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18화 (118/186)

제118화

영웅 아카데미의 가면무도회.

졸업반 생도들을 축하하며 열리는 이 파티는 외부인을 초대하지 않고 오로지 아카데미에 소속된 이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파티였다.

무도회는 악사들의 흥겨운 음악이 흐르며 참석자들이 그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대부분.

그러나 영웅 아카데미의 가면무도회는 보통의 무도회와 달랐다.

“너 누구한테 결투 신청했어?”

“그걸 여기서 밝힐 순 없지. 이미 신청서도 제출하고 왔어.”

가면을 쓴 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와 대련하는 것.

그것이 영웅 아카데미의 가면무도회였다.

다른 가면무도회처럼 생도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흥겨운 음악이 곁들여진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다만, 교관의 부름을 받으면 무대 위로 올라가 가면을 쓴 채로 대련을 펼쳐야 했다.

학년도 상관없이 원하는 상대와 대련할 수 있는 기회.

졸업반 생도들은 생도로서 대련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이 가면 대련 때문에 졸업반 생도들은 가면무도회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원한을 품었다거나, 평소 승부를 내고 싶다고 생각한 이들과 대련을 할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횟수의 제한이 없었다. 거절하고 싶으면 거절해도 됐고, 체력만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대련에 참여해도 좋았다.

“지금부터 영웅 아카데미의 가면무도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영웅 아카데미의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와아아아아!

가면을 쓴 교관이 외치자, 무도회장에 모인 생도들이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가지각색의 가면을 쓴 생도들은 악사들의 연주 소리를 들으며 파티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파티 시작과 동시에 대련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생도들이 충분히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었고, 가면 대련은 밤부터 시작되었다.

그 때문일까? 아직까지 생도들은 평온하게 무알콜 샴페인을 마시며 한껏 파티를 즐기는 중이었다.

“뭐야? 이건 누가 봐도 카단이네.”

구석진 곳 의자에 앉아 파티를 구경하던 카단에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무리 영웅 아카데미에 네크로맨서가 둘밖에 없다지만, 해골 가면이라니. 센스가 없네.”

낯선 가면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카단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너야말로. 늑대 가면은 너랑 어울리지 않아. 알비스.”

카단의 말에 알비스가 몸을 움찔하더니,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아보긴. 목소리가 딱 넌데?”

“말투도 다르게 했고, 목소리도 조금 다르게 내보았는데….”

“척하면 척이지.”

카단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영웅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부터 친해진 첫 번째 친구.

알비스와 1년 가까이 알고 지내다보니 그의 사소한 습관이나 특징마저도 파악하게 되었다.

덕분에 가면으로 가렸다고 하지만, 그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맞힐 수 있었다.

“그, 그래? 나름대로 열심히 감춰봤는데 뭔가 의미 없이 느껴지네. 하핫.”

알비스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카단의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벌써 1년이네.”

뭔가 아련함을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카단은 알비스를 슬쩍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새삼스럽겠지만, 고마워. 카단.”

“어? 뭐가?”

“덕분에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고, 빠르게 적응할 수도 있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말끝을 흐리던 알비스가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도시 렐테이라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내, 내가 해야 했었는데.”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였지만, 카단으로서는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괜히 쑥스러움이 느껴졌고, 이런 감사 인사가 익숙하지 않았는지 카단은 어색한 표정으로 괜히 헛기침해댔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오지랖이 넓었을 뿐이야. 고맙긴.”

“그런데 왜 해골 가면을 쓴 거야? 다른 멋진 가면들도 많았을 텐데. 누가 봐도 네크로맨서라는 걸 알리는 거 같잖아?”

카단이 당황해하자, 알비스가 분위기를 바꾸어 질문을 던졌다.

“뭐, 그냥.”

카단이 해골 가면을 쓴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무도회장에서 잭 카터에게 받은 검은 가면을 쓸 수는 없었기에 그나마 눈에 들어온 가면을 골라 빠르게 샀을 뿐.

“그러는 알비스 너는 왜 늑대 가면을 골랐어?”

이번엔 카단이 질문을 던졌고, 알비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음…. 강해 보이잖아?”

아무래도 가면 속 알비스의 모습은 순진하고 착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얕보이는 느낌이 강했던 탓일까? 알비스는 가면으로라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카단은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에 잔뜩 떠올랐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저 알비스의 어깨 위로 팔을 걸치며 웃음을 지을 뿐,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다들 다양한 가면을 구해왔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알비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알비스는 무도회장 곳곳을 둘러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고, 카단도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런데 신기하지 않아? 가면으로 가려도 누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아.”

“그러니까. 머리 모양이나 색상만 봐도 대충 누구인지 예상이 가긴 해.”

알비스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붉은 머리칼을 말꼬리처럼 묶고 토끼 가면을 쓴 사람은 칼리아.”

그 말에 카단이 피식 웃으며 푸른 머리칼의 여성을 가리켰다.

“사자 가면을 쓴 저 사람은 머리카락 색만 봐도 블랑쉬잖아.”

아무래도 두 사람은 이러한 파티 경험이 많이 없어서인지, 제대로 파티를 즐기는 법을 몰랐다.

파티는 그야말로 인맥과 파벌을 형성하기에 가장 좋은 이벤트.

영웅 아카데미는 다른 아카데미보다도 다른 학년과는 친해질 기회가 많이 없었기에, 이 기회를 노려 선후배끼리 인맥을 쌓아두려는 생도들도 많이 보였다.

“저 재수 없는 가면은 라이덴이겠지?”

“카, 카단.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가면이 재수 없다는 것뿐인데?”

