같은 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이 자식 이거 뭐야?”
“괴물이다!”
“꺼, 꺼내줘! 꺼내주세요!”
용병 하나가 점차 괴물로 변해가자, 같은 철장 안에 있던 용병들이 겁에 질려 소리를 질러댔고.
“꺄악!”
기도하던 성직자마저 괴물로 변해버린 용병을 보며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마족화 중이던 놈이 하나 더 숨어있었군요.”
“저게 마족이 된 인간….”
아이작 교수와 기사단장 덱스터는 놀란 얼굴로 상황을 지켜봤고.
“빌어먹을.”
용병왕 제이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잔뜩 겁에 질린 병사 하나에게 다가갔다.
“잠시 빌리지.”
제이드는 병사가 들고 있던 창을 빼앗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괴물로 변한 용병을 바라봤다.
서걱!
제이드는 창끝에 작게 오러를 두른 뒤 철창을 잘라내며 겁에 질린 용병들에게 말했다.
“다들 나와라.”
그 말에 괴물을 피해 구석으로 몸을 숨겼던 용병들이 모두 철창 밖으로 빠져나왔다.
“망할! 거의 다 되었는데! 왜! 왜! 갑자기! 빌어먹을 프람 자식!”
사마귀와 비슷한 형태로 변한 용병이 욕지거리를 내뱉어댔다.
사마귀 몸에 사람의 얼굴이 달린 모습은 굉장히 기괴했고,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당혹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댔느냐.”
용병들의 왕 제이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괴물로 변한 용병에게 말을 걸었고.
“죽일 거야! 다 죽여버릴 거야!”
이성을 잃은 용병. 아니, 괴물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제이드를 노려보더니, 이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어리석은 놈.”
서걱-
좌에서 우.
제이드가 가볍게 창을 휘둘렀다.
“커헉!”
그저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마족으로 변한 용병의 움직임이 멈춰졌고.
툭.
몸이 반으로 갈라져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저게 용병들의 왕….’
뒤에서 제이드를 바라보던 카단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급 마족 정도도 안 되는 것 같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괜히 용병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던 걸까?
큰 동작도 아니었고, 화려한 기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미세하게 오러를 두른 창을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마족으로 변한 용병이 반으로 갈라졌다.
마치 나뭇잎을 베어내듯 고요했다.
반으로 갈라져 죽은 용병의 몸 곳곳에 검은 반점이 생겨났고, 그의 눈은 검게 물들었다.
마족화가 진행 중이었다는 증거가 뚜렷하게 나타나자, 그 모습을 보던 아이작이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도에 돌아가면 가디언들을 소집해야겠군요.”
***
도시 트라팔가에서의 일을 끝낸 아이작은 곧바로 카단와 에스더를 데리고 영웅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미안합니다. 조금 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아이작은 강의실에 앉은 카단과 에스더를 향해 정중하게 사과를 전했다.
본래의 계획은 트라팔가의 성벽 너머. 절망의 평원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실전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옥에 가둬둔 용병 중 마족화가 진행 중이던 자를 찾아냈고, 긴급한 상황이라며 곧바로 아카데미로 돌아오게 되었다.
“괜찮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카단과 에스더는 고개를 저으며 그를 이해한다는 듯 대답했다.
“마석을 이용해 마족이 되는 인간들이 범죄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급하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작은 다시 사과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고, 다시 고개를 들며 말을 이어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족이 다시 나타난 게 아니라는 거겠죠.”
그 말에 카단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마족은 나타났다.
단순히 나타난 것이 아닌, 인간들 사이에 숨어 지내고 있으며 왕국의 수뇌부마저 장악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교수님.”
무언가 생각을 정리한 카단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고.
“네. 카단.”
아이작은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들의 특징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했고, 이내 설마하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신성력이 아닌 육안만으로도 구별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네. 맞습니다.”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작의 눈빛에 호기심이 그려졌다.
“시체를 통해 알아내는 방법도 아니고요?”
“네. 인간으로서 살아있을 때도 마족이라는 걸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이작은 어서 말해보라는 듯 손짓했고, 카단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들은 몸 어딘가에 동물 문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물 문신이요?“
”네. 그것만 찾으면 마족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문신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명, 한 명 일일이 옷을 벗겨가며 검사할 수도 없는 노릇.
“근거가 있는 말인가요?”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는 것보다는 상황이 좋아진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작도 눈이 불을 켜며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네. 제가 직접 봤으니까요.”
카단이 말하자, 강단에 선 아이작과 의자에 앉아 있던 에스더가 동시에 카단을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네가 어떻게?’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휴식기에 마족화가 진행 중인 사람을 몇 명 봤습니다. 그들은 모두 동물 문양의 문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동물이었죠?”
“멧돼지와 문어입니다.”
“때론 악을 상징하는 동물들이군요.”
아이작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표정을 매섭게 바꿔 카단을 바라봤다.
“카단. 왜 이제야 이런 말을 하는 겁니까?”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족화가 진행 중인 자들을 마주하며 의심부터 들었으니까요.”
누가 순전히 인간들의 편일까?
마족을 만난 이후로 꾸준히 사람을 경계해왔다. 그 누구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구의 몸 어느 곳에 어떤 문신이 새겨져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제가 마주친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들은 동물 문신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여태껏 카단이 마주한 마족들은 노출되는 신체 부위에 문신이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딱히 감추지도 않았고, 때론 그 문신을 자랑스레 여기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이 사실은 이 강의실에 있는 저희 셋만 알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신이 마족화의 증거라는 게 알려지면, 그들이 문신을 감추고 다닐 테니 말이죠?”
