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21화 (121/186)

제121화

연회장 천장이 무너지는 건 준비된 이벤트 따위가 아니었다.

무너진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정체 모를 이들 역시 초대된 손님들이 아니었다.

“모두 죽여버려!”

천장을 통해 연회장에 들어온 습격자들은 곧바로 생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서져 내리는 천장 파편 따위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으나, 검은 복면을 쓴 습격자들은 생도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끄아아아아악!”

“내 팔! 팔이 잘렸어!”

연회장 곳곳에서 잔인한 비명이 들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하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꾸준히 훈련받아온 생도들은 갑작스러운 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실력의 차이가 극명했다.

“너무 강해!”

“혼자 싸우려고 하지 마! 힘을 합쳐서 싸워!”

습격자들은 왕국에서 내놓으라는 재능과 잠재력을 지닌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생도들은 무참하다 싶을 정도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방어에 집중하면서 연회장을 빠져나가라!”

“연병장으로! 모두 연병장으로 모여!”

교관과 교수들은 생도들을 지켜가며 습격자들을 막아내야만 했다.

습격자의 수는 대략 200.

그들을 막아내며 100명이 넘는 생도들을 지켜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크아아악!”

부상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목숨을 잃은 생도도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습격자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교관과 교수들 뿐인 것 같았다.

졸업반 생도와 2학년 생도 몇 명도 습격자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제기랄. 최소 6성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가장 먼저 습격자들과 전투를 시작한 벨리드 교관이 이를 악물며 연회장의 상황을 살폈다.

‘도대체 이런 실력자들이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렇게 나타난 거지?’

벨리드 교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2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움직였는데, 교관이나 교수 중 그 누구도 그들의 기척을 느낀 이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전쟁터에서 몇 년을 굴렀던 벨리드 교관 역시 그들이 모습이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들의 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1, 2학년 생도들이 위험해. 우선 생도들부터 피신 시켜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교관과 교수들이 앞장서서 습격자들을 막아내고 있었고, 생도들은 교관들의 지휘에 맞춰 둘, 셋씩 짝을 지어 습격자들을 상대했다.

‘상황이 좋지 않다.’

잠깐이나마 피해가 줄어들었지만,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이작 교수님!”

벨리드 교관이 연회장 한가운데서 전투 중이던 아이작을 불렀다.

왕국의 가디언 중 하나.

영웅 아카데미 있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자, 가장 믿을 만한 교수.

“생도들을 대피시키겠습니다! 시간 좀 벌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벨리드 교관의 외침에 아이작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퍼져 나왔고, 이내 수십 기의 데스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온몸에 바늘로 꿰맨 흉터가 가득한 남자 하나가 나타나 아이작에게 달려드는 습격자들을 손쉽게 막아냈다.

“서둘러 주십시오.”

아이작의 데스나이트들은 연회장 곳곳으로 달려가 생도들을 공격하는 습격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피할 타이밍이라 생각했는 지, 벨리드 교관은 목소리에 마나를 실어 외쳤다.

“모두 연병장으로 튀어!”

콰아아아아아앙!

벨리드 교관이 연회장 벽면에 대고 마법을 사용했고, 큰 폭발음과 함께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이 많은 인원이 출입문으로 퇴장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싶었는 지, 커다란 문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생도와 교관, 그리고 교수 그 누구도 연회장 밖으로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포, 포위됐어?’

연회장 밖에는 이미 습격자들과 같은 복장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콰앙! 콰아아앙!

동시에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마 연회장을 먼저 빠져나간 생도들이 습격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듯싶었다.

“모두 훈련한 대로 싸워라! 적들은 너희보다 강하다! 절대로 방심하지 마! 혼자 싸우지 마!”

도망칠 수 없다면 선택지는 하나.

벨리드 교관은 생도들에게 전투를 지시했고, 생도들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가 죽고 다치는 모습을 지켜봤었던 그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분노가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다시 한번 전투가 시작됐다.

습격을 당했던 처음과 달리 생도들은 교관, 교수들의 지시를 받으며 조금 더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그래서일까?

전처럼 쉽게 밀려나지도 않았고, 오히려 영웅 아카데미 사람들이 습격자들을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교관님들과 교수님들만 믿으면 돼!’

‘각자의 자리에서 전설을 쓰고 오신 분들이야. 교수님들과 교관님들의 말에 따르면 살 수 있어.’

습격자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의 머릿속에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한편.

카단은 마티아스와 함께 연회장에 남아 아이작 교수를 돕고 있었다.

“카단. 이 자식들 설마….”

습격자들에게서 이질적인 힘을 느낀 마티아스가 조심스레 묻자 카단이 가면을 벗어던지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습격자들의 몸에서는 마족의 힘을 상징하는 검붉은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정체를 숨길 생각을 전혀하지 않고 있었다.

힘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며 전투에 적극적으로 마족의 힘을 사용해댔다.

“빌어먹을. 3차 대전이라도 벌이자는 건가?”

왕국의 역사에 따르면 마족과 왕국이 전쟁을 치른 건 총 두 번.

어쩌면 오늘을 기점으로 세 번째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단 역시 그 생각에 동감하고 있었다.

“생도들만으론 마족을 상대하기엔 위험해요. 얼른 대피시켜야….”

카단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어가려 하자, 마티아스가 턱짓으로 부서진 벽면 너머를 가리켰다.

“연회장 밖도 상황이 좋은 건 아니야.”

대피하려던 교관과 교수, 그리고 생도들이 습격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포위하고 있었다니….”

“쯧. 전부 쓰러트리는 수밖에 없어.”