그러나 카단와 알비스는 인맥이나 파벌, 사교 따위에 큰 관심이 없었는 지 자리에 앉아 가면 속 사람 맞추기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카단. 너도 대련 신청서 썼어?”

가면을 쓴 생도들의 이름을 맞추던 알비스가 무언가 생각났는 지 카단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썼어.”

“진짜? 누, 누구한테?”

카단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알비스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가면 너머로 보이는 카단의 눈빛이 어쩐지 기대감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알비스 너는?”

“나, 나는 안 썼지. 이런 날까지 싸우고 싶진 않아. 싸우고 싶은 상대도 없고.”

알비스가 자신감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알비스. 이왕 영웅 아카데미에 들어왔으니 야망 좀 품어보는 건 어때?”

“야망?”

“영웅 아카데미를 다니는데 적어도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자가 아닌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

카단은 알비스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길 바랐다.

마족들이 숨어서 활동하고 있었으니, 언제 어디서 마족이 나타나 왕국을 재앙으로 빠트릴지 모른다.

‘강요는 소용없다.’

강요해봤자, 노력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없는 이상 조언은 잔소리가 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카단은 그에게 제안하기로 했다.

전생의 그가 모시던 보스가 야망을 품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던 것처럼.

“이 멋대가리 없는 해골 가면은 분명 카단이겠지?”

그때, 누군가가 다가오며 카단에게 말을 걸어왔다.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

“마티아스 선배? 아니, 무슨 오우거 가면을 쓰셨어요?”

“왜? 멋지지 않아? 오우거가 몬스터 중 최강이잖아.”

“드래곤이 아니고요?”

“드래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잖아. 용병 길드에서 발견된 몬스터 중 가장 강한 건 오우거야.”

“아~ 아카데미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선배라는 걸 가면으로 표현하고 싶으셨다?”

카단이 2학년 최강이라는 마티아스와 서슴없이 대화하자, 알비스는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아무튼. 너 스승님 만났었다며?”

마티아스는 근처에 있던 의자 하나를 가져와 카단 앞에 앉았고, 잠깐 가면을 벗으며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롭스 녀석을 언데드도 없이 쓰러트렸다고 들었어.”

마티아스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카단을 빤히 바라봤고, 카단은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

“롭스한테 편지가 왔어. 그 녀석 날 잘 따르는 동생이거든.”

“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는 지 카단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롭스가 너 칭찬 많이 하더라. 괜히 내가 다 뿌듯하던데?”

“운이 좋았습니다.”

“참나. 뭐만 하면 운이 좋았대.

아, 그리고 궁금한 거 또 있어.”

마티아스가 해맑게 웃으며 카단을 바라봤고, 카단은 물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한테 뭘 달라고 했어?”

아이작 교수와 용병왕 제이드는 제자들의 대결에 내기를 걸었다.

대련의 승자가 상대방 스승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

승부가 끝난 후, 용병왕에게 무언가 요구하려 했었지만, 그때 콜린퍼스 기사단장이 도착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기로 했어요. 뭔가 말할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그럼 뭘 해달라고 할 생각이야?”

과연 카단은 용병왕에게서 무엇을 얻어내려 할까? 마티아스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원래는 네크로맨시 재료를 구해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요.”

카단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정확히 무엇을 요구할지 정하지 못했고, 네크로맨시 재료를 구해달라고 하기엔 ‘소원권’이 너무 아쉽게만 느껴졌다.

“스승님이 못 구하는 건 없어. 웬만하면 대단한 걸 구해달라고 해. 네크로맨서를 위한 성유물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건 어때?”

네크로맨서가 사용하는 성유물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하고 이질감이 들었다.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선배.”

카단은 순간 궁금한 게 생겼는 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선배도 대련 신청서 작성했습니까?”

“물론이지. 3학년 최강이라 불리는 선배님에게 도전할 거야. 어차피 나도 내년이면 아카데미에 없을 테니.”

마티아스는 조기 졸업을 하게 되었고, 그 역시도 이번 가면무도회가 마지막일 것이다.

“그렇군요.”

“왜? 설마 너도 3학년 선배한테 도전할 생각이었어?”

“글쎄요.”

카단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마티아스.”

그때 지나가던 교관 하나가 마티아스를 불렀다.

교관 역시 가면을 쓰고 있었고, 긴 머리칼과 목소리를 통해 여성 교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

마티아스가 교관을 쳐다보자, 교관은 어서 가면을 쓰라며 손짓했다.

“죄송합니다!”

마티아스가 해맑게 웃더니, 빠르게 가면을 고쳐 썼고, 교관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카단.”

교관은 그대로 지나가는 듯싶었으나, 카단을 부르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향해 걸어갔고.

“잠깐 따라오시겠습니까?”

“네?”

“이쪽으로.”

교관은 카단이 다가오자, 따라오라는 말만을 남기며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발렌티나?’

카단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교관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마족화가 진행 중이던 인간이었으나, 이제는 루나에 의해 뱀파이어가 된 소환사 겸 아카데미의 교관.

왜 갑자기 그녀가 따로 보자고 한 것일까?

발렌티나가 걸음을 멈춘 곳은 야경이 보이는 발코니였다.

“갑자기 왜?”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발렌티나는 무도회장 쪽을 잠깐 살피더니, 이내 가면을 살짝 벗으며 카단을 불렀다.

“카, 카단 님.”

“말해요.”

어쩐지 겁에 질린 얼굴. 카단은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발렌티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작은 소리로 카단에게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상한 기운?”

“네. 흡사 저에게 마석을 줬던 그 사람과 비슷한 불길하고 음침한 그런 기운이 느껴져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카단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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