“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는 카단을 보며 생각했다.
‘홀로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구나.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들을 상대하며….’
카단이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카단. 혹시 문신한 자들을 찾아다닌 겁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문신한 자들을 경계하려 하다 보니, 평소보다 더 잘 보였을 뿐입니다.”
카단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아이작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카단의 말처럼 문신이 증거라는 사실은 이곳에 있는 저희 셋만 알고 있는 게 좋겠군요.”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뇨. 큰 정보를 얻었습니다. 저 역시 경계해야 할 사람들을 구분할 방법을 얻은 것이니.”
아이작은 그 말을 끝으로 왕성에 가봐야 한다며 강의실을 떠났고, 강의실에는 카단과 에스더만이 남게 되었다.
“후배.”
그러자 에스더가 조심스레 카단을 불렀다.
“혹시 용병 프람에게도 그 동물 문신이 있었어?”
“네. 손목에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에스더가 왜 진즉에 말하지 않았느냐고 소리칠 줄 알았지만, 에스더는 그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무한테도 말 못 하고 답답했겠다. 힘들었겠네.”
오히려 카단을 위로하듯 에스더가 말했다.
“아, 아뇨.”
카단은 애써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나도 문신의 정체를 알았으니까, 조금 더 조심할 수 있겠다. 알려줘서 고마워. 카단.”
에스더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단에게 다가왔고, 이내 손을 내밀었다.
“이제 혼자 싸우지 말고 가끔은 선배한테도 얘기하고 그래.”
카단이 멍하니 에스더를 바라보자, 에스더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몸에 문신이 있을까 봐 악수를 안 받아주는 건가? 직접 확인시켜줄 수도 없고.”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그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게 죄송해서요.”
에스더는 굳이 문신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에스더가 마족이거나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이었다면 루나가 알려주었을 것이다.
“죄송하긴. 트라팔가에서 너무 편히 쉬어서 너무 나태해졌어. 그게 걱정이지.”
에스더가 눈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번 내민 손을 흔들어댔다.
팔 아프니까 얼른 잡으라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카단은 곧바로 악수를 받아주었다.
“선배도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
도시 트라팔가의 감옥에 갇힌 용병이 마족으로 변했다는 사실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왕국은 발칵 뒤집혔고,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마족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다행히도 가디언들이 빠르게 모여 회의를 시작했고, 그들의 대처로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가디언들은 회의 끝에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들을 찾기로 결정 내렸다.
성직자에게 기도를 받아 마족이 아님을 증명하는 서류를 받아야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방침을 내렸고, 이는 큰 사건을 몰고 왔다.
“이번에 마탑에서 마족화가 진행 중이던 마법사가 나왔다며?”
“기사단에서도 몇 명 있었다는데?”
“마족화가 진행 중인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마탑, 길드, 기사단 등의 단체는 자체적으로 성직자를 불러 일일이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인지 아닌지를 확인했었다.
그 결과, 열 곳 중 한 곳에서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들이 발견되었다.
기도를 받고 괴물로 변한 마족들은 각 단체가 알아서 처리했으며, 이 사실 역시 왕국에 빠르게 번져나갔다.
그렇게 되자 마족화가 진행 중이던 인간들이 하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마족화가 진행 중이던 인간들이 색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한번 비상이 걸렸다.
“언제 어디서 마족화가 된 인간이 나타날지 모른다. 앞으로 항시 전투 태세를 갖추도록.”
설 자리를 잃은 마족들이 오히려 반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경계 단계를 높여야만 했다.
마족으로부터 왕국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영웅 아카데미 역시 매한가지였다.
평소보다 훈련 강도가 높아졌으며 훈련 양도 몇 배는 늘어났다.
물론 불평하는 이들은 없었다.
생도들 역시 이제 정말 마족과 싸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바짝 긴장하여 최선을 다해 훈련에 참여했다.
혹시 모를 위협을 대비해 아카데미는 더는 외부의 의뢰를 받지 않았고, 생도들을 훈련시키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더 지났다.
“다음 주면 졸업반 생도들을 위한 파티가 있는 날입니다.”
영웅 아카데미 회의실.
교수와 교관들이 모여 있었고, 벨리드 교관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이 파티를 그대로 가면무도회로 진행해도 될까 싶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벨리드 교관의 말에 교수와 교관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이 가면을 쓰고 나타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자 몇몇 교관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벨리드 교관님. 저희 아카데미는 생도부터 교관, 교수까지 모두 성직자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영웅 아카데미에는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이 없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도시 트라팔가에서 용병이 마족으로 변한 사건 이후, 영웅 아카데미에도 성직자가 찾아왔었다.
다행히 영웅 아카데미에는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은 없었다.
마족화가 진행 중이었던 발렌티나 교관은 루나에 의해서 마석이 제거됨과 동시에 뱀파이어가 되었고, 다행히 성직자의 기도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차피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 상태로 우리끼리 즐기는 파티이니,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졸업반 생도도 다들 기대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게다가 저희가 있는데 어느 마족이 미쳤다고 이곳에 찾아오겠습니까?”
교관들은 물론 교수들도 파티를 진행하자는 의견을 내뱉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성직자도 데려오시죠.”
그러자 아이작 교수가 의견을 내뱉었다.
그는 파티를 열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다른 교관들의 말대로 졸업반을 위한 마지막 이벤트를 그냥 지나치기엔 마음이 찝찝했다.
만장일치.
교관과 교수들은 가면무도회를 진행하자 말했고, 벨리드 교관은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 가면무도회를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