마티아스가 마나를 활성화하더니, 생도에게 달려드는 습격자를 향해 창을 집어 던졌다.

쑤욱!

창은 정확히 습격자의 배를 관통했고, 이내 습격자는 피를 토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카단. 졸업반 선배님들은 괜찮은 것 같으니까, 흩어져 있는 1학년들을 찾아!”

교관과 교수들만으로는 생도들 전부를 지켜낼 수 없었기에 누군가는 힘을 보태야 했다.

“부상자를 한쪽으로 옮기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교수님들을 돕는다!”

“네.”

마티아스가 창을 회수하기 위해 뛰어갔고, 카단은 곧바로 데스나이트 두 기를 소환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아이작 교수의 활약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지만, 상황은 심각하게만 흘러갔다.

벌써 사망자가 10명이 넘게 나왔으며, 살아있는 자들의 상태도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언데드를 많이 소환하는 건 좋지 않아.’

연병장에서의 전투였다면 모를까, 연회장 안에서 언데드를 잔뜩 소환했다가는 혼란스러움이 가증될 뿐이었다.

아이작의 전투만 지켜봐도 그러했다.

아이작 역시 상위 언데드만을 소환해 습격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제기랄. 나도 좋은 상황은 아니야.’

카단이라고 해서 습격자들을 편하게 상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습격자들은 최소 6성급의 실력을 지녀으며, 심지어 마족의 힘까지 사용했다.

이제 6성에 도달한 카단과 마티아스는 다른 이들보다 상황이 나을 뿐, 이 두 명이서 이 상황을 극적으로 뒤엎을 수는 없었다.

“카단!”

흩어진 1학년 생도들을 찾기 위해 연회장을 돌아다니던 도중,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바라보니 알비스와 칼리아. 그리고 블랑쉬와 라이덴이 팀을 이뤄 습격자 하나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뒤로는 수다쟁이 삼인방인 허먼과 브렌트, 데이비드가 무기를 쥔 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카단은 곧바로 아공간에서 고블린 시체를 꺼내 습격자를 향해 집어던졌고.

콰아아아앙!

고블린 시체는 습격자의 바로 옆에서 폭발했다.

그 사이, 라이덴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검을 내질러 습격자의 목을 찔렀고, 블랑쉬의 얼음 마법이 습격자의 몸을 얼려버렸다.

“다들 괜찮아?”

습격자가 쓰러진 것을 확인하자, 카단은 곧바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애, 애들이….”

울상이 된 알비스가 어딘가를 가리켰고.

“…….”

그곳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1년간 함께 훈련하던 1학년 생도들 10명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있었다.

‘벌써….’

역시 평균적으로 3, 4성에 도달한 1학년 생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듯 싶었다.

“여긴 너희 7명이 전부야?”

카단이 주변을 살피며 묻자, 블랑쉬가 다가오며 대답했다.

“어. 연회장에 남은 1학년은 너까지 총 8명. 그런데 카단. 이 녀석들 설마….”

이미 마족과 전투 경험이 있던 블랑쉬 역시 습격자들이 사용하는 힘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맞아. 일단 블랑쉬. 애들 데리고 벨리드 교관님이랑 합류해.”

연회장 밖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이 교관과 교수들이었다.

아마 아이작과 몇 명의 교수, 교관만 남아있는 연회장 보다는 연회장 밖이 훨씬 안전할 것이다.

“카단. 너는?”

그러자 알비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고, 카단은 괜찮다며 손짓했다.

“난 아이작 교수님을 도울게.”

“카단. 넌 저자들의 정체를 알고 있나?”

막 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붉은 머리가 풀어 해쳐진 칼리아가 다가와 물었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한 표정이었고, 눈에는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1학년 생존자인 7명을 향해 말했다.

“저들은 보통 인간이 아니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마족의 힘을 쓰는 자들이다.”

카단의 말에 블랑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단은 그런 그들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교관님, 교수님들도 힘들어. 우린 알아서 살아남아야 해. 그러니 서둘러. 교관님들과 합류하는 게 생존할 수 있는 길이야.”

“서둘러!”

블랑쉬는 당황한 생도들을 향해 소리쳤고, 그 외침에 생도들이 빠르게 연회장 밖을 향해 달려갔다.

“교수님!”

카단은 그대로 아이작 교수에게 다가갔고, 아이작 교수는 미간을 찌푸린 상태로 카단을 반겼다.

“왜 여기 계십니까?”

“밖에도 상황은 똑같아요. 교수님을 돕겠습니다.”

“카단이라면 든든하죠.”

아이작 교수는 카단을 나무라지 않았다. 어차피 가라고 소리쳐봤자 옆에 있을 것이 뻔했으니, 오히려 그를 반겨주었다.

“카단. 실전 수업입니다.”

“이 상황에서요?”

“실전 만큼 좋은 수업은 없죠. 자, 우선 데스나이트의 활용부터….”

아이작 교수는 그나마 상황이 여유로웠다.

과연 아무나 가디언의 자리에 앉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주변으로는 습격자들의 시체가 늘어나고 있었고, 아이작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불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위 언데드들만으로도 6성 이상의 실력자들을 압도하며 싸운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때.

“역시 가디언이 제일 까다롭단 말이지.”

어둠 너머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카단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공포가 머릿속을 휘감았다.

공작 부인. 멧돼지 가면을 썼던 그 마족에게서 느꼈던 강력한 이질감이 또다시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번 수업은 꽤 길어질 것 같군요.”

아이작도 그 이질감을 느꼈는 지 불안함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엔 문어 가면을 쓴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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